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하는 인사쟁이
- 조회 수 3081
- 댓글 수 10
- 추천 수 0
왜 일하는 것이 재미없는가
"임무는 즐거움이고 즐거움은 임무의 완성이다"
에이브러햄 매슬로
일은 반복되는 것이다
일상은 되풀이 됩니다. 변함없이 되풀이 되는 반복은 우리를 지치게 하고 일에서 재미를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반복은 아무리 새로운 것이라 하더라도 평범하게 느껴지도록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시지프스 왕은 신을 모욕한 벌로 하데스의 가파른 언덕 위로 돌을 밀고 올라갔다가 다시 굴러 내리게 하는 일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형벌을 받습니다. 무의미한 일의 반복이 그리스 판 지옥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형벌이었던 것처럼 의미가 없는 일상의 반복은 사람들에게서 의욕을 꺾고 가슴 속에 숨겨진 열정을 사장(死藏)시키게 합니다.
직장에서 인사업무를 담당할 때 사내 직원들을 상대로 '왜 일하는 것이 재미없는가' 라는 주제로 워크숍을 한적이 있습니다. 몇 가지의 이유들로 사안이 압축되었고, 그 중에서 가장 큰 이유로 꼽힌 것은 업무의 반복이 주는 무료함이었습니다. 한마디로 매일 똑같은 일을 반복하는데 뭐가 그렇게 재미있느냐는 것이지요. 이것은 실제로 주기적으로 되풀이 되는 일의 반복성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하였지만, 성장하지 못하고 있다는 초조함의 표현이기도 하였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생활을 하고 어제나 오늘이나 성장하지 못한 채 정체돼 있다는 느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일하는 것을 재미없게 만드는 아주 중요한 이유였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잠시 일의 반복성에 대해서 짚고 넘어갔으면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일의 반복성은 사실 어느 한두 가지 업무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업무에 내재된 속성입니다. 사회적으로 선망의 대상이 되는 직업에서도 업무는 반복적으로 진행됩니다. 예컨대 판사는 반복적으로 소장을 읽고 판결문을 쓰고, 의사는 어제도 오늘도 비슷한 환자를 진료하고 처방하는 업무의 연속에 처해 있습니다. 교사는 작년에 가르쳤던 것을 올해도 비슷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원래는 반복되지만 그 속에서 일의 가치를 발견하고 더 큰 무언가를 위해서 반복이 힘이 된다는 믿음을 갖도록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반복은 모든 일에 내재된 공통의 속성입니다. 하지만 어떤 조직은 반복을 통해서 새로운 것을 창조하고 도약합니다. 반면에 어떤 조직의 구성원들은 반복이라는 시지프스의 짐을 내려놓지 못하고 고된 노무만을 이어갈 뿐입니다. 무엇이 이 둘 사이를 갈라놓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조직에서 일의 반복을 어떻게 풀어가야 할지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미켈란젤로가 천장에 매달린 4년
여기서 잠시 르네상스 시대의 천재적인 조각가이자 화가이며, 시인이기도 하였던 미켈란젤로 부오라로티의 이야기를 잠시 해볼까 합니다. 일의 반복이라는 주제와 천재적 예술가의 삶이 무관한듯 보입니다. 어떤 연유에서인지 예술가라고 하면 일상의 반복에서 벗어난 창조적 괴팍함이 머리에 먼저 떠오릅니다. 미켈란젤로는 흔히 <천지창조>라고 불리는 바티칸의 시스티나 성당의 천장화를 그리기 위하여 4년동안 천장에 매달려 있었습니다. 긴 시간 동안 고개를 뒤로 젖힌 채 천장에 매달려 물감을 칠해 나가는 고된 작업을 하였고, 이로 인해 건강이 많이 악화되기도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그가 <천지창조>를 그러던 중에 남긴 소네트 한 구절을 살펴보겠습니다.
턱 수염이 하늘을 향하니
목덜미에 달라붙는 뒤통수가 느껴지네
내 가슴은 괴물처럼
축 늘어졌고 얼굴 위로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붓에 뚝뚝 떨어진
물감 방울들이 내 얼굴을
영롱한 마룻바닥으로 만들어 버렸다네
조반니, 이 친구야, 어서 와서
죽은 내 그림과 명예를 구해주게
난 지금 좋지 않은 곳에 있어.
그리고 난 화가도 아니지 않은가?
