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키 제동
- 조회 수 2373
- 댓글 수 8
- 추천 수 0
“어, 나현아.”
“엄마, 언제와?”
“어, 이제 다 끝나가. 왜? 집에 아빠 안 계셔?”
“응. 아직 안 오셨어.”
압력밥솥의 증기 배출기마냥 정수리에서 두 줄기의 김이 쒜엑하고 솟아 난다. 아이들을 돌봐주기로 약속한 남편은 도대체 어디 있는 것일까?
약속이 잡힌 날이 하필이면 수요일이다. 수요일은 남편의 테니스 동호회 모임이 있는 날. 남편이 늦게 들어오니 내가 저녁 외출을 하기 힘들다. 아이들끼리 있으라 하고 나갔다 올까 생각해보지만 여섯 살과 초등학교 3학년인 아이들을 늦은 저녁 집에 둘만 남겨 놓는 것은 아무래도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결국 남편과 나 중 한 명은 집에 있어야 한다. 하지만 남편이 그 모임에 빠질 리가 없다. 그것이 요즘의 유일한 사는 낙이 아닌가? 약속에 못 나간다 할까 생각해보지만 내가 빠지면 안 되는 모임이다. 어찌할까 고민하다 결국 남편에게 솔직히 말하고 양해를 구했다. 그런데 이게 어찌된 일인가? 남편이 순순히 자신이 일찍 들어오겠다고 하는 것이 아닌가? 이게 웬 떡이냐?
고맙다, 미안하다 수 차례 말하고 아이들 챙겨 줄 것들을 일일이 당부하고 6시가 조금 넘어 집을 나섰다. 남편도 동호회 사람들에게 양해만 구하고 오겠다며 나와 같이 집을 나왔다. 그런데 테니스 라켓에 운동복까지 다 갖추어 입었다. 왠지 불안한 느낌이 엄습했지만 ‘설마’하는 생각에 입을 다물었다. 괜히 남편의 심기를 건드릴 필요는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 ‘설마’가 ‘내 그럴 줄 알았지’가 되고 말았다. 인사만 하고 집으로 돌아오려 했던 남편은 한 게임만 하고 가라는 사람들의 만류에 한 게임 두 게임 하다 결국 10시가 다 되도록 집에 들어가지 않은 것이다. 아이들은 그 시간까지 둘이서 엄마 아빠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남편은 도대체 어떤 종족일까? 아이를 둔 아빠가 맞는가? 어떻게 아이들이 집에 있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 버릴 수 있단 말인가? 이러한 성향은 남편만의 것인가, 아니면 남자들에게 나타나는 보편적인 것인가? 남자는 아이보다 자신의 욕망이 우선인데 여자는 왜 아이를 위해 자신의 욕망을 기꺼이 희생하는 것일까?
이러한 궁금증은 신경정신의학자 루안 브리젠딘의 저서 『여자의 뇌, 여자의 발견』을 읽으며 다소 해소될 수 있었다. 브리젠딘은 아이를 낳아 키운 자신의 경험을 회고하면서 자신의 뇌가 모성에 의해 구조적, 기능적으로 여자의 뇌에서 엄마의 뇌로 변화했음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엄마의 뇌는 아이를 자아로 확대시켜 아이의 요구를 생물학적으로 받아들이게 했을 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의 욕구보다 아이의 욕구에 더 충실하도록 강요한다. 아이는 자신의 뇌가 날마다 접속하라고 요구하는 대상인 동시에 자신의 자아를 확대시키고 새로운 현실을 만들어낸 사람인 것이다.
그렇다면 남자의 뇌는 아빠의 뇌로 변화하지 않는 것인가? 아내가 임신 초기에 입덧을 할 때 비슷한 증상을 보이는 남자들이 있다. 예비 아빠의 약 65%가 이러한 증상을 보이는데 이를 쿠바드 증후군(Couvade Syndrome)이라 부른다. 이는 영국의 심리학자인 트리도 우언이 ‘알을 품다’라는 프랑스어의 ‘couver’에서 이름을 빌린 것으로 남편이 임신 중인 아내와 함께 구토 등 심리적, 육체적 증상을 함께 겪는 것을 말한다. 쿠바드 증후군을 경험한 남자들은 다른 남자들에 비해 양육과 젖샘을 자극하는 호르몬인 프롤락틴 수치가 훨씬 더 높고 테스토스테론 수치는 급격히 떨어진다. 과학자들은 임신한 여자가 분비하는 페로몬이 배우자의 이와 같은 신경화학물질의 변화를 야기하고, 자상한 아빠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도록 해준다고 생각한다. 이런 변화를 통해 남자의 뇌는 아빠의 뇌로 변화하는 것이다. 하지만 아빠의 뇌와 엄마의 뇌는 확연히 다르다. 엄마는 자신의 생활에서 최우선 순위를 아이에 둔다. 그러나 아빠는 그렇지 않다. 대체로 母性은 父性보다 강하다.
