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학하는 인사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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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이 없던 제가 이름을 가졌습니다. 여기서 이름은 부모님께서 주신 이름이 아닌 내가 만들어낸 이름을 말합니다. '열정 조직문화 연구가', '철학하는 인사쟁이'가 그것입니다. 자격증이나 토익시험의 점수처럼 어떤 '결과'로서 얻어진 이름이라기 보다는 살아가고 싶은 삶의 지향점으로서 이름입니다. 이제는 명함이 없어도 제 자신의 정체(正體)에 대해서 어느 정도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지난 1년 동안 변화경영연구소를 통해서 스승과 사우(師友)들을 통해서 얻은 것입니다. 더불어 스스로 성취한 것입니다. 태어나서 조상으로부터 이름을 부여 받듯 내 안에 있는 신으로부터 새로운 삶을 부여 받은 느낌입니다.
일상은 익숙하고 편했습니다. 하루하루는 수레바퀴가 돌아가듯 판에 박은 일상의 연속이었지만 익숙한 것에 찰싹 들러붙어 있었습니다. '자동 조정 모드'가 설정한 대로 출근하고 일하고 퇴근하는 반복을 되풀이하였습니다. 꿈과 열정은 돈을 향해 열린 욕망이 대체했고 그것은 자극적이며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그렇게 십여 년의 세월이 지났습니다. 어찌 보면 삶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습니다. 직장은 안정적이었고 나는 스스로 뒤쳐져 있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가끔 잘나가는 친구들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도 느꼈지만 나보다 더 힘겹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최신 전자제품을 사고 싶으면 살 수 있었고, 마음이 내키면 어렵지 않게 가족들과 여행을 다녀올 수 있는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곳에는 없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나 입니다. 나는 내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수 많은 외부의 자극에 대응하면서 다중역할을 성실히 수행하며 살고 있었지만 나로서 살아가는 삶은 갈수록 시야에서 멀어지고 있었습니다. '일'과 '나'는 서로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직장생활이 재미없다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던 것입니다. 더욱 염려스러웠던 것은 직장을 떠나고 싶다는 그 시점에 되고 싶은 것이나 하고 싶은 것이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은 억지로 자신을 일상에 중독시켜 놓고 있었던 셈입니다. 비이커 속 개구리 심리처럼 자신을 교묘하게 가두어 두고서 점진적으로 악화되는 상황에 적응하면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룻밤 사이에 생긴 게 아니어서 아주 고약하게 고착되어 있었고, 느리지만 꾸준하게 진행되는 하강국면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아이작 뉴턴이 말한 관성의 법칙은 모든 사물은 다른 힘을 받지 않으면 그대로 머물거나 운동하던 방향으로 계속 진행하려는 경향을 보인다는 것입니다. 마음이나 정신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나와 맺는 지난 세월의 힘은 계속 한 방향으로 갈 것을 종용했습니다. 하지만 그 끝에 답이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애써 힘 하나를 가했습니다. 13년 간의 직장생활을 그만 둠으로써 삶의 변곡점 하나를 마련했습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무모하기도 하고 바보 같은 선택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큰 일이 날 것 같은 두려움이 있기도 했지만 지난 2년간 염려했던 큰 일은 생기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밥은 먹고 있고 가족들도 안전합니다.
지난 2년간은 새로운 이름을 찾는 시기입니다. 저는 새로 만든 이름이 마음에 듭니다. 그것은 지난 13년간 얼굴을 찾지 못하고 있는 과거에 얼굴을 찾아주었습니다. 2010년 봄, 새로운 길을 나설 때 가장 아쉬운 것도 그것이었습니다. '지난 13년간의 시간이 아무것도 만들어내지 못하고 무용하게 사라져 버리는구나'라는 생각은 자꾸 뒤를 돌아보게 했습니다. 성급히 문을 닫고 나온 것만 같아서 자꾸 뒤가 밟혔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제 그것은 더 이상 무용하지 않습니다. 지금의 나와 앞으로의 나를 만들어 줄 초석 같은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떠나고 싶었고, 무의미한 시간이라고 믿었던 현장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이름은 그런 것인가 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는 시구(詩句)처럼 이름은 그런 것인가 봅니다.
저는 변화경영연구소에서 이름을 찾았습니다. 아직 그 이름이 제 값을 하려면 갈 길이 멀지만 저는 기쁜 마음으로 갈 수 있습니다. 얼마 전에 아들이 처음으로 저희 부부의 품을 떠나 혼자 유치원에 다니게되었습니다. 작은 가방을 메고 "다녀오겠습니다" 하면서 나가는 녀석의 얼굴에서 설렘과 걱정이 교차함을 봅니다. 저 또한 그렇습니다. 새로운 이름을 달고 세상에 나가는 설렘과 두려움이 교차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름이 없고, 표정이 없던 지난 시간을 생각해보면 지금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이라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름을 찾는 과정이 쉽지 않았습니다. 혼자였다면 아마도 먼 길에서 여전히 헤매고 있을 것입니다. 스승과 선배, 그리고 동기들이 있었기에 멀리 돌아갈 길을 줄이고 또 줄일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해야 할 것이 너무 많은 봄의 시작입니다. 새로운 시작입니다.
PS. 엊그제는 괴산에 있는 '여우 숲'으로 변화경영연구소의 새로운 얼굴들(예비8기)과 면접여행을 다녀왔습니다. 일곱빛깔 무지개라는 말보다 더 다채로운 그들의 삶의 보고 왔습니다. 그들이 앞으로의 1년간을 통해서 자신이 얻고 싶은 이름 하나를 얻을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리고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2012년 연구원 1년 생활을 마치면서
철학하는 인사쟁이 강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