천재적인 예술가도 친구에게 자신을 구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애절한 어떤 바램이 매일 직장에 다니면서 작은 커피 전문점 하나라도 창업하여 반복에서 벗어나고 싶어하는 직장인들의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미켈란젤로는 소네트에 나타난 것처럼 흡사 괴물이 된 것과 같은 자세에 고통스러워 하면서도 멈추지 않았습니다. 멈추지 않은 것에 그치지 않고 인류사에 빛나는 위대한 작품을 남겼습니다. 그 힘이 무엇인지 한 가지를 꼽아보라면 무엇을 꼽으시겠습니까? 물론 어느 한 가지의 힘만으로 이룩한 것은 아니겠지만 4년 동안 거꾸로 매달려서 뚝뚝 떨어지는 물감들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어디에서 나온 것일까요? 저는 이 소네트의 마지막 구절에 주목해보고 합니다. 약간은 엄살처럼 느껴지는 마지막 구절 ".... 난 화가도 아니지 않은가?"라는 부분입니다.
그의 독백처럼 당시 미켈란젤로는 화가라기보다는 조각가였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런 중요한 작품을 화가가 아닌 미켈란젤로가 그리게 되었을까요?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유력한 것 중의 하나가 '브라만테 음모설'입니다. 당시 라이벌 조각가였던 브라만테가 율리우스 2세 교황에게 벽화를 그릴 화가로 미켈란젤로를 추천하였다고 합니다. 후세 사람들은 브라만테가 미켈란젤로의 실패를 예상하고 추천한 것이라고 추정합니다. 미켈란젤로 역시 처음에는 불쾌하게 생각하여 거절하였고, 나는 화가가 아니라 조작가다라고 항변하면서 라파엘로에게 그리라고 하였으나, 우여곡절 끝에 결국 자신이 그리게 됩니다. 미켈란젤로 1508년에 천장으로 올라가기 전에 이미 성당의 중간부분은 피렌체 출신의 유명한 화가들 페루지노(라파엘로의 스승), 기를란다요(미켈란젤로의 스승), 라파엘로, 보티첼로 등이 이미 예술적 역량을 자랑하여 화려한 그림들을 그려놓은 다음이었습니다.
[그림1. 시스티나 성당의 내부 모습]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기존의 명성 높은 천재화가들이 그려놓은 작품 사이에서 천장에 매달린 그는 무엇을 생각하였을까요?. 아마도 그 생각이 그를 4년 동안 천장에 매달게 하지 않았나 짐작해봅니다. 비록 당시에 인정받는 화가는 아니었지만 이 작품을 통해서 자신이 어느 누구보다도 훌륭한 화가로 도약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봅니다. 자신이 무언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은 괴물과 같은 모습에 개의치 않고 긴 세월을 버티게 합니다. 그것은 성장에 대한 욕구입니다. 성장할 수 있다라고 믿는다면 기꺼이 천장으로 올라가 매달릴 수 있는 것이 바로 인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노무라종합연구소가 최근 20대~50대 직장인 1만 명을 대상으로 '일에 대한 인식'을 조사한 바 있습니다. 조사 결과 가장 중요한 5가지 이유는 '일에 대한 의미욕구', '성장욕구', '창조성 욕구', '인정욕구', '자기실현 욕구'의 순(順)으로 나타났습니다. 결론적으로 과거 경제성장 및 완전 고용의 시기에는 생리적 욕구, 안전 욕구, 소속 욕구와 같은 ‘결핍 욕구(deficiency needs)’가 강했지만, 최근에는 의미, 인정, 자기실현 등 ‘성장 욕구(growth needs)’가 더 강하게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서두에서 일은 반복되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라고 이야기 하였습니다. 하지만 반복은 두 가지 상반된 얼굴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는 훈련이나 수련이 되는 것이고 하나는 그저 소모적인 반복입니다. 그 두 가지의 특성을 가르는 중요한 기준은 반복을 행함으로써 성장할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있습니다. 영업이라는 일, 회계라는 일, 인사라는 일을 하면서 5년 후에도 내가 발전하지 않고 정체되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직장인을 초조하게 만들고 좌절하게 만듭니다. 그런 초조함과 좌절감을 가지고서는 반복되는 일을 견뎌 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직장인들은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담 너머 세상을 향해서 항상 까치발을 하고 곁눈질을 하는 것입니다. 이는 직장에서 일에 대한 몰입을 방해하고 열정이라는 심장을 두 박자 느린 박자에서 숨쉬게 하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 입니다.
오늘도 직장인들은 미켈란젤로처럼 직장의 천장에 매달려 있습니다. 무엇인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습니다. 얼굴에 회반죽이 떨어지고 목은 꺾이고 등골은 휩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생각하고, 왜 매달려 있느냐입니다. 드러나는 모습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그들의 심장이 네 박자로 뛰는지 두 박자로 뛰는지가 중요합니다. 그들은 무엇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구성원들의 성장 욕구(growth Needs)를 어떻게 충족시킬 것인가라는 문제는 열정의 불쏘시개가 되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시지프스의 형벌과도 같은 반복이라는 쳇바퀴에서 '열정'이라는 보석을 캐내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성장 욕구에 대답하여야 합니다.
성장 욕구(Growth Needs)를
충족시키자
<다음 칼럼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