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빈
- 조회 수 2197
- 댓글 수 3
- 추천 수 0
인문학은 아주 큰 영역이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고 구분짓는 건 무모한 짓이다. 대강 ‘사람 사는 일에 대한 것’ 쯤으로 정의 내려 놓고 그 안에서 책을 고르다 보면 간혹 아주 친절한 책들을 만나게 된다. 쉽게 말해 개괄서라고도 할 수 있는데, 해당 영역의 주요 인물들을 연대기적으로 소개하기도 하고, 아니면 랜드마크가 될만한 서적들을 차례로 보여주는 경우도 있다. 이런 책들은 대개 전체를 다루다 보니 깊게 들어가지는 못하지만 그 영역에 대한 큰 지도를 그려 줄 수는 있다. 나는 이러한 책들을 인문학에 있어서의 입문서라고 부르고자 한다. 그리고 아래에 이런 책들을 몇 권 소개하고자 한다.
<동양고전 – 신영복 “강의”>
나이 서른에 공자, 맹자를 읽었다면, 그것도 요약판으로 읽었다면 이건 정말 서당개한테 비웃음을 살 일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니 이런 비웃음은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니구나 싶다. 어쨌거나 부끄러운 일이다.
‘요새 세상에 누가 이런 것을 읽나?’라고 얘기 하고 싶다면 이 책을 보지 말라. 굳이 권해서 욕먹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만약에라도 의심스러운 생각이 든다면 슬쩍 한번 펼쳐보라. 이 속에 내가 있고, 부모님이 계시고, 조상님이 계신다. 한국 사람이 있고 동양 사람이 있다. 그렇다. 이 책은 나의 뿌리를 찾는 책이고 나의 내면을 여행하는 책이다. 나에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이 책은 시경, 서경, 주역, 공자, 맹자, 노자, 장자, 한비자, 묵자, 불교에 이르기까지 동양사상의 밑바닥을 이루는 모든 것들을 소개하고 있다. 단지 소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범접하기 어렵게 느껴지는 동양고전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동양 고전을 읽고 싶다면 이 책부터 시작할 것을 권한다. 그리고 나면 그 다음에 보고 싶은 책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경제학 – 토드 부크홀츠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경제학은 나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경제학에 대한 나의 오만이자 편견이었다. 경제학 역시 사람 사는 것에 대한 학문이며 그렇기에 이 또한 인문학이다.
이 책은 경제학의 거두들을 한 명씩 불러서 내 옆에 앉혀준다. 맨 먼저 애덤 스미스가 찾아와 국부론을 요약해 준다. 그리고 저자가 슬쩍 나와 애덤 스미스가 놓친 몇 가지 오류를 치사하게 당신에게 일러 바친다. 먼 훗날, 많은 것이 밝혀진 다음에 ‘오류다!’라고 외치는 것이니 조금 치사할 수 밖에. 그리고 그 다음으로 맬서스, 리카도, 밀, 마르크스, 마셜, 베블런, 케인즈, 뷰캐넌 등이 차례로 불려 나온다.
이 책의 재미는 뒤집기에 있다. 일부러 이런 배열을 했든지 아니면 원래 경제학의 흐름이 그러했든지, 앞의 학자를 뒤의 학자가 뒤집어 엎고 그 학자는 또 다음의 학자에게 뒤집히고 만다. 이런 반전의 재미가 있다. 이 묘미는 분명 작가의 공이다.
경제학이 두려운가? 망설여지는가? 그렇다면 이 책부터 시작하라.
<한국미술 – 유홍준 “화인열전”>
(인문학의 범위에 억지로 집어 넣어 조금 어색하다. 그냥 미학이라고 봐주면 고맙겠다.)
수묵화를 제대로 바라본 적이 있는가? 고등학교 미술책에서만 봤다면 당신은 너무 바쁘게 살았다. 아니면 너무 좁게 살았거나.
우리는 고등학교 미술수업의 도움으로 서양 미술사조는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인상파 그림은 아주 인상적이고 낭만주의 그림은 비교적 낭만적으로 보이는 듯 하다. 얼쭈 그렇게 보인다. 그렇다면 진경산수화는 어떨 것 같은가? 당신은 정선과 심사정의 그림을 구분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럴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는가? 김홍도의 그림이라도 골라 낼 수 있다면 다행이다.
이 책은 조선후기를 풍미한 8명 화가들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고상한 선비화가도 나오고 그림에 미친 환쟁이도 나온다. 그리고 그들이 심혈을 기울인 일생의 역작들이 수도 없이 나온다. 사실 이런 그림들을 혼자서 그냥 보면 잘 모른다. 다행히 유홍준 선생은 여기에 친절한 배경설명과 해석을 달아 두었다. 하나씩 하나씩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아직 조선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옛 것에 관심을 가져보자. 그럴 생각을 갖지 못했을 뿐이지, 사실 그것만큼 몸이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없다. 직접 해보라. 그러면 당장 주변에 붙어 있는 서예 작품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피카소나 고흐의 그림을 보고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지 않은가? 아님 말고.
