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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26일 10시 53분 등록

#43. 할머니

핸드폰으로 병원에 계신 할머니 사진이 왔다. 꽤 오랜 시간 혼자 사시면서 동네 노인정에 가서 동네 노인들과 수다 떨고 고스톱 치기, 손주들에게 전화하는 것이 유일한 삶의 낙이었던 할머니다. 어릴 적, 막내 동생이 태어나기 직전까지 조부모님과 함께 살았다. 7남매 중 사고뭉치였던 아버지가 결혼하고 본 손주인 나를 유독 예뻐해 주셨다. 조부모님이 주신 무한 내리 사랑 덕분에 지금의 내가 이렇게 무한 긍정적인 성격의 소유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하고 추측해 본다.

몇 년전,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 위독하시단 소식을 접하고 막냇삼촌 가족들과 할아버지가 계신 병원에 갔었다. 숙모와 사촌동생이 먼저 병실에 들어가서 할아버지를 보고 나왔는데, 알아보지를 못하신다고 했다. 북받쳐 오르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할아버지를 뵈러 들어갔는데 나를 보자마자 미나 왔나?”라고 금방 알아봐주셨다. 할아버지에게 인사를 하고, 메마른 나뭇가지처럼 깡말라 얇은 피부보다 앙상한 뼈가 만져지던 할아버지의 손을 잡았다. 하지만 뜨거운 눈물이 목구멍까지 차올라 더 이상 할아버지 곁에 있을 수가 없었다. 그것이 할아버지 생전의 마지막 만남이었다. 혼자 남은 할머니는 손주들이 가면 언제든 본인의 지갑을 열어 용돈을 주시곤 하셨다. 그런 할머니에게서 전화가 뜸해지기 시작했다. 그 때, ‘할머니 건강이 많이 안 좋으셔서 병문안 때 사진 보낸다. 병원에서 이제는 준비를 해야 한단다.’ 라는 문자와 함께 삼촌이 할머니의 최근 사진을 보내 준 것이다. 그리고 며칠 후 엄마가 또 내게 말씀하신다.

할머니가 지금 혼수 상태래.”

다음 날, 주말이라서 할머니를 보러 가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때마침 엄마에게 할머니가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셨다는 얘기를 들으니, 이제 정말 할머니랑 대화를 할 수 있는 마지막 시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일어나자마자 서울역으로 향했다. 오래간만에 무궁화호를 타고 대구로 가는 길. 기분이 착잡하다. 할머니의 상태가 악화되기 전에 전화를 하시면 바쁘다는 핑계로 전화도 안 받고, 다시 전화를 드리지도 않은 적이 몇 번 있었다. 그 떄 할머니는 내가 얼마나 보고 싶어서 전화를 하셨을까. 예전에 일 때문에 대구 갈 일이 있으면 늘 병원에 계신 할머니를 뵙곤 했다. 한 번은 병원 밥이 맛이 없어서 잘 안 드신다는 얘기를 듣고 초밥을 사갔는데, 초밥을 너무 맛있게 잘 드시던 할머니가 생각난다. 갈 때마다 한 시간 정도를 할머니와 보내고 이제 그만 가보겠다고 얘기를 할 때마다 할머니 눈가에 눈물이 어리던 것도 생각이 나서 가슴이 아프다.

대구에 거의 도착할 즈음, 할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그 동안 할머니가 정신이 없던 상태여서 큰아버지가 전화를 받으신다. 마침 할머니 병원으로 가고 있는 길이어서 대구역에서 큰아버지를 만나 할머니 병원으로 향했다. 도착을 했더니 눈을 감고 주무시는 할머니가 계신다. 큰아버지는 미나가 왔다며 할머니를 깨우셨다. 눈을 떠 나를 바라보시는 할머니에게 평소와 다름없이 반갑게 인사를 했다.

할머니 저 왔어요~~”

할머니는 미나 왔나?? 어떻게 왔노?? 회사는??”

언제나처럼 반가워 하시고, 나의 회사를 걱정하시는 할머니지만 확실히 기력이 많이 떨어지신 것같다. 엄마랑 할머니 얘기를 할 때면, 가끔 니네 할머니가 진짜 총명한 분이야라고 말씀하시곤 했다. 정말 할머니랑 전화통화를 하면, 늘 할머니는 회사에서 니가 돈 받는 것 이상의 일을 해 줘야 한다,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모르는 사람들이니 적을 만들지 말라는 등 주옥 같은 말씀들을 많이 해 주시곤 했다. 언제나 위풍 당당하던 할머니가 이제 스스로 식사도 못 하실 정도로 기력이 쇠하여 병원에 누워 계신 모습을 보니 마음이 짠하다. 2시 반쯤 병원에 도착해 할머니 말동무도 해 드리고, 저녁 시간에 밥도 먹여드리고, 저녁 시간이 되어서 할머니에게 작별인사를 했다. 할머니께 가겠다고 말씀 드리니 역시 우리 할머니는 내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너희 대신 고생하는 아줌마한테 미안하고 고맙다고 말씀드려라.”

