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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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단어를 한 두 개만 고르라면 무슨 단어를 고르겠는가? 나는 이제껏 ‘창조’라는 단어를 가장 소중하게 간직하고 살아왔다. 워낙 단순한 일의 반복을 싫어하고, 내가 이해할 수 있는 아름다움에 민감하게 반응해 온 터였다. 글과 그림, 건축물과 그릇, 꽃과 나무... 무엇이 되었든 나로 하여금 환호하게 하고 갖고 싶게 만드는 것은, ‘아름다움’이었기에 ‘창조’없는 인생은 가치가 없다고까지 생각해왔다.
그런데 오후에 산책 중에 ‘소통’이라는 단어가 섬광처럼 다가왔다. 백수생활이 한 달 반을 지나가고 있었다. 앞으로 다섯 달 정도 더 쉬면서, 살아온 날을 정리하고 새롭게 살아갈 힘을 도움닫기하고 싶었다. 백수 기간을 충실하게 살리려면, 무엇에 올인해야할까 골똘하게 궁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막 읽은 정여울의 책에서 자극받은 내용이 있었다.
- ‘지금 여기서 할 수 없는 일은 그때 거기서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백만장자가 되어야만 할 수 있다고 믿는 일들을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존을 위한 잡일을 씩씩하게 처리하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일상의 최전방에 배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하고 싶은 일을 신명나게 함으로써 하고 싶지 않았던 일에게까지 신바람을 전염시킬 방법은 없을까. -
상상해보라. 내가 원하는대로 삶의 조건이 이루어진 상황을. 내게는 그것은 ‘두 군데의 삶의 base'이다. 하나는 도시에서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할 수 있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 속에 위치한 장소이다. 나는 두 군데를 오가며 살면서 더 다양하고 충만한 시간을 접하기를 기대한다. 누구 말마따나 오전에는 텃밭을 가꾸고, 오후에는 산책을 하고, 저녁에는 철학을 논하고, 밤에는 글을 쓸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 누군가와 완전한 합일이 없다면, 오두막에 살든 대 저택에 살든 그 곳이 감옥이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통’은 ‘사랑’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수명이 긴 개념이다. 아버지는 오남매 중에서 나를 제일 이뻐해 주셨다. 말수가 적은 전통적인 아버지였지만 우리 모두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사랑 속에서 나는 자유롭고 존귀해졌다. 아버지와 나는 완벽하게 소통하였던 것이다. 20대의 농활시절, 농촌과 농민에 대해 사정없이 열린 내 마음은 아무 것도 거칠 것이 없었다. 제 값을 받지 못해 밭에서 얼어붙은 고랭지 배추와, 팽나무 아래 드리워진 달빛과, 나뭇단을 타고 내려오던 지겟길... 그 모든 것과 나는 통하였다.
내가 나의 마음 가는 곳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즐길 수 있다면, 즉 내가 나와 소통할 수 있다면 혼자 노는 것이 즐겁다. 혼자 놀다 지치면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것은 책 속의 저자일 수도 있고, 블로그의 방문객일수도 있고, 번개로 만난 그 누구일수도 있고 가족일수도 있다.
그 모든 만남에 진정한 소통이 된다면, 돌연 우리는 행복해진다.
정여울이 스스로 글 쓰는 일을 하지 않을 때는 거의 금치산자에 가깝다고 말할 때, 나는 웃었다. 그녀의 어떤 문장들을 소리내어 읽으며 나는 행복했다. 적당한 사교술이 아니라, 정말 언어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나는 진심으로 기쁠 것이다. 가족주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은 빠지고 의무만 남은 가족을 부정한다. 진정한 소통을 찾아 땅끝까지 갈 용의가 있다. 결국, 모든 것이 미비한 백수시절이든, 조금은 이상적인 조건에 다가간 때이든, 내가 모색하고 노력하고 기꺼이 가꾸어야 하는 것은, '소통'의 방법과 질인 것이다.