<신화 – 조셉 켐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신화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 아니면 주몽이나 박혁거세.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괴물도 들어 본적이 있다면? 책을 많이 봤거나 컴퓨터 게임을 너무 많이 한 것.
이 책은 신화 연구에 일생을 바친 조셉 켐벨이 전 세계의 신화를 연구하여 그 구조의 공통점에 따라 재배열한 책이다. ‘영웅의 출발, 입문, 귀환, 소멸’의 여정을 따라 이동하게 되는데, 도중에 아마 예수, 붓다, 시바와 비시누, 제우스 등 모든 스타들을 다 만나게 될 것이다.
신화와 함께 하는 세계 여행.
신화에 흥미가 있으면 일독을 권하되, 인내심을 가지고 볼 것.
위에 언급한 책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 책들을 읽고 나면 분명 다음에 읽을 책이 생각난다는 점이다. 만약에 제대로 읽었다면 아주 많이 생각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들을 인문학의 포털(portal)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책들을 통과 하면 더 넓은 세상이 보이기에.
** 앞으로 읽을 포털
<세계사 – 윌 듀란트 “역사 속의 영웅들”>
<철학 – 윌 듀란트 “철학 이야기”>
**여러분이 생각하는 포털로서의 입문서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
.
IP *.99.185.254
<동양고전 – 신영복 “강의”>
나이 서른에 공자, 맹자를 읽었다면, 그것도 요약판으로 읽었다면 이건 정말 서당개한테 비웃음을 살 일이다. 그러나 다행히도 지금은 조선시대가 아니니 이런 비웃음은 비단 나만의 것은 아니구나 싶다. 어쨌거나 부끄러운 일이다.
‘요새 세상에 누가 이런 것을 읽나?’라고 얘기 하고 싶다면 이 책을 보지 말라. 굳이 권해서 욕먹고 싶은 생각은 없다. 하지만 만약에라도 의심스러운 생각이 든다면 슬쩍 한번 펼쳐보라. 이 속에 내가 있고, 부모님이 계시고, 조상님이 계신다. 한국 사람이 있고 동양 사람이 있다. 그렇다. 이 책은 나의 뿌리를 찾는 책이고 나의 내면을 여행하는 책이다. 나에게는 그렇게 다가왔다.
이 책은 시경, 서경, 주역, 공자, 맹자, 노자, 장자, 한비자, 묵자, 불교에 이르기까지 동양사상의 밑바닥을 이루는 모든 것들을 소개하고 있다. 단지 소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범접하기 어렵게 느껴지는 동양고전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동양 고전을 읽고 싶다면 이 책부터 시작할 것을 권한다. 그리고 나면 그 다음에 보고 싶은 책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것이다.
<경제학 – 토드 부크홀츠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경제학은 나의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것은 경제학에 대한 나의 오만이자 편견이었다. 경제학 역시 사람 사는 것에 대한 학문이며 그렇기에 이 또한 인문학이다.
이 책은 경제학의 거두들을 한 명씩 불러서 내 옆에 앉혀준다. 맨 먼저 애덤 스미스가 찾아와 국부론을 요약해 준다. 그리고 저자가 슬쩍 나와 애덤 스미스가 놓친 몇 가지 오류를 치사하게 당신에게 일러 바친다. 먼 훗날, 많은 것이 밝혀진 다음에 ‘오류다!’라고 외치는 것이니 조금 치사할 수 밖에. 그리고 그 다음으로 맬서스, 리카도, 밀, 마르크스, 마셜, 베블런, 케인즈, 뷰캐넌 등이 차례로 불려 나온다.
이 책의 재미는 뒤집기에 있다. 일부러 이런 배열을 했든지 아니면 원래 경제학의 흐름이 그러했든지, 앞의 학자를 뒤의 학자가 뒤집어 엎고 그 학자는 또 다음의 학자에게 뒤집히고 만다. 이런 반전의 재미가 있다. 이 묘미는 분명 작가의 공이다.
경제학이 두려운가? 망설여지는가? 그렇다면 이 책부터 시작하라.
<한국미술 – 유홍준 “화인열전”>
(인문학의 범위에 억지로 집어 넣어 조금 어색하다. 그냥 미학이라고 봐주면 고맙겠다.)
수묵화를 제대로 바라본 적이 있는가? 고등학교 미술책에서만 봤다면 당신은 너무 바쁘게 살았다. 아니면 너무 좁게 살았거나.
