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윤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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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시란 무엇인가?
난감한 질문이다. 하지만 기계에 대해 알지 못해도 전철을 타고 출퇴근하고, 전류를 이해하지 못해도 전기스위치를 올리고, 전등을 갈아끼우듯이 생활 속에서 시를 만나왔을 지 모른다. 버스정류장과 전철역 벽에 적혀있어 기다리며 무의식 중에 읽었고, 부모 중 한 쪽이 시인이라는 출생증명서를 가진 노래들을 불렀다. 어떤 것은 수첩에 베껴 적기도 했고 선물로 주고 받기도 했지. 나의 역사를 들여다보아 나와 시의 인연이든 (그런 게 있었을까?), 사연이든, 시를 대할 때의 자세나 느낌, 그것의 뒷이야기를 말하면 되지 않겠나?
내가 중학교 때 스스로 처음 산 시집은 노랑색 하드표지의 것은 서구의 시였다. 여기서 나는 롱펠로우의 시를 읽었다. 오래된 나무에 화살이 박혀있고, 내 말은 친구의 가슴에 박혀있다는 내용으로 기억한다. 또 아이들은 화살의 살이고 부모는 화살이며 그 활을 잡아 미래로 화살을 쏘아보내는 이는 신이라는 칼릴 지브란의 시를 읽었다. 분홍색 하드표지의 것은 한국 근대시였고, 그 중 내 마음에 남는 시는 박재삼의 울음이 타는 강과 소월의 진달래꽃과 산유화, 영랑의 모란이 피기까지는 이었다. 영랑의 시를 베껴서 문집을 만들기도 했던 것 같다. 점촌의 국제서림에서 샀다.
스무살은 재수하는 노량진 골목을 지나간다. 나는 세든 반지하 빌라의 젊은 부부의 집에 방 하나를 오백에 다시 세를 들었다. 처음으로 남의 집을 살아봤다. 엄마는 참기름과 진간장을 한 병씩 싸주고 찬 없어도 소요간장에 밥 비벼먹으면 된다고 말했다. 두 달이 되어도 사과 박스에 넣어온 짐을 풀지 않고 지냈다. 어느 봄날 학원에서 돌아와보니까 둘째애기를 임신하고 있던 주인집 언니가 그 집 화분정리대를 들여서 내 짐을 정리해주었다. 그 집 언니는 참 고마운 사람이다. 수제비를 끓이면 나를 불러 먹인다. 그 언니가 김치를 담는 모습을 보는 게 즐거웠다. 나는 문을 잠그지 않는 촌에 살던 버릇이 들어, 열쇠를 자주 두고 다녀서 현관문 앞에 앉아 마실간 언니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곤 했다. 외따로 떨어지면 나는 할머니들한테 마음을 주는 것 같다. 노량진 수산시장 가는 길에 모찌 떡을 파는 할머니가 있어서 그 할머니를 보러 매일 갔다. 떡 하나 사먹고, 할머니랑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하다가 돌아왔다. 커다란 물고기는 관심 없었다. 그 곳 어딘가 책방에서 이해인 수녀님과 박경리씨의 시집 한 권, 그리고 신영복 선생님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사서 읽었다. 이해인 수녀님은 매일 일과를 마치면 방으로 돌아가 연필로 시를 쓰고 지우개로 지우며 다듬는다 했다. 다람쥐처럼 시의 숲에서, 기도의 숲에서 알밤을 줍는다 했다.
대학에 입학해서 내가 산 시집은 윤동주시인의 시집이다. 이건 지금도 가지고 있는데 대학1학년 때 구내서점에서 샀다는 메모가 되어 있다. 여러 번 이사를 다니는 동안에도 유실되지 않고 20년을 나를 따라다녔다. 성당의 창문그림 같은 루오의 그림책을 문고판으로 사서 읽었던 때다. 윤동주시인의 종교색 짙은 맑은 시들이 마음에 들었다.
고등학교를 마친 후에는 시를 공부하지 않고 즐기고 싶은데 어쩐지 시는 어려운 것이라는 선입견에 사로잡혀서 해설서부터 읽기 시작해야 할 것 같았다. 맨 처음에 내가 산 해설서는 유종호 <시란 무엇인가>다. 1996년 점촌에서 잇몸염증치료를 받던 치과 옆의 서점에서 우연히 발견했다. 대학교 학보에서 이 분의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학생의 글을 섬세하고 굉장히 성의있게 읽고 평을 한다는 느낌을 받았었다. 이 책을 읽고서 정지용, 윤동주, 신경림, 소월의 시집을 통째로 읽고 싶어졌다고 거기 써놓기만 했다. 원본을 찾아 읽지는 않았다.
