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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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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6월 17일 14시 35분 등록
월드컵 16강을 염원하는 국민들의 열의가 뜨거움을 느끼는 요즘이다.

이미 월드컵의 상품화와 상업화에 관한 이야기를 하면 소위 말하는 ‘뒷북’을 치는 사람인 것 같아서 더 이상 말하고 싶지도 않다. 그저, 선수들이 입은 빨간 유니폼처럼 그저 열정적으로 경기에만 임해 주기를 바랄 뿐이다.

얼마 전에 우리 태극전사들은 토고를 맞아 첫 번째 경기를 승리로 장식했다. '토고'가 뭐야? 라는 사람이 더 이상 없을 정도로 이제 ‘토고’라는 나라는 대한민국에서 유명해졌다.

그 경기를 보기로 했던 그 시간, 나는 갑자기 아이가 열이 나서 응급실에 뛰어가야만 했다. 가족들끼리 모여서 ‘빨간색 복장’을 차려입고 응원을 하기로 했던 터라 더 다급했다. 종합병원 응급실로 향하는 나의 마음 속 솔직히 월드컵의 골에 대한 이미지가 없었다면 그것은 거짓이었을 것이다. 진찰을 본 의사의 ‘아무 이상 없음’을 확인 한 후에야 비로소 편안한 마음으로 집으로 되돌아 올 수 있었다.

문제는 우리집 에레베이터 안에서였다. 병원의 수납장소에서 1:0으로 지고 있는 상황을 확인했던 나는, 승리에 대한 아무런 기대를 하지 않았다. 그러나 엘리베이터를 타고 11층 우리집으로 오는 도중, 순간 지진이 일어난 것 마냥 승강기 전체가 휘엉청- 하고 움직이는 것이 아닌가? 이윽고 들리는 환호성 소리- 나는 직감적으로 우리가 골을 넣었음을 확신했다.

집에 돌아와 병원에서 막 돌아온 아이를 붙잡고 TV 앞에서 관람을 시작했다. 이윽고 연이어 터진 역전골- 누가 보아도 짜릿한 순간이었을 것이다. 10개월 된 딸아이도 언제 응급실을 찾았냐는 듯이 연실 깔깔대며 웃는 것이었다.

그러나 정작, 내가 토고전이 맘에 안드는 이유는 그 다음에 있다.
역전을 한 그 이후부터 우리 태극전사들은 무조건 공돌리기 작전에 돌입한 것이다. 이를 두고 많은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체력안배 때문에 공을 둘려야 했다는등, 역습이 두려워서 그렇다는 의견도 있고, 공돌리기는 승리를 위한 최선의 전략이라는 ‘전략론’을 내세우기도 한다. 또 어느 네티즌은 사우디아라비아의 경기를 되새기며 이런 이야기도 했다. “공돌리기 않다가 역습당해 무승부 되었으면 어쩔뻔 했냐? 사우디 꼴 나면 좋겠냐? 너희 비판자들은 사우디로 이민가라!" 라고-

체력안배 때문이라는 의견은 곧 설득력을 잃어버린다. 먼저 그들은 한명이 퇴장당한 상태에서 경기를 치렀고, 그 경기 이후에 다음경기까지 거의 일주일이라는 시간이 있었다. 단 10분 경기를 체력안배 때문에 소비하지 않는다고?

공격해서 잃을 가능성보다 얻을 가능성이 훨씬 큰 상황, 더구나 공돌리기 자체가 그리 안정적이지 않아 보이는 상황에서 골을 얻어 득실차를 벌이고 사기를 올리려는 것이 옳은 전략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렇게도 자신감이 없고, 패기가 없는가? 더군다나 득실차가 중요한 상황에서 그렇게 잠그기 작전을 벌여야만 던 것일까?

문득, 소설가 박완서는 수필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에서 등수와는 상관없지만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하는 한 마라토너의 모습을 보며 이렇게 묘사했다.

