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루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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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책을 쓰겠습니다.”
이것이 제가 그날 사부님께 드린 말이었지요. 우리 한 마디씩 하기로 한 그때 저는 이 한마디를 사부님께 드리고 싶었거든요. 1년 동안 자신의 많은 것으로 키워주신 분에게 감사하다는 말보다는 사부님께서 흡족해 하실 수 있는 한 명의 제자 되어 드리는 것으로 답해 드리고 싶었습니다. 내 삶의 한 복판에서 스승이 가르쳐 준 길을 치열하게 따르는 것으로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이 말은 사부님께만이 아닌 그대들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었습니다.
연구원이 되어 1년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렇게 그대들과 함께 한 분의 스승을 모시고, 하나의 목표를 가지고 길을 걸어왔습니다. 무슨 말인지도 모르는 책을 읽어가며 감기려는 눈을 억지스레 떠가며 쓰여지지 않은 글을 짜맞춰가며 1년을 보냈습니다. 때로 포기하고 한 번은 넘어가고 싶은 순간에 나를 잡은 것은 그대들이었습니다. 짜증이 나는 순간, 포기하고 싶은 순간 나와 같은 시간에 나와 같이 글을 쓰고 타이핑을 하고 있을 그대들이 있어 나는 포기할 수 없었습니다. 그저 짜증만 내고 있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지같은 글이라도 써 내야 했고 잠을 자지 않아 머리가 멍해도 해내야 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1년의 시간이 지나니 내가 많이 똑똑해졌다고들 했지요? 나를 이렇게 만든 건 사부님이 반 그대들이 반입니다. 무엇이든 때려치우는 재주를 가진 내가 묵묵하게 이 자리를 걸어온 것은 나를 뽑아준 스승에 대한 고마움과 함께 이 길을 걸어가고 있는 그대들에 대한 동지애였지요.
훈 오라버니.
우리 처음 오프 수업 하던 날 유언장을 읽고 훌쩍거리던 나를 툭툭 쳐주던 순간을 잊지 못합니다. 아무런 말씀 하시지 않았지만 큰 위로가 되어 주었습니다. 내가 내 아픔으로 울어도 누군가가 이렇게 달래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해주었지요. 그렇게 연구원의 시작에 오라버니의 위로는 나에게 큰 힘이 되어주었습니다. 우리를 빵빵 터지게 해준 오라버니의 재치들은 지금 떠올려도 피식피식 웃음이 나게 해주는 군요.
재경 언니.
언니에게 제일 고맙고 미안하고 그래요. 이리저리 제 할 일도 하지 못하는 녀석을 이끌어 졸업여행까지 가게 해주었던 것은 언니였습니다. 매일 약속 안 지킨다며 투덜대도 언제나 함께 가지며 약속을 해주셨지요. 작은 하나에도 나는 참 큰 박수를 받았어요. 남들 다하는 오프 수업 장소를 잡았을 때도 다들 해오는 발표 준비를 했을 때도 다른 이들은 나에게 박수를 보내주었죠. 그 시작은 언니였음을 알고 있어요. 인정받고 싶은 여자에게 이러한 작은 일들로 박수를 받은 건 아마 내가 처음이지 않나 싶네요.
양갱 오라버리니
사부님께 힘들여 안부를 전화를 처음 한 날 나는 오라버니에게 전화를 걸었더랬어요. 왜 그랬을까? 오라버니가 가지고 있는 그 포근한 분위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오라버니에게 전화를 걸고 통화를 하던 그날. 나는 내 그림자를 보며 내가 참 사랑스럽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게 지금 쓰고 있는 방법들의 시작이었어요. 그런 간단한 방법들이 나를 사랑스럽게 만든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한 통화였지요. 아마 그날 오라버니에게 전화를 걸었던 건 지난 날 오라버니가 나에게 먼저 전화를 걸어주었던 기억 때문이지도 모르겠네요.
사샤 언니
언니처럼 매력적인 사람이 있을까요. 나는 아직도 산 지미냐뇨의 그녀를 잊지 못합니다. 남들 다 가진 신발을 갖지 못하고도 깔깔대던 그녀에게서 나는 세상 앞에 당당해지는 법을 배웠어요. 내가 웃으면 사건도 사고도 그저 유쾌한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말이지요. 그렇게 언니는 언니의 모습 자체로도 나에게 많은 것을 주었습니다. 까짓 청바지 안 어울리면 뭐 어때요. 언니는 언니스러움이 있는 사람이잖아요. 언니를 보며 나는 나만의 방식이 뭘까를 많이도 생각했어요.
