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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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를 아시지요? 적어도 이름 정도는 아실거예요. 그는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에피카스테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아비를 죽이고 어미를 범한다'는 신탁을 받아서 아버지에 의해 복사뼈에 쇠못이 박힌 채 산 속에 버림받았지요. 원래 아버지는 죽이라고 명령했지만, 소임을 맡은 양치기가 연민을 느껴 살려 두었던 것입니다. 누군가에게 발견된 오이디푸스는 이웃나라 코린토스의 왕에게 바쳐졌고, 왕의 사랑을 받아 왕자가 되었습니다. 그는 청년이 되어 자신의 신탁을 알게 됩니다. 운명을 피해 도망쳤으나 숙명적으로 아버지를 살해하게 되었지요. 그리곤 자신이 태어난 나라, 테베의 왕이 되어 어머니 에피카스테와 결혼하게 된 후에야 모든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결국 어머니는 스스로 목을 매 죽고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눈을 찔러 장님이 되었습니다. 쫓겨난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였고 신들은 오이디푸스를 축복했습니다. 훗날 그는 아테네에 정착해 그리스의 수호 영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를 죽일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니요. 너무 가혹한 것 아닙니까? 사랑을 받으며 커야할 아이가 버림받은 것도 슬픈 일인데 자신의 아버지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게 되다니 차마 떠올리기 조차 싫습니다. 그러나 신화학자 조지프 캠벨이 '신화의 주요 기능은 인간의 정신을 향상시키는 데 필요한 상징을 공급하는 것'이라고 말했듯이 신화를 사실로 받아들여서는 해석이 안 됩니다. 마음을 가다듬고 신화가 지금의 나에게 무슨 상징으로 다가오는지 곰곰이 생각해 봅니다.
저의 아버지는 말수가 적고 바깥 활동이 많으셨습니다. 피난민의 아들로 태어나 장사를 하시며 절대 안정지향적인 삶을 살아 오셨습니다. 아버지 인생에 큰 모험은 없었습니다. 큰아버님이 여러 사업을 벌이시며 흥망성쇠를 거듭하셨던 것이 이유인 것 같습니다. 큰아버지는 젊어서 크게 장사를 하다가 결국은 살던 집 마저도 경매로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반대로 아버지는 절대 망하지 않을 만큼만 일을 벌이셨습니다. 상대적으로 '유지하는 삶'이 아버지의 철학이 된 것 입니다. 절대로 빚을 지는 일이 없으셨고, 절약이 몸에 배어계십니다. 한 번 산 물건은 고장이 나도 버리지 않고 겨울에도 손자나 와야 보일러를 트십니다. 어렸을 때 저에게 하셨던 대로 손자인 민호가 수박을 먹을 때 빨간 부분이 남아있으면 '흰 껍데기까지 먹어도 되는 거야' 하시며 타박을 하십니다.
이런 아버지의 아들인 저도 모험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안정적인 점수대에 맞춰 대학을 선택했으며 등록금이 싼 공립대에 간 것을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하고 싶은 공부는 취미로나 했지 인생을 걸고 도전하지 못했습니다. 대학 시절 방황을 한다고 하긴 했으나 울타리 안에서 춤을 춘 것에 불과했습니다. 졸업 즈음엔 사회에 IMF 경제위기가 들이닥쳐 선뜻 나서기가 불안해 모교의 대학원을 선택했습니다. 그렇게 이십 대 후반이 되었습니다. 그때가 되서야 내 삶을 내가 살지 못한다는 자각이 생겼습니다.
그무렵 나의 화두는 '모험'이 되었습니다. 내 삶은 내가 선택한다는 의지가 삶의 수레바퀴를 움직이게 했습니다. 오랜 연애 끝에 확신을 가지고 결혼을 했고, 일하고 싶던 시민단체에 들어갔습니다. 하고 싶던 생태 공부도 시작했습니다. 요가 명상을 하면서 사회생활을 통해 번 돈을 투자해 인도로 유학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인도 유학은 실패로 끝났지만 내 인생의 '떳떳한 실패'로 남았습니다. 각종 아르바이트를 하며 다시 공부를 해 서른둘의 나이로 지금의 공기업에 입사를 했습니다.
