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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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다했을 때, 삶에 대해 후회하지 말라.
몇 년 전, 망우리 묘지를 찾아간 적이 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 2000년 겨울이었것 같다. 언니와 함께 한 길이었다.
3학년이 되기도 전부터 선생들은 ‘일년 동안 인간이길 포기해라, 공부하는 기계라고 생각하라.’고 끊임없이 우릴 세뇌시키고 있었다.
아...제길. 정말 그러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겁 많던 나는 대학에 회의를 가지면서도, 선생들의 교수법에 반감을 가지면서도 찍소리 못하고, 부모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어쩔 수 없이 문제지를 꺼내 공부하고, 속으로만 고민에 들끊던 모범생이었다. 지금 삶에 대해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문득 무덤을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나에게 할 말이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세상을 떠날 때 어떤 말을 남기고 갈까, 세상을 살다간 느낌이 어떠했을까.’
궁금했다. 그건 언젠가 나에게도 올 일이었기에.
얕지만 넓었던 몇 개의 구릉이 온통 무덤으로 덮혀 있었다. 봉긋봉긋 솟아난 무덤들. 공동묘지로 가는 길에 들었던, backstreet boys의 노래가 잊혀지질 않는다.
공동묘지는 하나의 공원처럼 조각되어 있었다. 그게 재밌는 부분이었다. 죽음이 경건하거나 슬픈 것이 아니라, 이처럼 일상과 가까울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였을까?
사람들은 곧잘 미래를 이야기 하고는 그때가 오면 그대로 지나쳐 버린다
무덤 사이를 이리저리 거닐었다. 산책로가 잘 되어 있어서 반나절은 족히 잘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어느 유명한 시인의 무덤도 있었고, 애국자의 묘지도 있었다. 나머지는...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모두 하나의 ‘역사’였을 텐데, 살아서 그토록 들고 뛰던 이들도 죽으니 하나의 번호로 압축되고 만다. 그들의 묘비명엔 오로지 그들이 사용했던 ‘이름’과 숨쉬고 있었던 ‘시간’만이 기록되어 있었다. 누구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다.
아마도 저녁 즈음 집을 돌아왔을 것이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귀신이라 해지기전 출발해야 했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등으로 맞으며, 공동묘지를 빠져나왔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2006년, 나는 고등학생 신분에서 대학생 신분으로 이동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그전에 내가 꿈꾸던 일들을 이뤘을까? 지나간 수첩들을 뒤적였다.
호주의 해변가에 서있던 내 모습, 제주도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로 달리는 모습, 크리스마스날 남자친구와 거리를 거닐던 내 모습, 자서전 쓰기,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기획하고 공연하던 내 모습, 악기 배우던 모습, 장학금 받기, 운전면허 따기, 야학 선생하기, 외국에서 1년 살기, 수영배우기, 춤 배우기, 서울에서 부산까지 도보로 무전여행하기, 스노보드 배우기, 갖가지 아르바이트 해보기, 죽도록 술 먹어 보기, 지치도록 엠티 다니기.....
아, 다행히 큰 후회는 남지 않는다. 내가 상상했던 것들 대부분이 현실로 나타났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건 지리산 등반, 사람들과 함께 국토대장정, 미팅...정도?
지나간 시간들에 후회는 없다. 내 모토가 ‘후회없는 삶을 살자’인데 스스로 후회를 남길 순 없으니까.
늘 꿈꾸고, 내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그를 넓히고자 발버둥 쳤다. 내 안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직감이 있었지만, 잘 되진 않았다. 나는 약했고, 보잘 것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휩쓸려 둥둥 떠다니기도 했고, 온갖 말들에 유혹되기도 했다. 무엇이 옳은 길일까 밤새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 진정으로 내가 아닌 모습이 나를 슬프게 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면, 내 옆에 5년 뒤의 나를 상상한다.
그러면 5년 후의 내가 나를 보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헤이~뭐가 힘들어?”
그에게 미안해하거나,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
“인생을 다시 산다면,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오~갇!! 이건 내가 절대 담기 싫은 말들이다.
지나간 기록들이 오히려 지금의 나를 일깨워준다.
“늘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네 미래를 창조해고 있는가?”
다이어리와 일기장에 같은 고민과 같은 글귀들이 반복되고 있다면, 내가 아직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따로 있지 않았다.
하루 걸러 하루라도 살아있을 수 있다면.
떠날 때,
“아, 정말 멋진 여행이었어요.”
이 한미디면,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윙크한번 날리고 눈 감을 수 있다면.
'삶이 다했을 때, 삶에 대해 후회하지 말라.'
수 년전 망우리 공동묘지에서의 목소리가 지금 들리고 있다.
IP *.145.125.146
몇 년 전, 망우리 묘지를 찾아간 적이 있다.
고등학교 3학년이 되기 전 2000년 겨울이었것 같다. 언니와 함께 한 길이었다.
3학년이 되기도 전부터 선생들은 ‘일년 동안 인간이길 포기해라, 공부하는 기계라고 생각하라.’고 끊임없이 우릴 세뇌시키고 있었다.
