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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30일 00시 10분 등록

4. 차라리, 내가 터지고 찢어질 것을

 

#1 첫 번째 영웅이야기

큰 아들이 태권도 대회에 참가하느라, 온 가족이 아침부터 분주했다. 대회에 나갈 때마다 져 본적이 없는 아들은 자신만만이었다. 경기장에 도착한 가족은 아들모습부터 먼저 찾았다. 멀리서 대기하고 있는 아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 옆에는 상대방 아이도 서 있었다. 키도 크고 날렵하게 생겼다.  보고 있는 아비도 이렇게 긴장되는데, 옆에 서 있는 아들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아비로서 이런 생각을 하면 안되지만, 내심 이번에는 실패를 맛보는 경험이 되었으면 하는 바램이었다.

시합이 시작되었다. 서로 빈틈을 찾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두 손은 가슴 근처에 두고, 빈 구석이 보일 때마다 발이 허공을 갈랐다. 점점 간격이 좁혀왔다. 그 사이로 강렬한 눈빛이 흐르고, 상대방은 큰 소리로 아들의 기()을 제압했다. 시작부터 상대방 발 놀림이 심상치 않았다. 쭉 뻗어오는 발은 마치 뱀처럼 움직였다. 잠시 아들이 당황하는 순간, 상대방의 빠른 발은 정확히 아들의 얼굴을 가격했다. 뒷걸음치는 아들을 향해 연속해서 발길질을 해댄다. ‘들어가, 더 들어가옆에서 상대방 아비가 목이 터져라 외쳤다. 맞고 있는 아들의 아비는 침묵이다. 겉으로는 모든 상황을 미리 예감이나 한 듯이 여유롭지만, 맞고 터지는 아들을 향한 아비의 마음은 성한 곳이 없었다.

집을 나서기 전에 읽었던 이아손의 모습이 떠올랐다. 켄타우로스 케이론으로부터 오랜 세월 동안 무술을 연마한 이아손, 그는 아르곤 원정대의 대장이 되어 황금 양털을 손에 넣게 되었다. 아마도 수 많은 고난과 시련을 이겨낸 신의 축복이었을 것이다.

시합이 끝났다. 두 아이 모두 가쁜 숨을 몰아 쉬었다. 주심이 상대편 아이의 손을 들었다. 처음으로 고개 숙인 아들의 모습을 보았다. 가까이 다가가 헬멧을 벗겨주었다. 얼굴과 귀가  벌겋게 달아 올랐다. “괜찮아”, “, 다음에 이기면 되지 뭐애써 속상한 마음을 감추려고, 아들은 고개를 돌렸다.

 

#1 두 번째 영웅이야기

태권도 대회가 끝나고, 오후 2가 되어서야 책상에 앉았다. 아내는 아들들을 데리고 놀이터에 갔다. 집에 혼자 남아서, ‘변신이야기를 펼쳤다. 트로이 전쟁의 영웅, 아킬레오스는 파리스가 쏜 화살을 발뒤꿈치에 맞고 쓰러졌다. ‘얼마나 아플까?’, 살아 있을 때는 범 같은 장수였던 아킬레오스도 한줌의 재가 되었다.

 한참 아킬레오스를 상상하며 글을 써내려 가던 중이었다. 갑자기 문이 열리더니, 아내와 둘째 아들이 소리를 지르면서 들어왔다. “여보! 준상이가 다쳤어, 귀 좀 봐봐.”, 속이 타 들어가는 아내를 뒤로 하고 아들을 보았다. 얼굴이 흘러내린 눈물로 범벅이고, 귀에서 흘러내린 피로 옷은 피범벅이었다. 좌측 귀 윗부분이 심하게 찢어졌다. 바로 근처 대학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비상 깜박이를 켜고 정신 없이 차를 몰았다. 벌써 세 번째 찢어져서 응급실행이다. 처음에는 입술이 찢어지고, 두 번째는 눈이 찢어지더니, 이제는 귀가 찢어진 것이다. 그렇게 조심하라고 잔소리해도 소용 없었다. 크는 것이 어찌 부모 마음대로 되려나, 나도 그러했으니 말이다.