통하였느냐, 이 한 마디에 하루의 희비가 결정된다.
IP *.81.19.123
그런데 오후에 산책 중에 ‘소통’이라는 단어가 섬광처럼 다가왔다. 백수생활이 한 달 반을 지나가고 있었다. 앞으로 다섯 달 정도 더 쉬면서, 살아온 날을 정리하고 새롭게 살아갈 힘을 도움닫기하고 싶었다. 백수 기간을 충실하게 살리려면, 무엇에 올인해야할까 골똘하게 궁리하고 있는 중이었다. 막 읽은 정여울의 책에서 자극받은 내용이 있었다.
- ‘지금 여기서 할 수 없는 일은 그때 거기서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백만장자가 되어야만 할 수 있다고 믿는 일들을 지금 당장 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생존을 위한 잡일을 씩씩하게 처리하면서도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 일상의 최전방에 배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하고 싶은 일을 신명나게 함으로써 하고 싶지 않았던 일에게까지 신바람을 전염시킬 방법은 없을까. -
상상해보라. 내가 원하는대로 삶의 조건이 이루어진 상황을. 내게는 그것은 ‘두 군데의 삶의 base'이다. 하나는 도시에서 아이들의 뒷바라지를 할 수 있는 곳이고, 다른 하나는 자연 속에 위치한 장소이다. 나는 두 군데를 오가며 살면서 더 다양하고 충만한 시간을 접하기를 기대한다. 누구 말마따나 오전에는 텃밭을 가꾸고, 오후에는 산책을 하고, 저녁에는 철학을 논하고, 밤에는 글을 쓸 수 있었으면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에 누군가와 완전한 합일이 없다면, 오두막에 살든 대 저택에 살든 그 곳이 감옥이기는 마찬가지일 것이다.
‘소통’은 ‘사랑’보다 훨씬 광범위하고 수명이 긴 개념이다. 아버지는 오남매 중에서 나를 제일 이뻐해 주셨다. 말수가 적은 전통적인 아버지였지만 우리 모두 그것을 알고 있었다. 아버지의 사랑 속에서 나는 자유롭고 존귀해졌다. 아버지와 나는 완벽하게 소통하였던 것이다. 20대의 농활시절, 농촌과 농민에 대해 사정없이 열린 내 마음은 아무 것도 거칠 것이 없었다. 제 값을 받지 못해 밭에서 얼어붙은 고랭지 배추와, 팽나무 아래 드리워진 달빛과, 나뭇단을 타고 내려오던 지겟길... 그 모든 것과 나는 통하였다.
내가 나의 마음 가는 곳을 속속들이 파악하고 즐길 수 있다면, 즉 내가 나와 소통할 수 있다면 혼자 노는 것이 즐겁다. 혼자 놀다 지치면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것은 책 속의 저자일 수도 있고, 블로그의 방문객일수도 있고, 번개로 만난 그 누구일수도 있고 가족일수도 있다.
그 모든 만남에 진정한 소통이 된다면, 돌연 우리는 행복해진다.
정여울이 스스로 글 쓰는 일을 하지 않을 때는 거의 금치산자에 가깝다고 말할 때, 나는 웃었다. 그녀의 어떤 문장들을 소리내어 읽으며 나는 행복했다. 적당한 사교술이 아니라, 정말 언어가 비슷한 사람을 만나면 나는 진심으로 기쁠 것이다. 가족주의를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소통은 빠지고 의무만 남은 가족을 부정한다. 진정한 소통을 찾아 땅끝까지 갈 용의가 있다. 결국, 모든 것이 미비한 백수시절이든, 조금은 이상적인 조건에 다가간 때이든, 내가 모색하고 노력하고 기꺼이 가꾸어야 하는 것은, '소통'의 방법과 질인 것이다.
통하였느냐, 이 한 마디에 하루의 희비가 결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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