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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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으로 특별해 지고 싶은가?
2011. 3. 7 강훈
1988년 12월 어느 추운 날, 나는 대학교 입학을 위한 '학력고사'를 치르기 위해서 서울로 올라왔다. 날씨는 '입시한파'라는 절기 아닌 절기에 맞추어 매서웠다. 매섭게 추운 날씨와 낯선 서울은 묘하게 어울렸다. 서울의 첫 느낌은 '환하다'였다. 큰 빌딩은 휘황하게 불을 밝히고 있었고, 지하철은 시골집의 안방보다도 더 밝았다. 특히 여자애들의 얼굴은 어찌 그렇게 환하고 예뻤을까!
앞으로 살아야 할 나의 삶은 일순간에 그림이 완성되었다. 하얀 와이셔츠, 깔끔한 양복과 코트, 서류가방을 메고, 자가용을 타고 출퇴근 하며, 반듯한 아파트에서 가족들과 행복하게 사는 것, 환한 집에서 환한 얼굴을 가진 사람들로 가정을 꾸리는 것은 나의 멋진 로망이었다. 나는 그런 삶으로 특별해지고 싶었다.
그로부터 20년이 흘러 열아홉 소년의 그 특별한 도시 삶의 로망은 현실이 되었다. 만족스럽게...
2010년 12월 한 해가 저물고 있었다. 마음이 답답했다. 시간의 헛헛함이 생의 불안을 가중케 했다. 겉으로는 알 수 없는 삶의 황폐함이 안으로 깃들었다. '나'라는 이름을 붙일만한 것이 과연 존재하는가? 오늘이라도 지갑 속 몇 장의 명함을 버리고 나면 나는 나를 무어라고 설명해야 하나? 내가 지금까지 해놓은 것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들 눈에 중요해 보이고자 하는 욕망 때문에 여기까지 왔구나 하는 생각이 나를 초라하게 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자라고....? 젠장.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욕이 튀어나왔다. 나는 스스로 강해지고 싶었다. 그렇다. 스스로 강한 삶, 홀로서도 불안하지 않을 그런 의연한 삶을 갖고 싶었다. 나는 떠나기로 했다. 'L'을 비롯한 몇몇 미안한 얼굴들이 떠오르지만 남아 있는다는 것은, 지금 자리에서 질기게 살아남는 다는 것은 더 이상 나에게 의미가 없었다. 나는 살아보고 싶은 특별한 삶이 있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나의 삶이 이야기 하는 '특별함'은 옷을 달리 해서 입고 있다. 인생에서 모든 가치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항상 상대적인 대비를 통해서 파생되는 것이라 생각해본다. 내가 추구할 수 있는 특별함 또한 나의 '지금'에서 궤적을 달리하는 특별함이지 절대적으로 항상 존재하는 '특별함'이 아닌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꿈꾸는 나의 특별함은 순전히 '개별적인 즐거움'이고, '개인이 갖고 있는 소망'과 연관된 사안이고, 추구할 만한 가치를 지닌 특정한 일의 성취를 의미하고 있다. 특별함은 시간과 함께 가변한 것인고 나의 현재라는 이미지에 상대하는 것이다.
이렇듯 '지금'이라는 이 대목에서 내일을 지향하고, 현재로부터 상대적인 내가 꿈꾸는 나의 특별한 삶은 어떤 것인가? 삶의 구체적인 풍광을 이야기 하기에 앞서 나는 나의 삶이 가장 기본적으로 지향해야 할 가치를 하나 정하고 싶다. 그것은 한 개인에게 있어 매우 중요한 자산이라 할 수 있는 '자기 결정권'을 내가 갖는 것이다. 내 삶의 기초는 자기결정권의 행사와 그에 따른 실천에 있는 기인하는 것이라 확신해본다. 누군가에 의해 쉬이 좌우되지 않고, 어려운 싸움이라 할지라도 내가 결정해서 얻어내는 그런 생의 시간이기를 바란다. 패배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상태에서의 싸움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내 마음에 있는 것을 내가 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져 있지 않다면 무수한 행복의 원칙인들 무슨 소용인가?
스스로에게 지나치게 큰 기대는 지나치게 작은 기대와 다를 바가 없다. 가보지 않은 길 위에서 엉뚱한 내일을 위해 부질없는 계획을 짜느라 눈 앞에 놓인 현재를 제쳐두고 허겁지겁 할 필요도 없다. 나는 책, 글, 사유를 통한 명징한 삶을 살고 싶다. 매력적이지 않은 것은 많은 수식을 필요로 하지만 <책, 글, 사유>는 나에게 더 이상의 수식을 요하지 않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그 매력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래서 그것들을 통해서 내가 사는 모습은 나의 '살아가는 방법' 또는 '존재하는 방법'을 담고 있기를 바란다. '살기 위한 삶'이 아닌 '사는 삶'을 꿈꾼다. 영화 메트릭스에서 모피어스는 이야기 한다. "Stop trying to hit me, hit me! 때리려 하지 말고, 때려" 얼마나 멋진 말인가? '살아야겠다' 생각하지 말고 '살자'.
땅은 신이 만드셨지만 인간이 그곳에 길을 내었듯이, 태어남과 살아감 그 사이에서 내가 해야 할 것은 자명하다.
<끝>

자기 삶의 연구자
박노해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네
내가 나 자신을 연구하지 않으면
다른 자들이 나를 연구한다네
시장의 전문가와 지식장사꾼들이
나를 소비자로 시청자로 유권자로
내 꿈과 심리까지 연구해서 써먹는다네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네
내 모든 행위가 CCTV에 찍히고
전자결제와 통신기록으로 체크되듯
내 가슴과 뇌에는 나를 연구하는
저들의 첨단 생체인식 센서가 박혀있어
내가 삶에서 한눈팔고 따라가는 순간
삶은 창백하게 빠져나가고 만다네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최고 기술자가 되어야 한다네
최고의 삶의 기술은 언제나
나쁜 것에서 좋은 것을 만들어내는 것
복잡한 일을 단순하게 만들어내는 것
삶은 다른 그 무엇도 아니라네
삶의 목적은 오직 삶 그 자체라네
지금 바로 행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면
우리가 이토록 고통받을 이유가 없다네
우리 모두는
자기 삶의 최고 연구자가 되어야 한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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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이 반'이라더니 벌써 중반을 넘어섰군요. 살짝 힘들어지고 무언가 아쉬움과 설레임이 교차하는 시기...
아, 그러나 이 때가 진실로 더 나은 삶으로의 진입에 박차를 가해 나가야만 하는 절호의 기회가 아닐 런지요.
남은 한 주도 마지막 혼신을 다하는 황홀하고 짜릿한 순간이 되시길!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