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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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이 참 빠르기도 하지요. 한해를 훌쩍 뛰어 넘어 버린 느낌이 드는군요. 오늘은 지난해 6월에 돌아가신 어머님의 첫기일입니다. 며칠전부터 생선이며 전을 부칠 장을 보느라 분주했습니다. 어머니에게 좋은 며느리이지 못했던 저입니다. 여느 며느리와 다를게 없었지만 어머님과 가까이 지내지 못한 것이 아쉬움으로 남습니다. 2001년 아버님께 돌아가신후 8년정도 홀로 계시다 가셨지요. 고향집 사랑채 앞에서 저희를 배웅하시던 모습을 저는 잊지 못합니다. 어머니에게 살갑지 못했던 며느리였습니다. 어머니 역시 저와 대면대면한 사이였지요. 하지만 제 얼마나 어머니를 의지하고 있었는지 돌아가신 후에 알았습니다. 어머니는 저의 동지였지요. 다른 사람은 이해하지 못할 맘 고생도 어머니는 말없이 이해하셨을 거라 여겨집니다. 다정한 고부사이는 아니었지만 서로를 무언으로 의지하며 살았기에 저의 상실감은 이루말할수 없이 켰습니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 온 저에게 친정엄마가 전화를 하셨지요. '너무 상심마라'하시는데 저는 통곡을 하고 말았습니다. '엄마 나 어떻게 살아, 어머니가 계셔서 나 힘든 것도 참으며 살수 있는데.............' 그러고 나서 엄마에게도 어찌나 미안하던지요. 자신보다 더 그이에게 의지를 하며 산 딸자식의 울음이 기막혀을 테지요. 그러나 엄마는 '내 안다, 네가 얼마나 힘들어 했는지. 그래도 우짜겠노 다 살아진다. 울지마라 몸 상한다'하시며 전화를 끊으셨지만 저는 울음을 멈출수가 없었습니다. 남편을 붙들고도 몇시간을 울고서야 겨우 울음을 거둘수 있었지요. 어머니께서 제게 얼마나 큰 존재였는지 깨닫지 못했던 회한과 죄스럼이 그리고 어머니 빈자리를 채워줄 누군가의 부재의 대한 두려움이 있었느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머님은 아버님의 두번째 부인으로 나이 50에 재가를 하셨죠. 어려서 부터 일본에서 신식교육을 받은 분 이라 살림은 물론이고 '농사에 농'자로 모르는 여인이 시골로 시집을 와 맘고생을 하셨지요. 그것도 종가집의 맏며느리자리니 오죽했을까요. 하지만 어머님께서는 자신의 방식대로 사셨지요. 그래서 일가친적들에게 늘 따가운 시선을 받을 수 밖에 없었지만 고집있는 양반이 자신을 굽힐리는 만무했지요.
그러다보니 연세가 드시어도 홀로 고립된 삶을 살다 가셨습니다. 그렇게 한 많은 생이였는지 마지막 가시는 걸음에도 쉬이 자신을 놓지 못하시는 어머님 앞에서 참 많이 울었네요.
어머님의 기일이지만 저희집에서 모시지 않습니다. 어머니에게는 딸이 하나 있지요. 어머님께서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둔 딸입니다. 저에게는 여섯살이나 많은 언니벌이지요. 하지만 늘 저에게 깍듯이 언니라 부르며 살갑게 구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내가 할일
인데 우리집에서 모시면 자신의 가족들이 오가기가 힘들다며 한사코 자신이 모시겠다 하기에 그러라 했습니다. 오전부터 지금까지 전을 부치고 생선을 굽고 이제 식혀 보자기에 보기좋게 싸 가지고 가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비록 저희 집에서 모시지는 못하지만 작은 정성으로 음식을 손수 할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제 어머님께서 제가 차린 밥상을 받으시게 되었으니까요. 생전에 한번도 저희집에 오신 적이 없으셨지요. 처음에는 오해도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며느리 고생 안 시키시려는 맘이 셨다는 것을 압니다. 살아 생전에 해드리지 못했던 따뜻한 밥한끼입니다. 오늘, 어머니께서 저의 상을 받으시고 병석에서 어린아이의 천진한 눈망울로 웃으셨던 것처럼 밝게 웃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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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보니 연세가 드시어도 홀로 고립된 삶을 살다 가셨습니다. 그렇게 한 많은 생이였는지 마지막 가시는 걸음에도 쉬이 자신을 놓지 못하시는 어머님 앞에서 참 많이 울었네요.
어머님의 기일이지만 저희집에서 모시지 않습니다. 어머니에게는 딸이 하나 있지요. 어머님께서 전 남편과의 사이에서 둔 딸입니다. 저에게는 여섯살이나 많은 언니벌이지요. 하지만 늘 저에게 깍듯이 언니라 부르며 살갑게 구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내가 할일
인데 우리집에서 모시면 자신의 가족들이 오가기가 힘들다며 한사코 자신이 모시겠다 하기에 그러라 했습니다. 오전부터 지금까지 전을 부치고 생선을 굽고 이제 식혀 보자기에 보기좋게 싸 가지고 가는 일만이 남았습니다. 비록 저희 집에서 모시지는 못하지만 작은 정성으로 음식을 손수 할수 있어 좋았습니다. 이제 어머님께서 제가 차린 밥상을 받으시게 되었으니까요. 생전에 한번도 저희집에 오신 적이 없으셨지요. 처음에는 오해도 있었지만 지금 돌이켜 보면 며느리 고생 안 시키시려는 맘이 셨다는 것을 압니다. 살아 생전에 해드리지 못했던 따뜻한 밥한끼입니다. 오늘, 어머니께서 저의 상을 받으시고 병석에서 어린아이의 천진한 눈망울로 웃으셨던 것처럼 밝게 웃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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