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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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신치, 비서 되다 - 1
얼떨결에 오케이 싸인을 보내고 내게는 절대 어울리지 않을 것만 같은 비서 업무가 시작되었다. 회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키폰 사용법부터 마주보고 앉아 있는 부사장 비서에게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모시는 임원과의 첫 대면이다. 마주하자마자 임원은 내게 해맑은 웃음으로,
“대구 어디 나왔노?”
“네? 아… 저 경명여고요”
“경명여고? 경명여고가 어디고?”
“칠성시장 근처에요.”
“그래? 집은 어디고?”
“집은 경북대 근처에 있다가, 지금은 서울로 다 이사왔습니다.”
“그래? 비서 한 번도 안 해봤는데, 잘 할 수 있겠나?”
“네, 열심히 해야죠.”
“회사는 오래 못 다니고 여러 번 옮겼네?”
“아… 보험회사에 오래 있었고요. 벤처기업이랑 작은 회사에 잠깐 있었습니다. 비서 일도 나중에 사업하는데 도움이 될까 해서 하게 된 거에요.”
“그래? 사업할라고? 열심히 한번 해 봐라. 많이 배우는게 있을끼다.”
“네, 잘 부탁드립니다.”
자그마한 키에 안경을 쓰고, 대구 사투리를 구수하게 쓰는 임원은 대구 출신이라는 것과 사업을 하려고 하는 나의 포부가 꽤 맘에 들었나보다. 이후에 대구 친구인 외부손님이 왔을 때도,
“야가 대구 아인데 나중에 사업할라고 비서하게 됐다.”라며 나름 자랑스럽게 의도치 않은 나의 소개를 하는 것이다.
연말카드 보내기와 연말정산 등 복잡한 일들은 이미 이전에 비서들이 일처리를 다한 후라 내가 갔을 때는 바쁘게 처리해야 하는 일은 없었다. 임원의 일정관리, 차 서빙, 개인 은행업무 등 잡다한 업무들을 하나씩 배워가고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무언가 이상한 기류가 감지된다. 예를 들면, 비서실에 대장 언니가 밥을 사주면서 “밥만 사주면 애들이 다 나가. 이번에도 나가는 건 아니겠지?” 라고 말한다.
알고 보니, 임원과 함께 비서를 1년 2개월간 했던 사람이 나간 후 한달 사이에 4명의 비서가 일주일도 채 되지 않아 나갔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일을 하러 왔던 비서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 임원의 태도가 문제였다. 물론 다른 회사에서 비서일을 하는 것보다 일은 많고 월급이 적은 것도 한 몫 한 것 같다. 하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임원이었을 것이다. 아직 내게 일을 시키지는 않았지만, 사장님과 같은 수행 비서의 대접까지 받길 원하는 임원은 옷 단추 달기, 통장 정리, 출근할 때 달려가서 문 열어 주기, 하루 4번 차 대접하기, 아파트 관리비 내주기, 기차티켓 정산하기 등 다른 임원들은 하지 않는 너무나 잡다한 개인적인 업무를 많이 시킨다.
다행인 건 이미 4명의 비서를 내보낸 후라서 임원이 회사 외부가 아닌 내부에서 뽑은 나에게 그 전에 비서들에게 했던 것과 같이 함부로 막 대하지는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 다른 점은 나이다. 지금까지 비서들처럼 고분고분하게 말을 잘 듣는 비서가 아닌 것이다.
비서는 개인적인 일정 때문에 휴가를 쓸 수가 없다. 임원이 쉴 때만 쉴 수 있다. 그런데 나는 비서업무를 시작하기도 전에 중요한 개인 일정 때문에 휴가를 쓰겠다고 얘기를 했다. 그래서 2주차에 이틀의 휴가를 냈다. 그리고 임원이 퇴근한 후에야 퇴근할 수 있는데, 휴가를 떠나기 이틀 전에는 오후 4시에 조기 퇴근을 했다. 그리고 비서는 임원보다 일찍 출근해서 신문과 물, 그리고 물잔, 가습기 세팅 등을 해두어야 한다. 그런데 처음 2주동안 무려 세 번이나 지각을 해 버렸다. 이런 나를 보며 비서실 내에서는 의견이 분분하다고 한다. 처음 지각한 날 마주보고 있는 다른 임원의 비서가 내게 말한다.
