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

칼럼

연구원들이

  • 루미
  • 조회 수 2447
  • 댓글 수 14
  • 추천 수 0
2012년 4월 24일 01시 25분 등록

하니 아빠는 어디 있어?”

으응?”

그 날 밤은 잠이 오지 않았습니다.

 

아빠에 대해 한 번은 물어올 거라 생각했어요. 주변에서도 그 순간 할 말을 미리 생각해 두어야 한다고 했지요. 그 순간이 현실이 되었을 때 나는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걱정 시작됐지요. 누워 있어도, 밥을 먹어도, 길을 걸어도 걱정 됐어요. 하루가 무거워졌습니다.

 

난 원래 걱정 없이 사는 여자입니다. 걱정이 생기는 순간 타고난 낙천가의 기질로 없애버리거든요. 한 번 심호흡 하고 그래서 어떻게 할 건데?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어?”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면 걱정할 필요도 없는 거라며 씨익 웃었죠. 걱정하는 나. 내게도 낯선 모습.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마음에 들지 않아요.

 

아이를 가졌을 때도 걱정 없었어요. 내가 낳겠다는 데 누가 뭐라 그럴거냐 그랬죠. 아이 아빠와 헤어질 때도 문제없었어요. 둘이서 살아나갈 방법 하나 없겠냐고 그랬죠. 지금 나의 걱정은 아이에게 아빠의 부재를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건 답이 보이지 않지요. 그렇다고 버릴 수도 없어요. 거짓말은 언젠가 밝혀질 것 같고, 사실대로 말하기엔 너무 어린 아이죠. 어렸을 때 아는 게 좋을지, 아니면 좀 더 자란 후가 좋을지. 그러다가 민감한 청소년기에 알게 되어 방황하면 어쩌죠? 끝없는 걱정을 쫓다 난 처음으로 내가 내 문제에 진지해져 있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가볍게 스타카토처럼 살고 싶었는데 산다는 건 그런 것이 아닌가봅니다.

 

사람이 살면서 하는 걱정의 대부분은 쓸모없다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걱정은 내 삶에 대한 열망(욕심?)입니다. 우리는 열망하지 않는 일에 걱정을 쏟아 붓지 않으니까요. 살아가는 중에 내가 욕심나는 것을 걱정 합니다. 이루어지길 바라는 일의 이면에 걱정이 숨어 있지요. 걱정을 통해서 우리는 우리가 간절히 바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3은 대학을 떨어질까 걱정합니다. 그 안에는 원하는 대학에서 캠퍼스의 꿈을 누리고자 하는 열망이 있습니다. 결혼을 앞둔 신부는 옳은 선택일까 걱정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다.’의 해피엔딩을 꿈꾸기 때문이지요. 내가 내 생활에 대해서 내는 욕심을 쓸데없다 말할 수 있을까요?

걱정하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걱정만 하는 것이 문제겠지요. 걱정으로 인해 다른 일을 하지 못할 때, 다른 이들과의 관계마저 악화시킬 때가 문제인 겁니다.

걱정이 문제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으니 이제 건강한 걱정을 해볼까요?

 

백지를 준비합니다. 꼭 하얀색일 필요는 없겠네요. 빨간 종이 파란 종이 다 좋아요. 어딘가의 귀퉁이에서 쭉 찢어낸 종이는 아니었으면 좋겠네요. 우린 중요한 이야기를 적을 계획이거든요.

내가 가지고 있는 걱정을 한 두 문장으로 정리해 봅니다. 깔끔하게 정리해 볼 필요가 있어요. 구구절절 늘어놓는 건 사양입니다. 우린 걱정을 마주해 볼 계획이고 그러기 위해선 걱정이 무엇인지를 먼저 알아야 합니다. 간단하고 깔끔한 문장으로 자신의 걱정을 정리하는 건 대상을 마주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나의 걱정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되니까요. 나의 경우는 이런 문장이었어요. “하니에게 아빠의 부재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다음으로는 이유를 생각해 보기로 해요. 왜 이것에 나에게 걱정인가? 이유는 몇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요. 이유를 생각해보는 것만으로 나에게 이 걱정이 필요한 것인지 버려야 할 것인지 알 수 있지요. 나의 경우는 하니가 상처받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죠. 이건 하니에게나 나에게나 중요한 문제고, 그럼으로 고민의 필요성이 생기게 되죠. 이 단계에서 많은 걱정이 떨어져나갈지도 모르겠군요.

