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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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우린 함께 떠날 수 있어_ 여행이야기
1. 가족여행에 대하여
<태어나서 3년 11개월>
가까운 여행지에서 찍은 저희 가족의 신발 사진입니다.
함께 걸은 길을 떠올리게 해줍니다.
함께 걸어갈 길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리게 해줍니다.
내 삶을 통해 경험한 확실한 진실 하나는
여행을 통해 새로운 곳에 가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이 내 삶을 도약 시켰다는 것입니다.
벽을 쌓고 가진 것을 지켜야 한다는 마음은 타인에 대한 두려움을 전제로 합니다.
두려움은 새로운 사람들을 끊임없이 의심하게 합니다.
의심으로 타인과의 교류는 사라지고, 결핍의 마음이 생겨 상대적 빈곤감에 분노와 무력감을 만들어 내지요.
그러니 더 나은 삶의 모습을 꿈꾸기보다 쉽게 지쳐버립니다.
그래서 우린 여행을 떠납니다.
전 이런 여행의 가치를 아는 민호가 되기를 바랍니다.
말로서가 아니라 직접 함께 여행을 하면서 몸으로 기억하길 바랍니다.
돈과 시간이 많아서 여행을 가는 것은 아닙니다.
여행이라는 가치에 우선순위를 매겼기 때문입니다.
여행자로서의 낯선 일상을 체험하고,
셋이 하나되는 경험을 합니다.
물론 여행을 떠나 부부싸움을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그래도 부딪혀 보는 거지요.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당장 일어나라'는 말도 있듯이
피하지 않고 살을 맞대고 도전하고, 그 안에서 지지고 볶는 거지요.
어떠한 결과든지 받아들인다면, 결국 그 순간을 함께했다는 추억만이 남겠지요.
이것이 제가 생각하는 가족여행의 의미입니다.
3. 오름에 올라 바람을 맞다_ 제주
민호가 세 살 때입니다.
장모님 기일을 몇 주 앞두고, 생전에 꼭 올해 함께 가자던 약속을 기억하며
3살된 아들과 아내, 셋이 함께 제주도로 여름 휴가를 떠났습니다.
나름 "제주도의 자연, 쉼, 돌아봄" 이란 주제로 일정을 짜서 자유여행을 했습니다.
첫째날과 마지막날은 숙소를 미리 예약하고 중간에 이틀은 현지에서 구했답니다.
원래 계획된 일정이 있었지만 자유로운 여행을 했습니다.
아이가 어렸기 때문에 절대 무리하지 않고, 하루에 3~4군데 정도만 다녔습니다.
숙소는 일찍 정하고, 먹고 쉬는데 중심을 두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세 살된 민호도 잘 따라다니며 즐거운 여행길이 되었지요.
첫날은 자동차 렌트와 유아용 카시트를 빌리고서는 숙소로 향해 쉬고,
둘째날엔 생전에 뵈었다면 더 좋았을 사진가 김영갑의 갤러리에 갔습니다.
영화 촬영지로 알려진 '아부오름'도 찾아 갔습니다.
그 길을 올라가면 감히 상상도 못했던 풍경이 그곳에 펼쳐집니다.
천혜의 요새같은 오름 안 쪽의 풍경이.
말들이 풀을 뜯고 있는데, 알 수 없는 고요함이 내 안에 들어 찹니다.
다음날엔 우도에서 1박을 했습니다.
검멀래 해안의 신비로움에 깜짝 놀라,
무조건 여기서 숙소를 구하기로 하고, 바다 전망이 있는 곳을 구했습니다.
우도봉 진입로에 차를 대고 우도봉으로 향했습니다.
말들이 뛰어다니는 목장에 우도등대에 올라 보는 전경은 대단했습니다.
제주의 오름들, 바다, 하늘....
그것들과 하나가 됩니다.
다음날은 우도를 나와 송악산을 찾아나섰습니다.
그곳도 신비한 오름이었습니다.
억새풀과 바람, 꽃, 분화구의 조화. 형제섬과 차귀도, 마라도, 가파도가 훤히 보이는 최고의 전망이었죠.
몇몇 신혼여행 부부들은 오름에 오르지 않고, 사진만 찍고 가는 것 같았습니다.
10분만 투자하면 그 보다 훨씬 멋진 풍광을 만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생겼습니다.
이제 금오름을 찾아 나섭니다. 오름을 찾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일반적인 관광코스가 아니다 보니 찾는 사람도 없고, 네비게이션에도 잘 안나왔죠.
물어물어, 책자에 나온 설명을 곱씹어 생각해 보고, 금오름이 검은오름과 같은 말이라는 걸 알아내었습니다.
어렵사리 '검은오름'이라 쓰인 표시를 찾아내어 철창문을 넘어 유모차를 끌고 정상까지 난 시멘트 길로 올랐습니다.
후회는 없었습니다. 오름에 미친 사람들 마냥, 모든 자연의 작품에 감동할 뿐이었지요.