이번 에도 꿰매야 한다는 말에 아들의 얼굴은 사색이 되었다. 주사 한 방에도 벌벌 떠는 녀석이라 아무래도 전신마취를 생각해야 했다. 병원에 도착하자, 아들의 울음 소리는 더 커졌다. “준상아, 이제 초등학교도 들어갔는데, 씩씩해야지”, 아들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아파 죽겠는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라고 째려 보는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운명의 장난인가? 아침에는 큰 녀석이 얻어 터지더니, 오후에는 작은 녀석이 귀가 찢어져서 응급실에 오다니, 지난 주에 보았던 재용이의 고통을 대처하는 자세라는 칼럼 내용 중에 마지막 문구가 떠올랐다. ‘얼마나 더 큰 영웅이 되려 이리도 아픈 것이냐.’ 차라리 내가 얻어 맞고, 찢어졌으면 하는 심정이었다.

둘째 녀석의 전신마취 동의서에 서명을 하고 나서, 아들에게 다가 갔다. “준상아, 조금 있으면 의사 선생님이 안 아프게 꿰매 주실거야, 조금만 참자”,“, 알았어, 근데, 주사는 안 맞지”,”주사를 맞아야지 마취가 되는 거야”,“싫어, 나는 주사 맞기 싫단 말이야”, 아들의 마음이 극도로 불안해졌다. 나는 아들을 데리고 잠시 밖으로 나갔다.

아빠, 물 먹고 싶어”, “수술 때문에 지금부터 물을 마시면 안돼”, “아까는 꿰맨다고 해놓고, 수술이 뭐야, 저기 저 아저씨처럼 누워 있기 싫단 말이야”, 아들은 링거주사를 맞고 누워 있는 아저씨를 보았다. 나는 아들을 꼭 안아 주면서 말했다.

준상아, 이제 받아들여야 돼, 지난번에도 와서 두 번이나 꿰맸잖아, 이번에도 잘할 수 있어

그래도, 엉덩이 주사는 맞기 싫어

주사 안 맞고 하면, 조금 아플 텐데, 괜찮아

, 참을 수 있어

마취 안해도 참을 수 있어?”, “, 참을 수 있어아들은 울음을 그치고는 상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상황을 받아들이는 건지, 잘못 이해를 하고 있는 건지, 나는 알 수 없었다.  의사와 상의를 했다. 부분 마취를 해서 하면, 조금 따끔거리고 괜찮을 거라고, 다시 무서워하면 그 때가서 전신마취을 하기로 했다.

수술실로 들어갔다. 아들 얼굴을 벽 쪽으로 향하게 했다. 곧이어 파란색 수술 천을 귀만 남겨 놓고 덮었다. 어깨는 내가 잡고, 팔과 다리는 아내가 붙잡았다. “조금만 참으면 돼, 준상아”, “, 알았어아들의 목소리는 점점 더 씩씩해졌다. 의사가 들어왔다. 아들이 보면 기겁할 주사기가 손에 들려 있었다. 부분 마취주사기는 아들의 귀를 찔렀다. 처음에 움찔하더니 아들은 꾹 참았다. 하지만, 의사는 마취가 되었는지 확인도 하지 않고, 곧바로 바늘과 실을 준비했다. 보고 있던 나도 당황스러웠다. 예상대로 갈고리처럼 생긴 바늘이 들어가자, 아들은 비명을 질렀다. 두 번째, 세 번째 바늘이 들어갈 때 마다 고통은 계속되었다.

마지막, 일곱 번째 바늘이 들어갈 때쯤 마취가 된 것 같았다. 아들은 이제, 그만하면 됐잖아

라고 울먹였다. 잘 참아냈다. 씩씩했다. 아들이 대견스러웠다. 어른도 참아내기 힘들었을 텐데, 눈물이 뜨거워졌다. 얼마 전까지 해도 초등학교 입학해서 학교 다니기 싫어했는데, 이제 다 컸구나.신화의 힘에서 나오는 원시부족 사회에서 할레의식을 하는 장면이 떠올랐다. 성인이 되는 상징적 의식이었는데, 지금 아들의 모습도 그러했다. 아비와 어미가 꼭 붙잡고, 아들이 한 단계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는 이제 우리 가족의 영웅이었다그날, 미래의 영웅들을 위해 멋진 만찬을 베풀었다.

IP *.47.75.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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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30 13:56:02 *.114.49.161

놀라셨겠어요. 마취가 되기 전에 일곱바늘 꿰맸군요. 어이쿠야 읽는 저도 잘 참아낸 준상이 모습에 뭉클했어요. 귀 수술과 할례의식, 성인식처럼 좀 더 자랐겠지요. 한젤리타님 가족의 일요일 풍경이 손에 잡힐 듯 보입니다. 아빠 책 읽으시라고 두 아이를 데리고 나가신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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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05:08:55 *.47.75.74

맞습니다, 누님, 아내가 제 생각하느라 두 아들 데리고 나갔었는데.....