미선언니
언니만큼 사랑스러운 사람은 없을 거예요. 큰 것이든 작은 것이든 하은이를 챙겨주던 마음이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그건 나에게 더없는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 나에게도 하은이를 더욱 사랑하게 만들어주었지요. 그렇게 언니에게서 다른 이들을 사랑하는 방법들을 더 배워갑니다. 조용하지만 강단이 있는 언니에게서 나는 나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방법들을 알았어요.
신치
나의 희망이 되어준 녀석. 책을 조금밖에 읽지 않았어도 나는 걱정이 되지 않았다. 니 녀석이 있기 때문이지. 내가 한껏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 너는 다른 공간에서지만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힘이 되었다. 이런 저런 일을 옮겨 다니면서도 또 끊임없이 찾고 있는 니 녀석에게서 나는 끈기를 본다. 그래도 꿈을 잃지 않은 너를 보며 나 역시 꿈을 꾸어본다. 시간이 훌쩍 지나도 너랑은 여전히 맥주를 마시고 있을 것 같구나.
경인 오라버니
이렇게 쓰다보니 끝까지 함께 하지 못했던 오라버니가 생각이 나네요. 나는 오라버니가 우리와 다른 길을 간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의 길을 걸아가고 있는 동기맞지요? 그날 우리 하은이랑 만났을 때 오라버니가 하은이를 목마 태워줬잖아요. 아빠가 없어서 그런 건 많이 해주지 못했는데 얼마나 고맙던지. 오라버니가 어느 길을 가던지 응원합니다. 땀을 뻘뻘 흘리고 있던 오라버니가 생각나네요. 지금은 어느 길에서 땀을 흘리고 있는지.
짧은 글로 내가 그대들에게 얻었던 힘을, 용기를, 사랑을 보답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만큼 그대들은 나에게 많은 의미가 되어주었습니다. 면접 여행 때의 쭈뼛쭈뼛함이 깔깔대는 웃음으로 바뀐 졸업여행. 정처없이 목적지도 없이 헤맨 여행이었지만 그대들이 있어서 참 즐거웠어요. 다른 이들이었다면 그렇게 즐거운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 거예요.
많은 일이 있었던 1년 간을 마무리 하는 여행을 끝내고 이것이 과연 마무리인가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졸업여행은 이제 스스로 혼자의 길을 떠나는 우리의 시작을 축하하는 여행은 아니었을까요. 이제 우리는 서로 자신의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시간이 되었잖아요. 커다란 길을 함께 걸어오다 이제는 자신이 발견한 매력적인 길로 빠지는 시기인듯 합니다. 혼자 걸어가는 길이 힘들어 뒤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순간도 있겠지만 그때도 역시 각자의 길을 열심히 걸어가는 그대들을 생각하며 힘을 낼 겁니다.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그대들이 나에게 힘을 주고 용기를 주고 사랑을 줄 것을 믿으며 그것에 보답할 길이 없어 사부님께 드렸던 말을 똑같이 드립니다. 그렇게 나의 길을 꿋꿋이 걸어가는 한 명의 동기로 그대들에게 보답하겠습니다.
“꼭 책을 쓰겠습니다.”
ㅋㅋㅋ.. 암튼 이여자... 끝까지..
'나의 희망이 되어준'에서 완전 빵 터졌다... 이 대목에서... 늘 루미언니보다 책도 덜 보고, 과제도 덜하고... 이런 나를 발견하네.
사부님이 돌아가며 말씀해 주신 것과 일맥상통하지. '얘는 연구원 되고나서 열심히 하는게 안 보여.' 라는 말씀.. ;;; ㅋㅋㅋ..
부끄럽다..
영화, 책, 만화책, 다른 사람으로부터 얻은 정보 등... 무엇이든 자기것으로 소화해내고, 그것을 입 밖으로 내는 언니를 보며.
참 부럽다는 생각이 들더군. 지금도 마찬가지. 언니의 그런 능력을 끄집어 내어준 것이 바로 연구원 과정이었겠지??
나는 과연 얼마나 성장했나? 얼마나 달라졌나. 이번 여행을 통해 스스로에게 가장 궁금하면서 질문 던지고 싶은 부분이더라고.^^
올 한해.. 고독의 시간. 술은 절제할테지만... 가끔 둘이 부어라 마셔라 하자~!ㅋㅋ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