7남매와 그들의 자식들까지 하면 수십명 되는 자손들이 있는데도, 나를 포함해 어느 누구 하나 할머니 곁을 항상 지킬 수가 없다. 가족 대신 할머니의 손과 발이 되어 주시고 있던 간병인 분께 전하라고 하신다. 역시 우리 할머니는 멋쟁이시다. 허나 할머니의 말씀을 듣는 나는 그저 송구스러울 따름이다. 멀리 있다는 핑계로 어쩌다 한번 오는 것도 유세하듯 오는 손주. 할머니 가까이 살고 있는 친척 어른들과 사촌들은 그 동안 얼마나 심적으로, 경제적으로 고생했을지 사실 나로서는 상상하기가 힘들다. 지난 일주일간 혼수상태로 계시다는 말을 듣고, 마지막이란 생각으로 할머니를 보러 온 나. 이것도 나중에 할머니가 돌아가신 후에 조금이라도 후회를 덜하기 위한 나의 이기적인 선택이었다. 이번에 인사를 하고 나올 때는 오히려 할머니는 담담하게 잘 가라고, 조심히 올라가라고 인사해 주시는데, 나는 울컥 눈물이 나기 시작한다. 그래서 할머니에게 급하게 인사를 하고 병원을 빠져 나왔다.

있을 때 잘하라는 진리를 항상 지난 후에야 다시금 가슴에 새기고 후회를 한다. 할아버지, 아버지, 외할아버지, 친구까지. 매번 그랬다. 있을 때는 나 살기 바빠서 연락도 제대로 못하고, 힘들게 내게 다가와도 바쁘다는 핑계로 다음에 보자고 말하는 이기적인 내가 항상 그곳에 있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고 소중했던 이들이 떠나고 나서야 늘 후회의 눈물만 흘리는 비겁한 나였다. 약 냄새가 진동하는 자그마한 병원 침대에 하루 종일 누워 계시는 할머니를 생각하면, 얼마나 심심하고 외로울까란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것도 병원에 갔을 때 잠깐이지. 지나고 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금새 잊어버리고 일상으로 돌아와 있다. 그래서 인간은 이기적인 동물이라고 하나보다. 이번 할머니와의 만남이 정말 마지막이 될지는 잘 모르겠다. 3개월 밖에 못 살 거라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6년을 더 살다 가신 외할아버지처럼 말이다. 이제는 전화 통화조차 할 수 없는 할머니를 떠나오며 할머니는 나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 생각한다. 당연한 것을 했을 때의 그런 마음보다 당연한 것을 제대로 못했을 때의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44. 완벽함은 존재하는가?

언제든 떠나기 위해 나는 완벽하게 준비했다. 비서 일을 오래 못할 것 같다는 막연한 생각이 들었다. 일을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임원이 본인 지인의 연락처를 물어봐 번호를 찾기 위해 이전 비서가 정리해 둔 명함첩을 뒤지기 시작했다. 임원에게 명함을 받은 날짜별로 정리해 둔 상태라 한 사람을 찾으려면 오랜 시간을 뒤진 후에야 겨우 명함을 찾을 수 있었다. 명함이 있으면 다행이지만 없는 경우에 명함 한 장을 찾는데 엄청난 시간이 소요됐다. 그래서 명함을 정리하기로 마음 먹었다. 두 권의 명함집에 들어있던 명함을 모조리 꺼내고, 크게 두 개의 카테고리로 나눴다. 정부기관과 비영리재단을 하나로 두고, 그 외의 공간에 속해있는 사람들의 명함으로 나눴다. 그리고 다시 가나다순으로 나누어 정리를 했다. 명함정리를 한번 했더니 명함 찾기가 아주 간편해졌다.

