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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7일 09시 31분 등록

4. 탐욕의 신화 
 
능선을 따라 꾸불꾸불 나 있는 길 위로 덤프트럭들이 흙먼지를 일으키며 지나갔다. 언덕을 넘어서자 산허리를 깎아 내는 포크레인의 굉음은 숲 속의 숨통을 조르고 있었다. 산 중턱에 위치한 공사현장이었다. 땅 속에서 무슨 보물이라도 찾는 듯, 산을 파 들어갔다. 현장에 도착한 나는 포크레인 가까이에 다가갔다. 진흙탕에 고인 물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발을 옮겼다. 오른 발을 내딛는 순간, 멈칫했다. 뱀 한 마리가 똬리를 틀고 있었다. 발이 땅에 붙어버렸다. 돌이 된 느낌이었다. 그 녀석의 눈빛은 매서웠다. 조금씩 움직일 때마다 머리는 나를 향하고 있었다. 포크레인 정기사가 나뭇가지를 들고 다가왔다. 나에게 정신이 빼긴 틈에, 정기사는 능숙하게 뱀을 낚아채고는 빨간색 자루에 담았다. 그 자루에는 이미 여러 뱀들이 뒤엉켜서 꿈틀대고 있었다. 
나는 현장 사무실로 돌아갔다. 소장은 한 손에는 전화기를 붙잡고 다른 손에는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눈이 따가웠다. 이 곳에 온지 일주일 남짓, 나는 아직도 적응하지 못한 채 모든 것이 낯설었다. 담배연기를 보면서 나도 함께 창 틈으로 스며 나가고 싶었다. 정기사가 들어왔다.  

“소장님, 다 끓였습니다.” 정기사는 누런 이빨을 드러내며 말했다.
“한기사 같이 먹자, 그래야 올 겨울 따뜻하게 지낼 수 있어”

“아뇨, 저는 괜찮습니다.” 나는 핑계거리를 찾지 못했다. 그냥 싫었다.

정기사는 한 손에 까치독사 머리를 엄지와 검지로 잡고, 입가로 가져가서는 입김을 불었다. 독사의 독보다 자신의 입김이 더 독할 거라며 역겨운 입 냄새를 뿜어댔다. 뱀을 끓인 솥에는 노란 기름이 둥둥 떴다. 곧 이어 소장은 정기사 손에 있던 독사를 건네 받고는 껍질을 벗겼다. 핏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그리고 휴대용 가스버스에 불을 켰다. 집게로 독사를 잡고 굽기 시작했다. 독사는 타 들어가면서 온 몸을 비틀었다. 비명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그 대신, 살 타는 연기가 산으로 퍼져 갔다. 시끄럽게 짖어 대던 누렁이도 꼬리를 내리고 집으로 들어갔다. 금요일, 탐욕을 채우기 위한 의식이 시작되었다. 정기사는 나에게 다가와서 말했다.

“여자에게 사랑 받기 위해서는 꼭 필요한 정력제야, 빼지 말고 먹어봐”

정기사는 혀를 날름거리더니, 침을 삼켰다. 그리고는 가까이 오더니, 귀에다 속삭였다.

“너 여자하고 처음이지?” 순간, 나는 정기사 가슴을 밀쳐내며, 소리쳤다.

“미친 놈”
현장 사무실 문을 세게 닫아 버렸다. 멀리서 소장과 정기사의 비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창문 밖으로 탐욕에 눈 먼 사람들이 종이컵 하나씩 들고 줄을 섰다. 해가 저물어가면서 검은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중에서 정기사와 소장의 그림자는 유난히 길어 보였다.
 
주말이 지났다. 정기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소장은 전화를 해보라고 말했다. 휴대전화는 신호음만 들릴 뿐이었다. 집으로 전화했다. 동생인 것 같았다.

“형, 병원에 갔어요”
“왜?” 나는 다급하게 물었다.

