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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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기
그때 나는 직장에 들어갔다. 그리스의 배가 처음 바다로 진수한 이유와 다르지 않았다. 단지 배가 고팠을 뿐이다. 내가 가진 여러 가지의 결핍 중에서 배고픔은 그때의 나를 지배했다.
자신의 기질과 특성을 알고 인생을 설계해야 한다는 책상물림들의 이야기는 배부른 자들의 말이었다. 대학졸업반을 마칠 무렵, 나에게 대안은 없었고 차선이니 최선이니 하는 선택의 기준도 없었다. 그렇게 전에 없던 직장인으로써의 아이덴티티가 어느 날 나에게 들씌워졌다. 7월에 일을 시작했고 한달 뒤, 8월에 긴 휴가를 가게 되었다. 휴가 중에 직장에서의 내 책상, 앞에 놓인 모니터, 쌓여있는 서류뭉치를 떠올리고는 멀미가 났던 기억이 난다. 이후 지금까지 직장에서의 기억은 암전이다. 치지직.
올 들어 직장에서 유난히 힘들어 하고 있는 나를 찬찬히 돌아보니 이랬다. 적어도 내 밥벌이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에서 비롯되는 것이라면 그냥 넘어갈 일이 아니라는 생각에서 그 시작을 톺아보니 그랬다. 지금 내가 느끼는 분노는 이전에 자잘했던 분노와는 그 온도차이가 너무나 확연하다. 예전 같았으면 흘려 들었던 말들도 이제는 고이 들리지 않는다. 어찌 그런가. 무뎌져도 제대로 무뎌질만한 근속년수임에도 입사 후 한달 만에 느꼈던 그 멀미가 다시 찾아오는 이유는. 난데 없다. 안주하고 정주하는 삶이 더 이상 나에게 안정을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한 것인가.
나는 무너진다 생각했다. 신이 나를 상대로 한 번 무너져 보이고 말겠다는 의지를 감지한다. 가당치도 않은 이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오이디푸스가 자신의 눈을 찌른 이유를 생각해 보니 다시 극명해지고 그리스가 무너진 자리에서 르네상스를 일으켜 세운 신의 의도 또한 사유를 그리로 몰아간다. ‘신은 인간을 무너지게 만들고 인간은 다시 일어서는’ 그 무한의 뻘짓 말이다. 무너지고 있는 자리, 그래서 나는 지금 이 자리에서 분노하고 저주를 퍼붓고 있다. 마치 희미한 호흡을 이어가며 숨통을 끊어달라 절규하는 환자 같다.
높은 빌딩과 근사한 직함과 훌륭한 환경은 어디 내새워 손색 없는 미끈함을 자랑한다.(정확한 내 상황은 아니다. 작가적 설정이니 이해해주시라) 문명의 혜택은 이런 것이다 하는 양 부럽지 않은 benefit을 제공한다.(마찬가지다) 그러나, 물불 가리지 않는 아킬레우스적인 사람들로 넘쳐나는 곳에서의 일상은 황폐하다. 보편적인 '인적자원'으로 간주되며 다양성이 고려되지 않고 각자의 신화가 사라진 개인들이 득실거리는 공동체는 무력하다. 문명은 결코 화려하지 않다. 문명이라는 거창한 정의들이 참으로 인간을 위대해 보이게 만들지만 실제 '문명이란 인간이 인간을 가축화 시키는 과정'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근사해 보이는 높은 빌딩 안에서는 수많은 윤똑똑이들이 서로가 서로를 가축화 시키려 하루에도 수 없는 아귀다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내가 무너지는 것은 이 천박한 싸움에 기꺼이 동참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 싸움에 희열을 느끼거나 자괴를 느끼거나 하며 말이다. '중요한 건 사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사는 것'임에도 이 삶 외에는 아무런 대안을 찾지 못하고 현실에 매몰되는 삶이 나를 무너지게 한다. 그러나, 내가 무너진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는 전환을 하지 않으면 그 다음의 전환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근본적으로 이 국면을 바꾸지 못한다면 향후의 삶은 전쟁만 하다 진이 빠져버린 그리스 문명의 말미와 다름없게 될 터다. 어떻게 극복해 나갈까. 나도 내 자신이 궁금해 진다. 흥미진진한 이야기가 펼쳐질까. 지리멸렬한 일상이 반복될까.
혹 앙드레 보나르는 그 국면의 타계책을 그리스인 이야기 3권에 숨겨 놓았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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