아버지는 넘어야할 산이었습니다. 높게 막혀 있다고 넘어가길 포기했더라면 전 아직도 아버지를 증오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나를 이렇게 만든 것이 아버지 때문이라고 핑계 대며 쪼그라져 살았겠지요. 그러면서 아들 민호에게도 울타리를 만들어 주고, '이걸 넘어가면 안 된다, 넘어가면 인생 끝이다!'라고 주문을 걸었을 겁니다. 하지만 '내 인생은 내가 선택한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을 때, 아버지의 인생도 품어 안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제 안에 아버지의 모습이 있음도 인정하게 되었구요. 부족한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버지를 넘어라. 아버지를 죽여라. 그래야 너의 인생이 시작된다. 이것이 오늘의 제가 읽은 '오이디푸스' 이야기의 메시지입니다. 아버지 없는 아들은 없지요.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아들이 아버지를 뛰어넘어 왔기에 인간 사회에 발전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아들들에게 이 신화는 삶의 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이 될 수 있습니다.
<태어나서 5년 6개월>
이제 사진을 볼까요? 민호가 가장 좋아하는 놀이는 몸놀이인데 그중에서도 씨름이 주종목 입니다. 아빠를 이겨보고 싶어 하는 그 마음이 느껴집니다. 다섯 판만 하자고 약속해 놓고, 자기가 지면 꼭 더하자고 떼를 씁니다. 결국 민호가 이길 때까지 하게 되지요. 내가 쉽게 져주면 재미없으니 힘을 최대한 쓰게 하는 전략을 씁니다. 팔씨름 할 때는 온 몸을 실어 이겨보려는 눈빛에 깜짝 놀랍니다. 아빠를 이겨놓고는 세상을 다 얻은 표정을 짓습니다. 그리고는 자신의 전략을 옹알옹알 설명해 줍니다. 저를 이기려는 모습을 보면 인생에서 아빠라는 산을 넘어서야 한다는 것을 온 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싶네요.
아마도 이 녀석이 커서 나에게 반항하는 날이 오겠지요? 그때는 저 또한 지지 않고 버텨주겠습니다. 그게 아빠의 역할이니까요. 그러다 진짜로 아빠를 넘어서는 순간이 오면 덩실덩실 춤을 추며 기뻐하렵니다. 스승이 제자의 깨우침을 바라보듯이 말입니다.
오이디푸스 이야기 재미있다!!!! 연구원 1년차가 되었는데도 나는 여전히 변신이야기를 읽는대로 봐서 이해가 안되.
이런 나에게 이야기들에 숨겨진 뜻을 이해하기란...;;;; 그래서 지난 번 사부님 글에 댓글 달았다가. "얘야 그게 아니잖니?"라는.ㅋㅋㅋ
양갱오라버니가 풀어주니 아주 이해가 쉽구만요~~~~
매주 하나씩 풀어주세요~~~~!!!! 아니면, 가끔 하나씩이라도...^^
나는 언니오빠들의 애들과 관계를 들으며 우리 엄마아빠를 떠올리는데.
이번 오빠글을 보니, 엄마가 맨날 내게 '넌 어쩜 니 아빠랑 똑같니?'라고 할때마자 분노게이지가 막 상승했었거든.
도대체 나의 어디가 아빠랑 똑같냐며.!!!
받아들이기 싫었던거지. 근데 이제 조금은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나 역시도 내 안에 아빠를 죽이고, 더 나아지려고 발버둥 치고 있으니 말이얌~!!!
아. 간만에 오빠글보니 좋쿠나~~~~~ 목요일이 빨리 왔음 좋겠다!!!^^
일요일에 댓글을 달면서, 목요일 만남은 다들 잘 하셨나 궁금해집니다.^^
알아지는 것, 화요일이 땡7이 선배님들이 정한 마감일이고, 빵구나면 5만원의 벌금을 웨버님의 제안으로 정하셨나봅니다.
면접여행에서 뵌 7기 선배님들을 매주 만나게 될 걸 예상하니 반갑고 든든합니다.
요즘 변신이야기, 천의얼굴을가진영웅을 읽고 있는 시즌이어서 오이디푸스신화와 연결한 사진이야기가 즐겁게 읽힙니다.
인도유학, 생태, 요가, 연구원...모험이 멋지십니다. 아들과 몸놀이하는 까치집 머리 아빠의 모습도 멋지고요.
오래 연애한 이와 확신을 가지고 결혼하는 것도 안정지향적인 정체성이 더 많을 때의 모습에 정직한 선택이라고 생각했어요.
안정이 1순위 일 때인데 모험처럼 결혼하는 건 자기 정체성을 거스르는 것 같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