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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3일 20시 30분 등록

언젠가 과수원을 해보고 싶었던 적이 있다.  젊어서 늙은 다음에 그러리라 생각해 보았던 일이다.  지금은 과수원 하겠다는 생각을 절대 하지 않는다.   과수원 나무들이 불쌍해서다.   지금 처럼 잎이 덜난 상태에서는  더 그리 보인다.  위로 자라야 할 가지들이 전부 옆으로 퍼져있다.   과일이 열리면 따기 쉽게 하기 위해  하늘가지들을  어려서 잡아매어 길들여 놓았다.   머리박고  다리를 모두 편 채  거꾸로 선 낙지 모양이다. 

 

나무는  하늘을 향해 커야  멋지다.    푸른 하늘을 향해 바람에게 손을 흔들어야  나무 답다.  그것이어야하는 그것일 때  저답다.   모든 자연은  자연스러울 때  자연답다.   작가 역시 그렇다.  글은 기예가 아니다.  문장은  작가의 속에 쌓인  무언가가 흘러 나오는 것이다.  그 사람의 진액이 묻어 나온  글이 좋은 글이다.    나는   글을 배워 본 적이 없다.  앞으로도 배울 생각이 없다.  그저 저 답게 쓰면 된다는 생각이다.   나는 과수원의 나무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책을 읽다 문득 배우게 되면 익혀 쓰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그저 내키는대로 쓸 것이다.  나는 제멋대로 자란 나무가 좋다.  글도 그렇다.

 

연구원들의 글을 본다.  한 두 사람을 빼놓고는  전에 글을 써 본 적은 없어 보인다.   그러니  잘 쓸 때도 있고 잘 못 쓸 때도 있다.  자꾸 쓰다 보면 나아진다.  빨리 나아지지 않는 사람들도 있는데,  그건 시간의 문제일 뿐이다.  더딘 사람은 신을 닮아서 그렇다.  신들은  무르익을 때를 기다릴 줄 알기 때문에 바삐하지 않는다.   신은 결함이 많은 사람을 좋아한다.   내가 신이라도 그렇겠다.  

 

8기 연구원 각자 몇 편의 칼럼을 올려 두어  읽어 보았다.    한 사람씩 그동안 올려 둔  몇 편의 글들을  비교해 보았는데,  좋은 글이 있고 그렇지 못한 것도 있다.   예를들어 진성희의 글은 대단히 평이하다.  지금은 별로 볼 것이 없다.  그러나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의 비교는  현재로서 매우 좋다.   왜 여러편의 글들 중에서 이 글이 가장 좋을까 ?    하영목의 글 역시 대단히 평이하다.   역시 지금은 별로 볼 것이 없다.  하영목의 칼럼 중에 눈에 띄는 것은 없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사단이 난 후,  여럿이 사과의 글을 올린 글들 중에  하영목의 글이 유난히 눈에 띈다.   왜 그럴까 ?    

 

같은 사람이라도 두 개의 조건이 맞아 떨어지면 잘 쓰게 되어있다.   첫 째는  생긴대로 쓰면 된다.   잘쓰는 사람도 있고 못 쓰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상황 속에서 스스로 인식한 것을 생긴대로 쓰면 글에 무언가 진짜가 묻어 있다.   그게 대단한 매력이다.   진짜가 아니면 공명되지 않는다.   제 글투로 제 멋에 겨워 써야  푸른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드는 것 같다.     둘째는  제 관심사가 되면 내용이 생긴다.  글을 잘 못쓰는 사람도  이 대목에 이르게 되면  훌륭한 글을 써 낼 수 있다.   무엇에 대해 쓰느냐가  품질을 결정하는 관건이 된다.  그러니 문체도 내용도 제것을 다루어야 한다.  제 것이 없으면  제 글도 없다.    이것이 글쓰기의 바탕이다.   그 외의 것들은  기예이니 차차 배우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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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3 22:23:24 *.107.137.43

생긴대로  쓸것. 관심사로 글을 바라볼 것?  ...지금은 사부님 말씀대로 볼것도 없고 평이하지만 문체도 만들고 (자연스럽게) 내용도 제것을 다루도록 열심히  하렵니다.

무르익을 때를 기다린다는 말에도 힘을 얻고 갑니다.  사부님 고맙습니다. 진성희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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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00:59:06 *.36.14.34

저는 작곡가 거쉰의 불안을 줄곧 생각해 왔습니다. 재즈풍의 교향곡 <랩소디 인 블루>로 생에 다시 없을 성공을 맛보았지만 제대로 된 음악 교육은 받지 않았던 사람이었죠. 그 바닥 없는 불안 때문에 그는 다른 유명한 작곡가를 찾아갔습니다. 그러나 그 작곡가는 거쉰이 벌어들이는 액수를 전해듣고는 도리어 거쉰에게 배우고 싶다고 했습니다.

