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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3월 27일 04시 42분 등록

 

 

나는 꿈이 없었어요. 부끄러운 얘기지요. 배울 만큼 배운 녀석이 꿈이 하나 없어 사회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슬픈 이야기입니다.

아이에겐 들어갈 돈이 많더군요. 앞으로도 점점 늘어나겠지요. 난 돈을 벌어야 했어요. 우선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 그렇게 천천히 나의 꿈을 찾아가면 되는 거라 생각했어요.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기로 한 거죠. 그러다 경악했어요. 나에겐 꿈이 없었어요. 그러니 하고 싶은 일도 없었지요. 나는 그때부터 꿈을 찾아 헤매기 시작했어요. 없으면 만들어 내기라도 해야 했죠.

어렸을 땐 되고 싶은 것도 많았어요. 물어볼 때마다 바뀌곤 했지요. 어느 날은 간호사, 어느 날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어요. 장군이나 대통령 같은 원대한 꿈을 꾸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소박하고 귀여운 꿈 정도는 가지고 있었지요. 언제 사라진 걸까요? 언제부터 하고 싶은 거, 되고 싶은 거 사라지고 할 수 있는 것만 찾아다닌 걸까요? 내 꿈은 어디 있을까요? 어디서 찾아야 하는 걸까요?

 

길이 정해져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봤어요. 내가 할 일이 정해져 있다면 어떨까? 누군가가 나타나 넌 이러이러한 것을 하거라.” 이렇게 말을 해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렇다면 그게 내 길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고 매진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생각한 거죠. 그런데 이건 은근히 무서운 생각이었어요. 옛날에는 그런 생각들이 실제로 존재했잖아요. 왕의 자식은 왕이 되었고, 종의 자식은 종이 되었죠. 그랬더니 사람들은 혁명을 일으켜 이 모든 것들을 없애버리고 말았어요. 내가 한 생각은 참 무서운 거였군요. 다시 그 사회가 돌아온다면 무서운 일이잖아요. 누군가가 나타나 넌 과학자가 되거라.” 라거나 동시통역사가 되어라.” 라고 말한다면 끔찍해지겠군요. 과학과 영어는 제 분야가 아니거든요.

 

영화 <캐리비안의 해적>에는 매우 매력적인 아이템이 등장합니다. 캡틴 잭 스패로우의 고장난 나침반이죠. 그 나침반은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의 방향을 가리키지는 않지만 나침반을 손에 든 자의 원하는 것을 가리키지요. 이런 나침반을 가지고 싶어요. 방향성 없는 내가 들고 있더라도 정확히 방향을 가리켜주는. 나로 하여금 아무런 의심없이 걸어가게 만들어 줄 수 있는. 그게 있다면 나는 이렇게 방황할 필요가 없을 텐데요.

 

나는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이게 과연 도움이 될 것인지 의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예요. 현실에서 밥 한 숟갈도 해결해 주지 못하고, 지금 당장 어떤 직업을 선택할 것인지 조언도 해주지 못하는 이런 일들이 나에게 무슨 도움이 될 것인지 알 수 없었죠. 그래도 쓰기 시작했어요. 책을 읽고 글을 썼지요. 그렇게 서서히 나는 나의 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작가가 되고 싶었냐구요? 아니요. 난 단 한 번도 작가가 될 것이라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을 좋아한 적도 없습니다. 글짓기란 내게 가장 어려운 것이고, 그러기에 대학 입학 당시 논술고사가 치러지지 않았던 것은 행운이라고 생각해요. 책과도 거리가 멀어 웬만한 책은 읽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1년 정도의 기간 동안 나는 읽고 썼습니다. 어떻게 해서든 나는 나의 길을 알고 싶었거든요.

