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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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영화 (2005년)
감독: 옹-아트 심룽풍
주연: 왓차라 탕카파서트, 소라풍 찻리, 수완나 라프시드
처음 만난 태국영화인데 놀라움 그 자체였다.
구성이나 영상기법 등은 같은 동남아권인 인도 영화에 한참 못치기는 했지만
다루고 있는 소재와 주제를 풀어가는 방식에 있어 인간의 원형적인 부분을 고태적으로 풀었다고나 할까..
아무튼 내게는 참으로 놀라운 태국영화, "잔 다라 2"였다.
남자 주인공 태프의 아버지 차웅은 전직 경찰관으로 전형적인 마초맨.
그렇게까지 상세히 표현되지는 않지만, 여자를 사랑하지만 사랑을 표현할 줄 모르는 전형적인 스타일이라고나 할까.
고등학교를 다니던 태프는 어느 날 아버지가 어머니를 폭행하는걸 말리다 듣지 말아야 할 말을 듣고 집을 뛰쳐나가게 된다. 다름 아니라 어머니가 바람을 피웠다는 거. 아버지가 떨어뜨린 안경을 짓밟으며 집을 나간 태프는 그로부터 10년이 지나 아버지에게 새 안경을 드리기 위해 이제는 이름없는 섬에서 선장으로 살아가고 있는 그를 찾아온다.
그러나 운명은 늘 이렇게 알 수 없는 곳에서 우릴 기다리는 거겠지..
아버지를 찾아가는 뱃길에서 리암이라는 한 여인을 만난다.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운명의 여인 말이다.
리암과 태프는 만난 순간부터 아련한 마음을 시선에 담아 주고 받는다. 어쩔 수 없는, 피할래야 피할 수 없는 인연말이다. 그러나 배가 섬에 닿는 순간, 리암이 바로 자신의 아버지 차웅의 젋은 두 번째 아내임을 발견하게 되고, 이 세 사람의 불편한 동거가 시작된다.
리암.
그녀가 탄 배가 사고가 나 모든 일행이 죽고, 그녀만이 구사일생으로 차웅 선장에게 구조되어 그 때부터 그를 의지하여 살아간다. 그러나 시작부터 사랑은 없었다. 그러니 해가 떠 있는 동안에는 밥을 먹어야 하니 그럭저럭 아내 역할을 행하며 살아가지만, 밤이 되면 이 젊은 여인의 삶은 괴롭다.
이 대목에서 떠오르는 장면 하나. "천 개의 사랑"이란 책인데, 사랑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거기서 그리스, 로마 시대를 지배했던 중년 남성과 어린 소녀와의 결혼은, 여자들 입장에선 "합법적인 겁탈"이었다,라는 부분이 문득 떠올랐다. 동서고금을 통해 여인들이 인간이기에 앞서, 종족을 이어가는 수단으로만 다뤄질 때 그 여인들의 삶은 얼마나 퍽퍽한지 말이다..
리암의 삶은 단순히 영화 속 주인공이라기보다는 동남아 여인들의 애환을 담고있다하여 영화가 끝난 뒤에도 더욱 먹먹한 캐릭터였다. 어쩌면 이 땅에도 가난을 피해, 자신 하나를 희생하여 온 가족을 먹여살리기 위해 언어도 통하지 않는 낯선 곳으로 결코 모험이 되어야해선 안되는 결혼을 의지하여 이주한 동남아 여인들이 떠올라서인지도..
그런 리암의 삶에 사랑이 스며들기 시작했다. 위험한 불꽃이 일렁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랑이란 감정.. 어쩌면 이 세상에서 가장 억제하기 어려운 그 무언가가 아닐까 싶다.
말도 안되는 거 알면서, 리암과 태프는 서로에게 끌린다. 어쩔 수 없이..
그러던 어느 날, 사진작가인 태프에게 고태적인 너무도 고태적인 에머럴드 섬을 보여주러 갔다가 잠시 사고로 태프가 바다 속에서 위험에 처하게 되고, 리암이 구하게 된다. 그러면서 두 사람, 사랑을 확인하게 되고..
이젠 차웅 선장 역시 그들의 변화된 관계를 감지하게 된다. 그래서 어느 날 문득, 바다로 나간다고 한다.
사랑하는 두 남녀에게 천국과도 같은 3일간 그러나 지옥으로 이어지는 3일간이 주어진게다.
그들의 사랑을 전부 지켜본 차웅 선장은 더 이상 아버지도, 남편도 아닌 배신감에 휩싸인 존재일 뿐이다.
그들의 잘못된 사랑을 응징하는 거 외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 원초적 존재말이다.
밤바다.
그러나 하늘은 태프와 리암에게 먼저 기회를 주신다.
차웅 선장이 폭풍이 이는 밤바다에 빠져 죽을 위기에 처한 것.
리암과 태프. 주고받는 눈길 속에 분명 한 순간의 흔들림이 엿보인다. 가족조차도 "나"라는 존재보다는 한 단계 먼 존재인걸까..
그러나.. 태프는 아버지를 구해낸다..
해가 밝자 차웅 선장은 태프에게 떠나라고 말한다.
태프가 떠난 뒤, 리암이 선장 곁을 떠나고자 한다. 자신의 의지로 스스로의 세계를 선택하여.
