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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수희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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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4월 28일 00시 50분 등록



칼 융은 소년에서 남자로 성장해가는 첫 관문에서 만나는 이성이 바로 어머니라고 한다
(이 부분은 어쩌면 프로이트가 더 먼저 시작한 부분일 수 있다).
그리고 어머니로부터 시작하여 자리잡기 시작하는 남성 안의 여성성을 아니마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적절히 성장하지 못할 때 소년에서 남성으로 성장해가는데 있어 어떤 어려움을 겪을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영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할람은 급작스런 사고로 어머니를 잃게 된다.
그런데 더 충격스러운건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극복하기도 전에 아버지가 비서였던 (그의 표현에 의하면) 창녀같은 여자를 새어머니로 끌어들인 점. 그때부터 그는 사회적 관점에서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한다.

건축가 아버지가 지어준 나무집에 죽은 어머니의 사진을 걸어놓는 것까지는 그렇다치더라도 동네 사람들은 물론이고 새어머니와 아버지의 관계까지도 훔쳐보기 시작한다. 흔히 말하는 관음증 환자와 유사한 행동을 나타낸 것.

그런 그가 아버지와 계모는 부담스럽다. 런던으로 대학을 진학하여 집을 떠나라고 유도해보지만 할람은 어머니가 계셨던 그 곳을 떠날 생각이 전혀없다. 그러던 어느날 계모는 그가 자신들의 일거수일투족을 훔쳐보고 일기장에 기록함을 발견하고는 그를 유혹하여 관계를 맺고 이 일을 빌미삼아 집을 떠나도록 협박한다. 가히 한국인 독자에게는 입이 벌어지는 장면이 아닐 수 없다.

성장소설이나 영화가 그러하듯이, 이 영화 역시 조셉 캠벨의 영웅여정을 그리고 있다.
즉, 자기완성의 길을 가기 위해선 고향에서 쫓겨나는, 즉 안정적으로 속한 곳에서 강제로 추방되거나 상황상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함이 바로 그것이다.

계모와의 일이 있은 후 돈한푼 챙기지 못하고 할람은 그야말로 몸뚱이만 기차에 싣는다. 에든버러에 내린 그는 문득 엄마를 닮은 한 여인을 무작정 따라가 그녀가 일하는 호텔에서 자신도 일자리를 찾는다.

그리고는 그녀는 잘 보이는 건물 옥상 허름한 곳에 자신만의 둥지를 틀고 여전히 그녀를 훔쳐보기 시작한다. 그렇게 시작된 사랑. 처음에는 도저히 가까워질거라 상상하지 못했던 그녀와 조금씩 가까워지기 시작한다. 그러던 어느 날, 어머니이자 연인으로 사랑하기 시작한 이 여인이 사랑하는 남자가 같은 호텔에서 근무하는 유부남인걸 알게 된다. 그로부터 케이트의 마음을 자신에게 돌리자 화가난 그는 하램의 관음증을 케이트에게 폭로하고 때맞춰 부모들이 찾아오게 된다.

여전히 갈등의 골이 깊은 부모와의 관계에서 계모는 씻을 수 없는 상처의 말을 내뱉게되고, 이에 격분한 할람은 고향으로 찾아가 계모를 호숫가에 던져버린다. 다행히 스스로 다시 계모를 살려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어머니를 죽였다고 믿는 그녀에 대한 미움이 가신 건 아니다.

그런 그 앞에 다리를 다친 아버지가 다가온다. 어스름한 호숫가로. 다리를 절둑이며..
그리고 충격적인 사실을 털어놓는다. 어머니는 사고가 아닌 약물 과다복용으로 죽었으며, 아내가 약물을 복용하는걸 알면서도 방관했었다고. 죽음과 연관이 있다면 그건 계모가 아니라 바로 자신이라고.

왜?라고 묻는 할람에게 아버지는 "지쳐서.."라고 답한다.
어머니는 그런 상태로 오래 아팠고, 자신과의 싸움에서 정작 승리한 사람은 그녀라고..

그러자 할람은 다시 묻는다. "그럼 나는요..? 왜 엄마는 저까지 버리셨나요..?"

바로 그거였다. 할람이 아팠던 이유. 하램이 화가 났던 이유말이다.
할람은 그 누구도 아닌, 세상도 아닌 엄마에게 묻고 싶었던 게다. "나는 생각해보지 않았냐고"
상실의 아픔, 버림받았다는 아픔을 그렇게밖에 표현할 줄 몰랐던 그가 소년에서 성인으로 건너가기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이는 영화, 할람 포.

호숫가에서 그에게 다가와 처음으로 사실을 설명하는 아버지는 다리를 다쳐 절둑이며 그에게 다가온다.
이 장면, 많은 상징을 담고 있다 생각했다.

어른이 된다는 거.
그건 절름발이와도 같다. 도저히 그 누구도 온전할 수 없는 세상 말이다.
할람의 어머니 또한 그러했으리.. 그녀 역시 할람을 버리고 싶진 않았을게다.
하지만 그보다 자신을 버릴 수 밖에 없을만큼 그녀가 속한 세상이 고통스러웠을 뿐. 그렇다고 할람에 대한 그녀의 사랑마저 아니라고 부인될 필요는 없을 일일진대.. 남은 사람들은 버림받은 아픔이 너무 커서, 그녀 스스로 자신을 버린 아픔까지 끌어안기에는 정말 긴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어머니와 그런 아버지를 딛고
이제는 할람 그 자신이 성인이 되었다.
지금부터는 오롯이 스스로의 삶을 만들어가야 하는 어른말이다.

그러나 어른이 된다고해서 더 이상 실수를 해선 안되고, 완벽한 삶을 추구해야 할까.
그것이 도저히 불가능함은 모든 어른들이 다 아는 사실일게다.

우리는 어제도 할람 포였지만, 오늘 또한 그러하다.
어른이 된다고해서 상처가 더 이상 아프지 않은 건 아니지만
아마 상처를 대하는 우리의 자세가 조금씩 의연해지는거.
그래서 언제가는 그 상처들이 우리들의 삶을 조금 더 진하게, 조금 더 깊이있게 그윽함을 더해주는 것을 깨달아 가는 거. 그게 성인이 되고 나이를 먹어가는 묘미가 아닐런지..

묘하게 뒤틀린 아니마를 지닌 할람의 삶. 자칫 어둡기만할 것 같은 소재의 영화임에도 매력적이라는 느낌이 다가오는 건 여전히 소년의 순수함을 지닌 제이미 벨의 표정연기때문일지 감독의 탁월함인지 조금 헷갈린다. 아마 둘 다가 어루러진 묘한 분위기때문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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