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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러움의 땅에 뿌리깊이 못 박아 줄기의 생채기를 곧추 세우고 잎의 흔적을 남기는 나는 현실(現實)의 나무이다.
계절의 흐름을 거역하지 않고
삶의 고난에 흔들리지 않으며
예기치 않은 생명의 위협에 저항하지 않으며
순순히 어쩌면 주어진 대로 외부의 풍상을 묵묵히 받아들이는 나는 나무이다.
무엇이 당신을 이리도 지탱하게 하는지
무엇이 당신을 이리도 겸허한 성자처럼 살게 하는지
사람들은 묻는다.
무엇이 나무란 존재를 지탱하느냐고.
나는 무언의 웃음으로 화답을 대신한다.
그리고 속내깊이 간직하였던 살아있음을 그렇게 단내 나도록 웅크리고 참아내며 기어이 한 알의 씨알들을 세상 깊이 털어 놓는다.
때론 썩어서 떨어지기도 때론 새들이 다가와 쪼아대기도 때로는 짓궂은 동네 꼬마 녀석들의 놀림감이 되기도 하지만 그중에 하나를 기어코 살려내 또 다른 이름으로 키워낸다.
그리고 하늘에 손을 내민다.
나는 이상(理想)의 하늘이다.
잡힐 것 잡히지 않는 실제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나는 하늘이다.
프리즘으로 투영된 푸른빛과 구름과 각기의 다른 부분들로 구성되어 있다.
나의 모습은 다양하다.
순박하고 평화롭게
때로는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사나운 폭군의 모습으로.
그런 나를 사람들은 경배 또는 두려움의 대상으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들은 뜬구름을 잡기위해 실체가 없기도 하는 나를 잡기위해 안간힘을 다한다.
이리가고 저리가고 때론 사람들의 아우성과 이끌림에 이끌려 이쪽으로 때론 저쪽으로.
그런 나에게 나무는 손을 내민다.
거칠고 주름 잡힌 한없이 투박한 손.
하얀 섬섬옥수 녀석들의 손은 아니다.
그럼에도 나는 그 건네는 손길이 너무나도 그립다.
나의 행위에 그는 때때마다 화답을 해주었기에.
내리는 봄비를 가슴으로 안고
작열하는 뙤약볕의 한여름을 묵묵히 내려 받으며
풍요로운 가을의 계절에 자그마하나마 열매를 맺어 주었고
시리고 시린 긴 동토의 날에 묵묵한 침묵으로 친구가 되어 주었다.
전령사인 바람은 그 속내를 이렇게 전한다.
고즈넉하지만 숨겨진 진실의 아우라를 당신은 알고 있기에
초연하지만 그 두려움의 항거를 알고 있기에.
나무와 하늘은 함께 손을 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