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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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창조성은 어디에서부터 기인하는 것일까?
요새 계속 나를 따라다니는 질문이다. 나의 삶에서 어떤 순간 창조성은 발휘되는가.
난 그 질문 하나를 가슴에 품고 폭주기관차에서 뛰어내린다.
속도는 점점 가속화되어가고 사람들은 그 점점 빨라지는 속도를 견디지 못하고 어떤이는 뛰어내리고, 어떤이는 불감증이기도 하고 또 어떤이는 그 안에서 안절부절하지 못하고 있다. 발터 벤야민도 언젠가 자본주의에 대해서 폭주기관차라고 했던 것 같다. 그가 옳았던 것은 아닌가 요즘 더욱 깊이 생각하게 된다. 질과 양적인 면에서는 계속 팽창해 나가고 있으나 사람들은 인간적인 삶에서는 점점 멀어지고 있는 것 같다. 누군가는 느리게 살기를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더 부지런하기 위한 아침형 인간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하지만 계속 우리가 그 속도와 양에 집착하는 한 그 답은 나올 수 없을 것처럼 여겨진다.
빠르게 움직이지거나 느리게 움직이거나 혹은 시간을 더 많이 확보하기 위해 부지런한 아침형이거나 밤늦게까지 잠못이루는 올빼미형이거나 모두가 다 폭주기관차 위에 있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우리는 경계를 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현재 지금의 자신이 처하고 있는 위치를 알 수 있다.
한 사나이가 회사에 출근하여 컴퓨터를 켜고 1층에 내려가 담배를 핀다. 그의 한 손에는 믹스 커피가 들려있고, 또 다른 손에는 그닥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은 한 편으로 정신적 위안도 결국은 되지 않을 것 같은 담배가 들려 있다. 그리고 사무실에 돌아와서 모니터를 본다. 메일들을 읽고 마우스를 움직인다. 동료와 상사 욕을 하며 자신의 삶은 어디에 갔냐며 푸념하며 주식시장에 대해 이야기한다. 어제도 그랬고 오늘도 그렇고 아마도 큰 이변이 없는 한 내일도 그러할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이 경계선에서 살펴보면 코메디처럼 보일때도 있다. 사람들이 생명력이 넘치는 대상이 기계화 될 때 우리는 그 안에서 코믹스러움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하여 나는 굳이 거창한 '창조성'이라는 단어를 들먹이지 않고서도 좀 더 이 우스꽝스러운 현실에 자기다움을 더해보자는 것이다.기계적인 일상에 산들바람을 불어넣자는 것이다. 자신의 하루에 틈새를 만들자는 것이다. 하지만 너무나 익숙해져버린 그들의 일상 속에서는 이러한 틈새하나 마련하기가 무척이나 어려운일임에는 틀림없다. 왜냐하면 반자동적으로 자기 자신에 대한 질문에는 멍해지기 일쑤이고 원하는대로 살지 못하고 있는 이유를 외부에서 계속 필터링하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모든 원인과 해답은 자신 안에 있는 것을 말이다.
일단 담배와 커피 사이의 거리를 재는 동안 그 순간에서도 우린 틈새를 마련할 수 있다. 질과 양의 반복이 아닌 의미있는 소스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 왜냐하면 같은 행위를 반복할지라도 분명 어제와는 다른 오늘이기 때문이다. 그 순간 순간에 자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잊지 않는다면 그 곳에는 분명 새로움이 솟아날 것이고, 창조적 하루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점에 창조성이 중요한 이유는 그리고 그 창조성을 끌어내는 틈새 인간들이 더욱 중요해지는 이유는 바로 그러한 일을 행하기가 어려워지는 구조로 점점 나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벤야민이 그리 말했다. 일단 어찌되었던 멈춰 세워야 한다고, 폭주기관차를 세우고 봐야 한다고. 난 여기서 일단 뛰어 내린다. 그 전체를 멈추기에는 너무 어마어마한 일이기에 일단은 혼자서 모험을 감행한다. 그러다가 보면 뜻이 맞는 동지들이 생겨나고 우리들의 폭주기관차를 멈출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낼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틈새 인간으로 창조성 회복하기 조만간 재밌는 프로젝트가 찾아올 것이다.
자신의 삶에 압도되는 것이 아니라 그 삶을 영위하고 즐길 수 있는 내면의 힘 회복을 추구한다.
담배와 커피를 버릴 수 없는 사람들일지라도 그 안에서 거리감을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의 현재를 늘 느끼면서 살 수 있을 것이다.
인간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