 

저는 아직도 거쉰의 불안을 공유하고 있습니다(늘 생각합니다). 귀가 팔랑귀라 누군가가 전해주는 제대로 된 팁이라면 제깍 받아들일 태세입니다. 저에게도 필히 씨앗이 있을진대 도대체 어떻게 자라야 하는지 어리둥절한 상태랄까요?

 

그런데 사부님의 말씀을 듣고나니, 이토록 명쾌할 수가 없습니다. 예전에 한 선배가 사부님께서 가끔 툭툭 던지는 말 속에 깨달음이 있다고 했는데 당시에는 고깝게 들리지 않았던 게 사실입니다(지송). 그런데 이제 얼핏 알 것 같습니다. 누구라도 사부가 될 수 있지만, 사부님은 진짜 사부님이시네요.^^

 

사실 제가 생일날 받은 꽃다발이 두 개 있었는데, 오늘 집에 돌아와보니 어머니께서 꽂꽂이를 해버리셨습니다. 핀에 꽃혀서 줄기는 빳빳한 채 고개는 푹 수구린 꽃들을 보니 그렇게 화가 날 수가 없더군요. 미학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어머니를 다그칠 뻔했습니다. 응당 꽃은 아무렇게나 꽃아야 맛인것을.

 

사부님 덕분에 편한 마음이 되어 잠자리에 들 것 같습니다. 저의 본질에 맡기겠습니다. 팔랑귀가 제 본질이라면, 아마 저는 나무라기보다는 담쟁이일지도 모르겠네요!

 

사부님과 선배님과 동료들을 열심히 기어오르겠습니다. 엉금엉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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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01:18:32 *.138.53.71

기예를 먼저 배우려고 하지 않았던 것이 얼마나 다행인지 모릅니다.

나 다운 것을 찾고, 나의 주제를 찾는 것이 먼저였습니다.

이제 계속 쓰겠습니다.

부족한 글이지만 그렇게 쌓아가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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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01:23:30 *.246.71.77

아직도 문체를 고민하고 있었는데... ㅋㅋㅋㅋㅋ

사부님께 메일 보내듯 써보려구요.

음.. 횡설수설만 어떻게 정리하면 되지 않을까요?

누가 봐도 "어? 루미다!" 이럴 수 있게~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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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08:27:50 *.163.164.177

사부님 저는 사부님이 전하시려는 주제보다도

다른데 마음이 꽂혔습니다.

 

"더딘 사람은 신을 닮아서 그렇다.

신들은 무르익을 때를 기다릴 줄 알기 때문에 바삐하지 않는다.

신은 결함이 많은 사람을 좋아한다. 내가 신이라도 그렇겠다."

 

작가론에 대한 싸부님의 말씀은 뒷전입니다.

더딘 사람은 신을 닮아서 그렇다

내가 모자라서가 아니구나.....한참을 글에 눈과 마음을 두고

위안 하나를 챙겨서 자리에서 일어납니다.

 

싸부님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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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08:54:46 *.36.72.193

아침 출근길, 친구와 통화하며 사부님 글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우리 사부님 글 이상해, 줄 칠게 너무 많아. 다 쳐야되. 문장마다 명문이야.

처음 읽을 때 마음에 와 닿는 것, 두 번째 읽을 때 와 닿는 것, 계속 읽다보니 다 쳤어."

 

마음을 계속 두드리는 문장들을 보며

결심도 생기고, 위로도 받고, 방향도 찾고, ...

 

전 우선 제가 '어찌 생겼는 지' 찾아야겠어요.

'나 어떻게 생겼더라?' 이 질문 가지고 갑니다.

 

싸부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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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14:13:11 *.51.145.193

말씀을 새기겠습니다. 생긴데로 쓸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작가론1~4'까지 찬찬히 줄 그어 읽고 손에서 흘러 나올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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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4 15:20:42 *.41.190.211

사부님, 지적 감사 합니다. "제 것이 없으면 제 글도 없다". "이것이 글쓰기의 바탕이다" 나의 고민을 글로 쓰게 될때, 가끔은 내용이 만들어 지는 신기함을 느꼈습니다. 글이 되는 분명한 지침을 받아 갑니다. 감사 합니다. 꾸 ~ 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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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문윤정
2012.04.25 23:46:15 *.85.249.182

저는 제 이야기하는것에 서툰 사람입니다.

앞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인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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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27 04:45:44 *.154.223.199

제 말투로 제 멋에 겨워 제 관심사에 대해 써서 제 생긴대로 자라는 나무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과수원과 나무의 비유가 쏙 들어옵니다.

한편 과수원 나무들 덕분에 먹고, 자고, 입고, 공부한 저로서는

낙지같은 나무들이 부모님 같이 연민스럽고요,

새끼 멕이고 가르치자고 농약중독 걸려가며 그 나무들에 추를 매달아 늘이는 농부들을 변호하고 싶기도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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