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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6월 25일 11시 17분 등록

아빠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날

 

 

 나의 아버지는 요즘 내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에 아주 관심이 많으시다.

“어, 아빠가 다 읽어봤다. 일상생활 속에서 소재를 찾아서 쓰니까 아주 술술 잘 읽히더라. 처음엔 너무 철학적인 것 같았는데 아, 정말 잘썼어.”

 나는 컬럼을 쓸때마다 주제 선정이 힘들고, 쓰고 나면 아쉬움을 갖게 되는데, 아버지는 그런 내 글을 읽고, 매번 ‘아주 잘썼다고, 읽기 좋다고, 정말 잘했다.’고 칭찬을 해주시니 민망하기도 하면서 내심 좋기도 하다. 어쨌든 아버지는 내가 지금 최대로 관심을 가지고, 많은 시간과 노력을 투자하는 책 읽기와 글쓰기에 많은 관심을 보이시면서 칭찬으로 아버지의 마음을 표현하신다. 하지만 나는 그동안 아버지의 칭찬과 격려에 대해 리어왕의 셋째 딸 코딜리아처럼 “없습니다.”로 반응해왔다.

 

 셰익스피어의 「리어왕」을 처음 읽었을 때는, 아버지인 리어왕이 딸에게 자신을 향한 사랑을 말해보라고 했을 때, 셋째 딸 코딜리아가 ‘없습니다.’라고 대답하는데, 그 말이 아주 멋지다고 생각했다. 사랑은 말이 아니고 침묵이며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코딜리아의 깊은 속을 들여다 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그녀는 사랑을 있음과 없음이란 두 가지 범주로 나누었고, 그 중에서 자기가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 ‘있음’ 쪽을 택하여 자신의 사랑을 말로 표현할 수는 ‘없습니다.’라고 용기있게 말했다. 처음엔 그것이 부러웠다. 그런데 「리어왕」을 두 번 읽고 나니 코딜리아가 꼭 그녀의 진심을 ‘없습니다.’로 표현했어야 하는지 안타까운 마음이 생겼다.

그녀는 그녀의 진심을 마음 속에 있는 그대로 말했으면 어땠을까? 고너릴 언니도 아버지가 질문 했을 때 ‘제 사랑은 말로 표현 못합니다.’ 해놓고 말로 표현하여 왕에게 땅도 물려받고, 통치권도 받아낸다. 아버지께 자신의 생각을 정직하게 표현했다면 코딜리아는 지참금으로 그녀의 진실 말고 다른 많은 것들을 받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버지, 저는 사랑이란 말이 아니고 침묵이며 행동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말로는 표현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버지, 아버지를 사랑하는 제 마음과 지금까지 보여드렸던 제 사랑의 행동을 생각해 주십시오.”

이렇게 말했다면 코딜리아도, 리어왕도 비극적인 죽음을 만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딸 셋을 둔 리어왕의 최후를 보고나니 안방에서 티브이를 보고 계신 아버지께 말을 걸고 싶어졌다. 어머니와 언니는 내가 영화 티켓을 주어 영화를 보러갔고, 나는 내 방에서 과제를 하고, 아버지는 안방에 혼자 계셨기 때문이다.

 “아빠, 커피 드실래요?”

 “오, 좋지!”

 나는 커피를 탔다. 물을 끓이고, 믹스커피 한 포를 뜯어 컵에 넣고, 물을 부은 후 많이 저었다. 많이 저어야 커피 맛이 더 좋다는 팔팔이의 칼리여신 말이 생각나서였다. 아버지께 커피를 타 드리고는 내것도 한잔 타서 내 방으로 얼른 들어왔다. 더 길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지만, 할 일이 많은 나는 고새 사랑을 행동으로만 표현하고 내 방으로 왔다. 날이 더워서 책을 읽고, 타자를 치는데 몸에서 열이 펄펄났다. 찬물로 샤워도 할 겸 다시 방에서 나왔다. 좀 전과 같은 자세로 계속 티브이를 보고 계신 안방, 침대 위 아버지가 보였다. 그래서 샤워를 미루고 말을 걸었다.

 “아빠, 팥빙수 나눠드실래요?”

 “오, 좋지, 너 먹고 남으면 아빠 줘.”

 “아냐, 처음부터 반반 나눠서 먹어야 해.”

