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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재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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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7월 21일 17시 09분 등록
1.
우리나라에서는 공식적인 기록으로 커피를 처음 마심 사람은 조선말 고종황제이다. 1986년 을미사변으로 인하여 러시아공관에 피신(아관파천)해 있을 당시 커피를 접하여 이후 애호가가 된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커피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년전, 그리고 유럽에 보급된 이후 약 300년의 세월이 흐른 후 소개된 것으로 봐야한다. 19000년 초에는 황실이나 고관 그리고 외교사절 등 소수의 사람들만이 커피를 맛보았고, 1920-40년대 일본식민지시절에는 일본에서 보급된 커피가 서울시내 명동, 소동동 일대에서 소수의 음악다방이나 카페를 통해 조금씩 알려졌다.

우리나라에서 커피가 본격적으로 널리 보급된 계기는 1950년 한국전쟁에 참전한 미군들이 가지고 온 인스턴트 커피였다. 이후 1987년 커피의 수입개방화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30여년간 시내와 대학가이 음악다방이나 카페형식을 빌어 혹은 시외에서의 여성 접객인을 둔 다방의 형식을 빌어 전국적으로 인스턴트 커피가 유행하였고, 세계적으로 유래가 없는 인스턴트 커피자판기의 전국화가 1980년-2000년까지 20여년간 이루어졌다.

상대적으로 열등한 품질의 로부스터 종 인스턴트 커피에 설탕과 프림으로 쓴맛을 희석시킨 커피가 거의 전부이던 사오항에서 1987년 커피의 수입개방화와 더불어 원두커피가 서서히 보급되기 시작했고 이에따라 에스프레소머신이 본격적으로 원두커피 전문점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이후 10년간은 기존의 다방은 급격히 쇠퇴하고 원두커피 전문점이 번성했다. 현재는 대형 브랜드체인이 커피점을 주도한다.

2.
윗 글은 '고종의 아침'이라는 고전적인 이름의 커피전문점에 있는 팜플렛에 있는 글이다. 프림과 설탕을 잔뜩넣고 쓱쓱 돌려 마시는 다방커피와 로스터에 막 구워낸 바싹익어 입에 싸아- 하고 쓴맛을 안겨주는 원두커피를 가리지 않고 마셔대는 커피 애호가로서 찾아간 커피전문점이었다.

비오는 날, 창밖을 바라보며 마시던 커피 한잔이라니-

3.
그날 오후에는 윈튼 켈리의 피아노가 흘렀다. 웨이트리스가 하얀 커피 잔을 내 앞에 놓았다. 그 두툼하고 묵직한 잔이 테이블 위에 놓일 때 카탕하고 듣기 좋은 소리가 났다. 마치 수영장 밑바닥으로 떨어진 자그마한 돌멩이처럼, 그 여운은 내 귀에 오래도록 남아 있었다. 나는 열여섯이었고, 밖은 비였다.

그 곳은 항구를 낀 아담한 소도시,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에서는 늘 바다냄새가 풍겼다. 하루에 몇 번인가 유람선이 항구를 돌았고, 나는 수없이 그 배에 올라타 대형 여객선과 도크의 풍경을 질리지도 않고 바라보곤 했다. 설사 그것이 비 내리는 날이라 해도, 우리는 비에 흠뻑 젖어 가며 갑판 위에 서 있었다. 항구근처에 카운터 외에는 테이블이 딱 하나밖에 없는 조촐한 커피 집이 있어, 천장에 붙어 있는 스피커에서는 재즈가 흘러 나왔다. 눈을 감으면 깜깜한 방에 가두어진 어린아이 같은 기분이 찾아왔다. 거기엔 언제나 친숙한 커피 잔의 온기가 있었고, 소녀들의 보드라운 향내가 있었다.

내가 정말로 마음에 들어 했던 것은, 커피 맛 그것보다는 커피가 있는 풍경이었는지도 모르겠다고, 지금은 생각한다. 내 앞에는 저 사춘기 특유의 반짝반짝 빛나는 거울이 있고, 거기에 커피를 마시는 내 자신의 모습이 또렷하게 비추어져 있었다. 그리고 나의 배후로는 네모지게 도려내진 작은 풍경이 있었다. 커피는 어둠처럼 검고, 재즈의 선율처럼 따뜻했다. 내가 그 조그만 세계를 음미할 때, 풍경은 나를 축복했다.

그것은 또한 아담한 소도시에서 한 소년이 어른으로 성장해 가기 위한 은밀한 기념사진이기도 하다. 자, 커피 잔을 가볍게 오른손에 쥐고, 턱을 당기고, 자연스럽게 웃어요……. 좋았어, 찰칵.

때로 인생이란 커피 한 잔이 안겨다 주는 따스함의 문제, 라고 리차드 브로티간의 작품 어딘가에 씌어 있다. 커피를 다룬 글 중에서, 나는 이 문장이 제일 흡족스럽다.

4.
위의 글은 무라까미 하루키가 쓴 '코끼리 공장의 해피엔드'라는 글에서 '커피를 마시는 방법에 대하여' 라는 글이다. '때로 인생이란 커피 한 잔이 안겨다 주는 따스함의 문제'라는 문장이 가슴에 와 닿는다. 그런데 칼을 내지른 것처럼 물살이 갈라지는 창밖의 비를 보면서, 나는 입에 쩍하고 달라붙는 커피를 마시며 여유롭게 고종의 아침에 마신 커피를 생각한다.

유리 창 하나 사이로 삶과 죽음이 넘실대는 바깥세상과 막 볶아낸 향긋한 커피의 냄새가 가득한 까페의 여유로움이 싱그러운 내부세상의 조화-. 여전히 이런 아이러니에도 불구하고 나는 커피를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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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탄
2006.07.21 19:58:08 *.199.135.89

두번 째 속았을 땐, 아이구~~ 소리가 절로 나오네요.< 1번과 3번 글>
이 글에 이 귀절이 있어서 덧글을 달 마음이 생겼어요.

"유리 창 하나 사이로 삶과 죽음이 넘실대는 바깥세상"

전형적인 신세대로 보이는 일면, 가끔씩 보여주는 노회한 시선 때문에 재엽씨의 글이 다가와요, 적어도 나에게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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