아내에게 많이 미안하더라구요.

그래도 이렇게 힘겨운 시간을 아내와 함께 보낸 것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혹시, 제가 없는 평일에 그랬으면 어찌했을까요?

그 날 저녁, 가족 모두 즐거운 만찬을 해서 너무 행복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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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30 15:35:48 *.51.145.193

눈과 입술을 다친 뒤라도 '덜컹'하는 마음은 연습이 되질 않는 모양입니다.

연습으로 될 일이 있고 안 될 일이 있겠지요. 가슴이 많으 아프셨겠습니다.

큰 일 치루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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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05:17:07 *.47.75.74

경험이 있어도, 매번 새로운 것 같습니다.

이번에 수술하는 장면을 바로 눈 앞에 보게 되어서,

더 가슴이 아팠습니다.

휴일이라 응급실에 더 크게 다친 환자들이 어찌나 많던지요.

그분들 보면서 가슴을 몇차례 쓰러내렸습니다.

고마워, 재용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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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문윤정
2012.04.30 23:42:24 *.85.249.182

한승욱님1

정신없는 일요일이었네요.

아이는 좀 괜찮아요?

작은 아이가 다쳤을 때 여신들이 전부다 낮잠자고 있었을거예요.

읽는 저도 아프고 눈물이 났는데,

승욱님과 부인은 얼마나 마음이 아팠을까요?

지금 어린 아이를 두고서 공부하는 것이 쉬운 것은 아니예요.

무엇을 하려면 장애가 오고 합니다.

승욱님은  이것을 다 극복할 수 있는 분입니다.

아이의 상처가 빨리 회복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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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05:06:02 *.47.75.74

염려해주신 덕분에, 지금은 괜찮아졌습니다.

그래도 보이지 않는 귀쪽에 다쳐서 다행입니다.

그냥, 그만한 것에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누님에게도 감사드리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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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08:15:46 *.107.146.215

성빈이도 여러번 꿰맨적이 있는데...

그때 다리가 풀리는걸 처음 경험했지요 ~...에구 고생하셨네요

아이들도 한자락 자랐겠는걸요 ...

이제 많이 괜찮아졌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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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1 22:21:32 *.39.134.221

애비가 대신 해주면 아이는 언제크노...?

그러면서 자라는 겁니다.

남자아이 키우다보면 부러지고 터지는건 예사로 생각해야 하던데요...ㅋㅋ

한술더떠서 가해자가 되어서 오늘 경우도 있다닌까요. 이런경우는 정말 난감합니다.

상대방 부모에게가서 빌고, 보상하고, 아이키우면서 생길수 있는일은 가늠이 잘 안갑니다.

그런일이 없으면 좋겠지만 마음같지 않은것이 인생이라서.

그만하길 다행입니다. 나는 40중반에 부러지고 깨져서 깁스하고 살았었는데 아프긴 아프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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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05 13:35:55 *.70.15.124

글을 읽으니...타임 머신을 타고 약 15년 전으로 가 보고 싶네... 우리도 비슷한 일들이 많아서 옛 생각이 나는 군... 준상이는 많이 나아졌는지...궁금도 하고, 잘 참아 냈다고 하니 대견 스럽네... 나는 좀 상황이 다르긴 한데, 둘째가 초등학교 들어가지 전 일인데,지금은 의젓한 대학생이 되었으니...벌써 15년 쯤 지난 일이야. 아내가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에 돌아 와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데, 둘째가 거실에서 놀다가 냉장고 문을 열고 쥬스 병을 거내다가 그만 미끄러져 병은 산산조각이 나고 넘어지면서 냉장고 모퉁이에 얼굴을 부딪혀 눈섭 밑이 찢어진거야.... 피가 너무 많이 나니까 병원에 가야 되겠다고 주섬 주섬 옷을 입고 밖에 나왔는데... 장대비가 앞을 볼 수 없을 만큼 내려 (아내가 운전을 할 수 없다고 생각이 들어서..) 윗 집에 올라 갔더니 마침 위집 아저씨가 일찍 퇴근하고 집에 있어서 도움을 받아 평촌 에서 서울 신림동 정형 외과까지 빗길을 무려1시간을 달려 도착했데... 우여골절 끝에 7바늘 꼬매고 집에 돌아올때까지 장대 비는 멈출줄도 모르고 내렸는데... 아들 눈 주위에 지금도 상처 자국이 그대로 남아 있어요... 나는 그때 외국 출장 중 이였지. 상처가 다 아문 뒤에 알게 되었으니...같이 살아주는 아내가 고맙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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