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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d: 깔리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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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일 03시 39분 등록
 

머리카락 한 올의 오차가 가져오는 결과는


   그리스 사람들에게 신은 벌거벗은 소박한 젊은 청년, 아름답게 치장한 상냥한 표정을 짓는 젊은 처녀였다. 그들은 ‘가장 아름다운 것은 신에게’ 바치고 싶은 마음을 조각으로 나타낸 것이다. 가장 아름다운 것을 바치고 싶은 조각가의 마음 빛깔은 한 가지 색이 아닐 것이다. 그 빛깔을 보고 싶었다. 이스탄불 국립 고고학 박물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빨라진다.

  이스탄불의 아침은 흐렸다. 트랩이 아침 출근길을 도우려는 듯 바쁜 듯이 지나가고 있다. 어제 내린 눈 위에 발자국을 찍으면서 트랩을 따라 걸었다. 박물관은 이른 아침이라 한산했다. 박물관 정원에는 석관을 비롯한 몇몇 조각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방인의 눈에는 귀하게만 보이는데 천덕꾸러기처럼 눈비를 맞으면서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신들의 조각상들을 모아놓은 공간에 발을 들여놓는 순간 경외심이 든다. 신이 가진 권능에 대해서가 아니라 한 장인의 손에 의해 빚어진 조각상이 가지는 예술성에 압도되고 경도되는 것이다. 도무지 돌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믿고 싶지 않을 만큼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아테나여신과 과일바구니를 들고 있는 행운의 여신 티케, 풍요와 수렵 그리고 달의 여신 아르테미스여신은 옷주름으로 인해 더욱 우아하게 느껴졌다. 무수히 많은 주름으로 이루어진 튜닉을 발끝까지 길게 늘어뜨리고 서있는 여신들은 시간을 초월한 불멸의 그 무엇으로 다가온다. 밀가루 반죽으로 떡 주물리듯이 빚는다 해도 어려울 진데,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다. 하얗게 빛나는 대리석은 신의 이면과 내면을 표현하기에 가장 좋은 재료인지도 모른다. 앙드레 보나르는 ‘곱게 수놓아진 천으로 만든 의복을 걸친 여자의 우아함보다 더 아름다운 것이 도대체 어디에 있단 말인가? 이것은 인간들이 신에게 바친 것이며, 인간들이 신을 보는 방식“이라 했다.

  보나르의 표현이 좀 거창하긴 해도 완벽하게 균형 잡힌 비례를 겸비한 인체의 아름다움을 표현하기 위해 조각가들은 ‘얼마나 많은 세월동안 수련했을까?’하고 생각하게 된다.  돌을 조각하기 위해서는 나무를 조각할 줄 알아야 하는데, 그리스인들은 여러 세대에 걸쳐서 오랫동안 학습해 왔다고 한다. 첫째는 손을 훈련시키는 일이 필요했을 것이고 둘째는 신을 재현하는 조각가는 자신이 신이 되는 것과 동시에 신앙심이 있어야 했을 것이다.

  신들의 왕인 제우스, 대양의 신 오케아노스, 악기를 켜는 아폴론, 그리고 마르시아스와   조우했다. 올림포스에서 내려온 신들은 여전히 멋지고 그들만의 권능이 느껴졌다. 이들 남신들은 근육질을 그대로 드러낸 채 벌거벗고 있다. 마르시아스의 홀쭉한 복부에 비해 대양의 신 오케아누스는 지방이 적당히 붙은 복부 근육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고대 그리스는 육신의 건강도 중요시했기에 대부분의 신전 옆에는 체육관도 있었다. 청년들은 거의 옷을 벗은 차림으로 운동을 했기에 조각상들은 자연스럽게 나신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그리스의 예술가들은 체육관에서 청년들의 운동하는 모습을 통해 인체에 관해 학습했을 것이다. 근육 위로 드러난 핏줄, 발가락뼈의 섬세함, 몸에서 불끈거리는 대근육과 소근육을 잘 표현해놓았기에 살아있는 한 남자를 보는 것 같다. 누군가가 숨을 불어 넣어주기만 하면 금방 앞으로 달려 나갈 것만 같다. 특히 제우스신과 싸웠던 거인족 한 남자의 엉덩이는 만지고 싶을 정도로 관능적이다.

  그리스조각가들은 거대한 돌덩이를 앞에 두고 자신이 탄생시킬 신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는 것일까? 형벌을 받고 있는 마르시아스 앞에 섰다.

  마르시아스는 프리기아지방의 작은 하천과 좁은 초원에 살았다. 마르시아스는  어느 날 우연히 아테나가 불다 버린 플루트를 주웠다. 아테나는 플루트를 버리면서 “누구든지 이 플루트를 줍는 자는 불행한 일이 일어날거야”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그런 사실조차 모르는 마르시아스는 주운 플루트를 열심히 불고 다녔다. 음악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지만, 신의 플루트였기에 흘러나오는 선율은 기막히게 아름다웠다. 마르시아스가 부는 플루트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감동한 나머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한 농부가  “당신처럼 아름다운 연주를 할 수 있는 자는 음악의 신인 아폴론뿐일거예요.”라고 말했다. 뽐내기 좋아하는 마르시아스는 농부의 말에 더욱 우쭐거리면서 플루트를 불고 다녔다. 이 사실이 아폴론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방자한 마르시아스의 언동에 분통이 터진 아폴론은 올림포스 산에서 내려왔다.

  “이 녀석 마르시아스, 네가 나처럼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어디 한 번 대결해보자.”

