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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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를 대표하는 여배우 소피 마르소와 그녀의 남편 안드레이 졸랍스키가 만든 영화, "피델리티"
Fidelity는 충실함, 그 중에서도 결혼 후 "배우자에 대한 신의"라는 사전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우리보다 좀 더 개방적인 유럽사회가, 그 중에서도 예술적으로 유럽을 이끌어가는 프랑스 감독이 말하는 부부간의 신의란 어떤 것일지 궁금했다..
클레리아 (소피 마르소)는 재능있고 그 재능만큼이나 빛나는 외모를 지닌 프리랜서 사진작가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도 어두운 면이 있으니 다름아닌 아버지를 정확히 모르는 사생아라는 점.
그래서인지 그녀는 서른이 다 되도록 사랑이 아닌 아버지뻘되는 이들과 관계를 맺거나, 혹은 단순히 육체적 욕망에 자신을 맡겨버린다. 단순히 자유분방하다고 표현하기에는 상처받은 영혼이라는 느낌이 더 강하다..
그런 그녀에게 어쩌면 자신의 아버지일지도 모르는 프랑스 최고의 잡지사 회장인 맥로이 회장으로부터 함께 일하자는 연락이 온다. 자신이 딸일지도 모른다고 밝히는 그녀임에도 불구하고 '젊은 상대'로만 그녀를 바라보는 맥로이 회장의 눈길은 비릿하다.. 아무리 부녀지간일지라도 함께 거두어 키우지 않으면 동물적 본능이 부녀지간도 넘어서는건가 싶은 황당함을 안겨주는 캐릭터이다.
그 회사를 가던 길에서 클레리아는 우연히 클레어를 만난다.
사랑을 만난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갈구도 아니고, 육체적 욕망도 아니
사랑으로 사랑이 되는 한 사람을 처음으로 만나게 된다.
그래서 그 남자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때맞춰? 어머니의 죽음까지도 그 결정에 중요한 한 축이 되어 사랑을 결혼이란 안전한 울타리 속에 저장한다. 그런데 하나가 빠졌다. 아주 중요한 한 가지.
다름아닌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는다.
자신을 사랑으로 대해주는 남편 안에 안주하고 싶지만, 정작 자신은 그 남자를 사랑하지 않는다.
그냥 결혼이란 안전한 울타리가 필요했을 뿐.
비슷한 시기 네모라는 연하의 재능있는 사진작가가 등장한다.
마음이 흔들리고 그에게 끌린다.
욕망이겠지.. 그래서 지금까지와는 달리 육체적 관계를 거부한다.
그래서일까. 아니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까. 네모에게 더 끌리는 자신 앞에 본인도 어쩌지 못하는 갈등이 시작된다.
"우린 안돼. 너의 젊음은 내게 없어. 우린 안된다고.."
"당신은 내 육체에 싫증이 나면 다시 안정된 가정으로 돌아가겠죠. 그럴거죠..?"
사랑하지만, 한 줄 경계선을 두고 마주한 클레리아와 네모가 사랑에도 절망감이 따른다는 걸 느끼며 서로에게 서로의 두려움을 털어놓는 장면인데, 남편의 사랑을 너무 쉽게 받아들여 결혼을 했다면, 이 부분이 오히려 사랑과 현실이 절묘하게 마주치는 장면이란 느낌이 들었다.
결국 클레리아는 자신의 흔들림을 "솔직함"이란 결혼에의 정의를 담아 남편에게 털어놓는다.
내가 이렇게 흔들리고 있으니, 당신이 날 잡아주기 바란다고. 당신의 아이를 갖게해서 날 좀 잡아달라고..
역시 나의 한계를 넘어가는 부분이다..
두 사람의 관계는 금이가기 시작하고 남편은 죽음이라는 종말을 맞이하게된다.
남편의 죽음 앞에 죄인이 된 그녀는 길었던 머리를 짜르고 수도원 비슷한 곳에 스스로를 감금한다.
생명과도 같았던 카메라만 지닌 체..
이 즈음 아주 흥미로운 대비극이 등장한다.
다름아닌 동성애자로서 신부님의 길을 걷던 남편의 형이 여자와 사랑에 빠져 주교직을 박차고 다시 세상으로 복귀하게 된 것이다. 인터뷰를 하기 위해 몰려든 기자에게 그는,
"사랑이 너무 늦게 찾아왔다고 해서 그냥 흘려보낼 수는 없습니다. 하느님을 모시는 일은 사랑을 행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은 저 위에 계시는 것이 아니고, 제 안에 계십니다. 제 안의 사랑이 바로 하느님입니다.."라고 한다..
동성애자였던 신부님이 늦게 자신의 사랑을 찾아 세상으로 돌아온다.
자신 안에서 사랑을 생성하지 못하고, 사랑에 이끌려 결혼이란 세상으로 들어갔던 여주인공은
결국 세상에서 떨어져나와 수도원에 자신을 감금한다.
사랑하여 결혼을 신청하지만 상대의 사랑까지 이끌어내지 못했던 남편은 죽음을 맞이한다.
사랑없는 결혼은 결국 죽음과도 같음을 상징한다고나 할까..
세속적인 삶을 살아왔지만, 클레리아를 만나 자신 안에 사랑에 눈을 뜬 네모는 지금까지와는 달리 단순한 사진이 아닌 작품으로 승화시킨다.
이 네 사람의 삶을 통해 감독은 우리에게 무얼 말하고 싶었던걸까..?
사랑은.. 내 안에서 생성되어야 한다..
타인의 사랑에 기대어 내 삶이 채워질수만은 없다..
결혼은.. 그런 두 사람이 만나 함께 추는 춤, 함께 연주하는 음악이어야 한다.
사랑의 힘은 위대하다.
그저그런 세속적인 네모의 사진 속에 사랑이 스며들자 누구라도 느낄 수 있는 작품이 되었다.
사랑 속에 담겨진 진정성은 붉은 심장과도 같다..
이제는 늙어버린 맥로이 회장의 정부가 "나도 사람답게 살고 싶다고.."라고 한 말이 한참을 주변에 가라앉아 나를 끌어당겼다.
사랑도 좋고, 결혼은 더욱 좋겠다.
인간으로 태어나 누군가를 사랑하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일 수 있다면 그보다 더 큰 축복이 있을까..
그래서인 것 같다.
더 바랄것도 없을 것 같은 축복일 수 있기에
내 안에서 사랑을 자아내어, 그 사랑이 흐르는데로 자연히 따라가는 거.
어쩌면 우리들 삶에서 성인이 되어 자기실현의 길을 가는데 가장 중요한 첫걸음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 어떤 유럽영화보다 낯설었지만, 그래서 더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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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앨리사의 북살롱
남성안의 여성성, 아니마와 여성안의 남성성, 아니무스. 이 부영의 "아니마와 아니무스" 북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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