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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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문 : 그래, 너 참 아름답구나!
나에게 사진은 삶의 증거물입니다. CCTV에 찍힌 범행 현장의 내 모습처럼, "난 저기 없었어!"라고 부인할 수 없는 명백한 증거입니다. 나의 존재를 확인할 증거가 필요한 때에 사진 만한것이 없습니다. 과거 사진을 천천히 바라보며 내가 그곳에 있었음을, 시간을 뛰어넘어 내가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꺼내어 보고 고통스럽기도 합니다. 그러나 다시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가슴이 뛰기도 합니다. 과거를 현재로 가져와 비춰보며 퀘퀘한 과거를 햇볕에 뽀송뽀송하게 말릴 수 있습니다. 솔직히 아무리 고통스럽고 기억하기 싫은 과거일지라도 시간이 지나면 아름다워 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순간을 가슴에 새겨 영원히 간직하고 싶기도 합니다. 사진은 이런 소망을 실현시켜 줍니다.
삶의 순간순간을 천천히 바라볼 때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도 특별함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모두 같은 순간이지만 각 순간은 어떤 다른 순간과도 다른 것입니다. 순간을 천천히 바라볼 수 있는 좋은 방법이 '사진'입니다. 사진은 일상의 순간을 포착해 꽤 오랫동안 보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순간이 영원히 남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파일로 저장된 사진은 그 자체로는 무의미합니다. 모니터 화면이나 앨범을 건성으로 빠르게 보는 것 만으로도 부족합니다. 마음에 드는 사진을 골라 현상도 하고, 정리해 앨범도 만들고 크게 뽑아 벽에 붙여놓고 보는 것을 추천합니다. 천천히 몰입해서 살펴보면 그 순간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전 아들 민호의 탄생부터 7년 동안의 순간들을 사진으로 남겼습니다. 그냥 아름다운 순간을 남기고 싶다는 열망이 컸습니다. 파우스트가 외쳤듯이 "순간이여 멈춰라, 너 정말 아름답구나!" 라는 심정이었습니다. 돌아보니 아이가 태어나서 7년 동안은 큰 의미가 있었습니다. 우선 이 기간은 정서적, 지적 발달이 크게 이뤄지는 시기입니다. 발달심리학에서는 유아기로 분류하지요. 기다가 걷고, 말하기를 시작하는 등 모든 면에서 발달이 두드러지고, 또한 성격이 뚜렷해지는 기간입니다. 그렇지만 스스로 기록할 수 없는 기간이기도 하고, 본인이 잘 기억하기도 어려운 시기입니다. 중요한 시기이지만 역사로 남기기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부모가 사진과 글로 기록을 남겨두는 것이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운 좋게도 전 민호가 태어날 때부터 일상사진가로서 사진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고스란히 그 순간들이 사진으로 남았지요. 남겨만 둔 것이 아니라 몇 달 정도 간격으로 모아 현상해서 정리해두려고 했고, 사진벽에 붙여서 자주 보고, 앨범이나 사진책으로 갈무리해 왔습니다. 그리고 7년 동안의 그 순간들을 다시 천천히 몰입해서 살펴보았습니다. 더욱 다듬고 추려낸 결과물로 이 책을 내놓게 된 것입니다.
이 과정을 통해 예전엔 몰랐던 것들을 발견하기도 하고, 그 때의 감정을 다시 느끼며 뭉클하기도 했습니다. 아내와 그 순간의 이야기들을 나누며 기억을 바로잡기도 합니다. 또한 사진을 보며 글로 정리하면서 그 순간의 의미가 새롭게 드러납니다. 아하! 감탄하며 사진을 보고, 글을 썼습니다. '매일 똑같다고 생각했던 하루하루가 이런 의미가 있었구나! 민호가 이렇게 조금씩 자라고 변했구나! 이런 곳에 갔었고, 이런 것을 보고, 이런 것을 먹었구나! 그러니 더 좋은 것들을 보고, 맛있는 것들을 먹으며 살아야겠구나!' 등등 수많은 감탄이 터졌습니다.
제가 그랬듯이 여러분들에게도 '사진으로 일상을 찍고, 그것을 천천히 관찰할 것'을 권합니다. 사진은 매개체일 뿐이지만 좋은 도구입니다. 앞서 말했듯이 사진은 순간을 영원히 포착하는 도구입니다. 게다가 볼펜처럼 쉽게 사용하는 기록장치가 되었습니다. 쉽지만 표현의 영역이 넓은 예술수단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놓쳤던 일상의 특별함이 사진 속에 숨겨져 있습니다. 매일 찍는 사진이지만 같을 리가 없습니다. 빛이 다르고, 대상이 다르고, 시선이 바뀌고, 형태가 변하고, 놓였던 시간과 공간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최소한 매 순간이 같지 않다는 것은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해하려면 천천히 보아야 한다'는 말을 기억합시다. 천천히 보면 사진 속에 멈춰 있던 순간이 살아 움직이는 경험을 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렇게 외칠 것입니다.
"그래, 너 참 아름답구나!"
보통의 갈매기가 일상의 일을 숙명처럼 생각하고 거기에 골몰하고 있을 때,
조나단은 보통 갈매기의 한계를 넘어서, 더 높이, 더 빨리, 더 아름답게 나는 것,
궁극적으로 비상의 신비스러운 경지를 찾는 데 시간과 정력을 바친다.
그게 바로 너다. 빙의?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