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미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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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는 생각을 했고, 그 시간 동안 공부를 더 구체적으로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새벽까지 필름이 끊어지도록 마시면서 든 생각들이다. 아니, 그 생각이 나서 죽도록 퍼마셨는지도 모를 일이다. 무슨 배짱으로 6개월을 잡았던가. 6개월쯤 하면 뭐가 보일 거라 기대했던가. 지금의 나는 암껏도 뵈는 게 없다. 술이 덜 깨서 그럴지도 모르지만. 착실하게 읽어대도 모자랄 판에 착실하게 마셔대는 내가, 참, 거시기하기 짝이 없다.
나의 매력만점 취미인 지난 글 뒤지기. 술도 깰 겸 뒤적거리기 시작했다. 예쁜 작가, 공지영이 당첨됐다. 2년쯤 전에 그녀의 책을 읽고 어딘가에 쓴 글이다. 마흔 살이던 그때는 1년 동안 여성 작가의 책을 읽고 리뷰를 썼었다. 이유는 특별히 없었다.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랬다. 돌아보니 그때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 같다. 아무 이유 없이 그냥 그러고 싶어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는 모양이다. 왜 그럴까? 나는, 정말, 내가, 궁금하다. 난 누구세요?
지난 글은 언제나처럼 내게 말을 건넸다. 그땐 그랬어, 라고. 2년 전 마흔의 어느 날, 나는 날 응원했었다고. 그때를 기억하라고. 그 힘으로 지금 살고 있는 거라고. 그러니 또 살아가라고. 그냥 살면 되는 거라고. 지금 이 시간이 앞으로 올 언젠가의 그 힘겨운 날에 힘이 될 수 있게 꼭 그렇게 살아가라고. 그냥 그러면 된다고. 꼭꼭 씹어 밥을 먹듯, 난 그 말들을 내게, 내 몸에, 내 맘에 새겼다. 갈수록 짧아지지 말고 제발 오래오래 기억되길 빌면서.
2년 전 마흔의 어느 날, 나는 이런 글을 쓴 적이 있다.
마흔살 미영의 여자 읽기 4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 공지영 산문
엄마, 어떤 남자를 만나야 되는지 열 자 이내로 말해줘!
잘 헤어질 수 있는 남자.
와우, 이런 대답을 하는 엄마라니! 예쁜 작가 공지영은 이번에도 예뻤다.
“어떤 사람을 만나거든 잘 살펴봐. 그가 헤어질 때 정말 좋게 헤어질 사람인지를 말이야. 헤어짐을 예의바르고 아쉽게 만들고 영원히 좋은 사람으로 기억나며 그 사람을 알았던 것이 내 인생에 분명 하나의 행운이었다고 생각되어질 그런 사람. 설사 둘이 어찌어찌한 일에 연루되어 어쩔 수 없이 이별을 하든, 서로에게 권태로워져 이별을 하든, 마음이 바뀌어서 이별을 하든, 그럴 때 정말 잘 헤어져 줄 사람인지 말이야.”
아버지가 각기 다른 세 명의 아이들을 키우는 여자 공지영. 이 책은 스물일곱 살 차이나는, 이제 스무 살이 되는 딸, 위녕에게 전하는 편지를 담은 산문집이다. 화해, 용서, 이해, 상처, 고통, 치유, 성숙 같은 단어를 자신이 읽은 책들의 문구를 인용하면서 잘 버무린 솜씨가 ‘역시 공지영’이다. 또한 각 편지의 맺음마다 등장하는 ‘내일부터 수영을 하려고 한다’며 결심을 하는, 하지만 매번 ‘새 삶을 사는 것’을 미루는 ‘엄마의 이유’가 미소를 짓게 한다.
수영복이 너무 작아서, 누가 집에 온다고 해서, 친구와 술을 마시고 싶어서, 수영장이 임시 휴일일 것 같아서, 몸이 너무 아파서, 가벼운 다툼이 풀리지 않아서, 러시아 시인들의 슬픈 시를 더 찾아보고 싶어서, 시골에는 수영장이 없어서, 수영장이 문을 닫아서, 해질 무렵 차를 마시고 싶어서, 기운이 없어서, 수영장이 대형 슈퍼마켓으로 바뀌어서, 등등의 이유를 대며 ‘내일’은 꼭 시작하겠다는 엄마의 핑계는 어쩜 그리도 나를 빼닮았는지 모르겠다.
