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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2월 22일 02시 18분 등록

서문 : 태어나서 7년

 

매일 하루가 반복되고, 매 주가 반복됩니다. 매년 어김없이 설날이 오고 한 해가 또 시작되구요. 이런 시간의 구분은 사람이 정한 것에 불과한데도 우린 이 속에서 살면서 매일 똑같은 일상을 산다고 생각합니다. 반복 속에서 우리는 삶의 무의미를 느끼고 절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도대체 왜 사는지 알 수 없을 때도 있습니다. 이 일상의 무의미와 절망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 걸까요?

 

1995년 '폴 오스터'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웨인 왕' 감독의 영화 <스모크>는 그 방법을 인상적인 영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영화는 '담배연기의 무게가 얼마나 될까' 하는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붙잡을 수 없는 연기의 무게가 얼마나 되냐니, 무슨 얘기일까요? 이런 호기심과 함께 이 영화가 나를 사로잡은 더 큰 이유는 바로 '사진'이었습니다. 연기처럼 덧없이 사라지는 한 순간을 영원히 포착하는 특성을 가진 '사진'이 영화의 주요한 소재로 등장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주인공이자 극중 소설가인 폴 벤자민은 담배의 무게에서 담뱃재의 무게를 빼면 그것이 연기의 무게일 꺼라며 이야기를 이어갑니다. 덧없이 느껴지는 한 순간도 의미가 있다는 비유겠지요. 담배 가게 주인 오기 렌은 매일 반복하며 흘러가는 시간을 사진에 담아내는 일을 취미로 삼는 인물입니다. 오전 8시 브룩클린 거리. 그는 같은 시간 같은 거리를 무려 12년간 같은 프레임 속에 담아냈습니다.

오기가 이렇게 말합니다. "4000장이나 같은 장소에서 아침 8시에 찍은 거죠. 그래서 제가 한 번도 휴가를 못 간 겁니다."

그러자 폴이 대답했습니다. "그러니까 당신은 그저 장사만 하는 사람은 아니군요!, 이 같은 프로젝트를 어쩌다가 생각하게 되었죠?"

"그냥 떠올랐죠. 그저 이 세상의 미미한 구석에 불과하지만, 그래도 여기서도 매일 일이 생기지요. 그것은 나에게 속한 구역에 관한 기록이죠."

"정말 대단하군요" 그가 빠른 속도로 앨범을 넘겨대자 오기가 부드럽게 그를 멈춥니다.

"이해하려면 천천히 보아야 해요."

'다 똑같은 사진이잖아'라고 퉁명스럽게 말을 하는 폴에게 그는 그 차이를 설명합니다.

"똑같아 보이지만 모두 다 틀리지요. 밝은 날, 어두운 날, 여름의 아침, 겨울의 아침, 주말과 주중, 옷들의 변화, 사람들의 변화..."

오기가 계속 얘기합니다. "지구는 태양 주위를 돌고 있고 햇볕은 매일 다른 각도로 지구를 비추고 있지요. 당신도 알듯이 내일 다음은 내일 또 내일입니다. 시간은 한 걸음씩 진행되지요."

이 말을 듣고 폴은 사진을 조금 느리게 관찰하기 시작합니다. 그렇게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폴은 사진 속에서 총기사고로 죽은 자신의 부인을 발견합니다. 그 순간 폴의 느낌이 어땠을까요?

"맙소사. 보세요. 알랜이야. 정말 알랜이야!" 폴은 눈물을 삼키면서 목이 메어 말합니다. "그녀를 보세요. 내 사랑하는 아내 좀 보세요..."

벤자민 폴은 사진을 통해 과거의 아내를 만났고, 눈물을 참지 못하고 슬픔을 통곡으로 토해냅니다. 오기는 새로운 친구를 팔로 감싸 주었습니다.

 

이 장면은 삶의 순간순간을 천천히 바라볼 때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다는 이야기로 이해되었습니다.

오기의 말을 살짝 바꾸면 이렀습니다.

