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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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악산 자락으로 떠난 가을 여행이었다.
오프라인 모임에 처음 나가는 나는 은근히 낯을 가리는 성격 탓에 약간 걱정이 되었다. 더구나 이번은 내가 속한 17기와 18기가 함께 주최가 되어 준비한 소풍이어서 더욱 어깨가 무거웠다.
17일 오후, 토요일 근무를 마친 18기 동생과 함께 서울을 출발했다. 우려했던 것과는 달리 별로 차가 많지 않았다. 끊임없이 수다를 떨고 간간히 음악을 들으며 3시간의 벗과 스승을 만나러 가는 여행을 시작했다. 밀폐된 공간에서 끊임없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난 동생을 얻었고 멋진 후배를 소개해 주기로 약속을 하고 말았다. 선발팀이 부탁한 청테이프를 사기 위해 슈퍼를 찾아 헤매면서 어느덧 우린 월악산에 도착해 있었다. 굽이 굽이 펼쳐져 있는 충주호와 가을 단풍이 나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했다.
세미나실에 가보니 선발대가 풍선 장식까지 해 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준비 모임을 서울에서만 하느라 처음 만나는 18기 세정님도 먼저 와 있었다. 세정님의 싹싹한 성품 덕에 난 바로 언니라고 부를 수 있었고 저녁을 먹으며 이수님과도 첫 인사를 나누었다.
고기와 김치, 다양한 반찬으로 맛있게 저녁을 먹고 드디어 공식 일정이 시작되었다.
초아 선생님의 주역 강의를 들으며 난 내가 얼마나 편협하고 무지한지 새삼 깨달았다. 그 전에는 주역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책 한번 펼쳐보지 않았으면서 점에 대한 선입견만 가지고 내가 알 필요가 전혀 없는 영역이라고만 생각했었다. 한번도 점을 본 적이 없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점을 보러 다니는 사람들을 은근히 우습게 보기도 했다. 그런데 '천,지,인'에 대해 말씀하시고 주역의 내용을 설명하시는 선생님의 강의를 들으며 세상의 넓음과 다양한 학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특히 주역이 서울대학교가 선정한 인문교양서라는 것을 알고 더욱 놀랐다. 내 지식탐구의 좌우명인 "You must know everything of something and something of everything!" 이 새삼 되새겨졌다. 책과 함께 하는 나의 여행이 무르익으면 언젠가 동서양의 고전과, 또한 주역과도 다시 만나게 되리라.
나를 깨우쳐 준 특강이 끝나고 꿈벗들의 자기소개가 시작되었다. 정말 다양했다. 꿈을 꾸고 벌써 저만큼 꿈에 다가가고 있는 1기 선배님들부터 막 꿈벗 여행을 다녀온 24기 새내기 꿈벗, 또한 영남권 모임과 글터에서 함께 온 분들까지. 특히 너무 좋은 모임이라며 4명의 벗을 데려오신 분이 인상깊었다. 변경연 홈페이지에서 글로만 보던 분들을 직접 보니 글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떠올랐던 이미지와 비교하느라 참 재미있었다. 대부분의 분들은 내가 상상한 이미지와 차이가 있었다. 글에서 느꼈던 차분하고 정제된 이미지와 달리, 실제 만나본 분들은 생동감을 가지고 보다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서로를 반기고 살짝 장난을 치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낯설면서도 아, 이만큼 이 분들에게는 이 모임이 편안하고 좋구나 하는 느낌이 왔다. 프로젝트 모임을 마치고 출발하신 스승님도 드디어 도착하셔서 우리를 더욱 기쁘게 했다.
김달국 선배님의 신간 '유머사용설명서' 출간을 축하하며, '꿈의 경영'을 주제로 두번째 강의가 시작되었다. 벌써 여섯번째 책을 내신다는 말씀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본인의 예를 들어 실현가능하다고 생각한 꿈과 막연히 바란 꿈, 매일 물을 주고 가꾼 꿈과 방치한 꿈을 이야기 하시며 꿈을 실현하는 방법을 재미있게 풀어 주셨다. 감사하게도 참석한 모든 분들에게 책도 한 권씩 선물해 주셨다.