생전 처음으로 비서를 하겠다고 왔던 그 순간을 떠올려보았다. 그 때 내게 어떤 것이 주어졌다면, 업무에 적응하기가 쉬웠을까? 매일 반복적으로 해야 하는 비서의 업무가 있었다. 그리고 매월 혹은 매주 반복되는 일정도 있었다. 이 반복되는 일정을 쉽게 하기 위해 평소에 틈틈이 해야 하는 일들도 있었다. 그래서 우선 엑셀 시트를 열어, 매일 반복되는 일정을 월별로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매일 출근하는 시간부터 퇴근하기까지 한 시간 단위로 나누고, 시간대 별로 해야 하는 일들을 적었다. 출근하자마자 신문세팅하기, 물과 컵을 임원실에 갖다 놓기, 가습기 물 채우기. 감사님 출근과 함께 하루에 네 번의 차심부름이 시작된다. 그 중에서 매주 월요일은 경영위원회가 열리기 때문에, 금요일 퇴근 전에 도착하는 실적점검자료를 출력해서 임원에게 전달해야 한다. 그리고 매주 목요일은 감사님 차가 쉬는 날이라서 대중교통으로 출퇴근을 하신다. 이 날만큼은 퇴근 시에 운전을 하는 과장님께 전화를 드리지 않아도 되는 자유를 만끽할 수 있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매월 초에는 전 달에 감사님이 사용한 법인카들 영수증과 대구가 고향인 임원이 탔던 기차표들도 정산해야 한다. 셋째 주에는 회사에서 내어 준 임원의 아파트 관리비를 내야 한다. 그리고 불규칙하게 임원 티탐임이 있고, 각종 외부 일정이 존재한다. 각각의 할 일을 적었다. 어느 정도 큰 일정들은 다 적은 것 같다. 이제 각각의 해야 할 일에 포함되어야 하는 세부사항들을 적었다. 와우~ 드디어 임원비서의 체크리스트가 완성되었다. 체크리스트를 출력해 보며 스스로 아주 부듯하다. ‘이제 완벽해!!! 누가 와도 인수인계 제대로 해 주고 갈 수 있겠어!!!’ 체크리스트를 완성하고 일주일간 빠진 부분을 보완하면서 체크리스트의 완성도는 거의 완벽에 가까웠다.

그리고 드디어 회사에서 나갈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조건인 후임이 결정되었다. 후임이 온 날 5시간 정도 인수인계를 열심히 해 주었다. 전체적인 할 일들을 설명 해 주고, 적응할 때까지 체크리스트의 하루 일정들을 보면서 확인하라고 했다. 가장 큰 복병이라 생각했던 영수증 처리하기. 회사 시스템이 익숙해지면 별거 아니지만 처음에 익숙해지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것 같았다. 한번 해 보고 완벽하게 숙지하는 것이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회사를 그만 둔 내가 몇 번이나 와서 가르쳐줄 상황도 아니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생각해낸 것이 각 프로세스를 시스템 화면을 캡쳐 해 출력한 종이에 친절하게 순서까지 적어 주는 것이었다. 역시 내 예상은 정확했다. 시스템을 처음 접해 보는 후임은 나의 인수인계를 잘 따라와 주었고, 내가 준비한 자료들을 보고 놀라워했다. 인수인계를 하는 동안 혼자서도 잘 할 수 있겠죠?’ 확인질문을 여러 번 해서,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답변을 들었다. 비서로서의 역할 등은 한 달간 있었던 내가 알려줄 수 없는 영역이었기에, 나를 포함해 벌써 다섯 번째 비서에게 인수인계를 해줘야만 하는 부사장 비서에게 미안하지만 맡기기로 했다. 모든 것을 알려주고, 가벼운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회사를 나오는 마음이 어찌나 가볍던지.

며칠 후, 부사장 비서에게 전화가 왔다. 많이 지친 목소리로 퇴근 길에 전화를 한 것이다. 그런데 이게 왠일!! 그녀에게서 나는 뜻밖의 소식을 접하고 말았다.

언니, 후임으로 온 비서언니가 엑셀을 잘 못해서 고생하고 있어요. 맨날 저 불러서 물어 보는 게 엑셀이에요.ㅜㅜ

이럴 수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복병이 있을 줄이야. 누구나 나처럼 엑셀 정도는 학교 다니면서 많이 사용해 봤을 거라고 생각했던 나의 착각이었다. 인문학 계열을 전공한 후임 비서는 대학 4년 내내 엑셀을 사용해 볼 일이 별로 없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내가 잘 만들어두었다고 생각했던 엑셀 자료에 있는 숫자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건지 못 찾은 것이다.

세상에 완벽함이란 존재할 수 있을까? 나부터 불완전한 존재이고, 모든 사람들이 나와는 다르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나는 무엇을 하든 완벽하다고 믿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은 누구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사는 내 생각만큼 호락호락하지 않다. 완벽함의 가면 뒤에는 항상 전혀 예상하지 못한 구멍이 존재하기 마련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45. ‘비전있는 직장이란..