“언니, 저 언니 같은 비서 처음 봐요.”
이 한마디에서 볼 수 있듯이 나는 이미 비서계의 이단아가 되었다. 앞서 나간 4명의 비서들의 이야기와 임원 옷까지 받아주었다는 첫 번째 비서의 이야기까지 들으니, ‘이건 아닌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던 어느 날 어김없이 임원이 내게 본인의 개인 통장을 건네주며 돈을 찾아오라는 심부름을 시켰다. 기꺼운 마음으로 1층으로 내려가 돈을 찾았는데, 통장을 바꿔야 하는 시점이 온 것이다. 하지만 이미 은행은 닫은 후였고, 통장을 바꾸려면 신분증이 필요하기에 임원실로 돌아갔다. 통장을 바꾸셔야 할 것 같다고 했더니, 갑자기 핸드폰을 뒤지기 시작한다.
“1층에 담당 여직원이 있는데 말이야. 올라와서 처리를 좀 하라고….”
이게 무슨 소리인가? 지금 자기 통장을 바꾸는데, 은행 직원이 임원실까지 왔다는 것인가? 순간 당황스러움이 밀려온다. 나란히 방을 쓰고 있는 다른 임원의 비서까지 자기 비서처럼 부리는 것을 넘어서 은행 직원까지 자기 부서처럼 부리려고 하는 행동이 과연 상식적으로 납득할만한 일인가? 왠지 이번에는 그냥 넘어가서는 안 될 것 같다. 그 은행 여직원의 전화번호를 찾고 있는 5분간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임원에게
“내일 점심 드시고 들어오시는 길에 은행에 잠깐 들리세요. 5분이면 되실거에요. 5분도 안 걸릴걸요?“ 라고 해맑게 웃으며 말했다.
그러자 임원은 순간 표정이 썩 좋지 않다. 마지못해
“어 그래? 그러면 그럴까?”
“네, 그러세요~~!!!” 그리고 뒤돌아 나와버렸다. 이제 시작이다. 이상한 임원에 이상한 비서와의 보이지 않는 줄다리기. 5번째 비서인 내가 나가면 회사 내에서 불리한 입장에 처하게 될 임원과 여기서 나가도 전혀 아쉬울 것이 없는 나. 일단 입장에서는 내가 좀 더 유리한 고지에 서 있는 것이다. 비서로서 해야 할 의무는 다하되,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임원의 요구에는 산뜻하게 방어벽을 치기로 마음 먹었다. 다들 힘들거라고 걱정하고 있는 것과 달리 비서일이 점점 흥미진진해지고 있다. 우리 팀 주임님 말처럼 과연 임원은 강적을 만난 것일까? 아니면 내가 강적을 만난 것일까? 줄다리기는 이미 시작됐다.
#32. 꼭 이 회사가 아니어도 괜찮아.
회사에서 짤리는 것이 두려운가? 두려웠다. 첫 회사에서 잘릴 위기에 처했을 때. ‘여기서 나가면 뭐하지?’라는 생각에 무척 두려웠다. 그 다음에는 화가 났다. 회사에 대한 무한 신뢰와 고객들에 대한 사랑으로 이렇게 열심히 일을 한 나를 어떻게 자를 수 있는거냐?라는 생각에 화도 나고 자존심도 상했다. 다음 단계에서는 ‘그래, 내가 이 회사 나가서 얼마나 잘 되는지 두고 보라지. 분명 나중에 땅을 치고 후회하고 만들어 줄 테다.’라는 생각이 분노로 이어졌다. 그리고 분노의 힘으로 나는 다시 일어섰다. 첫 회사에서 후회 없이 열심히 일을 한 덕분에 내게는 새로운 곳에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다. 한번, 두 번 회사를 옮기면서 ‘꼭 여기가 아니어도 괜찮은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이 생각이 일을 대충하겠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반대다. ‘여기서 내가 사라지면 아쉽게 만들어 주겠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매 순간 내가 몸 담고 있는 회사에서 최선을 다한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탁월하게 일을 해내려고 애쓴다. 덕분에 지금까지 내가 회사에서 나온다고 할 때마다 회사 사람들은 많이 아쉬워했다. 그러나 내가 없어도 회사는 항상 잘 돌아간다. 얼마 전, 같이 비서일을 하고 있는 20대 초반의 친구가 내게 말했다.