작가 공지영의 매력은 어디에 있을까? 비슷한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는 익숙함일까?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 또한 두 딸의 엄마인 내게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로 읽혀서 더 실감나고 친숙하게 다가왔다. 나도 내 딸에게 들려주고 싶은, 아니 솔직히 말하면 내가 듣고 싶은 이야기를 잔뜩 들은 기분이다. 작가 박완서는 공지영의 매력 포인트를 세 가지로 정리했다. 평론가의 도움 없이도 뭔 소린지 알아먹게 쓰는 문장, 작가의 미모, 사생활에 내숭 떨지 않는 정직성…. 너무도 명쾌해서 마음에 쏘옥 들어온다.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다. 엄마가 딸에게 들려주는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랑이야기’이다. 읽는 내내 나의 두 딸을 떠올리게 했고 더불어 엄마인 나와 아빠인 남편을 생각하게 했다. 나야말로 아이들이 어떤 삶을 살든 응원할 마음이 있는지? 혹시 내가 원하는 그림 속의 배경으로 자리 잡길 기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나는 남편을 사랑하는지? 나는 나를 사랑하는지? 익숙하면서도 낯선 질문들 속에서 찾은 결론은 아무 조건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은 역시 아이들에게나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남편과의 사랑은 글쎄다. 여전히 바보 같은 사랑이다. 어쩌면 중독에 가까울 것이다. 이번에도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하.려.고. 하.는.데. 취할 듯 향긋한 소식이 날아왔다. 늦게야 일을 마치고 새벽까지 이어진 술자리 끝에 밝은 햇살 아래 운전대를 잡은 남편은 코너에 정차된 지게차 귀퉁이를 들이받아 에어백이 터지고 경찰서를 전전하다 면허가 취소되어선 택시를 타고 귀가했다. 멀쩡하던 지게차 운전사는 다음 날 병원에 입원했단 전화를 했고 합의금으로 남편의 한 달 치 월급을 가져갔다. 1년 동안 면허 없이 살아야 하는 남편은 직장에 퇴사통보도 했다.
물론 사고다. 충분히 예견되었던. 그럼에도 오늘도 술을 사들고 귀가하는 남편과 살고 있다. 나야말로 왜 새 삶을 사는 것을 미룰까? 새 삶을 살고 싶기는 한 건가?
아이들이 아직 어려서, 동생 결혼식에 가족사진을 찍어야 해서, 집이 없어서, 시어머니에게 미안해서, 남편이 나보다 더 살림을 잘해서, 막내가 아빠를 너무 좋아해서, 술 욕심 말고는 착해서, 등등의 이유를 대며 죽어야 끊을 술을 끊기를 기다리며, 이미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그 누군가를 그리며, 함께 살아가고 있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사랑하는 것은 가장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아니, 사랑을 선택한 결혼 생활은 정말이지 미친 짓인지 모른다. 아니, 사고 친 남편에게 ‘난 당신 몸이 상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 생각해. 계산할 수 없잖아. 앞으로 많이 벌지 뭐!’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낸 나는 분명 미쳤음에 틀림이 없다. 제 정신으로 제대로 산다는 건 마지막 시련이고 시험이고 과제일까? 사랑이란 자기 자신을 보다 넓은 세계로 이끄는 용기라는데 살짝 미친 나는 그저 (내가 어떤 삶을 살든) ‘나를’ 응원이나 해야겠다.
아~! 공지영의 매력 하나 더! 그녀는 분명 ‘잘 헤어질 수 있는 여자’다. ‘잘 헤어질 줄 모르는 여자’인 나에게는 어쩌면 그건 최고의 매력인지도 모르겠다. 같은 시간을 살지만 다른 삶을 살아가는 그녀가 살짝 부러운 이유이기도 하다.
한번 검색해 보세요.
잠시만요. 제가 찾아볼께요.










김점선이란 작가를 모를 때 였었죠.
인사동에 갔다가 어느 작은 갤러리에서 말이 웃고 있는 걸 봤어요. 오리도 웃고, 말도 웃고.
저는 웃고 싶어서 그림을 아주 오랫동안 보았어요.
오늘은 말은 웃는데... 왜 난 슬프지.
이제는 '오리날다'라는 이름에 김점선의 오리그림뿐 아니라 언니의 웃는 얼굴이 매번 같이 떠올 것 같아요.
언니는 웃은 눈을 가졌고... 그리고 웃는데.. 왜 난 슬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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