그동안 유머는 나에게는 참 어려운 부분이었다. 난 그런 재능이 없다고 판단하고, 다른 사람의 유머를 열심히 듣고 열심히 웃어주자고 나름 결론을 내렸었고, 그러면서도 너무나도 적절한 유머를 구사하는 분들을 보며 부럽기도 했었다. 그런데 선배님의 강의를 듣고 보니 나눠주신 책을 살짝 열어보니 좀더 연습을 해야겠구나 하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공식 일정을 마치고 야외로 자리를 옮겨 자유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와 술잔이 오고갔다. 술을 즐기시는 분은 그 분들대로 모처럼 마음과 뜻이 맞는 동지들과 술잔을 기울이고 술을 전혀 못하는 분들은 또 그대로 가을 밤의 정취와 벗을 즐기며 밤이 깊어갔다. 진행팀은 열심히 고기를 굽고 나르며 자리에 앉지도 못했지만 또 바베큐 불판 사이에서 건배를 하며 서로의 수고를 격려했다.
술과 고기와 담소를 실컷 나눈 후 자연스럽게 캠프파이어 주변에 둘러서서 따뜻한 불기운을 즐기면서 기타 반주와 함께 노래가 시작됐다. 감미로운 기타 반주와 함께 노래는 이어졌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좋은 시간이었다. 7080 노래를 듣고 부르며 학생 때 MT 갔던 추억이 생각났다. 지금은 생각나지도 않는 주제로 밤새워 이야기하고 노래하던 그 시절. 우리는 세상에 발을 딪지 않고 꿈과 이상을 이야기하던 마치 그 때처럼 가슴을 활짝 펴고 노래하고 이야기했다.
아, 이것이 우리를 매년 봄, 가을, 만사를 제쳐놓고 모이게 하는 힘이구나, 우리에게 다시 희망과 꿈을 이야기할 수 있는 그런 힘을 주는구나!
이 곳에서 얼마나 많은 벗들이 에너지를 얻고 가는지 알게 되니 내가 이 모임을 준비할 수 있었던 것이 너무나도 감사하고 기뻣다.
밤이 깊어가도 자리를 뜨는 사람은 적었고 난 두 시에 쏟아지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잠자리에 들었다.
상쾌한 아침이 되고 눈이 번쩍 떠진 나와 세정 언니는 저녁에 못한 정리를 하러 서둘러 아래로 내려갔다. 그런데 벌써 일찍 일어난 분들이 싹 정리를 해 놓으셨고 덕택에 우린 팔짱을 끼고 산책을 하며 시골의 아침을 즐겼다. 돌아오는 길에 일찍 산보를 나오신 스승님 일행을 만나 사진도 함께 찍었다.
식사 시간이 좀 늦어져 애를 태웠지만 그래도 따뜻한 황태해장국과 맛있는 식사를 했다. 청량고추를 푼 해장국이 매워서 아이들이 먹지 못하는 것이 좀 미안했다.
이런 운동회를 즐기기엔 너무 나이가 많지 않나 하는 생각과는 다르게 열 시에 시작된 운동회는 진행을 도와주는 나도 즐길만큼 재미있었다. 열심히 준비한 프로그램과 풍성한 상품 덕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 우리를 즐겁게 한 건 마음을 열고 뛰고 즐기는 그 사람들 자체에 있었으리라.
두 시간여의 운동회가 끝나고 헤어짐의 아쉬움을 안고 스승님의 말씀을 들었다.
우리는 정말 다양한 나이와 직업과 배경들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에겐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공통점 또한 있었다. '창조적 부적응자들!'
맞다, '정-반-합'의 끊임없는 되풀이로 세상이 바뀌어 가듯이 우리의 부적응이 또한 나 자신을 바꾸고 세상을 바꾸어 나가리라. 우리는 그 외로운 길을 격려하고 지켜줄 벗과 스승님이 있지 않은가!
아는 사람이 없어서 혼자 벌쭘해 있지 않을까 하는 나의 우려는 정말 기우였고, 특히 이번 여행을 준비하고 함께 치르면서 나는 언니와 친구, 동생, 선배님들을 모두 얻는 제일 큰 수확을 거둘 수 있었다.
또한 새로운 길을 찾아 떠나는 나의 모험을 격려해 주시는 스승님과 벗들을 만난 멋진 가을 소풍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