마지막으로는 대책을 강구하는 거죠. 어떤 대책이 있을까 고민하는 거예요. 나에게 필요한 질문을 마주했으니 그 대책도 진지하게 고민해야겠지요. 현실성이 없어도 일단 적어보세요. 많은 대안들을 생각해 보는 거죠. 느닷없이 멋진 아이디어가 떠오를지도 모르니까요. 그렇게 나온 대안들을 중 하나 혹은 몇 가지를 고른 후에는 뒤를 돌아보지 말아야 할 겁니다.

 

걱정 하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연스러운 모습이니까요. 하지만 걱정만 하는 것은 경계해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 신뢰의 절대적 부족이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걱정 앞에서 우리가 발을 동동 구르는 이유는 나를 믿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걱정을 이겨낼 수 있을지. 상처받고 쓰러지지는 않을지. 자기 신뢰감은 어느 날 주머니에 쑥 밀어넣을 수 있는 건 아니예요. 획득해야 하지요. 획득할 수 있는 방법은 내가 생각해 낸 최상의 대안을 최선으로 노력하는 것입니다. 내가 노력할 때 나의 자기 신뢰감은 커집니다. 자기 신뢰감이 커질 때 걱정은 조금씩 사라질 수 있습니다. 내가 잘 대응해 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기면 걱정 앞에서 당당해질 수 있는 거죠.

우리 둘이 잘 이겨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없을 때 아이 아빠가 없는 것은 초라한 걱정이 되었습니다. 나는 몇 마디 말로 쉽게 넘어갈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고 있었지요. 그렇게 해서는 자기 신뢰를 획득할 수 없습니다.

 

내가 생각했던 대안들은 세 가지 였습니다. 아빠 만들어 주기, 부재의 이유를 잘 설명하기, 아빠 빈자리 최대한 메꿔주기. 모든 것을 고려했을 때 가능한 건 세 번째 였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두 명분의 관심과 사랑을 쏟는 거겠죠. 아빠와 함께 하는 등반 대회는 내가 가면 되겠죠. 역기라도 들어서 체력을 키워 까짓거 안고 올라가 보는 거죠. 무거워도 내 딸인데요. 며칠 전에는 목마를 태워보겠다며 둘이 난리를 쳤죠. 둘 다 불안해서 서로를 부여잡으며 깔깔거렸습니다. 이렇게 시간이 흐르면 아빠에 대해 솔직히 말하고 이해하는 순간이 오겠지요. 오늘의 이런 시간이 쌓여 함께 힘든 시간을 헤쳐 나갈 수 있게 되겠지요.

 

나의 삶에 대한 열망. 걱정을 인정하고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바를 얘기해 주기 때문이죠. 구체적으로 걱정을 캐내고, 이유를 알아내 대책을 구상해요. 그렇게 내 삶 앞에 조금 더 진지해져요. 건강한 걱정으로 자기 신뢰감을 회복해 걱정을 두려워하지 않게 될 때까지.

하나의 걱정이 생기는 지점이 우리의 삶의 열망이 드러나는 순간입니다. 그때 우리는 자기 신뢰를 튼튼하게 만들 기회를 얻습니다.

나는 이 걱정거리를 종종 꺼내 볼 생각입니다. 시간이 흘러 다른 대안이 최상이 될지도 모르니까요. 그땐 새로운 대안을 부여잡고 노력해야겠지요.

당신의 열망은 뭐예요?

IP *.246.71.77

프로필 이미지
2012.04.24 01:30:42 *.138.53.71

동시에 올리는 이 타이밍이라니.

너도 올빼미형이로구나^^ ㅋㅋ

 

내가 아빠의 역할에 대해 고민하고 있을 때

루미는 엄마와 아빠의 두 역할 모두를 고민하고 있었다니.

참 대단하고 존경스럽다!!

 

프로필 이미지
2012.04.24 01:55:06 *.223.2.155

올빼미가 되고 싶었던 건 아닌데... 이건 순전히 5만원의 힘이야...

재경언니가 없었더라면 지금의 내가 없다니깐.

그건 오라버니도 마찬가지.. 두번째 오프 수업때 해준 이야기를 난 아직 기억하고 있다오~ㅋㅋㅋ 무섭지?

난 사실.. 앞에서 자상하게 끌어주는 부모의 역할에는 자신이 없어서

그냥 함께 걷는 부모가 되기를 바랄 뿐이야.