 

글은 사람을 드러내 줍니다. 모든 글에는 그 글을 쓴 사람이 녹아 있어요. 그건 아무리 감추려 해도 감춰지지 않는 거예요. 내가 쓴 글이니 나의 생각과 나의 방식이 묻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렇게 글은 내가 잘 모르던 나를 바라보게 해 줍니다. 내가 어떤 식의 순서를 좋아하는지, 어떤 장소를 좋아하는지. 때론 잊고 있던 기억들도 생각나게 해주기도 하구요.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어요. 나는 나도 몇 번 쯤 괜찮은 말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알았고, 오랜 시간 사랑을 갈구했다는 사실을 알았으며, 할 수 있어서 시작했던 강사 일을 제법 좋아했다는 것도 알았어요. 글은 그런 거죠. 내가 관심 있는 것들만 쓸 수 있고,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쓸데 신나고, 나만의 것으로 할 수 밖에 없어요. 다른 이들을 흉내 내면 꽉 막히게 되어 있지요. 그렇게 나의 가치와 나의 신념을 조금씩 드러나게 해주는 것 그것이 글입니다.

 

글은 창조성을 회복시켜 줍니다. 그리고 꿈은 논리의 영역이 아닌 창조의 영역입니다.

어릴 적 제각각의 장래 희망을 들고 있던 우리는 어느 순간부터 현실 앞에서 꿈을 찾기 시작했어요. 사회적 영예와 부라는 잣대를 들고 나의 꿈을 찾기 시작한 거죠. 나 역시 그랬어요. 아이와 둘이 살아갈 최소한의 벌이를 규정짓고 꿈을 찾기 시작했죠. 어떨 때는 할 수 있는 일이 많아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하나도 남지 않았죠. 꿈의 설렘은 그렇게 멀어져 갔어요. 꿈은 더 이상 꿈이 아니었죠. 꿈을 엉뚱한 곳에서 찾고 있었는지 몰라요.

머리로 계산해서 이 정도면 되겠다 하는 것을 내 꿈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죠. 이유는 모르지만 나의 가슴을 설레게 하여 버리려 해도 버려지지 않는 그것을 우리는 꿈이라 말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꿈을 가지고 있다고 말해요. 나의 꿈을 찾기 위해서는 우리의 창조성을 회복시켜야 해요. 그때 글은 우리에게 도움이 되어 줍니다.

어떤 글도 창조적이지 않은 글은 없어요. 모두가 똑같은 하루를 산다고 가정하더라도 그 날의 일기가 같아질 수는 없죠. 일기를 어디서 베껴오는 사람은 없잖아요. 단어 하나부터 마침표를 찍는 위치까지 자신이 만들어 내지요. 책을 읽고 리뷰를 쓴다 해도 책을 소화해낸 자신만의 언어로 쓰게 되는 것이고, 영화 리뷰 역시 그래요. 내가 나의 문장을 만들어 내는 거죠. 이건 당연히 창조적인 작업이죠.

그렇게 우리는 글을 통해 자신을 알아가고 창조성을 회복해 나를 설레게 하는 것들을 알아갈 수 있어요. 그 길 위에서 우리의 꿈을 발견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무언가를 쓴다는 것과 거리가 멀던 나는 지금 1년 동안 글을 썼습니다. 써 놓고도 괜찮다는 느낌에 흡족했던 날도 있고, 아무런 것도 생각나지 않아 키보드를 부숴버리고 싶은 날도 있었죠. 그 시간 안에서 나는 나를 알 수 있었고 내가 좋아하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나의 꿈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나의 꿈은 늙어 죽을 때까지 하루하루 사랑스러워지는 나를 발견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는 나의 모습이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나의 주변인 혹은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도 자신을 사랑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기를 바라지요.

1년 전과 지금의 모습은 별 차이가 없어 보입니다. 나는 여전히 반 백수 계약직이며 자기 앞가림도 못하는 철없는 싱글맘이예요. 그래도 나는 같은 사람이 아니랍니다. 내 안에 반짝이는 별 하나를 품었거든요. 나를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도록 만드는, 내 손끝까지 짜릿한 전율을 가능케 하는 나만이 가질 수 있는 나의 꿈 하나를 만났어요. 현실은 그대로이지만 그 속에 살고 있는 나는 그대로가 아닙니다. 나는 내가 품고 있는 별이 더 환한 빛을 낼 수 있도록 매일 닦습니다. 그 일은 나에겐 매우 당연한 일이며 즐거운 일입니다.

체 게바라는 그랬지요.