20대에는 다니던 절에서 선시를 읽었다. 읽고 싶어서 읽은 건 아니고 절에서 정한 아침정진의 순서에 매일 읽도록 정한 것들에 시가 포함되어서 그랬다. 수타니파타, 신심명 같은 경전들이 거의 시의 형태였다. ‘내 할 일은 다해 마쳤다. 내 집 지붕은 굳건하다. 비야 쏟아져라’고 했던 수행자들의 시가 속시원하고 멋있었다. 시만 읽는 것은 아니고 다른 근본불교 경전들을 읽었다. 운문처럼 느껴졌다. 이 때 절에서 만난 분 중에 내게 최근에 자신의 시집 두 권을 택배로 부쳐주신 부산 할머니가 계시다. 10년 동안 우리는 두 번 만났다. 지금 이 칼럼을 앉아 치고 있는 방석도 그 분이 만들어서 보내주신 거다. 나는 기교가 뛰어나지 않지만 환희심(절에서 쓰는 이것과 비슷한 교회 용어는 내 생각에는 ‘은혜 받았다’인 것 같다.) 넘치는 그 분의 시집을 화장실에 갖다 놓고 변기 위에서 읽곤 했다. 화장실에 갈 때는 대개 모닝페이지 하면서 마신 사약커피가 속을 긁은 뒤였고, 그 다음 차례가 절하기인데 하기 싫어서 꾀가 난다. 난행고행 하며 나이들수록 충만해지는 이 할머니의 수행담 시를 읽으며 용기가 나는 날이 있었다. 안 날 때가 더 많지만. 이 분이 설악산 봉정암을 하도 여러 번 그 시집에서 이야기를 하셔서 나도 봉정암을 혼자 가본 적이 있다.
서른 살에 공립학교 교사가 된 뒤에는 이오덕 선생님이 하는 어린이글쓰기연구회인가에 가입해서 2년간 재생지로 만든 회지를 받아보았다.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치는 이오덕선생님의 책을 여러 권 읽었다. 특수교사이기 때문에 내가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칠 일은 없었다. 어쩐지 관심이 가서 시작한 일이다. 나중에는 내 화장대 거울을 괴는 용도로 책들을 쌓아서 쓰곤 했다. 이오덕 선생님의 책을 읽은 후 나는 아빠를 아버지로, 엄마를 어머니로 바꿔서 호칭을 불렀다. 왠지 군대 다녀온 이가 아빠라는 애기 말 대신에 어른 말을 사용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엄마는 이걸 싫어했다. 똑 닮은 두 여자가 옷을 보고 있는데 어린 여자가 ‘어머니 어머니’이러니까 시장사람들이 ‘며느리냐? 참 많이 닮았다’고 했다. 나중에는 호칭은 관계 양쪽을 쥐고 있는 두 사람이 합의해서 만드는 것이니까 엄마가 원치 않는 호칭은 안하는게 좋겠다고 해서 다시 엄마로 돌아오는데 한 3년 걸린 것 같다. 여전히 아빠로는 못 돌아왔다. 군대를 다녀온 남동생들도 일제히 아빠란 말을 아부지로 바꿔부르고 있었다. 천상병 시인의 시를 어디선가 읽고 그의 아내가 운영하는 인사동 찻집 귀천을 찾아가서 구석자리에 혼자 앉아 차를 한 잔 마신 게 이 즈음이다. 그냥 그 곳에 가봤다는 게 기뻤다.
다음에 산 해설서는 신경림 시인의 <시인을 찾아서 1,2>다. 이 시인이 조간신문에 연재하던 글을 모아 펴낸 <아침의 시>도 읽었다. 또 하나는 원재훈 시인이 쓴 <나는 오직 책 읽고 글쓰는 동안만 행복했다> 작가 소개하는 책이다. 이 책을 읽고서 김선우, 문태준, 김용택 시인의 시를 그의 시집으로 읽고 싶어졌다. 가장 최근에 산 시 안내서는 2012년 1월에 나온 김선우, 손택수 시인이 쓴 <교과서 박으로 나간 시>다. 이 책을 읽고는 정호승, 함민복, 백석, 황인숙, 천양희 시인의 시집을 언젠가 읽어보리라 메모해두었다. 나에게 시는 무엇인가 라는 제목을 3주차 칼럼으로 쓰라고 하는데 읽어본 시집들이 있어야 말이지. 이 기회에 그 동안 읽고 싶었던 시인들의 시집을 확확 주문했다. 이 정도가 내가 시와 나눈 사연이다.
나에게 시는 무엇이었을까? 내가 시에 대해서 갖고 있는 마음과 비슷한 마음을 품었던 적이 있다. 언젠가는 저 집에 놀러 가서 그 집 화단에 심겨진 꽃과 꽃나무를 자세히 보고 싶다고 생각했던 집들이 있었다. 곶감할매네는 석류나무와 붓꽃 앵두나무와 딸기밭, 나리꽃이 있었고, 순정이네 할매는 장미와 달개비와 포도나무를 길렀다. 강선생님 댁 앞에는 굳게 닫힌 대문 밖으로 과꽃이 가을마다 피었다. 아지매네 집에는 송이가 큰 여러 색깔 장미들과 백합이 있었다. 넝쿨장미가 감긴 대문을 가진 집도 있었지. 아름답고 이뻐서 가 보고 싶고 살아보고 싶은 집, 내가 커서 내 맘대로 집을 꾸미게 되면 (저런 걸 심어놓고 살만큼 여유가 있어지면) 저런 저런 걸 다 심겠다고 생각했던 집을 지나가면서 안보는 척하고 보던 느낌이다. 그 집들은 부자여서 그런 걸 심는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하니 내 생각은 틀렸다. 절반은 우리집보다도 가난한 집이었다. 그 꽃들이 내 소유인지 아닌지와는 상관없이 나는 그 집을 스치는 길을 일부러 다니면서 철마다 그 꽃들을 즐기긴 했다. 하지만 내 생활 공간에 두고 같이 살지는 못했다. 가보고 싶지만 선뜻 가보지 못했던 담장 안의 꽃들, 이 꽃들을 생각할 때의 느낌이 나에게 시란 무엇인가의 현재의 내 대답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