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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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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17일 10시 59분 등록

흐르고 흘러라, 아무것도 아니었던 것처럼.

 

큰 아이가 요즈음 변신 로보트에 환장해 있다. 그 덕에 우주를 누비던 로보트가 이내 람보르기니로 바뀌는 모습을 자주 본다. 조각 조각은 위태하게 이어져 관절을 이루고 그 관절이 앞으로도 움직이고 뒤로도 움직인다. 그렇게 한 참을 가상의 적과 싸우다가 갑자기 로보트는 관절을 완전히 구부리고, 꺾고 대가리를 심장 쪽으로 쏙 처넣어 람보르기니가 된다. 그리고는 굉음을 울리며 간간히 선인장이 동상같이 서 있는 텍사스(천박한 제국 패권주의는 바다 건너 무던한 직장인의 도로에 대한 이미지까지 그들의 것으로 앗아갔다.)의 황량하지만 쭉 뻗은 도로 한가운데로 유유히 사라진다.

 

변신 이야기라는 책을 읽고 쓴다는 글이 고작 변신 로보트를 떠올리는 상상력의 빈곤함을 보아주지 못하겠다. 머리를 세차게 흔든다. 신화 속에서 변신의 모습을 생산해내는 메커니즘이 진리에 다가가려는 인간의 발버둥이라면, 장난감의 잗다란 변신의 모습으로는 그 큰 사태를 설명할 수 없다.

 

봄 햇살이 난반사 되는 날, 강둑에 도반들과 같이 앉아 두 개의 강이 어우러지는 광경을 보는 것은 환희다. 그 환희 속에서 한 사람을 바라 보던 백 개의 시선과 그 백 개의 시선에게 던지는 명징한 진리 하나, 流水之爲物也 不盈科不行 (유수지위물야 불영과불행). 벼락 같은 금언(金言)에도 그 뜻을 제 것으로 만들어내지 못하는 답답함이 오줌을 더욱 급하게 하였다. 화장실에 갔다 나오니 이전에 보지 못한 뚜렷한 두 개의 강, 그 강을 아우르는 산이 이제야 보인다. 그런데,

 

만유(萬有)하는 생명과 물산(物産)들이 서로 다르지 않고 같다면 저 강물은 하나인가? 둘 인가? 저 물은 어디에서 오는가? 저 물 안고 돌아가는 저 산은 또 무엇인가? 내가 싼 오줌은 나인가? ‘가 아닌가? 조금 전까지 내 안의 장기들과 뒤섞여 있던 것인데 이제는 나의 밖으로 나왔다고 해서 가 아니게 되는 것인가? 그래 좋다. 내가 아니라고 치자. 그렇다면 오줌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죽은 것인가? 산 것인가? 죽은 것도 산 것도 아니라면 변신(變身)인가? 전신(轉身)인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답답함에 목구멍이 쩌억 갈라지는 갈증까지, 갑갑하다.

 

내 오줌이 한 때 였다면 오줌과 나는 그 근본이 다르지 않았고 나의 밖으로 내 보내진 지금의 사태는 단지 내 모습이 오줌으로 일부 변형된 것이 아닌가. 그래, 변하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나도 오줌과 마찬가지로 무엇인가와 그 근본을 같이 하였으나 그것이 변하여 내가 되었을 터인데 그 무엇은 어디에 있는가. 머리 속이 갑자기 어지러워진다. 여량 마을 앞, 두 개의 강이 어우러지는 광경을 남의 일처럼 바라 본다.

 

봄날의 환희를 즐기는 대신, 쓰잘데기 없는 질문을 쏟아 놓는 것이 처연하다. 생각은 다시 일어난다. 저기 어우러지는 강은 두 개인가? 하나인가? 하나라면 왜 갈라지고 두 개라면 왜 합하여지는 것인가? 어지럽다. 저 강물 안고 휘감아 도는 저 산은 또 무엇으로 비롯 되었는가? 물은 산에서 나오는데 산은 어디에서 오는가? 무엇이 변하여 된 것인가? 급기야 내 머리는 싸이렌을 울려댄다.