잠시 길이 엇갈린 태프와 리암은 두 사람의 사랑을 확인했던 에머럴드 섬에서 만나게 되지만
리암까지 곁을 떠나자 참을 수 없는 격정에 휩쌓인 차웅 선장이 거기까지 따라와 총을 난사하기 시작한다.
"당신은 늘 그런 식이었다고요. 사랑을 모른다고요.
당신은 내 어머니에게도 그런 식으로 대했다고요!"
리암에게 총을 난사하는 자신의 아버지, 차웅 선장에게 태프가 절규하며 내뱉는 말이다.
그러나 차웅 선장은 이해할 수 없다. 온 마을이 우러러보는 자신을 왜 저들만은 잘못되었다고 하는건지.
왜 리암은 자신 곁을 떠나려 하는건지..
리암을 쫓아 깊은 바다로 뛰어든 태프.
다시금 숨이 막혀 힘겨워하는 그 앞에 리암이 나타나 그에게 공기를 나눠주려 한다.
그러나.. 리암은 이미 총을 몸에 맞아 피가 흐르고 있다..
그런 상태지만 자신이 사랑했던, 영원히 사랑하겠다고 맹세한 태프에게 마지막 숨을 주며 살려주고 싶었던 그녀..
태프는 고개를 돌려 삶을 거부한다..
대신 그녀의 허리를 감싸안고 함께 바다 밑 깊은 곳으로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한다.
영원하자던 약속을 지키며..
"이렇게 끝이 나는 것이 괴롭지 않아요.
다시 태어나도 우린 또 사랑할거니까요.."
애잔한 음악과 함께 나오는 리암의 마지막 대사..
현미경을 들이대고 보면, 차웅 선장이 격분에 휩쌓여 외친 것처럼 그들은 분명 "불륜"의 관계이다.
불륜.. 참 난해하고도 어지러운 단어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한걸음 떨어져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만큼 다양한 시대적, 개인적 배경을 내포하고 있는 단어도 없을 것 같다.
유럽 영화들은 불륜을 논할 때 인간의 깊은 심층상태를 파헤치며 접근한다.
왜 이 여자는, 왜 이 남자는 가정외 사랑을 해야만 하는걸까?에 초점을 맞춰 예리하리만치 후벼파고 든다.
그렇게해서, 한 사람이 자기실현을 해가는 과정에서 부족했던 무언가를 드러내는 하나로 받아들이며 그 또한 인간 성숙의 하나로 받아들이려 애쓴다. 우리보다 확실히 개인적 발전을 중시하는 문화권답다는 생각이 든다.
반면 잔 다라 2에서 말하는 불륜적 사랑은 원초적 혹은 고태적이었다.
그들에겐 사회적 시선은 물론이고 가족적 관계마저도 원초적으로 그냥 "존재"들에겐 태어남 이후에 주어진 외적 환경일 따름이다. 철저히 태 안의 존재감에 충실한다. 어쩌면 그들이 사는 에머럴드 바닷가 그 환경이 그런 삶을 받쳐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우리같은 한국 관객의 눈에는 원시적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을만큼 이국적인 자연환경이 아닐 수 없기에 말이다.
우린..어떠할까..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라는 어느 학자의 말이 문득 떠올랐다.
공자의 적통은 중국이 아닌 대한민국이라고. 언제까지 그 엄한 규율에 사로잡혀 정신적 성숙을 늦출 것이냐던.. 얼마 전에 읽은 이부영 교수님의 책도 떠오른다. 한국민족은 모성컴플렉스가 강한 민족성을 지니고 있다고. 그래서 흑,백 논리가 강한 거라고..
나는.. 한국인이다..
나는.. 현대 한국인이다..
나는..현대 한국여성이다..
그런 나는 어떤 생각을 품고 살까..
우리가 애써 지키려는 전통이 공자의 유교사상인지 우리 고유의 사상인지는 잘 모르겠다.
어느 편이라 할지라도 현대 한국인들에겐 분명 지난 5천년의 흔적이 베어있을 터이다.
한 순간에 외면할 필요도, 외면할 수도 없는 일이라 생각한다.
그러나 2011년을 살아가는 오늘 내가 가장 간절히 바라는 일은
하나의 생명존재로서 내 삶을 극대화시키는 바램이다.
가족, 학교, 사회, 국가의 일원으로서 나도 중요하지만
나 그자체로도 소중하다.
결국 융이 말하는 내가 극대화된 자기실현의 길로 내가 속한 곳에 공헌하는 것.
그게 나를 포함한 수많은 현대 한국인들이 꿈꾸는 삶이 아닐런지..
더 이상 불륜을 사랑의 반대어로 받아들이고 싶지는 않다.
사랑 그 자체에는 옳은 사랑 혹은 그릇된 사랑은 없다.
사랑은 그 자체로 사랑일테니..
다만 내가 속한 시대, 내가 속한 사회로부터 수용될 수 있고 없고의 차이일뿐.
통일신라시대의 여성들과 조선시대의 여성들이 삶이 다르듯이 말이다.
단 하나. 사랑 앞에 지키고 싶은 것이 있다면
내 사랑으로인해 누군가 타인이 아파야 한다면, 그 땐 내가 사랑을 삼켜야 한다는게다.
집어삼킨 사랑이 너무 힘겨워 내 삶이 소모되는 한이 있더라도
그것만큼은 내가 짊어질 내 몫이라 생각하기에.
사랑 그 자체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내 사랑 앞에 가장 먼저 번제물로 나 자신을 바칠 수만 있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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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 앨리사의 북살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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