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젤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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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차라리, 내가 터지고 찢어질 것을
#1 첫 번째 영웅이야기
큰 아들이 태권도 대회에 참가하느라, 온 가족이 아침부터 분주했다. 대회에 나갈 때마다 져 본적이 없는 아들은 자신만만이었다. 경기장에 도착한 가족은 아들모습부터 먼저 찾았다. 멀리서 대기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는 상대방 아이도 서 있었다. 키도 크고 날렵하게 생겼다. 보고 있는 아비도 이렇게 긴장되는데, 옆에 서 있는 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비로서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되지만, 내심 이번에는 실패를 맛보는 경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시합이 시작되었다. 서로 빈틈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두 손은 가슴 근처에 두고, 빈 구석이 보일 때마다 발이 허공을 갈랐다. 점점 간격이 좁혀왔다. 그 사이로 강렬한 눈빛이 흐르고, 상대방은 큰 소리로 아들의 기(氣)을 제압했다. 시작부터 상대방 발 놀림이 심상치 않았다. 쭉 뻗어오는 발은 마치 뱀처럼 움직였다. 잠시 아들이 당황하는 순간, 상대방의 빠른 발은 정확히 아들의 얼굴을 가격했다. 뒷걸음치는 아들을 향해 연속해서 발길질을 해댄다. ‘들어가, 더 들어가’ 옆에서 상대방 아비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맞고 있는 아들의 아비는 침묵이다. 겉으로는 모든 상황을 미리 예감이나 한 듯이 여유롭지만, 맞고 터지는 아들을 향한 아비의 마음은 성한 곳이 없었다.
집을 나서기 전에 읽었던 이아손의 모습이 떠올랐다. 켄타우로스 케이론으로부터 오랜 세월 동안 무술을 연마한 이아손, 그는 아르곤 원정대의 대장이 되어 황금 양털을 손에 넣게 되었다. 아마도 수 많은 고난과 시련을 이겨낸 신의 축복이었을 것이다.
시합이 끝났다. 두 아이 모두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주심이 상대편 아이의 손을 들었다. 처음으로 고개 숙인 아들의 모습을 보았다. 가까이 다가가 헬멧을 벗겨주었다. 얼굴과 귀가 벌겋게 달아 올랐다. “괜찮아”, “응, 다음에 이기면 되지 뭐” 애써 속상한 마음을 감추려고, 아들은 고개를 돌렸다.
#1 두 번째 영웅이야기
태권도 대회가 끝나고,
한참 아킬레오스를 상상하며 글을 써내려 가던 중이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아내와 둘째 아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들어왔다. “여보! 준상이가 다쳤어, 귀 좀 봐봐.”, 속이 타 들어가는 아내를 뒤로 하고 아들을 보았다. 얼굴이 흘러내린 눈물로 범벅이고, 귀에서 흘러내린 피로 옷은 피범벅이었다. 좌측 귀 윗부분이 심하게 찢어졌다. 바로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비상 깜박이를 켜고 정신 없이 차를 몰았다. 벌써 세 번째 찢어져서 응급실행이다. 처음에는 입술이 찢어지고, 두 번째는 눈이 찢어지더니, 이제는 귀가 찢어진 것이다. 그렇게 조심하라고 잔소리해도 소용 없었다. 크는 것이 어찌 부모 마음대로 되려나, 나도 그러했으니 말이다.
이번 에도 꿰매야 한다는 말에 아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주사 한 방에도 벌벌 떠는 녀석이라 아무래도 전신마취를 생각해야 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아들의 울음 소리는 더 커졌다. “준상아, 이제 초등학교도 들어갔는데, 씩씩해야지”, 아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아파 죽겠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라고 째려 보는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아침에는 큰 녀석이 얻어 터지더니, 오후에는 작은 녀석이 귀가 찢어져서 응급실에 오다니, 지난 주에 보았던 재용이의 ‘고통을 대처하는 자세’라는 칼럼 내용 중에 마지막 문구가 떠올랐다. ‘얼마나 더 큰 영웅이 되려 이리도 아픈 것이냐.’ 차라리 내가 얻어 맞고, 찢어졌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둘째 녀석의 전신마취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나서, 아들에게 다가 갔다. “준상아, 조금 있으면 의사 선생님이 안 아프게 꿰매 주실거야, 조금만 참자”,“응, 알았어, 근데, 주사는 안 맞지”,”주사를 맞아야지 마취가 되는 거야”,“싫어, 나는 주사 맞기 싫단 말이야”, 아들의 마음이 극도로 불안해졌다. 나는 아들을 데리고 잠시 밖으로 나갔다.