 

와 산과 강이 같은 원형의 다른 모습이라면, 풀도 나무도 산도 강도 너도 나도, 모두가 같이하는 그 원형질의 무엇이 있을 터. 내 사유의 진전은 여기 까지다. 정신건강상으로도 그렇고 스스로를 더 이상 제어하지 못하면 오늘 이 자리, 뜨지 못한다. 그러나, 신화를 연구하는 캠벨 할아버지는 내가 죽도록 고민 때리고 있는 이 변신이라는 주제에 실마리를 제공하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죽으라는 법은 없다.

 

어느 날 해변을 걷던 중 나는 신기한 경험을 목격했어요. 황소 모양의 원형질이 풀 모양의 원형질을 먹는 것 같았고 새가 물고기를 잡아먹는 광경도 새 모양의 원형질이 물고기 모양의 원형질을 먹는 것 같았어요. 많은 사람에게 만물의 근원으로서의 이런 놀라운 심연 체험이 있을 겁니다.(신화의 힘 에서)

 

그 심연 체험의 놀라움을 공유할 수 없어 한스럽지만 나에게 울리는 목소리 하나가 있었다. 우리는 모두 원형질에서 변신한 모두이자, 하나다. 그렇지 않은가. 만물이, 그리고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변신 이야기의 주제를 가진 신화였던 거다.

 

저 강물이 저리 흐르는 것은 지상에서는 결코 만나지 못할 산을, 바다에서 만나는 신화를 만들어내기 위함이다. 산은 바다로 갈수록 낮아지고 낮아진다. 결국 제 높이를 물의 높이와 같게 하기 위함이다. 강물이 산을 넘지 않고 산은 강을 제멋대로 흐르게 놓아 둔다. 이 사태는 산과 강이 서로를 사랑하여 끊임없이 염탐하고 제 모습을 상대의 모습으로 변신해 가는 과정이다. 서로에게서 나고 서로를 에둘러 휘돌지만 지상에서는 길항을 거듭하다 결국 바다에서 만남으로 그들의 신화는 완성된다. 이것은 다시 바다의 신화로 이어지고.

 

태풍이 인다. 거대한 아가리를 벌리고 노도 같이 밀려 오다 지상에서 무섭게 깨어진다. 그 큰 눈이 천천히 아주 천천히 돌아가며 대륙을 삼키고 강과 산의 신화를 삼킨다. 그 태풍의 에너지는 무엇이 변하여진 결과인가? 그 힘은 어디에서 오는가? 잔잔한 바다도 태풍으로 변하여 다시 산과 강을 겁탈한다. 그 태풍과 그 비가 다시 온 산과 대지에 뿌려지고 그 뿌려진 물, 봄날 햇살에 여량 마을 앞에서 목말라하는 가 다시 마신다.

 

오줌이 마려온다우주가 변신하려는 모양이다.

 

(변신의 신화학, 그것은 원형질을 거부하여 그것으로부터 끊임없이 도망치려 하지만 결국 원형질로 돌아가기 위한 발버둥이었나.)

IP *.51.145.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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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7 14:19:30 *.118.21.136

요즘 우리 중 나의 생각을 잡아 끄는 사람이 장재용이고 당신의ㅡ글입니다.

환장해 있다 라는 어감의 솔직함.

원형질이라는 단어를 대하는 느낌은 비슷할터인데...

이런 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재능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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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7 23:22:01 *.229.239.39

재용이 글을 대하다 보면, 산업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같지 않다. 뭐랄까? 어느 조그만한 마을이 있는데..거기 사는 사람들은 시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래.. 이런 문장이 책을 읽어서 되는 것인지,아니면 평소 그런 생각을 하고 지내서 그런것인지를 알고 싶다. 글속에서 자연을 보는것 같아서 나들이 나온 느낌을 받고 난 이번주 과제에 재 도전 하기 위해 돌아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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