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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일 09시 25분 등록

눈을 감고 느껴보세요

 

호메로스는 장님이다, 아니다. 의견들이 분분하지만, 나는 그가 장님이라고 믿고 싶다. 그는 인간의 본성을 제대로 꿰뚫어보고 말 한마디의 표현으로도 한 인간을 살아 움직이게 하기 때문이다. 그는 <일리아스> <오디세이아>에서 다양한 인물들을 창조했으며, 인물 각각의 특성, 배역, 의미, 모습을 다르게 서술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이렇게 호메로스는 어떤 탁월한 감각을 가지고 있는듯하다. 그래서 고대 그리스사람들이 '호메로스는 장님'이라고 하지 않았을까? 라고 생각해 본다.

1년 전에 클레임처리로 어느 고객을 방문하게 되었다. 고객을 방문하러 가기 전에는 항상 긴장감이 흐른다. 모든 신경들이 예민해진다. 낯선 누구를 만난다는 것은 상당한 스트레스다. 하지만 막상 얼굴을 보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긴장이 풀리게 된다. 먼저 제품에 대한 불만으로 대화를 시작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서로의 관심사가 하나 둘씩 나오면서 공감대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초인종을 눌렀을 때, 여자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문이 열렸을 때, 나는 환하게 웃으면서 인사를 했다. 하지만 그녀의 눈은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앞을 볼 수 없었다. 안쪽 거실에는 그녀의 어머니가 나무 탁자 앞에 앉아 있었고,  거실 양쪽으로 늘어선 책장이 보였다. 그녀는 40대 초반으로 보였다. 무엇 때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긴장감은 사라지고  편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일반적인 고객과는 달랐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들의 불만 이야기가 중심이다. 하지만 그녀는 왜 이런 클레임이 발생하는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제품이 만들어지는 과정서부터 고객관리 시스템을 설명해주는 대목에서 그녀는 이해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어느 정도 설득했다고 생각했을 때, 그녀는 다른 질문을 하기 시작했다. 클레임을 제기하는 고객들은 어떤 유형의 사람들인지, 그런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시키고 설득시키는지 물어보았다. 마치 나를 인터뷰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질문에 대답할 때마다 그녀는 무언가를 열심히 메모를 했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그녀는 글을 쓰는 작가인 것 같았다. 이번 호메로스 작품에 대한 '앙드레 버나드'의 해석을 읽으면서 그녀 생각이 떠올랐다. 그녀는 사람과의 대화를 통해서 이야기를 듣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이야기를 자신의 또 다른 감각을 이용해서 좀 더 리얼하게 세밀하게 표현하는 것이다. 순간, 나도 눈을 감아보았다. 컴컴한 어둠이지만, 시간이 흐르자 감각을 통해서 의식하는 모든 것이 느껴졌다. 손가락 끝에서 전해져 오는 컴퓨터 자판, 과거의 떠오르는 생각들이 자판을 통해서 타이핑 된다. 눈으로 보일 때보다 생각이 자유롭다. 두둥실 떠가는 구름 같다. 잠깐 동안 호메로스가 되어 <일리아스> '헥토르'를 떠올려본다. 헥토르가 죽음과 마주하는 순간이다. 마지막까지 가족을 생각하는 그의 음성이 들린다.

"운명이 나를 삼킨다. 그러나 나는 싸우지 않고 그저 죽기만을 기다리는 사람이 아니다∙∙∙∙∙.

다음 세대들이 똑똑히 볼 수 있는 무언가를 마지막으로 나는 완성할 것이다. 싸우고 사랑하다

가 죽을 것이다."

 눈물이 뜨거워진다. 그의 안타까운 운명 앞에 나도 모르게 뜨거워진다. 가족을 돌이켜보고 나의 삶에 '사랑'이란 단어를 빼곡히 채워보려 한다. 이렇게 호메로스는 단순한 표현이지만 핵심을 찌르는 재능이 있다. 바라보는 대상이 누구이든 단 하나의 몸짓을 떠올리고, 본질을 드러내는 단어를 끄집어낸다. 마치 어둠 속에 빛의 근원을 발견하듯이 말이다.

호메로스의 두 번째 서사시, 인간이 이룬 것 가운데 위대한 업적에 대한 이야기, <오뒷세이아>를 만든다. 그는 영웅의 관한 전설을 여기저기서 수집해서 그 중심에 오뒷세우스를 가져다 놓는다. 오뒷세우스는 <일리아스>에도 나오지만, 거기서는 웅변가이자 장수이고, 훌륭한 외교관이다. 하지만 호메로스는 오뒷세우스를 로빈스 크루소와 같은 인물로 바꿔버린다. 그리하여 멀고 먼 바다를 떠돌면서 온갖 위험을 극복하여 결국, 집으로 귀환하는 영웅으로 만들어낸다.