도대체 비전이 뭘까? 비전의 사전적 의미는 내다보이는 미래의 상황 혹은 이상이다. 내다보이는 미래? 흔히 사람들이 비전을 찾으라고 이야기하는 것을 내가 내다보고 싶은 미래의 상황을 말하는 것일까? 그렇다면 나는 어떤 미래를 원하고 있는 것일까?

엄마에게 전화가 왔다.

미나야, 조금 전에 박원순 서울 시장이 라디오에서 얘기하는데, 공기업에서 일하는 임시직들을 정규직으로 바꿔준데. 너희 회사에서도 가능한지 한번 알아봐.”

하지만, 나는 이미 전날 밤 엄마에게 4월부터 새로운 직장에서 일을 시작할 거라고 얘기를 한 상태였다. 그리고 임시직에서 정규직이 되려면 최소한 2년 이상의 회사경력이 필요하다. 2년간 지금 일하는 공기업에서 일을 한다면? 왠지 상상하기가 싫다.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갑갑해진다.

너 회사에 그만둔다고 얘기했어?”

언제까지 일하기로 했는데?”

이번달 말?”

새로 가는 회사는 비전이 있는 거야?”

엄마, 여기보다는 비전이 있는 것 같아.”

늘 그랬듯이 엄마는 이번에도 결국 내 선택을 지지해줄 것이다. 나는 그럴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전화를 끊고 나서 한동안 카페 창 너머 하늘을 보며 멍하니 앉아 있다. 그리고 내 머리 속에는 질문 하나가 동동 떠다니기 시작했다.

비전? 도대체 뭐가 비전이지? 여기보다 새롭게 일 할 곳이 무슨 비전이 있다는 거지?’

첫 직장에서의 4 7개월의 경력은 빼고 보면, 작년부터 나의 평균 근속기간은 3개월 정도이다. 나는 왜 그 회사들을 나왔던 것일까? 매번 나올 때마다 내가 찾았던 이유는 비전이 없어서였다. 그렇다고 뚜렷하게 어떤 비전을 바란다고 얘기할 수도 없다. 내가 도대체 무엇을 원하고 있는 것인지, 그 원하는 것을 위해 어떤 곳에서 일하기를 바라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창밖에 내리고 있는 저 빗물처럼 내 인생은 그냥 막연히 흘러가고 있다. 이 흐름의 끝이 한강이 될지, 동해가 될지, 지중해가 될지는 나도 모른다. 하지만 온갖 부식물들이 둥둥 떠다니는 한강보다는 풍부한 자원들과 생명체들이 있는 동해였으면 좋겠고, 동해보다 기왕이면 튜브나 배 없이도 자연의 힘만으로 내 몸을 둥둥 뜨게 만들 수 있는 지중해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

작년에 처음 일했던 벤처기업을 그만둘 때로 돌아가보자. 이익을 만들어 내야만 하는 회사라는 공간. 그 곳에서 회사의 이익을 낼 수 있었던 것은 우리가 가진 어플리케이션, 아이템이었다. 하지만 아이템으로 돈을 벌 수 있다는 미래가 보이지 않았다.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미래인데, 장밋빛 미래만을 보고 발버둥 치고 있던 회사의 CEO에게서 회사를 미래를 찾기란 더욱 불가능해 보였다. 아이템으로 돈을 벌지 못하면 투자라도 받아서 회사가 운영될 수 있는 자금이 마련되어야 하는데 그것마저 좌절되었다. 그리고 월급을 더 이상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그래서 나는 회사에 더 이상 비전이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5개월만에 퇴사 결정을 내리게 된다. 그리고 2개월이 지난 후에 결국 회사는 문을 닫고 말았다.

온라인 판매라는 미래를 보고 들어갔던 두 번째 회사. 회사란 생명체와 같아서 언제 어디서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 모른다. 마침 내가 합류한 시점에 사장님은 회사의 운영 방향을 변경했다. 그리고 3달간 내가 생각했던 미래로 갈 수 있었던 어떤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새로운 사업 방향으로 전환하고 또 다시 안정을 찾으려면 또 다시 몇 달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 시간을 버틸 에너지가 없었고, 젖 먹던 힘까지 내어 버틴다 하더라도, 새롭게 시작될 회사의 변화가 성공할지도 의문이었다. 그리고 주변에서 들려오는 사장님에 대한 좋지 않은 이야기들이 사장님에 대한 나의 신뢰까지 흔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당시에 받는 월급으로는 경제적 상황에서 마이너스의 골이 점점 깊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이미 가지고 있던 빚을 한 번에 청산할 수 있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매달 꼭 들어가야 하는 돈만큼은 벌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옭죄어 오는 마이너스의 고통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고 싶었다. 그리고 결국 두 번째 퇴사를 결심하게 된다.

