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종윤
- 조회 수 2365
- 댓글 수 22
- 추천 수 0
나는 제법 인기가 있다.
아~ 내 입으로 이런 말을 하려니 손가락에 가벼운 경련이 일어날 만큼 부끄럽지만 사실이 그렇다. 적어도 우리 회사 구내 식당에서 일하시는 아주머니들 사이에서만큼은 확실하다. 내 차례가 되면 반찬을 배식하는 아주머니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더 많이 집어주려는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자리로 와 동료들과 마주하면 차이가 확연히 드러난다. 내 식판은 항상 풍성하다. 점심 식수만도 어림잡아 2,000명을 훌쩍 넘기는 커다란 식당에서 나는 어떻게 그 분들의 눈에 띄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나는 항상 그 분들과 눈을 맞춘다. 그리고 웃으며 인사한다.
어렸을 때부터 동네에서 인사 잘하는 아이로 통했다. 어디 가나 깊이 고개 숙여 인사했고, 어른들은 기특하다며 칭찬해주었다. 아마도 어린 마음에 신이 났던 모양이다. 그런데, 이게 무슨 대단한 노력의 산물이냐 하면 꼭 그런 것만도 아니다. 이제 막 다섯 살이 된 큰 아이를 보면 알 수 있다. 이 녀석도 인사 잘하기로 동네에서 유명하다. 별 이상한 걸 다 닮았다.
어릴 적부터 인사 잘하던 버릇이 여전하다. 건물 경비원 아저씨들에게도 늘 인사하고, 동네 떡볶이집 아주머니에게도 늘 인사하고, 집 앞에서 자주 마주치는 야쿠르트 아주머니에게도 늘 인사한다. 아내는 이런 내게 오지랖이 넓다고 핀잔을 준다. 하지만 난 그 말이 그리 싫지 않다. 인사하는 게 어렵지 않냐고 물어보는 사람도 있지만, 난 늘 마주치는 사람과 인사를 안하고 그냥 지나치는 게 더 어렵다. 어차피 돈 드는 일도 아니니까. 인사를 잘하면 좋은 일이 많다. 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간혹 애매한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 예를 들자면 이런 식이다.
얼마 전부터인가 회사 앞에 조금은 초라한 행색을 한 아주머니 한 분이 김밥을 팔기 시작했다. 아주머니라고 말은 했지만 나랑 불과 몇 살 차이 나지 않을 듯 보이는 그녀는 이런 일이 처음인 것처럼 보였다. 그녀가 초라해 보였던 이유는 비단 입고 있는 옷 때문만은 아니었다. 구부정한 자세로 서서 잘 들리지도 않는 목소리로 '김밥 사세요~'라고 속삭이고 있었기에 더 그리 보였던 모양이다. 다행히(?) 아침을 못 얻어먹고 출근하던 길에 그녀를 발견한 나는 거금 1,500원을 내고 김밥 한 줄을 샀다. 그리고 며칠에 걸쳐 두어 번 김밥을 샀다. 물론 늘 그렇듯 웃으며 인사를 했고, 우리는 금새 서로 안면을 익혀버렸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내가 아침밥을 구내식당에서 먹기 시작하면서 김밥을 사먹을 일이 없어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늘 같은 자리에 서서 김밥을 판다. 횡단 보도 앞에 서면 저 멀리 건너 편에 그녀가 딱! 보인다. 신호가 바뀌고 그녀와의 거리가 좁혀지면 적절한 타이밍에 인사를 건넨다. 하지만 김밥을 사지는 못한다. 이미 말했듯이 구내식당에서 밥을 먹기 때문이다. 처음 한두 번은 견딜만했는데, 매번 인사만 하고 그냥 지나치자니 이게 못할 짓이다.
그래서 나는 요즘, 늘 다니던 길로 못 가고, 조금 돌아가는 다른 길로 회사에 간다. 내가 좀 이런 식이다.
자전거를 타고 출근을 하면 온통 땀 범벅이다. 서둘러 샤워를 마치고 8시 40분이면 닫혀버리는 구내 식당으로 뛰듯이 들어섰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식판에 밥을 담는 순간 반찬을 배식하는 아주머니가 한마디 던진다.
"밥을 왜 그렇게 조금 먹어요?"
"대신 누룽지를 먹잖아요."
"음... 행복해 보여요."
"네?"
"아주 좋아 보인다고요."
"아~ 그래요? 그래서 살이 안 빠지나?."
"지금 딱 보기 좋아요."
"ㅎㅎ 고맙습니다~"
"우리 아들은 요즘 살이 너무 쪄서 맞는 옷이 없어요. 90킬로예요."
"저도 90킬로인데요. ㅡㅡ;"
식판을 들고 자리로 걸어가는 사이 입 꼬리가 살짝 말려 올라간다. 식당의 커다란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햇살은 눈부시도록 찬란하고, 식판에서 풍겨오는 구수한 된장국 냄새는 죽여준다. 아~ 그래, 나는 행복한 사람이구나.
나, 이래 뵈도 '행복해 보이는 사람'이다.
국민학교 6학년 때, 반장이라고 등 떠밀려 학예회 사회를 본 적이 있어요.
그 때 부반장이었던 똑똑한 여자 애가 사회용 멘트를 공책에 줄줄이 적어 줬거든요.
막상 앞에 나가서 그 멘트를 읽고 있는 제 자신의 모습이 어찌나 멍청하고 한심하게
느껴졌던지...... 그 기억이 남아서인지 사회를 보는 걸 많이 두려워했어요.
그래서 간혹 쉬운 자리에서라도 누군가 사회를 보라고 권하면 정색을 하고 사양했었죠.
그랬던 저인데, 그냥 자연스럽게 앞에 서서 얘기할 수 있었던 걸 보면 편했던 거겠죠?
작년 장례식 때, 성우형이 음악을 틀었거든요. 밥 딜런 노래였는데... 그리고 장례식하면서
노래를 튼 건 자기가 처음이었다고 좋아했는데, 이번에 형은 노래를 불렀네요. 그 노래 부르는 모습
보면서 뿅! 갔어요. 노래도 좋고, 형이랑도 잘 어울리고...... 장례식에서 노래 부른 사람 1호로 기억할게요.
사실 그전에도 꿈벗 여행 사진에 찍힌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본 적이 있어요. 그 때는 이렇게 연구원이
되실 줄은 몰랐지요. 함께 하게 되어서 기뻐요.
현역 연구원들 수업에 가보고 싶다고 생각은 하면서도 매번 잘 안되요. 올해는 진짜로 노력해볼게요.
고맙습니다. 자주 뵈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