우리가 일상에서 만들어 내는 이야기들도 누군가에게는 영웅의 이야기로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면서 자료를 수집하는 그녀의 모습이 꼭 호메로스를 닮았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순간의 움직임까지 잡아내려는 그녀의 노력이 나를 깨워준다. 앞으로 글을 쓰면서 마음의 문을 활짝 열고, 세계가 내 마음에 들어오게 해보자. 그리고 잠시 눈을 감고 호기심 가득한 이야기를 떠올리자.

어둠 속에서 호메로스는 나에게 말한다. "너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면, 너에게 살아있는 이야기를 선물로 주겠다" 그리고 눈을 뜨는 순간, 나는 정말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적어내려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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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2 14:12:45 *.166.160.151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이번달 오프과제보면서 걱정이 앞서다가

그리스인이야기 읽으면서 든 생각은

글을 쓰겠다는 사람이 나의 틀을 깨고 나오는 작업인데

겁을 내면 안되지...그래도 고민이 되기는 하지만...

내가 제일 못하는 것이 나와 직면하기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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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3 23:48:49 *.2.60.15

반대로 저희를 항상 깨어있게 해주세요,

그게 누님의 매력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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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2 16:22:24 *.51.145.193

행님 말씀처럼, 일상이 영웅의 삶과 다름 없는 시간이 되면 얼마나 좋을까요.

저도 그 생각을 잡고 칼럼을 써내려 갔는데 이거 당최 답이 보이지 않습니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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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3 23:54:11 *.2.60.15

내가 단순한지 몰라도 내 힘으로 도저히 답을 찾을 수 없는건

그냥 신의 의지라고 생각하고, 신께 맡겨버리거든.

그러면 마음이 편안해져,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 그 답은

내 안에 있었더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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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2 20:46:23 *.41.190.211
글을 쓰는 것은 자신을 위로하기도 하지만, 무 의식에 갇혀있는 나를

밖으로 끄집어 내는 힘을 발휘 하기도 하는 것 같구나.

너의 글은 잠자는 나를 깨우고 가는 것 같구나,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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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4 00:03:53 *.2.60.15

이번 책을 통해서 호메로스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떠올릴수록 저를 흔들어 깨우거든요

하지만 지금 이순간, 선배님의 응원이 저에게 더 소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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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3 01:30:44 *.70.31.168

호메로스를 읽으며 지금 나의 손이 호메로스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나의 이야기를 받아 적는 나의 손이 그였으면 하는 생각.

어쩌면 작가란 영웅이며 호메로스여야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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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4 00:33:41 *.2.60.15

먼저 앞서 가시는 선배님들이 있어서 든든합니다.

연구원 생활을 힘들지않고 꿋꿋히 걸어나갈 수 있는 것은

선배님의 격려와 응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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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3 08:08:38 *.160.33.204

나도 모르는 나를 찾아간다.  그것은 어쩌면 비극일지도 모른다. 

여행이 내면을 향하면 눈은 소용없다.    오이디푸스를 봐라.  제 눈을 뽑아냄으로 비극의 끝에 이르고,

그의 발은 땅에 닿는다.  비로소 내가 보인다.  그리하여 그의 남루한 육신은 콜로노스에서 성화한다.

그는 구원 받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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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4 00:17:31 *.2.60.15

지금이 바로 저에게는 구원 받은 삶입니다.

아직도 진정한 저의 모습을 찾아내진 못하였지만,

과정이 즐겁습니다.

특별한 방법이 없는 것 같습니다. 꾸준히 글을 쓰면서 

나와 마주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

다양한 모습을 가진 제가 보일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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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깔리여신
2012.07.03 08:57:19 *.85.249.182

보나르의 해석이 너무 자의적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빨려들 듯이 책을 읽었다.

호메로스의 목소리를 들은 한젤리타가 부러워.

나도 호메로스가 말을 걸어오기를 기다려야겟다.

섬세하고도 인간을 읽고 이해하려는

따뜻함이 배어있는 글이라

항상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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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4 00:25:48 *.2.60.15

누군가 저의 글을 기대한다고 생각하니깐,

너무 기분이 좋습니다. 이렇게 저의 가슴을

따뜻하게 해주는 누님이 있어서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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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4 15:44:05 *.114.49.161

클레임을 건 고객에게 찾아간 한젤리타님은

그 특유의 선하고 성실해 보이는 웃음으로 이 쪽의 마음의 무장을 일단 해제할 것 같아요.

그리고 고개를 끄덕이고 추임새를 넣어가며 잘 들어줄 것 같습니다. 부르르 하지 않고요.

이제 눈을 감고 고객의 마음까지 들으시겠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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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07 20:51:40 *.194.37.13

아직도 많은 수련이 필요합니다, 저는 오히려 누님의 자제력과 인내심을

배우고 싶습니다. 오프수업때 그 비결에 대해서 물어봐야지.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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