“언니, 이 일 하고 나서 뭐 할거에요? 저는 아직 나이가 어려서 여기 아니어도 어디서든 일 할 수 있거든요. 근데 언니 나이에 처음 비서일 하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인데, 여기 나가서 다른 데 찾는 게 쉽진 않을걸요? 그러니까 언니 여기 있으면서 조건 괜찮은 데 찾아봐요.”
그렇다. 내가 살고 있는 사회에서 새로운 기회를 잡을 때는 여러 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그 중에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나이’이다. 새로운 기회를 잡기에 ‘여자, 서른’이라는 조건은 아주 불리하다. 하지만 나는 ‘나의 능력을 알아봐 주는 사람’이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은 ‘지금까지 만든 인맥들 중에 나의 능력을 알아봐주는 사람들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 있다. 물론 지금까지는 운이 좋게 일자리가 이어져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되리라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내가 어떤 자리에서 무슨 일을 하든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면 내게 또 다른 기회가 반드시 온다. 지금까지 쌓아 올린 이런 인맥조차 없다면? 정말 막막할 것이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생활은 전부 잊고, 월급이 적어도 어디든 들어가서 일 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면, 그곳에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이곳. 이곳이 바로 내게 그 기회를 줄 수 있다. 기회를 가질 수 있느냐 마느냐는 나에게 달려있다. 밥벌이로 일을 하든, 존재 가치를 인정받기 위해서 일을 하든 중요한 것은 ‘내가 이 공간을 떠날 때, 나와 함께 일을 했던 사람들이 내게 어떤 반응을 보이길 원하느냐?’이다. 무조건 아쉬워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기회의 씨앗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세상은 넓고 일할 곳은 많다. 하지만 나를 찾아주는 곳은 없다. 지금 20-30대들이 처한 상황이다. 그래서 시작이 중요하다고 한다. 대기업에서 중소기업으로 가기란 쉽지만, 중소기업에서 시작해 대기업으로 가기는 하늘에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어디에서 일을 하든 배울 것은 있다. 내가 하게 될 경험이 훗날 나의 미래에 어떤 가치를 줄 것인가?를 생각하면 답은 명료할 것 같다. 회사를 자주 옮겨 다닐 수도 있다. 그것 또한 능력일 수 있으니. 내 이력서에 1년간 5개의 회사가 있다는 것? 전혀 부끄럽지 않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으니 말이다.
미치고 싶은 것을 찾으라고 말한다. 나도 찾고 싶다. 되도록이면 빨리 내가 미칠 수 있는 것을 찾고 싶다. 하지만, 100명 중 한 두명만이 평생에 걸쳐 자신이 그토록 미칠 수 있는 것을 찾는다. 나머지 98-99명은 실마리도 찾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그렇다면, 굳이 한 가지 일에만 매달릴 필요가 있을까?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끌리는 대로 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나는 내 인생의 끌림을 찾기 위해 오늘 최선을 다하고, 내게 오는 기회를 용기 내어 잡는다.