“아빠, 물 먹고 싶어”, “수술 때문에 지금부터 물을 마시면 안돼”, “아까는 꿰맨다고 해놓고, 수술이 뭐야, 저기 저 아저씨처럼 누워 있기 싫단 말이야”, 아들은 링거주사를 맞고 누워 있는 아저씨를 보았다. 나는 아들을 꼭 안아 주면서 말했다.
“준상아, 이제 받아들여야 돼, 지난번에도 와서 두 번이나 꿰맸잖아, 이번에도 잘할 수 있어”
“그래도, 엉덩이 주사는 맞기 싫어”
“주사 안 맞고 하면, 조금 아플 텐데, 괜찮아”
“응, 참을 수 있어”
“마취 안해도 참을 수 있어?”, “응, 참을 수 있어” 아들은 울음을 그치고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건지, 잘못 이해를 하고 있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의사와 상의를 했다. 부분 마취를 해서 하면, 조금 따끔거리고 괜찮을 거라고, 다시 무서워하면 그 때가서 전신마취을 하기로 했다.
수술실로 들어갔다. 아들 얼굴을 벽 쪽으로 향하게 했다. 곧이어 파란색 수술 천을 귀만 남겨 놓고 덮었다. 어깨는 내가 잡고, 팔과 다리는 아내가 붙잡았다. “조금만 참으면 돼, 준상아”, “응, 알았어” 아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씩씩해졌다. 의사가 들어왔다. 아들이 보면 기겁할 주사기가 손에 들려 있었다. 부분 마취주사기는 아들의 귀를 찔렀다. 처음에 움찔하더니 아들은 꾹 참았다. 하지만, 의사는 마취가 되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곧바로 바늘과 실을 준비했다. 보고 있던 나도 당황스러웠다. 예상대로 갈고리처럼 생긴 바늘이 들어가자, 아들은 비명을 질렀다. 두 번째, 세 번째 바늘이 들어갈 때 마다 고통은 계속되었다.
마지막, 일곱 번째 바늘이 들어갈 때쯤 마취가 된 것 같았다. 아들은 “이제, 그만하면 됐잖아”
라고 울먹였다. 잘 참아냈다. 씩씩했다.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어른도 참아내기 힘들었을 텐데, 눈물이 뜨거워졌다. 얼마 전까지 해도 초등학교 입학해서 학교 다니기 싫어했는데, 이제 다 컸구나. ‘신화의 힘’에서 나오는 원시부족 사회에서 ‘할레’ 의식을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성인이 되는 상징적 의식이었는데, 지금 아들의 모습도 그러했다. 아비와 어미가 꼭 붙잡고, 아들이 한 단계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이제 우리 가족의 영웅이었다. 그날, 미래의 영웅들을 위해 멋진 만찬을 베풀었다.
글을 읽으니...타임 머신을 타고 약 15년 전으로 가 보고 싶네... 우리도 비슷한 일들이 많아서 옛 생각이 나는 군... 준상이는 많이 나아졌는지...궁금도 하고, 잘 참아 냈다고 하니 대견 스럽네... 나는 좀 상황이 다르긴 한데, 둘째가 초등학교 들어가지 전 일인데,지금은 의젓한 대학생이 되었으니...벌써 15년 쯤 지난 일이야. 아내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 와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데, 둘째가 거실에서 놀다가 냉장고 문을 열고 쥬스 병을 거내다가 그만 미끄러져 병은 산산조각이 나고 넘어지면서 냉장고 모퉁이에 얼굴을 부딪혀 눈섭 밑이 찢어진거야.... 피가 너무 많이 나니까 병원에 가야 되겠다고 주섬 주섬 옷을 입고 밖에 나왔는데... 장대비가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내려 (아내가 운전을 할 수 없다고 생각이 들어서..) 윗 집에 올라 갔더니 마침 위집 아저씨가 일찍 퇴근하고 집에 있어서 도움을 받아 평촌 에서 서울 신림동 정형 외과까지 빗길을 무려1시간을 달려 도착했데... 우여골절 끝에 7바늘 꼬매고 집에 돌아올때까지 장대 비는 멈출줄도 모르고 내렸는데... 아들 눈 주위에 지금도 상처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나는 그때 외국 출장 중 이였지. 상처가 다 아문 뒤에 알게 되었으니...같이 살아주는 아내가 고맙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