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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일 17시 23분 등록

한 그리움이 그때의 그리움에게.JPG

 

기억 속을 더듬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추억의 사진첩을 여미며 그것을 확인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찾아갔다. 내 스무 살 청춘의 흔적이 고스란히 배어 있는 그곳으로.

두근거리는 가슴을 안고 학교 교정으로 들어섰다.

다르다.

익숙한 분위기.

향기들.

그리고 그때의 내가 있다.

까까머리 87년의 새내기. 고민이 많던 그때.

호헌철폐 직선쟁취라는 낯선 구호 속에 모든 이와 함께하는 모든 것이 무던히도 나에겐 관심대상이었다.

 

빨간색 건물, 나무와 나무들, 벤치, 평행봉, 운동장, 노천강당. 막걸리 한잔으로 세상의 두려움에 호기 부리며 뒹굴던 풀밭.

그대로였다.

그대로. 그런데 그 그대로라는 말이 내 맘을 죄인다.

그대로인데 나는? 내 모습은?

이마의 땀을 훔치는 동안 무언가 뜨거운 것이 밑바닥 치밀어 오른다.

뭐지. 눈물인가. 아니면 그때로 돌아가고픈 그리움. 그것도 아니면.

웃긴다. 청승맞게 웬 감정.

 

중년의 내가 돌아보는 와중에 바로 내 앞에서 누군가 서있다.

나였다. 정말 나였다.

다가가는 순간 그는 무언가에 그리도 생각에 잠겨있다.

그랬지.

그랬었지.

지독한 열등감의 나에게 대학이라는 교정은 모든 게 자유의 해방구였다.

따뜻한 햇살과 편안한 바람, 그리고 신선한 공기들. 해방의 기운이 느껴지는 모든 것이 축복의 순간이었다.

 

스무 살의 새파란 젊음에서 이제는 사십대 중반의 고개를 깔딱거리는 아저씨의 모습으로 변해버린 나는 그대에게 무슨 말을 해주고 싶은가.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라고.

아니면 쓸데없는 공상을 쫓지 말라고.

그것도 아니면 너무 인생을 진지하게 살지 말라는.

하나하나가 기억속의 피뢰침을 점화시키더니 이제는 까마득히 잊혔던 영상들이 점점이 떠오르게 한다.

그랬지. 그랬었지.

비가 오는 가운데 우산도 없이 노천강당 맨 뒤에 고고한 척 앉아 하염없이 앞쪽의 사람들을 바라보았었지.

왜 그랬었지.

불안, 공포, 콤플렉스, 방황, 기다림, 기대…….

현실과 세상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사람들과 잘 어울릴 수 있을까.

푸른 청춘의 삶을 동아리며 학회며 무던히도 쫓아다니며 보내었던 그대.

가슴속의 갈증을 풀기위해 나란 존재를 찾기 위해 미래의 허상을 쫓기 위해 무던히도 갈구하였었던 그대.

 

나오려는 발걸음을 다시 뒤집으며 그 시절의 풍경과 나를 한 번 더 가슴에 담아두기 위해 바라보았다.

나도 정말 나이가 들었구나.

나도 그 시절의 젊은 청춘이 그리워지는 나이가 되었구나.

앞으로 십 년 후 오십대의 내가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때 그때는 어떤 기분일까.

또 다른 그리움일까. 후회일까.

 

한 그리움이 그때의 그리움을 사무치게 안으며 고한다.

안녕. 그대. 시리던 내 청춘.

정말 사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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