#33. 신치 비서 되다 – 2
누가 비서를 할 일이 없다 하는가? 비서업무 3주차에 접어들었다. 덩그러니 혼자 앉아 있는 자의 자유를 만끽하기에는 무언가 잡다한 일들이 너무나 많다. 시간이 생겼다 싶으면, 전화가 오고, 심부름을 시키고, 해야 할 일들이 계속해서 생긴다. 육체적인 업무강도가 높지는 않은데, 하루 일과가 끝날 때쯤이 되면 녹초가 되어있다. 하루 종일 앉아 있고, 머리 써야 하는 일은 별로 없다. 그런데 도대체 왜 피곤하냐고? 곰곰이 생각해 보니, 긴장감 때문인 것 같다. 비서라는 직업의 특성상 우선 전화소리에 굉장히 민감하다. 언제 어디에서 전화가 올지 모르기 때문에, 늘 귀는 전화소리를 향해 열려 있어야 한다. 임원실에 오는 사람들을 맞이하기 위해 임원의 입실 여부와 방문객의 입실 여부도 계속 확인을 해야 한다. 이때를 위해 눈과 귀의 감각을 계속 곤두세우고 있어야 하는 것이다. 더구나 내가 모시는 임원의 경우에는 하루에 4차례 차를 마신다. 오전에 출근해서 한잔, 실장님과의 오전 미팅 때 한잔, 점심 식사 후에 한잔, 실장님과의 오후 미팅의 한잔까지 총 4잔이다. 거기에 외부 손님이 오게 되면 이 횟수는 더 늘어난다. 이렇게 탕비실을 들락거리고, 중간에 통장 정리 심부름까지 하게 되면, 실제로 하루 중에 의자에 앉아 있는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러다 보면 혼이 반 정도 빠져나가 비서 업무 중 가장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 일정관리를 놓치기 일쑤다. 이것이 끝이 아니다. 임원이 쓰는 법인카드 영수증을 전산과 서류로 처리해야 한다. 보통 임원들은 여기까지다.-물론 이것 외에도 나열하자면 훨씬 많은 해야 할 일들이 있다.- 그런데 내가 모시는 임원의 경우 지방이 고향이라서 매달 지방과 서울을 다니는 데 교통비 처리도 해야 하고, 임기 동안 살고 있는 서울 집의 공과금 수납과 비용처리까지 하고 있다.
처음에 나와 마주보고 앉아있는 다른 임원의 비서가 내게
“이 자리 일이 진짜 많아요. 다른 임원들은 안 하는데 해야 하는 게 엄청 많거든. 그래서 다른 비서들이 못 견디고 나간 거에요. 일은 많고, 돈은 쥐꼬리만큼 주니까요.”
처음에는 그냥 ‘아, 그래요?’하고 넘겼다. 겪어보기 전에는 모르는 일이니 말이다. 그리고 업무를 익히기만 하면, 근무 시간 내에 적절히 배분하고, 책을 읽거나 글 쓸 시간을 확보할 자신이 있었다. 사실 지금 이 글도 근무시간에 쓰고 있다. 분명히 이전에 있던 팀에서보다 눈치를 전혀 보지 않아도 된다는 매우 큰 장점이 있다. 하지만, 내 생각보다 편한 자리가 아님이 명백해졌다. 3주차에 접어들어서 이제 겨우 매월 반복되는 일들을 나눌 수 있게 되었고, 매일 하는 일이 익숙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직 내가 챙겨야 하는 불규칙하지만, 중요한 임원의 중요한 일정들이 여전히 남아있다. 매일 이렇게 새로운 일들이 내게 주어지고 있다. 챙겨야 하는 새로운 일정이 생길 때마다 업무에 대해 세워놓고 있었던 머리 속 퍼즐들을 계속 다시 짜맞추고 있다.
회사를 자주 옮기게 되면서 생긴 습관이 하나 있다. 내가 언제 나가든 내 후임자가 일을 잘 할 수 있게 메뉴얼을 만드는 것이다. 또한 서류를 정리한 파일이나 명함 등 각종 서류들 역시 누가 와도 어떻게 분류되었는지, 어디서 무엇을 찾아야 하는지 쉽게 알 수 있게 정리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이런 작업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일을 갑작스레 그만둔 나뿐만 아니라, 남아 있는 회사직원들과 후임자까지 모든 사람들이 곤란한 지경에 이르게 된다. 이런 생각을 가지다 보니, 굳이 만들지 않아도 될 일들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어제는 명함첩에 있는 명함들을 모조리 빼서 크게 두 개의 카테고리로 나누고 가나다 순으로 나눠 정리를 했다. 그리고 오늘은 서류들을 전산 처리할 때 순서대로 메뉴얼을 만들기 시작했다. 누군가 이런 나를 보면 한 마디 할 지도 모른다.
“아니, 뭐하러 안 해도 될 일을 해?”
물론 이 말에 공감한다. 하지만, 내가 매뉴얼을 만들고, 누구나 봐도 알 수 있게 파일을 정리하려는 이유는 단 하나다.
‘내가 언제든 나갈 수 있기 위해서.’
이를 위해 메뉴얼을 만들고, 파일을 정리하고 있다. 또한 이런 작업을 하기 위해 하나 더 필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업무를 제대로 파악하고 있을 것’이다. 업무의 세부적인 항목뿐만 아니라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지 않으면, 쉽지 않다. 이런 것도 자유롭고자 하는 나의 본능 때문일까?