우리 모두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갖자.”

우리 모두는 현실을 살아갑니다. 현실에 대한 감각을 갖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지요. 그렇다고 우리가 꿈을 잃어야 하는 이유는 아닙니다. 몸은 현실에서 밥을 먹고 일을 하지만 우리의 꿈은 하늘을 날 수 있잖아요. 누군가는 우리의 꿈을 보고 이렇게 말할지도 몰라요. “야 그게 말이 되냐?” 하지만 모든 꿈은 멋진 게 아니던가요? 누군가는 불가능한 꿈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원래 꿈이란 그런 거잖아요. 원대한 그 꿈을 이루지는 못하더라도 그 꿈을 향해 걸어가는 것이 꿈을 가진 자에겐 의미가 되는 거죠.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은 그 누군가 꿈꿔왔던 것이며, 그 당시엔 말도 안 된다며 비웃음을 샀던 일인지 모르잖아요. 라이트 형제는 하늘을 난다 해서 얼마나 많은 빈축을 샀던가요. 지금 우리는 비행기를 타는데.

 

당신의 별은 어떤 빛일까요? 마음 한 구석에 먼지를 잔뜩 뒤집어 쓴 채 잊혀지고 있는 별을 닦아내 보기로 해요. 나만의 창조적인 청소 비법으로 말이예요.

 

꿈이 밥 먹여 주냐?

물론 꿈은 당장의 밥은 아닙니다. “꿈이 생겼어.” 그런다고 오늘 저녁 반찬이 멸치에서 꽃등심으로 바뀌는 것은 아니죠. 꿈과 현실과의 괴리감이 느껴질 수도 있죠. 어느 날 당신은 그래 꿈꾼다고 뭐 달라지냐?” 라며 생긴대로 살자 할지도 모르지요. 하지만 한 번 드러난 꿈은 계속 괴롭힐 거예요. 별은 빛날 의무가 있거든요. 당장의 밥은 안 되는 그렇지만 나를떠나지도 않는 꿈 때문에 마음이 편하지 않았어요. 버릴 수 없는 꿈을 안고 있을 때 한쪽 문은 닫혔지만 다른 문이 열렸죠. 난 나의 꿈을 이루는 계획의 전체를 다 그리진 못했지만 무엇을 하고 싶은지 찾을 수 있었어요. 물론 하고 싶은 일은 시간이 지나면 바뀔 지도 모르지만 지금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나의 꿈으로 가는 길임을 난 알고 있어요. 꿈도 밥을 먹여 준답니다. 당신이 꿈의 불확실성을 즐길 마음이 있다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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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7 10:52:59 *.163.164.179

그렇지 루미야!

꿈을 가지게 되고, 길을 찾게 되고, 이름을 갖게 되고.

우리는 지난 1년간 그렇게 자라고 있었어.

걷고 있는 동안은 읽고 있는 동안은 쓰고 있는 동안은

도대체 지금 무얼하고 있는지 모를 때도 있었어.

헌데...우리가 걸어온 1년이라는 짧은 시간은

그렇게 우리에게

이름이 되고, 꿈이되고, 삶의 밑거름이 되었지..

잘했다. 루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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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7 15:31:27 *.143.156.74

나는 이제 루미가 그 꿈을 통해 멸치 반찬을 꽃등심으로 바꾸는 마술을 부렸으면 좋겠어.

 

엄마에게 하은이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하고 밍크 코트도 사드리고,

하은이가 그렇게 하고 싶다는 해외 유학도 보내주고,

루미랑 꼭 닮은 앙징맞은 미니 쿠퍼를 타고 시내를 누비는 모습이 그려지는걸.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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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3.27 18:42:55 *.166.205.131

작가 이루미.

 

그 길에 서서 열심히 걷고 있는 그대여.

나에게도 힘이 되는걸~

좋아 나도 현실 때문에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버리지 않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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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04 00:45:36 *.220.138.26

저는 루미님의 독자입니다. 루미님의 꿈이 너무 멋있네요. 딸랑딸랑 종소리같은 맑은 글 잘 읽고 갑니다. 님의 글 읽으러 또 놀러올게요. 홧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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