“나는 그런 표정을 생전 처음 보는 것처럼 느꼈다. 여태껏 그렇게 정직하게 고통스러운 얼굴을, 그렇게 정직하게 고독한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가슴이 뭉클하더니 심하게 두근거렸다. 그는 이십등, 삼십 등을 초월해서 위대해 보였다. 지금 모든 환호와 영광은 우승자에게 있고 그는 환호 없이 달릴 수 있기에 위대해 보였다.”

그러나 나는 우리 태극전사들의 모습에서 그런 모습을 전혀 볼 수 없었다.

그들의 표정속에는 '우리는 안정권에 들어왔으니 이제 어쨌거나 1승만 굳히면 된다', 라는 '자족'의 표정을 그들에게서 읽었다. 그들은 더 뛰었어야 했다. 정확히 6일 뒤 프랑스 전에 비록 못 뛰는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들은 최선을 다해서 남은 경기를 마감지었어야 했다. 나는 절대로 토고전은 만족할 만한 경기도, 다시는 그런 정신자세를 가지고 경기에 임하지 말아야 한다고 단언한다.

비록 역습을 당한다 한들, 그들의 표정 속에서 환호 없이 뛸 수 있기에 위.대.한. 모.습.을 보고 싶었기 때문일 것이다.

IP *.118.10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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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주
2006.06.17 14:37:48 *.118.101.211
맞습니다.
어쩌면 어떤분들은 마키아벨리가 말하는 '군주론'과 상당히 유사한 전략을 구사한게 아닌가 하고 생각하시는 분이 계실텐데요, 그렇지 않습니다. 마키아벨리의 말대로라면, 좋은 군주가 되기 위해서는 마지막까지 더 뛰었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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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렬
2006.06.17 21:26:36 *.75.166.26
어쩌면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관점의 차이 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경기란 한 게임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경쟁의 목적은 규칙아래서 자신의 모든 능력을 동원하여 상대에게 승리하는 것입니다.
동네학교 운동회가 아닌 월드컵에서는 최선만으로는 충분하지가 않습니다. 고도로 집약된 기술과 전략적 운영이 요구되는 월드컵에서는 결과쪽에 비중이 더 높습니다
우리는 골결정력에 대한 핵심역량이 부족하기때문에 리턴으로 이어지는 기습적이고 모험적인 상대전략에 취약점을 보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특히 토고전의 경기전개 양상으로 보아 수적 열세인 토고는 우리선수들이 볼을 돌리는 동안 끝까지 전진적인 수비를 보이지 않고 전략적으로 기다리고 있었기때문입니다.
밀어부치다 공이 리턴되면 짧은 시간동안 숫자적으로 동일한 조건이 됩니다. 그러면 전체 숫자와는 상관없이 공격자가 유리하게 됩니다.

멋지게 싸우다 장렬하게 죽었어 와 미흡하기는 하지만 이기고 살아남았어! 중에 선택이겠지요
보는 사람은 전자가 더 매력적이겠지만 하는 사람은 후자가 더 중요할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솔직히 말해 저 개인적인 전술전략적 신념은 망설이지 않는다와 정면돌파라는 초강공이지만

온 국민이 지켜보고 있는 경기이니만큼 아마도 다 된 밥에 코를 빠뜨리는 것보다는 약간 진밥이나 꼬뚜밥을 먹는게 낫다고 생각합니다. 다음을 기약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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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재엽
2006.06.19 13:18:11 *.73.91.163
맞습니다. 사실, 이 글을 썼을때 제 자신을 가만히 생각해 보았더니 토고전 자체에 대한 비아냥거림보다는 획일화에 좀 화가 났던 것 같습니다. 무조건적으로 이기면 잘한거다, 골을 못넣으면 못한거다, 라는 식의 흑/백 논리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 성렬님께서 지적하신대로 '하는 사람'과 '보는 사람'의 차이, 그리고 같은 경기를 보면서도 다양한 해석과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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