 아폴론은 태양의 신이요 음악의 신이며 리라의 명연주자인데 마르시아스는 감히 대적하겠다고 승낙을 해버렸다. 아폴론은 시합을 평가해줄 평가단으로 아홉 뮤즈와 산신 트몰로스와 프리기아의왕 미다스를 초대했다. 시합에 들어가기 전에 아폴론이 “시합에 진 사람은 승리한 자의 어떤 요구에도 따라야 한다”는 경기규칙을 정했다.

  아폴론은 리라를 연주하고, 마르시아스는 플루트를 연주했다. 시합은 마쳤으나 승부를 가리지 못하자, 아폴론은 악기를 거꾸로 쥐고 연주하자고 제의를 했다. 마르시아스는 이번에도 반대하지 않고 그대로 따랐다. 리라는 거꾸로 쥐고도 연주할 수 있지만 플루트는 거꾸로 쥐고는 연주가 불가능했기에 마르시아스는 패배할 수 밖에 없었다. 이때 마르시아스는 말했다.

   “아폴론 네가 신이라면 나는 예술가다!”

  승리한 아폴론은 마르시아스를 산 채로 나무에 거꾸로 매달아 살가죽을 모두 벗기겠다고 했다. 아폴론은 마르시아스가 들고 있던 플루트로 껍질을 벗기기 시작했다. 마르시아스의 몸은 전체가 하나의 상처로 된 붉은 살덩이로 변하여 피가 흐르지 않는 곳은 한 군데도 없었다.

   마르시아스를 빚기 위해 커다란 대리석 앞에 선 조각가는 마르시아스라는 한 예술가를 어떻게 이해했을까? 껍질을 벗기우는 형벌을 받으면서도 신에게 도전한 자신의 무모함에 대해 조금의 후회도 없었던 마르시아스, 조각가는 그의 오만함을 새기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진 마르시아스 앞에 서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않았다. 마르시아스의 무모함과 오만함은 한 쌍으로 이루어진 예술가의 도전정신이 아닌가 싶다.

  보나르는 “신을 향한 인간의 사랑과 인간의 몸에 대한 사랑, 이것이 바로 석조 조각가의 창조를 이끄는 힘”이라고 했다. 또 어제보다 오늘이 더 향상되어지기를 노력하는 그 의지 또한 신에게 바치는 봉헌물이라 했다.

  그리스의 유명한 조각가 폴뤼클레이토스는 “걸작품이란 머리카락 한 가닥의 차이까지 찾아낼 만큼의 수많은 계산의 결과”라고 말했다. 우리들 눈에 비치는 걸작품들은 조각가의 치밀한 계산 아래, 탄생되어진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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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2 15:42:09 *.166.160.151

글을 읽다보니 갑자기 스시가 생각이 나네.

한번에 잡히는 밥알의 숫자가 균일한...

장인이라  치밀한 계산은 몸으로 하는 계산일 겝니다.

수없이 되풀이 되는 작업을 통하여 몸으로 배우는 공부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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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깔리여신
2012.07.03 08:28:22 *.85.249.182

여기 언급하지는 않았는데, 프로타로라스로부터 수학을 배웟다고 하더군요.

그리스인들의 신전과 조각이 걸작품이 될 수 있엇던 것은 수학의 영향을 조금은 받은 듯합니다.

수학이라는 것도 나중에 수학이라는 학문으로 발전,한 것이지,

그전엔 철학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스시의 철학도 대단하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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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2 16:42:16 *.51.145.193

걸작은 디테일이지요. 맞습니다.

저도 그 부분에 감탄을 하며 책을 읽었더랬습니다.

디테일이 부족한 저에게 누님의 글은 일침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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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깔리여신
2012.07.03 08:30:35 *.85.249.182

석굴암조각이 세계 최고라고 배웠던 시절이 있었지.

석굴암은 석굴암대로 최고고,

다른나라의 유물들은 그대로 최고라고

생각하고 싶다.

항상 좋은 댓글로 나를 위로해주어서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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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2 21:13:21 *.41.190.211

몆년 전에 읽은 책 중에" 디테일의 힘" 이라는 책을 읽은

기억이 납니다. 디테일이 약하면 완성도에서는 아주 형편없게

된다는 주장인데...시간이 지나면서 그 말에 수긍이 갑니다.

오늘도 깔리여신께 좋은 글을 읽게 해 줘서 고맙 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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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깔리여신
2012.07.03 08:37:48 *.85.249.182

항상 좋은 책을 많이 읽으시는군요.

 그것도 전공과는 상관없이요^^

장인이라는 이름을 얻기 위해서 피나는 노력이 숨어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 같아요.

바쁜신데도 댓글 달아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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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4 05:36:40 *.154.223.199

우리가 <그리스인 이야기>에서 읽은 것을 잘 버무려 터키 지중해 여행?의 훌륭한 여행기를 쓰고 계시군요.

깔리여신님의 글을 읽고나니 이스탄불의 저 박물관에 가보고 싶어집니다.

밖에서 비를 맞고 있는 조각, 튜닉을 입은 조각도 보고 싶어져요.  잘 읽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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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4 06:49:18 *.2.60.86

이번 여행에서 누님과 함께 가면 제가 볼 수 없는 부분들을

챙겨 볼 수 있을텐데, 너무 아쉬워요, 하지만 글로 사진으로

많이 담아오겠습니다. 그리고 누님과 마주앉아서

이야기를 풀어 놓아야 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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