'모두 같은 순간이지만 각 순간은 어떤 다른 순간과도 다른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이 장면은 사진을 통해 일상의 특별함을 발견한 사건이기도 합니다. 사진은 일상의 순간을 포착해 꽤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습니다. 순간이 영원히 남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파일로 저장된 사진은 무의미합니다. 모니터 화면이나 앨범을  건성으로 빠르게 보는 것 만 으로도 부족합니다. 천천히 몰입해서 살펴보아야지만 그 순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전 아들 민호의 탄생부터 정확히 7년 동안 사진으로 포착된 순간들을 천천히 몰입해서 살펴보았습니다. 태어나서 7년 동안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이 기간은 정서적, 지적 발달이 크게 이뤄지는 시기입니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유아기로 분류하지요. 기다가 걷고, 말하기를 시작하는 등 모든 면에서 발달이 두드러지고, 또한 성경(성향)이 뚜렷해지는 기간입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기록할 수 없는 기간이기도 하고, 본인이 잘 기억하기도 어려운 시기이지요. 중요한 시기이지만 기억하기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사진과 글로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운 좋게도 전 민호가 태어날 때부터 일상사진가로서 사진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고스란히 그 순간들이 사진으로 남았지요. 남겨만 둔 것이 아니라 몇 달 정도씩 모아 현상해서 정리해두려고 했고, 사진벽에 붙여서 자주 보고, 앨범이나 사진책으로 갈무리해 왔습니다. 그리고 7년의 마무리로 더욱 다듬고 추려서 이 책으로 내놓게 되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예전엔 몰랐던 것들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 때의 감정을 다시 느끼며 뭉클하기도 했습니다. 아내와 그 순간의 이야기들을 나누며 기억을 바로잡기도 합니다. 또한 사진을 보며 글로 그 순간을 정리하면서 그 순간의 의미가 새롭게 드러납니다. 아하! 감탄하며 사진을 보고, 글을 썼습니다. 매일 똑같다고 생각했던 하루하루가 이런 의미가 있었구나! 민호가 이렇게 조금씩 자라고 변했구나! 아, 이런 곳에 갔었고, 이런 것을 보고, 이런 것을 먹었구나! 그러니 더 좋은 것들을 보고, 맛있는 것들을 먹으며 살아야겠구나! 등등 수많은 감탄이 터졌습니다. 너무나 개인적인 이야기이지만 보편적인 사람 이야기이기에 널리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닐까 싶습니다.

 

여러분께 사진으로 일상을 찍고, 그것을 천천히 관찰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권합니다. 사진은 매개체일 뿐이지만 좋은 도구입니다. 사진은 순간을 영원히 포착하는 특성을 가진 도구이고, 현대인들이 쉽게 사용하는 기계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표현의 영역이 넓은 예술도구이기도 합니다. 이제 사진을 볼 때 천천히 자세히 들여다봅시다. 우리가 놓쳤던 특별함이 그 속에 숨겨져 있을 것입니다. 매일 찍는 사진이지만 같을 리가 없습니다. 빛이 다르고, 대상이 다르고, 시선이 바뀌고, 형태가 변하고, 놓였던 시간과 공간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최소한 매 순간이 같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것만은 기억합시다. 이해하려면 천천히 보아야 한다는 것을!

 

===================================================================================

목차

 

가제목 : 멈춰라 순간이여!

 

서문 : 태어나서 7년

 

돌잔치만 기다렸다_ 첫 일 년의 기록

2006년 6월 7일 오후 10시 1분 : 탄생

백일까지 조심조심

너의 꿈은 뭐니? : 스님이 되더라도

민호는 대머리인가? : 걱정병에 대하여

아토피여 지나가라

결혼기념일

아빠가 널 업어 키웠단다 : 난 아빠다!

오이 한 조각도 나눠 붙이는 사이

드디어 돌잔치!