#34. 술 마신 다음날
변기를 부여잡고 위액을 쏟아낸다. 이런 아침을 맞이한 게 얼마만인지 모르겠다. 아침 내내 술이 깨지를 않는다. 어제 책 선물 받기 위해 갔다가 6개월 만에 본 이들과의 술자리. 세 명이서 와인을 5병 넘게 해치운 것 같다. 그 중 한 분이 와인바 사장님이라서 아주 저렴하게 고급 와인을 싹쓸이 해 버렸다. 그렇게 먹고서 택시를 타고 오는 길에 다 쏟아버렸으니 돈 주고 토한 꼴이 되어버렸다.
멍하니 술이 덜 깬 채로 출근하는 길. 이런 날은 꼭 버스에 사람이 꽉 차서 앉을 자리도 없고, 혹시나 일찍 내릴까 서있으면 내 앞에 앉은 사람은 꼭 나와 같은 정류장에 내리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지곤 한다. 비몽사몽간에 사무실에 도착해 임원 맞이할 준비를 하고 책상에 앉았는데, 구역질이 난다. 화장실로 달려갔으나 아침에 먹은 게 없어서 노란 위액만이 쏟아진다. 그렇게 두 세번 화장실을 갔다 오니 온몸에 기운이 쭉 빠진다. 맞은편에 앉아있던 동료가 안쓰러웠는지 탕비실에 들어가서 잠을 좀 자라고 한다. ‘옳다구나’ 고맙다고 얘기하며 탕비실로 달려가 소파에 쭈구리고 앉아 잠을 청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오늘따라 평소에 잘 오지 않던 전화는 또 왜이리 많이 오는지, 쉴 수가 없다. 결국엔 다시 자리로 돌아온다.
점심시간이 다가와 해장을 위해 컵라면에 뜨거운 물을 붓고, 라면국물과 면을 먹었더니 조금 술이 깨는 느낌이다. 거기다가 햄버거를 좋아하시는 사장님 덕분에 얻게 된 햄버거로 해장까지 했다. 탕비실에 있는 푹신한 돗자리를 깔아 놓고, 불을 끈 뒤 잠을 청한다. 한 시간 정도 시간이 흘렀을까? 회사 동료가 나를 깨운다. 먹고 잠까지 자고 일어났더니 다행이 몸도 머리도 개운하다.
‘술이 들어간다, 술술술술술~~~~’
가끔 이렇게 술이 술을 마시게 할 정도로 엄청나게 폭음을 할 때가 있다. 특별한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이렇게 먹게 되는 술집, 멤버들이 있을 뿐. 매번 폭음한 다음 날은 숙취에 괴로워하며 ‘술을 끊어야 하나?’라고 진지하게 아주 잠깐 고민을 한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컨디션을 회복하면 언제 그렇게 괴로웠냐는 듯이 또 내 손에는 술잔이 들려 있다. 이렇게 단순하다. 아마도 내 머릿속에는 강력한 지우개가 들어있나 보다.
#35. 그녀가 떠난 지 49일.(영화 NOVO 스포일러 있음)
친구의 49제를 맞아 그녀를 다시 추억하기로 한 날이다. 약속시간보다 한 시간 반 정도 늦게 모두가 모였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던가. 배에서 화산폭발할 때의 폭음이 일고 있었다. 호스트인 친구가 준비한 각종 전과 월남쌈 등으로 배를 채우기 시작했다. 배도 부르고 방바닥도 따뜻해 하나 둘씩 벽에 기대기 시작할 무렵, 우리는 생전에 친구가 좋아했고, 그녀가 사용했던 닉네임 의 모티프가 되어 준 프랑스 영화 ‘NOVO’를 시청하기 시작했다.
시작하고 15분간 이성애자 커플의 섹스 장면만 나오는 영화를 보면서 모두 고개를 갸우뚱했다.
“이거, 누보가 좋아했던 영화 맞는 거야? 계속 봐야 하는 거지?”