맨날 나만 생각하고 내가 좋을 일 좇아 가는 나를 보면서

하니가 자기를 생각하고 자기가 좋은 일을 좇아가기를 바라는 거지.

좀 안이한가? ㅋㅋㅋㅋㅋ

자기 일 때문에 엄마랑 놀아줄 시간 없다고 할 때 서운 하겠지만

자신의 세계를 찾아가는 당찬 걸음걸이라며 좋아하겠지.

프로필 이미지
2012.04.24 08:14:45 *.163.164.176

절대 안이하지 않지!!

내가 좋하하는 일을 좇아가느 것

그것

천복을 좇아 사는 삶 아니여!

그걸 안이하다고 할 순 없지.

프로필 이미지
2012.04.24 09:33:31 *.38.222.35

난 어릴 때 우리 엄마를 보며 우리 엄마는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거침없이 하는 이기적인 엄마'라고 생각한적이 있었거든?

물론 지금 내가 하는 걸 보면 우리엄마가 원하는 걸 했던 건 세발의 피지만..

 

그래도 그런 엄마 덕에 내가 지금처럼 내 멋대로 살 수 있는 것 같아.

하니도 엄마보다 더 제멋대로 살 수 있기를 몹시 바람.ㅋㅋ. 크게 될거야~

프로필 이미지
2012.04.24 22:32:49 *.223.2.155

나 굴대 잡고 있는 거얌?

ㅋㅋㅋ

미나야 너네 어머님은 자연스러운 분이셨다.

아침에 갑자기 나타난 나를 보고도 별로 당황하지 않으셨지

"사람 있는 줄 알았으면 좀 더 조용히 할걸." 그러셨지.

너랑 닮은 부분을 쉽게 찾을 수 있었어.

쉬는 날에도, 맨날 죽인다면서도 상추와 고추를 심으시는 모습을 보고

나도 많이 배워왔다.

다음 번엔 과일이라도 사들고 가야겠다.. ㅋㅋㅋ

프로필 이미지
2012.04.24 08:19:46 *.163.164.177
루미야 글을 읽다가 중간에서 슬쩍 접어두고

혼자서 종이 위에다... 이렇게 쓴다.

걱정 : 글이 잘 안써진다. 어떻게 하면 글이 잘써질까.

이유와 대안을 적어보다가...

자꾸 주저리 주저리 길어져서 다시 돌아왔다.

내 생각에는 3가지 대안 중에서.....

첫번째 대안이 현실에서 만들어졌음 좋겠다.

너에게도

하은이에게도 좋을...그런 대안과 현실이.

목요일 산에서 보자.

프로필 이미지
2012.04.24 22:38:46 *.223.2.155

이유가 참 중요한 것 같아요........

왜? 이게 먼저 어떻게? 이건 그 다음.

나도 첫 번째 대안이 제일 훌륭할거라는 생각이... ㅋㅋㅋㅋㅋ

내 마음에도 쏙 드는 대안이고 말이얌... ㅋㅋㅋㅋ

기다려봐요. 로미오를 보여드릴테니~ ㅋㅋㅋ

프로필 이미지
2012.04.24 09:35:29 *.38.222.35

일요일 종이위에 쓰고 있던 글이 이거로구나~~~

이런 심오한 글일줄이야.. 하긴 걱정이란 키워드가 나왔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하는거였다.

무한긍정주의자 이루미와 걱정이란 단어는 별로 어울리지 않으니 말이얌.

하니가 세상을 알아가기 시작했군.

그러지 않기를 바라지만, 혹시나 하니가 상처받기 전에 엄마의 사랑마데카솔을 듬뿍 발라놔.. 예방접종처럼.ㅋ

프로필 이미지
2012.04.24 22:40:48 *.223.2.155

사랑의 마데카솔. 표현이 마음에 쏙 드는군.

예방접종.. 이것도 마음에 든다.

그럴 수 있으면 좋겠지?

독감 예방접종이 독감 바이러스를 몸 안에 밀어넣는 거래잖아.

그걸 이기고 나면 면역이 생겨서 같은 바이러스를 이길 수 있다는 원리래지.

그런게 있으면 좋겠다. 생각거리를 하나 늘려주었군.

감사하다~ㅋㅋ

프로필 이미지
2012.04.24 13:24:08 *.192.175.177

우리 둘이 잘 이겨나갈 수 없다는 자신감이 없을 때 아이 아빠가 없는 것은 초라한 걱정이 되었습니다.