이러한 현상은 얼마 전 진행한 워킹맘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도 드러났다. 30-40대 워킹맘을 대상으로 ‘휴식’을 주제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95%의 워킹맘은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있지 않다고 대답했다. 휴식을 취하지 못하는 이유는 73%가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답했으며 휴식 시간에는 주로 수면과 TV(영화)보기 등의 소극적인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워킹맘의 휴식에서 다루어주길 원하는 주제가 있는가’라는 질문에는 효율적인 휴식 방법, 아이와 함께 하는 휴식법, 휴식에 대해 이해를 구하는 법을 알려달라는 요청이 많았다. 엄마들은 자신의 휴식에 대해 어떻게 이해를 구해야 할지 난감해한다. 가끔은 이에 대해 알 수 없는 죄책감 마저 느낀다. 또한 자신을 위한 휴식에도 아이를 배제할 수 없다. 아이와 함께 쉴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 생각하는 것이다. (일하는 아빠들을 대상으로 같은 설문을 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올까? 나는 단언한다. 아빠들은 절대로 아이와 함께 쉬는 법을 알려달라고 하지 않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나만을 위한 시간을 꿈꾸다가도 아이들 생각을 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조금 힘들더라도 이 한 몸 희생해 아이를 위해 무엇인가를 해줘야 하지 않은가 라는 마음이 커진다. 누군가 믿을만한 사람이 아이들을 봐주고 있지 않으면 밖에 있어도 가시방석이다. (남편은 믿을만한 사람일까, 아닐까?) 이러한 엄마의 속성은 엄마가 되기 전부터 지니고 있던 여자의 속성에서도 그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 여자아이들은 태어나면서 상대의 얼굴 표정과 목소리에서 감정과 속마음을 읽어내는 탁월한 능력을 가진다. 브리젠딘은 그 이유를 ‘관계’를 중요시하는 뇌의 프로그램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이것은 생존을 위해 수천 년간 지니고 있었고, 지금도 여전히 지니고 있는 유전적 진화 프로그램의 결과다. 덩치가 작은 여자들은 성질이 나쁜 난폭한 남자들의 공격에 맞서기 위해 다른 여자들과 될수록 더 많은 관계를 맺고 연대할 필요가 있었다. 그리고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상대의 감정과 속마음을 읽어 조화를 꾀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했다. 현대의 도시세계에서는 더 이상 중요한 문제가 아님에도 여자들에게는 여전히 그러한 생존 본능이 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엄마는 쉬지 못한다. 아이의 얼굴 표정과 목소리에서 엄마의 손길이 필요함을 감지할 수 있어서 그렇고, 임신과 출산 과정을 거치며 엄마의 뇌는 ‘아이 = 나 또는 아이 > 나’라는 등식을 만들어 자신의 욕구보다 아이의 욕구에 더 충실하기 때문이다. 출산과 양육의 책임뿐 아니라 경제적 책임까지 져야 하는 워킹맘은 어떠한가? 그들은 더욱 쉬지 못한다. 그러면서 끝없이 갈등한다. 자신의 욕망과 엄마로서의 책임감 사이에서 고민하고, 아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돈’인가 ‘엄마의 손길’인가를 저울질한다. 엄마가 아닌 한 인간으로 사회적 성취를 위한 욕망이 있지만 엄마라면 아이를 위해 희생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자꾸 고개를 내민다. 그러다 아이가 커갈수록 ‘내가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 것을 아닐까’하는 불안감을 떨치지 못한다. 물론 월급통장에 월급이라는 마약이 들어오면 ‘아이를 잘 키우려면 역시 돈이 필요해’라는 마음이 더 커지고 말지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브리젠딘은 다음과 같이 조언한다.
직장 일과 양육에 있어서 예측 가능한 환경을 마련함으로써 아이를
안전하게 보살피는 것은 엄마에게 매우 중요한 일이다. 엄마의 정서적,
정신적 발달은 그녀가 엄마로서 경험한 내용들에 의해 커다란 영향을 받는다. 그러므로 자신을
위해, 그리고 아이를 위해 훌륭한 대리 엄마의 도움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 역시 엄마로서의
성공에 중요한 열쇠가 될 수 있다. 예측 가능한 환경은 엄마에게 신뢰와 안정감을 제공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스트레스를 받은 엄마에게서 자란 아이가 또다시 스트레스에 예민한 엄마로 성장하는 악순환의
고리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다.
워킹맘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 모든 일을 혼자서 다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믿을만한 누군가를 구해 아이를 맡기고 예측 가능한 환경을 마련해 두어야 한다. 엄마가 육아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이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당신은 어떠한가? 혹시 수퍼 엄마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고 있지는 않은가?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 낼 수는 없다. 아니 잠깐은 그럴 수 있겠지만 오랫동안 그럴 수는 없다. 아이도 보살펴야 하지만 먼저 자기 자신을 보살펴주는 것은 어떨까? 엄마가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해야 아이도 잘 키울 수 있다.
그러니 여자여, 자신을 더 아끼고 보살펴 주어라.
자신을 위해 이제는 조금 더 쉬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