 

하루하루가 소중하다_ 일상의 추억

처음 앉은 날

나도 걸을 수 있어

목욕쯤이야

민호야, 밥 좀 먹자

민호를 업고 병원 복도를 하염없이 걷다

당진에 '던킨 도너츠'가 열리던 날

처음으로 미장원에 갔어요

이별 : 어린이집 버스 타기

민호의 작품 세계

민호는 사진작가, 셀카놀이의 대가

우린 탁구장도 함께가요

민호의 첫사랑

아내 없는 밤

최고의 선물, 노래

시간여행 : 돌아가신 장모님을 떠올리며

 

우린 함께 떠날 수 있어_ 여행 이야기

여행 첫걸음_ 겨울 꽃구경

오름에 올라 바람을 맞다_ 제주도

신쥬쿠에서 지하철 타기_ 도쿄

최고의 순간_ 하코네

대나무 그늘에서_ 담양

태고의 바다를 만나다_ 신두리

비오는 동백섬, 목련_ 부산, 통영

나에게 가족이란_ 지리산, 함양

냉온욕의 즐거움_ 온천여행

2012 _ 동해안, 경주?

++

 

민호에게 배운 것들

온화한 하늘 _ 평화주의자

넌 참 특별하단다 _ 새끼손가락

행복이 뭐니? _ 산책

재롱잔치, 실력의 비밀 _ 몰입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 _ 지혜

이닦을 때도 즐겁게 _ 삶의 자세

Yes, No는 확실히 _ 솔직함

잘때는 엄마, 놀때는 아빠 _ 유연함

"나는 기적이다!", 그래 너는 기적이다

+++

 

에필로그 : 태어나서 7년째 되는 날

 

 

IP *.138.53.71

프로필 이미지
2012.02.22 10:04:46 *.32.193.170

나도 이번 오빠 이미지 에세이 보면서, 민호와 관련된 주제가 되게 좋다고 생각했는데. 7살의 민호를 처음 한번 보고, 아기때 민호를 본 나도 느낌이 확 다른데, 7년간 성장과정을 지켜본 부모의 기분은 정말 남다르겠구나. 이런 느낌?ㅋ

 

서문과 목차를 보니 왠지 따뜻함이 느껴진다.

 

근데 왠지 모르게 서문이 조금 분산된다는 느낌이 든다는. 이번에 사부님이 말씀하셨던 것 같은뎅. 태어나고 스스로 기록할 수 없는 7년간의 기록이 왜 의미가 있는지, 아이가 있는 집이라면 누구나 사진을 기록으로 남기지만 정리가 안 되고 있는 수많은 부모들에게 오빠가 이 책을 씀으로써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건지.

 

지금 서문에서 쓴 것처럼 사진 자체, 순간의 기록이 가지는 의미와 민호의 7년의 기록과의 연결고리를 좀 더 찾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용~!^^

 

느낌이 좋아~!!! 오라버니, 화이팅!!!!^^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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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2 14:10:59 *.163.164.176
물탱이 경수,

맑은 경수,

착한 경수,

세상에 많은 기운들 중에서 네가 담고 있는 기운은 맑고 깨끗한 기운인 것 같다.

그래서 너의 글을 맑고 깨끗하지...나는 지난 1년간 네 글의 느낌이 무엇인지 정의하지 못했는데..

사부님 말씀을 듣고서 무릎을 쳤지...그래 경수의 글을 '맑다'

물탱!

그대의 꿈을 응원한다.

PS. 서문에서는 부모로서의 의무감을 살살~~자극해 보는 것이 어떠하겠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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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2 17:50:40 *.143.156.74

이제야 경수가 첫 책의 주제를 잡았구나.

좋은 책이 나올 것 같아.

민호가 효자로구나.

 

그런데 서문에 경수가 결국 민호를 주제로 한 책을 쓰게 된 과정을 조금 이야기해주는 것을 어떨까?

영화에 대한 이야기가 너무 비중이 큰 듯한 느낌이 드는구나.

프로필 이미지
2012.02.23 00:06:55 *.66.118.15

중간에 영화 얘기가 좀 길게 느껴지네 조금 줄여도 좋을 것 같아.

 

오빠처럼 따뜻한 책이 나오겠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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