그리고 얼마 전에 그만둔 공기업. 회사의 수익이 없어서 월급이 나오지 않을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다. 내가 하는 업무량에 상관없이 약속된 월급은 매달 꼬박꼬박 들어올 수 있는 안정된 직장이다. 많은 돈을 벌 수 있을 거란 기대도, 회사 내에서 정규직이 될 수 있을 거란 기대도 애초에 없었다. 하지만 일을 하다 보니, 같은 시간 일을 하며 나보다 최소 두 배 이상의 월급을 받아가는 정규직 직원들을 보니 까짓거, 나도 한번?’이란 생각에 공채를 지원했다. 물론 뛰어난 학벌도, 만점에 가까운 영어점수도 없었던 나는 보기 좋게 1차 서류전형에서 미끄러졌다. 그래서 잠시 생겼던 에 대한 욕심을 버리고, 근무 시간에 개인적인 일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시간에 만족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곳에서 미래는 도무지 그려지지가 않았다. 연봉 협상이라는 것도 없을 뿐더러, 쥐꼬리만큼 월급이 올라갈 수 있는 가능성은 1년 후에나 가능했다. 1년 후에 월급이 조금 오르고 나면, 그 다음에는? 운이 좋아 정권이 바뀌고, 계약직 직원을 정규직으로 전환이 가능해진다면,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미래는 그려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일에서 느낄 수 있는 보람도, 재미도 찾아볼 수 없을 것이다. 그저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월급이라는 수액을 매달 투약 받으며 사는 그저 그런 회사원의 모습은 그려볼 수 있다. 하지만 이 미래의 그림까지 가는 과정에 정권 교체라는 사회적인 불확실성이 존재하고 있었다. 그 불확실성에 내 인생을 걸고 싶을 만큼 그 그림이 매력적이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세 번째 회사를 또 퇴사했다.

그리고 나는 지금 네 번째 회사에서 새로운 시작을 앞두고 있다. 회사의 오너가 그리고 있는 미래의 그림이 매력적이다. 그 그림을 그려 가는 과정에서 재미있는 실험들도 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1인 기업에 직원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2인자 자리를 노려볼 수도 있다. 권력이나 명예에 욕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내게 의무와 책임 그리고 자유가 주어질 수 있음이 매력적이다. 하지만 단 하나 이 문제다. 지금까지 돈을 별로 생각하지 않으며 살아왔다. 하지만 이제는 엄마가 힘들게 일하는 것이 내 눈에 보이고, 그것이 바늘이 되어 내 가슴을 콕콕 찌르기 시작했다. 그래서 엄마말처럼 최소한 나 스스로는 건사할 수 있을 정도그래서 엄마에게 손 벌리지 않을 정도로는 살 수 있어야 한다. 직장생활 7년차만에 드디어 모든 빚을 청산하고 이제서야 안정기로 접어들었는데, 다시 불안한 미래를 선택하려니 머리 속이 복잡하다. 과연 나에게 직장이 주는 비전이란 도대체 무엇이어야 하는 것일까?

IP *.38.22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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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6 19:52:24 *.143.156.74

미나야, 비전 있는 직장 이전에 너의 비전을 먼저 설정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나의 비전이 있어야 그와 맞는 직장을 선택할테니 말이다.

 

신치의 모의 비행이 진짜 비행이 되는 그날을 위해, 건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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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7 04:51:51 *.70.31.14

이 자식 여러개 올리지 말랬잖아~~~~~ ㅋㅋㅋㅋ

나도 조금씩 수정도 해 봐야 겠다.

지금껏... 시작만 하고 있었군... ㅋㅋㅋㅋㅋ

널 설레게 하는 건 뭘까? 난 가끔 그게 궁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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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7 11:02:32 *.163.164.178

긍정의 힘, 미나!

종교에서 비전은 신이 내려주시는 말씀이지만

현실에서 비전은 나를 통한 미래의 실현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누군가 만들어 놓은 비전은 나의 비전이 될 수 없겠지....험험!! (잔소리...)

 

미나야, 하나씩 그리고 깊게...팩트와 느낌을 버무리고

.... 알았지? 물론 나도 그리 하고 싶어도 안되긴 한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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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7 18:38:07 *.166.205.131

그러게, 오너의 비전이 바뀌면 어떻게 되는거냐.

나도 나만의 비전을 실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만 힘들긴하다.

지금의 난 직장은 꿈이 이뤄지는 공간이기도 하고

현실적 방편이기도 하다,

그러니 잘 이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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