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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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떴다.
알람은 아직이다. 가끔 이런 현상이 생긴다. 일어난다.
잠과의 씨름을 안 해도 되는걸 보니 제법 나이를 먹었나 보다.
냉장고에서 사과 한 알을 꺼냈다. 문경에서 주문한 사과다. ‘사과는 일교차가 커야 맛이 좋다. 그래서 문경 사과가 맛있다’아…일교차가 크면 사과 맛이 좋아지는 구나. 장님 꼬끼리 만지듯 얻어들은 정보로 알게 된 얄팍한 지식이다. 제철은 아니지만 사과 맛은 괜챦다. 고시 공부한다고 절로 들어간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사과 좀 부탁합니다’
요즘은 전화 한 통이면 왠 만한 것은 집까지 택배가 오는 세상이다. 전화도 귀챦으면 메일로 한다. 사람과 사람이 통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필요물건은 조달이 가능한 그런 세상에 살고 있다. 그런데 굳이 내게 부탁을 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내가 주문을 해야 사과 맛이 더 좋단다. 농장주인은 억울해 한다. 늘 좋은 사과 보내 려고 노력한다고. 어쩌랴 사과를 먹어본 사람들의 의견이 그런데.나 또한 기꺼이 응해준다. 왜냐고?
뭐 내가 돈을 지불하는 것도 아니고 전화 한 통 이면 되는 일이다. 전화 한 통 했을 뿐인데, 꼭 내가 사과를 사준 것 같이 기분이 좋다.
덩달아 우리집에도 한 상자, 엄마집에도 한 상자, 동생한테도 한 상자, 사과를 유난히 좋아하는 그에게도 한 상자. 늘 이렇다. 사과 한 상자야 비싸 봐야 10만원을 넘지 않는다. 한 상자 한 상자 하다 보면 이삼십은 훌쩍 넘는다. 이렇때 생각한다. 돈은 왜 버는가…좋은 사람과 나눌려고 번다. 무엇인가를 나누는데 돈만한 놈이 없다. 돈벌이를 하는 내가 좋은 이유다.
한입 베어 무니 맛있는 과즙이 흐른다. 몽롱한 아침시간에 정신이 번쩍 든다. 책을 보고 108배를 하고 샤워를 하고 아침을 먹는다. 잡곡밥, 된장국, 정구지와 함께 담은 열무김치, 김, 고추멸치조림. 우리집은 남자아이 둘, 우리부부, 시어른들, 시동생 어른이 일곱이다. 언제나 식사를 할 수 있는 상태가 유지되는 집이다. 옷을 입고 배낭을 매고 집을 나선다. 출근이다. 이제 근력운동이 필수인 나이라고 누누이 강조한다. 운동하면 요즘은 헬스클럽을 생각한다.
잘생기고 몸매 좋은 트레이너가 있는 헬스장. 운동하는 맛이 난다. 정해진 시간과 돈을 투자해야 하는 일이다. 둘 다 여의치 않은 상황이다. 생활속에서의 운동실천, 바뀐 나의 운동형태이다. 이른 아침에 잠도 깨고 명상도 할 겸 108배, 20분소요, 힙업에도 효과가 좋다. 특히 여자에게 더 좋다고 한다. 불자는 아니다. 그냥 하는 거다. 나를 낮추는 운동, 마음을 낮추는데 몸부터 낮추는 것이 좋다. 집(이문동)에서 전철역(회기)까지 걷기. 편도21분 소요. 출퇴근 합하면 42분 걸린다. 전철역 환승할 때 에스컬레이터 타지 않기. 계단 오르내리기. 하루 운동으로는 충분하다. 운동화를 챙겨 신었다. 마을버스 정류장을 지나 한국외국어대학교 안으로 진입. 아침 시간의 학교는 한적해서 좋다. 봄이면 양지바른 꽃밭 가장자리에 보라색 제비꽃이 제일 먼저 눈에 뛴다. 보도 블럭 사이에 노란 민들레도 웃고 있다.
사람 같으면 집이 너무 좁아요. 사람들이 막 밟아요. 이렇게 불평을 하지 않을까 싶다. 아랑곳하지 않고 예쁘게 웃고 있다. 걷다 보면 건물 외벽이 유리인 건물이 나타난다. 질끈 묶은
머리, 젊지 않은 피부, 짧달막한 키에 운동화까지 신었으니 볼만하다.
그런데도 거울 앞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옆모습도 한번 보고 앞모습도 한번 본다. '참..여자라는 족속들이란' 혼자 중얼거린다. 사회과학관 앞을 지나려는데 현수막이 보인다. 눈에 들어오는 글귀 중에 유독 커다랗게 보이는 글자. ‘가치투자’ 무슨 내용인가 다시 본다. 한국증권거래소주최 파생상품 경시대회 수상축하 현수막이다. 가치투자라는 네 글자만 보면 마음에서 이상한 것이 꿈틀댄다. 속으로 중얼거린다. 이건 직업병이다. ‘개뿔! 가치투자 좋아하네’
입 밖으로 내 뱉지는 않는다. 아니다. 가끔 입 밖으로 내뱉어 보기도 한다.
그곳에도 영웅의 여정은 필요하다. 시련의 시간도 있다. 인내 해야 하는 시간이 많이 필요할 수도 있다. 아주 많이. 오래 기다려 빛나는 진주를 만나겠노라고 투자한 주식이었다. 천연진주인줄 알고 품고 있었는데, 진주가 아니란다. 반짝이는 유리알도 아니란다. 그냥 쓸모 없는 쓰레기란다. 흔하디 흔한 작전종목도 아니었다. 고갈되어가는 탄소에너지의 대안으로 영원히 없어지지 않을 태양에너지를 생산하는 기업이었다.
현수막이 걸려있는 사회과학관 앞을 지나 주택가로 접어들었다. 십 여세대가 살고 있는 공동주택입구에 벗꽃이 피었다. 어제는 못 보았는데. 활짝 피었다. 단독주택 담장에 복숭아 꽃도 얼굴을 내밀고 있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봄 꽃들이 미모 경쟁 중이다.
10여년을 넘게 살아온 동네. 자동차를 타고 마을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탈것을 타고 다니느라 무심히 지나던 길. 그 길에 예쁜 꽃과 봄바람이 있다. 아주 오래 전 각각의 사연을 가지고 변신한 요정들이 여신들이 그곳에 살고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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