아...제길. 정말 그러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겁 많던 나는 대학에 회의를 가지면서도, 선생들의 교수법에 반감을 가지면서도 찍소리 못하고, 부모님 기대에 어긋나지 않게 어쩔 수 없이 문제지를 꺼내 공부하고, 속으로만 고민에 들끊던 모범생이었다. 지금 삶에 대해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문득 무덤을 가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나에게 할 말이 있지 않을까?
‘사람들이 세상을 떠날 때 어떤 말을 남기고 갈까, 세상을 살다간 느낌이 어떠했을까.’
궁금했다. 그건 언젠가 나에게도 올 일이었기에.
얕지만 넓었던 몇 개의 구릉이 온통 무덤으로 덮혀 있었다. 봉긋봉긋 솟아난 무덤들. 공동묘지로 가는 길에 들었던, backstreet boys의 노래가 잊혀지질 않는다.
공동묘지는 하나의 공원처럼 조각되어 있었다. 그게 재밌는 부분이었다. 죽음이 경건하거나 슬픈 것이 아니라, 이처럼 일상과 가까울 수 있다는 걸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였을까?
사람들은 곧잘 미래를 이야기 하고는 그때가 오면 그대로 지나쳐 버린다
무덤 사이를 이리저리 거닐었다. 산책로가 잘 되어 있어서 반나절은 족히 잘 걸어 다닐 수 있었다. 어느 유명한 시인의 무덤도 있었고, 애국자의 묘지도 있었다. 나머지는... 내가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모두 하나의 ‘역사’였을 텐데, 살아서 그토록 들고 뛰던 이들도 죽으니 하나의 번호로 압축되고 만다. 그들의 묘비명엔 오로지 그들이 사용했던 ‘이름’과 숨쉬고 있었던 ‘시간’만이 기록되어 있었다. 누구도 그들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다.
아마도 저녁 즈음 집을 돌아왔을 것이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이 귀신이라 해지기전 출발해야 했다. 차가운 겨울바람을 등으로 맞으며, 공동묘지를 빠져나왔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흐른 2006년, 나는 고등학생 신분에서 대학생 신분으로 이동했다.
그동안 어떻게 살았을까?
그전에 내가 꿈꾸던 일들을 이뤘을까? 지나간 수첩들을 뒤적였다.
호주의 해변가에 서있던 내 모습, 제주도 바람을 가르며 자전거로 달리는 모습, 크리스마스날 남자친구와 거리를 거닐던 내 모습, 자서전 쓰기, 연주회를 성공적으로 기획하고 공연하던 내 모습, 악기 배우던 모습, 장학금 받기, 운전면허 따기, 야학 선생하기, 외국에서 1년 살기, 수영배우기, 춤 배우기, 서울에서 부산까지 도보로 무전여행하기, 스노보드 배우기, 갖가지 아르바이트 해보기, 죽도록 술 먹어 보기, 지치도록 엠티 다니기.....
아, 다행히 큰 후회는 남지 않는다. 내가 상상했던 것들 대부분이 현실로 나타났다.
아직 나타나지 않은 건 지리산 등반, 사람들과 함께 국토대장정, 미팅...정도?
지나간 시간들에 후회는 없다. 내 모토가 ‘후회없는 삶을 살자’인데 스스로 후회를 남길 순 없으니까.
늘 꿈꾸고, 내 가능성을 시험해보고 그를 넓히고자 발버둥 쳤다. 내 안의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는 직감이 있었지만, 잘 되진 않았다. 나는 약했고, 보잘 것 없었다. 다른 사람들의 말에 휩쓸려 둥둥 떠다니기도 했고, 온갖 말들에 유혹되기도 했다. 무엇이 옳은 길일까 밤새 고민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을 하든 진정으로 내가 아닌 모습이 나를 슬프게 했다.
앞이 보이지 않을 때면, 내 옆에 5년 뒤의 나를 상상한다.
그러면 5년 후의 내가 나를 보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헤이~뭐가 힘들어?”
그에게 미안해하거나, 후회할 일을 만들고 싶지 않다.
“인생을 다시 산다면, 지금 알았던 것을 그때도 알았더라면....”
오~갇!! 이건 내가 절대 담기 싫은 말들이다.
지나간 기록들이 오히려 지금의 나를 일깨워준다.
“늘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있는가? 네 미래를 창조해고 있는가?”
다이어리와 일기장에 같은 고민과 같은 글귀들이 반복되고 있다면, 내가 아직 더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는 뜻이다.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와 미래의 내가 따로 있지 않았다.
하루 걸러 하루라도 살아있을 수 있다면.
떠날 때,
“아, 정말 멋진 여행이었어요.”
이 한미디면,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에게 윙크한번 날리고 눈 감을 수 있다면.
'삶이 다했을 때, 삶에 대해 후회하지 말라.'
수 년전 망우리 공동묘지에서의 목소리가 지금 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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