“어제 뱀한테 물렸어요”

금요일 저녁, 집으로 가는 정기사의 모습이 떠올랐다. 몇 일 동안 괴롭혔던 살모사 어미와 새끼를 기어이 떼어 놓고, 어미는 뱀탕에 넣고 새끼들은 작은 병에 담아서 집으로 가져갔다. 친구들에게 보여주겠다면서 말이다. 가져 가지 말라고 말렸지만 소용없었다. 현장소장과 나는 다음날, 병원을 찾았다. 정기사는 오른쪽 검지손가락이 잘린 채로 누워 있었다. 그의 얼굴에는 핏기가 없었다. ‘살모사는 태어나면서부터 이미 치명적인 독을 가지고 있다’고 병원관계자는 말했다. 조금만 늦었어도 손 전체를 절단해야 했었다. 현장 소장의 얼굴 표정이 어두웠다.   
소장은 낮부터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나는 그의 차를 운전해서 돌아왔다. 숙소에 도착했지만 그는 다시 술집을 찾았다. 피곤했던 나는 먼저 숙소로 들어갔다. 잠깐 눈을 붙인다는 생각이었는데, 일어나보니 저녁 12시가 지나가고 있었다. 소장에게 전화를 했지만 받질 않았다. 숙소 옆에 새워두었던 그의 차도 없었다. 나는 시동을 켰다. 어두운 산길을 올라갔다. 산은 낮 동안, 인간에게 고통 받은 것에 대해 침묵하고 있었다. 숲의 신 ‘사티스’가 모든 소리를 삼키고 있었다. 현장에 도착하자 소장의 차가 보였다. 그 쪽으로 걸어가면서 자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가까이 갔을 때는 그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불길한 예감이 엄습했다.

나는 현장 사무실에 가서, CCTV를 켰다. 4시간 전의 녹화화면을 뒤로 돌렸다. 마치 시간을 주관하는 크로노스(Chronos)신이 된 것 같았다. 빠른 배속으로 그의 모습을 찾았다. 현재의 시간으로 다가올수록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미 몸은 땀으로 흥건해 있었다. 그런데 그의 모습 대신에 다른 물체의 모습이 보였다. 클로즈업해서 확대했다. 현장에서 가장 깊은 맨홀 구멍으로 뱀 한 마리가 지나가고 있었다. 6M 이상의 깊이였다. 손전등을 들고 나는 맨홀로 다가갔다. 그 속으로 빛을 내려 보냈다. 사람의 모습이 보였다. 엎드린 채로 있어서 얼굴 대신 뒷머리가 눈에 들어 왔다. 나는 경찰에 신고를 했고, 잠시 후에 119가 현장에 도착했다. 119대원 한 명이 밧줄을 타고 내려갔다. 밑에 도착하자, 잠시 후에 “찾았다!”는 라는 소리가 산 전체로 메아리 쳤다.

밧줄을 통해 누군가 올라오고 있었다. 조금씩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얼굴을 가까이에서 보았을 때 등줄기부터 소름이 돋고 머리털이 서 버렸다. 현장 소장이었다. 목 주변에 하얀 뱀 껍질이 보였다. 허물을 벗는 모양이다. 한쪽 눈은 뱀에게 물렸는지 이빨자국이 선명했다. 다른 한쪽도 감겨있었다. 마치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인 사람처럼 말이다. 탐욕의 눈이 모두 감겼다. 누가 뱀으로 변신한 것일까? 아니면 둔갑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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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7 14:00:38 *.51.145.193

한 편의 소설입니다. 흥미진진합니다.

확실히 육성으로 들을 때보다 활자화 되어 읽을 때가 상상력을 높이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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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7 19:12:02 *.47.75.74

부산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네요,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도

마음 편한 친구와 나눌때, 상상력에 날개를 다는것 같습니다.

재용씨가 그런 친구입니다. 앞으로 평생 함께 갈 친구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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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7 23:11:55 *.229.239.39

신화속에 나오는 이야긴가요? 현장 이야기를 하는데...왠 신화의 탐욕이 등장 하는지 잘 이해가 안가서 머물러 있네요. 아 참, 승욱 이와 재용이는 다른 동료들 둘러보고 힘을 갖도록 격려 해 주세요^^ 나는 새로 시작하는 맘으로 변신 이야기로 돌아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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