 팥빙수 아이스크림을 뜯어 우유를 붓고, 얼음을 숟가락으로 짓이겨 풀어낸다음 먹기 좋은 컵에 담아 낸다. 그리고 아버지께 가져다 드린다.

 “아, 고마워라. 우리 딸. 허허허허”

 

 어렸을 때 아이들이 자주 받게 되는 질문 “아빠가 좋아, 엄마가 좋아?”에 난 늘 “아빠!”라고 했었다. 어린 마음에 아버지의 편이 없는 것 같아서였다. 그런데 다 크고 나니 어머니보다 좋다고 이야기 했던 아버지와의 대화는 현저히 줄어 들었고, 아버지가 관심을 보여도 시큰둥 했었다. 특히 요즘은 더 했다. 그런 아버지께 코딜리아처럼 “없습니다.”라고 해버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아버지가 리어왕처럼 내게 진실만을 지참금으로 가지고 시집가버리라고 할까봐 그것을 염두해두고 사랑을 표현하려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도 사랑받고 싶음을, 사랑을 표현해주기를 바라실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딸만 둘인 집에서 아버지는 늘 외로우셨을 수도 있겠다. 내가 태어날 때 아들이길 바라셨었지만, 딸이라고 해서 나를 미워하지 않으셨다. 오히려 나를 아주 많이 예뻐해주셨던 아버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서른이 넘은 딸의 도전에 전폭적인 지원을 보내시면서 유일하게 나의 팬으로 내 글을 다 읽으시고, 칭찬해주시는 아버지께 나도 사랑을 표현해야겠다. 코딜리아는 다른 언니들과 다르게 진심으로 아버지인 리어왕을 사랑했다. 그러나 ‘없습니다.’라고 표현하는 바람에 성미 급한 아버지로부터 분노를 샀고, 아버지와 이별을 하게 됐다. 그런 비극은 만들지 말아야겠다.

 아빠에게 사랑을 표현하는 날, 그날이 오늘이면, 우리의 매일이면 좋겠다.  

IP *.36.72.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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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5 17:27:07 *.182.111.5

어쩜, 이렇게 이쁜 딸이 있을까? 아버님이 세린 글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할까?

나도 얼마전에 큰 아들이 쓴 글을 읽으면서 '참 대견스럽다, 통통 튀는 생각이 대단하다'라고 생각했어.

세린 글을 읽으면서 우리 아들 생각을 많이 했어, 오늘 집에 가면 두 아들을 꼭 안아주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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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5 18:51:56 *.118.21.182

딸만 둘인 집에서 아버지는 늘 외로우셨을 수도 있겠다..세린아 아빠의 외로움을 용케 찾았구나 ㅎㅎ

훌륭함~ 남자들은 그렇대더라 ㅏ들이 없으면 뭐가 뻥 뚫링 느낌? 허전함이 늘 자리하는거지

아빠랑 잘 지내렴 너를 위해서...그래야 내가 늘 귀가따깝도록 이야기 하는 ...결혼해서 포세이돈과 행복 할 수 있을테니깐...ㅎㅎ

참 신기하지 아버지라는 자리가  그토록 위대한 것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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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6 18:25:16 *.154.223.199

먼저 이 글도 읽으실 세린신의 아버님께 속닥속닥 귓속말 하고 싶어지네요.

 "아버님, 세린은요 우리들 중에서요, 행동으로 사랑을 막 주고 있어요. 카톡에서는 하트, 칭찬 이런 것 많이 주고요. 절대 코딜리아의 침묵으로 하지 않아요. 그녀는 무재칠시의 화신입니다. 막내가요 막내 같지 않고요 언니 같아요. "

 

세린, 아빠도 사랑받고 싶고,  사랑을 표현해주실 바란다는 말이 막 무찔러들어오네요.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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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7 01:13:15 *.166.205.132

이것이 딸 키우는 즐거움인가요.

아버님이 부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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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6.27 19:34:55 *.142.242.20

아빠께 여쭤봤습니다.

"아빠! 다 읽어봤어??"

"어,어,어~~"

"감동 받아서 우셨어요?"

"아니... 울진 않았어."

"ㅋ 아 울셨어야 하는데..댓글도 보셨어요?"

"아, 그럼. ^-----^"


"다들 아빠한테 댓글 다셨어. ㅎㅎㅎ"


감사합니다. 

글로 소통하는 것의 즐거움이 느껴지는 6월 마지막 주입니다. 히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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