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깊고맑은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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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전에 썼던 기업의 습작 프롤로그입니다. 준비가 안 되어 있었지만, 끝까지 하나의 과정을 즐겼습니다. 이 글을 다시 보고 싶었습니다.
출근길 지하철 1호선 안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덩치에 비해 좁은 의자를 옆 사람과 나눠 앉은 채로 졸고 있다. 젊은 시절에 꽤나 많았을 머리 숱은 깜빡이는 형광등에 맞춰 춤추고 있다. 얼굴 주름은 깊게 패여 그 모습이 초라하기 그지 없다. 그 옆에 앉은 아주머니는 무릎이 좋지 않은지 연신 무릎을 만지작거린다. 만삭의 예비 워킹맘의 표정도 그리 밝지 않다. 내 시선은 다시 50대 남자를 향했다. 어디에서 많이 보던 얼굴이다.
그 남자는 천하를 호령하는, 비록 회사 내부이기는 하지만, 회사 임원 중 한 분이다. 배려는 차치하더라도 악덕의 악령이라 회사 안에서 마주치고 싶지 않은 기피대상 1호다. 회사 안에서의 기세는 어디 가고 그의 다 닳은 구두 뒷굽에는 지하철 의자 7자리 중 한 자리를 차지한 안도감이 묻어 있다. 좁은 회사의 울타리만 벗어 나면 모두 동등한 입장인데, 울타리 안에서는 무엇을 위해 치열하게 발톱을 세우는지 모르겠다.
고개를 돌려 다른 각도로 그를 바라봤다. 그는 한 가정의 가장이다. 그 무거운 짐의 무게가 나지막한 어깨에 고스란히 묻어있다. 그는 내 아버지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고, 옆에 앉은 아주머니의 남편이자, 예비 워킹맘의 시아버지 혹은 친정 아버지다. 그를 바라보던 내게 측은한 마음이 불쑥 튀어나와 그의 패인 얼굴 주름을 따라 흘러내려 오래된 양복까지 물들인다.
같은 지하철을 탄 그 많은 사람 중에 유독 내 눈에 들어온 그와 가까워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뿐 아니라 내 선배들과 함께하고 싶었다. 그들의 지식과 경험에 내 동료들의 실행력과 혈기왕성함으로 무장해 시너지를 낸다면 어떨까를 생각해봤다. 현실과의 거리는 상당하지만 노력조차 해보지 않고 그냥 이대로 세월의 넝마주의자로 남아 있고 싶지 않았다. 무작정 도전하는 무모함보다는 아름다운 상상을 해봤다. 대책 없는 이상주의자로 비칠 수 있겠지만, 이런 상상을 하는 동안 서로의 입장을 생각해보며 우리는 틀린 생각을 하는 게 아니라 다른 생각을 한다는 걸 느꼈다. 모든 이들이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진 않겠지만, 작은 요동을 느끼는 이들이 있으리라는 확신이 생겼다.
나는 좀 더 아름다운 세상을 꿈꾼다. 내가 하는 얘기로 인해 나와 같은 사회적 약자들이 미소를 머금고, 나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합심으로 인해 내 자식 세대나 후배들에게 작은 발전을 안겨주고 가는 것이 학습되지 않은 의무라는 생각이다.
그 의무가 우리의 희망이 되는 날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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