그곳엔 요정들이라도 나올 것 같은 신비한 작은 분화구가 있었답니다.
금오름 중심에 내려가서 민호의 사진을 찍었습니다.
그때의 민호의 모습을 찍었습니다.
그 순간을 마음껏 즐기는 민호가 보입니다.
저 환한 웃음을 닮을 수밖에 없네요.
<태어나서 2년 4개월>
P.S. 뒷 이야기
마지막 날 저녁,
제주시 동쪽 코끼리랜드 근처에 '바람스테이'라는 여행객들의 쉼터를 지향하는 숙소가 있습니다.
예전 인간극장 '이보다 좋을 순 없다'에 출연한 시골에 사는 젊은 부부입니다.
장길연, 박범준 부부... 저희와 비슷한 또래의 그들과 차한잔 하고 싶은 마음으로
미리 예약하고 찾아 갔습니다. 함께 차도 마시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지요.
남다른 도전을 하고 살아가는 부부의 모습이 큰 자극이 되었습니다.
'바람스테이'는 여행자들에게 짧지만 깊은 쉼을 주는 곳 이었습니다.
그렇게 제주의 바람과 함께한 여행은 끝이 났고,
왠일인지 돌아와 다시 만난 저희 집도 예전과 다르게 보이더군요.
여행의 힘인가요?
이 삶이 여행인듯 느껴졌습니다.
충남 당진에 사는 저희는 다음날 잠깐 시간을 내서 남당리에 바람쐬러 또 나갔답니다.
저희 가족 바람 났나봐요~~
4. 모두가 만족하는 여행을 위하여_ 도쿄
네 살되는 여름엔 도쿄로 가기로 마음먹었습니다.
3년에 한 번은 해외에 나가도록 하자는 약속을 했는데,
아이가 어려서 가깝고, 다니기 편한 곳을 찾다보니 도쿄가 선택된 것입니다.
오래 걷는 것을 힘들어 할게 뻔해, 동네사람에게 가벼운 유모차도 빌렸습니다.
숙소도 신경써서 교통이 편한 신쥬쿠로 정했습니다만, 지하철 역사가 너무 넓어서 저녁마다 돌아오는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습니다.
여행의 일정은 아내와 아이, 그리고 저를 위한 곳을 적절히 안배해서 결정했습니다.
아내를 위한 날엔 도쿄국립신미술관과 '기치조치'라는 젊은이들과 예술의 거리에 갔습니다.
민호를 위해서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지브리 미술관과 휴양단지인 오다이바를 택했습니다.
저를 위해서는 하루를 내어 도쿄사진미술관과 후지필름 스퀘어, 그리고 신주큐의 'Photographer's gallery' 를 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모두를 위해 도쿄 근교의 하코네라는 후지산이 보이고 온천을 즐길 수 있는 곳을 갔지요.
모두가 만족하는 여행을 위한 나름의 전략이었습니다.
덕분에 전 그토록 가보고 싶었던 도쿄사진미술관에서 사진책을 보고, 전시회도 관람하였습니다.
미술관 앞에 1950년 파리 시청앞에서 로베르 두아노(Robert Doisneau)라는 사진가가 찍은 사진이 걸려있더군요.
그 앞에서 민호와 아내가 포즈를 취해 주었습니다.
찐하게 뽀뽀하는 모습으로요.
4부 아이는 부모의 스승
1. 가족의 의미
<태어나서 5년 4개월째>
함께 걷다가 다리가 아프다는 민호를 아내가 업어줍니다.
오랜만에 업힌 민호는 너무 좋아했죠.
전 흐뭇한 표정으로 뒤에서 사진을 찍었구요.
뒷 모습을 찍은 사진을 보니 가족에 대해 생각하게 됩니다.
가족의 의미가 뭘까요? 예전엔 가족은 '독립해야 할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결혼을 통해 그 의미가 바뀌었습니다.
특히 민호가 생기면서 크게 달라졌습니다.
가족은 이제 벗어나야할 공간이 아니라 내가 가꾸고 지켜야 할 공간이 된 것입니다.
가족은 나라는 존재가 확장된 최소한의 공간입니다.
나만이 있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모든 선택에는 조율이 필요하고,
서로의 욕구를 조정해야 하는 복잡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이제 민호가 커가면서 본인의 주장을 인정해 주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적어도 민호가 독립할 때까지는 세 명이 한 배를 탄 것입니다.
누구도 내릴 수 없는 한 배를 탔기에, 관계를 훈련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가 '가족' 이라고 생각합니다.
가족은 서로를 비쳐주는 거울이 되어, 서로의 밑바닥 깊은 곳을 비춰주는 존재가 되어 주기 때문입니다.
사진을 찍고는 제가 민호를 업었답니다.
어디까지 업어줄 수 있다고 한계를 정했습니다.
아빠가 슈퍼맨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주었죠.
민호도 알아듣고, 금새 기운을 차려 자기 몫의 길을 걸어 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