결국 친구 중에 하나는 영화를 보다가 잠들어 버렸고, 나머지는 영어자막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잘 봤다. 나는 도대체가 무엇을 얘기하려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영화를 보는 중간에 시놉시스를 찾아보기까지 했다. 그러자 그 때부터 영화를 이해할 수 있는 실마리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한다. 5분 전 일도 기억하지 못하는 기억상실증에 걸린 한 남자. 그는 지하철에서 우연히 만난 맨발 벗은 한 남자아이에게
“너 신발이 어디갔니?”라고 상냥하게 물어본다. 하지만 그 아이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도 아빠를 보고 싶은 아들이 그의 주위를 계속 맴돌고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한다. 이런 그에게 사랑하는 한 여자가 있다. 기억상실증인 걸 알기에 그녀는 매일 밤 그의 가슴에 자신의 이름을 새긴다. 그리고 그 여자를 잊지 않기 위해 그는 매일 그녀와 있었던 일들을 5분 간격으로 수첩에 상세히 적어 둔다. 그리고 매일 그녀와의 기억을 떠올리려고 애쓴다. 하지만, 어느 날 그녀는 그가 결혼을 하고 아이의 아빠라는 사실을 알고 그에게 말한다.
“이런 말 하기 싫지만 널 사랑하기 힘들어. 누구도 너와 사랑할 순 없어. 사랑은 둘의 역사를 만드는 건데 네겐 불가능하잖아. 나 혼자 할 순 없어.”
이 한 마디를 남기고 그의 곁을 떠나 버린다. 여자가 떠난 후 방황하던 남자는 우연히 기억을 되찾고, 그녀를 다시 찾아간다. 주차장에서 다시 만나 남자와 여자. 각자의 차를 타고 주차장을 나온다. 주차권을 찾지 못한 남자는 차 앞을 가로막고 있던 칸막이를 부숴버리고 간다. 그리고 그것을 본 여자도 그녀의 손에 있던 주차권을 던져버리고 그와 같이 칸막이를 부숴버리고 떠난다.
영화 중간에 주인공이 한 노인과 만나서 짧은 대화를 나누는 장면에서 노인이 말했다.
“너무 많은 기억에 의존하면 안돼. 우리는 현재에 충실하기 위해서 잊는 거야.”
영화를 보고 우리는 친구가 왜 이 영화를 좋다고 한 이유에 대해 추측하기 시작했다. 친구는 과연 이 영화가 주는 어떤 메시지에 이끌렸던 것일까? 하지만 우리는 영원히 알지 못한다. 이 영화를 추천했던 이유에 대해서 말이다. 이 생을 마감하고 친구가 있는 그곳으로 갔을 때, 비로소 다시 만나게 되면 그 때는 물어볼 수 있을까?
친구 생전에 찍은 사진들을 보며, 우리가 함께 했던 시간과 조각난 기억들을 떠올리며 즐거워한다. 그녀가 떠난 지 두 달의 시간이 흘렀다. 누군가는 이제 조금 마음이 편안해졌다고 하고, 또 다른 누군가는 요즘에 친구가 더 생각나서 힘들다고 한다. 그녀와의 기억이 각기 다른 조각으로 남아있기 때문인 듯하다.
나는 과연 지금 나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 어떤 기억의 조각을 선물하며 살고 있는 것일까?
<신치가 미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오늘 날지 못하는 자, 영원히 날지 못하리라. (괴테, <파우스트> 중)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마녀들의 합창에서 나오는 말이야. 친구의 갑작스런 죽음이 너에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모양이구나. 사람들은 때로 추억과 기억에 의존하며 하루하루를 보내지. 그러다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으로 후회하고 자책하며 세월을 보내기도 하고, 오지도 않은 미래만을 꿈꾸며 오늘이란 시간이 헛되이 보내기도 해. 예전에 니가 그랬던 것처럼. 하지만 ‘지금’의 시간을 잘 보내지 않으면, 과거를 후회하고, 장밋빛 미래만을 꿈꾸며 현재를 허망하게 보내는 악순환의 고리가 생길지도 몰라. 그래서 괴테는 신의 다른 형상일수도 있는 마녀들을 통해 저런 메시지를 준 것인지도 모르겠어. 일단 ‘오늘’ 한 번 날아보자. 중간에 날개가 꺾여 추락할 수도 있고, 훨훨 날아 비상할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날아봐야만 알 수 있는 거잖아? 그 뒤에 올 상황은 그 때 가서 고민하면 될 것 같아. 그것이 슬픔이 될지, 기쁨이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