우리는 고등학교 미술수업의 도움으로 서양 미술사조는 대강 짐작할 수 있다. 인상파 그림은 아주 인상적이고 낭만주의 그림은 비교적 낭만적으로 보이는 듯 하다. 얼쭈 그렇게 보인다. 그렇다면 진경산수화는 어떨 것 같은가? 당신은 정선과 심사정의 그림을 구분할 수 있는가? 아니면 그럴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하는가? 김홍도의 그림이라도 골라 낼 수 있다면 다행이다.
이 책은 조선후기를 풍미한 8명 화가들의 일대기를 다룬 책이다. 고상한 선비화가도 나오고 그림에 미친 환쟁이도 나온다. 그리고 그들이 심혈을 기울인 일생의 역작들이 수도 없이 나온다. 사실 이런 그림들을 혼자서 그냥 보면 잘 모른다. 다행히 유홍준 선생은 여기에 친절한 배경설명과 해석을 달아 두었다. 하나씩 하나씩 보다 보면 나도 모르게 빠져들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아직 조선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한국의 옛 것에 관심을 가져보자. 그럴 생각을 갖지 못했을 뿐이지, 사실 그것만큼 몸이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것도 없다. 직접 해보라. 그러면 당장 주변에 붙어 있는 서예 작품부터 눈에 들어오기 시작할 것이다. 사실 우리는 피카소나 고흐의 그림을 보고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지 않은가? 아님 말고.
<신화 – 조셉 켐벨 “천의 얼굴을 가진 영웅”>
신화하면 떠오르는 것은? 그리스 로마 신화 아니면 주몽이나 박혁거세.
북유럽 신화에 나오는 괴물도 들어 본적이 있다면? 책을 많이 봤거나 컴퓨터 게임을 너무 많이 한 것.
이 책은 신화 연구에 일생을 바친 조셉 켐벨이 전 세계의 신화를 연구하여 그 구조의 공통점에 따라 재배열한 책이다. ‘영웅의 출발, 입문, 귀환, 소멸’의 여정을 따라 이동하게 되는데, 도중에 아마 예수, 붓다, 시바와 비시누, 제우스 등 모든 스타들을 다 만나게 될 것이다.
신화와 함께 하는 세계 여행.
신화에 흥미가 있으면 일독을 권하되, 인내심을 가지고 볼 것.
위에 언급한 책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 책들을 읽고 나면 분명 다음에 읽을 책이 생각난다는 점이다. 만약에 제대로 읽었다면 아주 많이 생각날 수도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이 책들을 인문학의 포털(portal)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 책들을 통과 하면 더 넓은 세상이 보이기에.
** 앞으로 읽을 포털
<세계사 – 윌 듀란트 “역사 속의 영웅들”>
<철학 – 윌 듀란트 “철학 이야기”>
**여러분이 생각하는 포털로서의 입문서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
.
댓글
3 건
댓글 닫기
댓글 보기
VR Left
번호 | 제목 | 글쓴이 | 날짜 | 조회 수 |
---|---|---|---|---|
1089 | 나팔꽃은 언제 피는가 [2] | 미 탄 | 2006.07.30 | 2496 |
1088 | 휴가 [2] | 자로 | 2006.07.30 | 2043 |
1087 | 스위스 용병 | 꿈꾸는간디 | 2006.07.28 | 2426 |
1086 | 연구원생활이 나에게 준 변화들 [4] | 정재엽 | 2006.07.28 | 2477 |
1085 | 매실액을 담그며 [1] | 한희주 | 2006.07.27 | 2081 |
» | 좋은 책은 포털(portal)이다. [3] | 경빈 | 2006.07.27 | 2197 |
1083 | 블랙코메디 [2] | 김성렬 | 2006.07.26 | 1953 |
1082 | 세상엔 변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2] | 김성렬 | 2006.07.26 | 1866 |
1081 | 무지함 | 김귀자 | 2006.07.25 | 1983 |
1080 | 참 고마운 사이트 [1] | 김나경 | 2006.07.22 | 2109 |
1079 | 키작은 고백 2 [1] | 이선이 | 2006.07.21 | 2080 |
1078 | 고종(高宗)의 아침 [1] | 정재엽 | 2006.07.21 | 2183 |
1077 | 무림의 세계에 들어서다 [1] | 꿈꾸는간디 | 2006.07.21 | 2043 |
1076 | 글쓰기에 대한 단상... [1] | 행인(行人) | 2006.07.21 | 2030 |
1075 | '낭만적 사랑'이라는 허구 [1] | 한명석 | 2006.07.21 | 2411 |
1074 | 여분의 자유도와 사고의 유연성 | 김성렬 | 2006.07.20 | 2507 |
1073 | 햇빛 부족 우울함 [1] | 김나경 | 2006.07.20 | 2078 |
1072 | 모든 익어가는 것들은 은밀히 보호된다. | 이선이 | 2006.07.19 | 2112 |
1071 | 고치기 재능 | 정경빈 | 2006.07.18 | 2062 |
1070 | 삶이 다했을 때 [1] | 김귀자 | 2006.07.17 | 20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