  

이 부분  '있다' 가 아닌감?

  

루미야, 열심히 잘 읽고 있다 ^^

 

 

 

 

 

 

프로필 이미지
2012.04.24 22:43:53 *.223.2.155

바로 수정했어요~ ㅋㅋㅋㅋ

어설픈 초고를 누군가가 읽어준다는 것만으로도 힘이 납니다.

더 좋은 글을 써내기 위해 나를 단련시켜야 겠다는 생각도 들구요.

생각은 나쁘지 않았으나 아직은 미숙하다는 느낌이 들 때

이런 언니의 의견이 힘이 되어주네요~

더 노력하겠습니다!!!!!!!!!

프로필 이미지
2012.04.24 17:07:09 *.143.156.74

루미가 말이야, 다른 일에는 가볍고 경쾌한데 하니 문제에 대해서는 아주 진지해.

아주 전략적이고 고심을 많이 하고 있는 것이 느껴져.

엄마이기 때문에 그럴거다.

딸이기만 하면 그런 고민이 안 나와.

하니가 우리 루미를 사람 만들었어.

 

하니야, 엄마 만큼만 살면 너는 잘 사는거다.

아주 훌륭하게 사는 거란다.

프로필 이미지
2012.04.24 22:48:17 *.223.2.155

하니가 없다면.. 나는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ㅋㅋㅋㅋ

여전히 도도하고 쿨하게를 목표삼아 살고 있었을지도.

지금처럼 때론 주저앉아 울면서 찌질해지는 생활은 상상도 하지 못했을 테지요.

언니의 말을 보고 순간 찔끔 했다는...

이건 연구원의 부작용일까요?????

1년이 지나니 눈물과 웃음이 헤퍼졌더라는... ㅋㅋㅋ

프로필 이미지
2012.04.29 05:11:07 *.154.223.199

걱정 더미에 쌓여 허우적거리던 와중에 읽었어요. 걱정 뒤의 열망을 살펴보라는 말씀 대로 함 해볼께요. 잘 읽었습니다.^^

덧글 입력박스
유동형 덧글모듈

VR Left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952 조선소(造船所) 연가 (May Day에 부쳐) [6] 장재용 2012.04.30 2215
2951 쌀과자 #4 _100세 [5] [1] 서연 2012.04.30 2507
2950 레이디 가가 : 그녀의 무의식과 신화의 원형을 찾아서 file [7] [1] 샐리올리브 2012.04.30 2538
2949 내 나이 40, 나는 왜 그토록 영웅을 꿈꾸었는가? [6] 학이시습 2012.04.30 2778
2948 아리아드네가 과수원집 2세대라면? [7] 권윤정 2012.04.30 2878
2947 이류 인생도 나쁘지는 않아! 그렇지만 [9] id: 문윤정 2012.04.30 2531
2946 #4. 차라리, 내가 터지고 찢어질 것을 [9] 한젤리타 2012.04.30 2795
2945 단상(斷想) 98 - 벚꽃 엔딩 file [1] 書元 2012.04.29 2507
2944 #27. 신치의 모의비행-편지를 쓰다 외 [12] 미나 2012.04.24 2173
2943 패러다임의 죄수들 [11] 열정조직연구가 2012.04.24 2380
2942 [일곱살 민호] 아비를 넘어라, 아비를 죽여라 file [11] [1] 양갱 2012.04.24 2318
» 걱정 하나 - 건강한 걱정을 자기 신뢰로 바꾸는 법 [14] 루미 2012.04.24 2447
2940 [재키제동이 만난 쉼즐녀1] - 제일기획 최인아 부사장 file [22] 재키 제동 2012.04.23 10205
2939 나의 작가론 4 [10] 부지깽이 2012.04.23 2340
2938 회사의 직원들은 어떤 영웅을 만나고 싶어할까? [8] 학이시습 2012.04.23 2295
2937 과수원집 2세대의 할 일 [14] 권윤정 2012.04.23 2951
2936 쌀 과자 #3_격자格子와 그물網 [4] [1] 서연 2012.04.23 2570
2935 고통에 대처하는 자세 [6] 장재용 2012.04.23 2304
2934 #3. 영웅이 되고 싶지 않은가? [5] 세린 2012.04.23 2376
2933 #3 당신에게 내재된 영웅을 깨우세요! [5] 터닝포인트 2012.04.23 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