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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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거스르다
'등산로 아님' 으로 들어선다. 등산로 아님이라는 말은 굳이 이 길이 '우리들의 길'임을 알려주는 역설적인 표지기다. 7월이다. 햇살은 계곡의 물에 난반사되어 흐뭇하게 미소 짓는 중에 눈을 찡그리게 했고 웃는 것인지 아닌지 분간하지 못했다. 매주 써 올리는 칼럼의 소재는 바닥이 났고 직장의 찌질한 송사를 앙드레 보나르의 글과 섞어 내는 것도 죄악이다 싶었다. 게다가 이번 산행은 잠자던 내 야생을 들쑤셔 놓기에 충분한 '계곡치기'였다. 애초에 '난 길'을 버리고 물이 가로막든 바위가 가로막든 정면으로 들이받는, 지극히 원초적이고 유아적이기도 한, 그래서 홀딱 젖을 수 있는 길로 간다. 내 달뜬 마음은 몸이 먼저 알아낸다. 속옷에 물이 들어차고 무거운 등산화 속 양말이 젖어올 때 나는 '죽기 좋은 날'을 외치던 벌판의 인디언이 된다. 바로 옆 훤히 뚫린 산길에서 광적으로 계곡을 쳐 오르는 우리들을 보는 등산객들의 표정은 애처롭고 즐겁다. '별나다' 했을 터. 별나건 말건, 오랜 가뭄 끝에 연이어 내린 비로 계곡은 우리처럼 발랄하다.
밀양의 표충사라는 절 옆을 흐르는 계곡은 옥류동천이다. 상류에는 두 개의 큰 폭포, 층층폭포와 흥룡폭포를 품고 있다. 학암폭포를 안고 내리치는 지류와 합수하는 지점은 꽤나 크게 굽이치는 계곡의 모습을 하고 있다. 언뜻 유유하게 흐르는 하류를 넘어서면 이내 옆 사람 말소리를 듣지 못한다. 사납게 내리치는 계곡물을 그대로 안고 넘어서야 하는 곳이 잦아진다. 계곡치기의 백미가 아니겠는가. 물의 길에 사람이 들어서면 사람은 물과 같이 되어야 한다. 물이 튀어 오르는 곳을 골라서 밟아야 넘어갈 수 있고 미끄러운 곳은 물도 미끄러지는 곳이니 사람도 미끄러져야 안전하다. 한번에 올라가려고 하거나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용을 쓰면 쓸수록 다친다. 유난히 체력소모가 많고 '자빨링'에 주의해야 하는 계곡치기는 그래서 '기쁨의 관리'가 필요하다.(나는 결국, 그 기쁨을 관리하지 못했다)
중간 중간 쉬어가며 계곡에 빼곡히 들어찬 7월 녹음도 느낀다. 아무도 가지 않는 길임을 알려주는 바위만한 거미줄과 뒤엉키며 계곡을 오른다. 나는 지금, 살아 있는 육체다. 튀어오르는 고래에서 물이 떨어지는 것과 같이 온 몸에 계곡물을 뒤집어 쓰고 촤악 촤악 소리를 내며 전진을 거듭한다.
우리는 계곡의 끝, 산을 솟아 올린 경사의 정점에 다다랐다. 두 단계로 나뉘어진 엄청난 폭포가 굉음을 내며 깊이를 알 수 없는 소(沼)에 내리 꽂힌다. 우리는 그 소를 헤엄쳐서 가로지른 후, 폭포 옆 바위를 오를 참이다. 젖은 장비와 옷, 미끄러운 발디딤과 아찔한 고도감, 폭포에 부서진 물보라가 안개처럼 시야를 가리고 계곡등반의 짜릿함을 즐긴다. 이것은 위험한 자유다. 죽음의 두려움조차 끝없이 떨어지는 폭포의 경외 속에 묻히는 자유다. 태초 이후, 한번도 인간의 발길이 닿지 않은 듯한 이 수직의 바위를 뚫고 가는 나는 누가 따로 일러주지 않아도 자유다. 저러다 떨어지면 어쩌나 걱정하지 마라. 걱정하는 순간 진짜로 떨어진다. 그러면 자유는 없다. 순간, 에피쿠로스가 뛰쳐나와 ‘자유는 개뿔, 니 빵이나 신경 쓰세요’ 하고는 급하게 사라진다. 그러나 잠시나마, 아니 찰나의 순간 동안 나는 자유였다. 오르다 말고 왠 자유 타령인가. 폭포소리 때문에 서로의 시그널이 들리지 않아 고함을 치며 등반의 안전을 확보한다.
폭포 끝머리에 올라 앉아 올라온 계곡을 굽어 본다. 다쳐서 덜덜 떨고 있는 손가락을 잡고 다리를 엑스 자로 하고 멍하니 '길 아니었던 길'에 시선을 박는다. 다시 돌아가야 하는 길, 시커먼 바위들이 둘러쳐진 곳에 고라니 한 마리 지나간다. 그 고라니도 무심하고 흐르는 계곡도 무심하다. 아무런 대화, 말 한마디 건네지 않고 그저 제 갈 길만 간다. 그런데 그 무심함이 갑자기 불편해진다. 그 길을 막아 서서 나는 어찌해야 하는가 따져 묻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바락바락 악을 쓰며 달려들어 어찌 살아라고 태어나게 했는가 묻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어도 물어도 답을 찾을 수 없으니 말이다. 이제 그런 질문은 지겨울 만도 한데 나를 붙들고 떨어지질 않는다. 어쨌든 이 계곡은 이리도 까불어재끼는 한 인간을 또 받아주었다.
오르는 길에 나는 심하게 한번 엎어졌다. 몸에서 끌어 오르는 신바람이 잦아들 무렵, 헛디딘 발에 손가락을 부러뜨렸다. 더 까불었으면 팔이 부서졌을 게다. 그쯤 하여 거두어준 옥류동천의 가르침에 감사하다. 무뇌의 인간이 겁 없이 덤벼들 적에는 완전히 밟아버렸을 수도 있는 문제 아니었겠는가. '자연은 불필요한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말이 부러진 손가락을 부여잡고 패잔병처럼 내려가는 내 등 뒤에서 물소리와 같이 들린다.
이런 산행이 있구나. 계곡치기. 일단 어떻게 하는 건지는 잘 알겠네.
위험하기는 해도 재미는 있겠는걸...
그러느라고 붕대를 칭칭맨 손으로 하염없이 웃고 있었구나.
그렇지....다쳐도 좋은 일이 있지. 지가 하고 싶어 하는 일인데...죽지 않은것을 다행으로 알고!!
어렸을때 생각이 난다. 두타산이었던것 같은데...여름산행이었고 정상코스로 오른길인데
하산길에 계곡에 물이 많이 불었었다. 바위와 바위사이 급물살이 지나는 길 위를 풀쩍 뛰었는데..
아뿔가 계곡물에 빠진거야. 동행이 있었고 전문가들이라 바로 잡아주었어.
아찔한 순간에 정신을 차리고 몇발짝 내디디니 그곳이 폭포상류였어.
몇미터만 흘렀으면 폭포아래 소로 떨어질판...그랬으면 재용이는 못만났겠다. 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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