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콩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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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문명 전환
윤이상씨는 딸에게 물가를 뜻하는 한자를 이름으로 주었다. 아내 이수자씨가 쓴 전기에서 읽었다. 이 책에서 가장 유명한 말은 그가 아내에게 보내는 편지 속에 있었던 ‘내 꽃도 언젠가 한번은 피리라’였다. 작명의 이유는 바다와 들이 만나는 땅이 풍부하기 때문이란다. 아버지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자식에게 지어 주는 이름에 담은 그 뜻이 진기해서 한참 만지작거렸다. 나도 그런 곳에 살거나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의 고향은 경남 통영이다. 통영 가고 싶다. 갑작스런 통영 타령이람. <그리스인 이야기> 3권 첫 머리에서 이런 문장을 읽었다.
노화기에 접어든 공동체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호흡이 힘들어 지면서 숨이 가빠오면서 행동이 둔해진다. 요컨대 삶의 몸짓이 버거워진다. 늘 호흡하던 공기처럼 자연적인 기후이자 분위기였던 문명이 해체됨에 따라 매일매일의 양식이었던 신앙이 동요됨에 따라 문명이나 신앙은 죽지 않기 위해서 새로운 사고방식을 탐구하고 새로운 시와 지혜의 세계를 창조하며, 늙어갈수록 희망과 확신을 가져야 할 새로운 이유를 스스로에게 부여한다. 문명은 변화를 거듭할 뿐 죽지 않는다. 문명의 삶이란 말하자면 항구적인 태어남이라고 할 수 있다. (12쪽)
포털사이트 백과사전과 국어사전에서 문명이라는 말의 뜻을 찾아본다. 산업사회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읽어도 잘 모르겠다. 문명은 문화와는 다른데 더 범위가 거대한 말인가보다 정도로 이해하고 만다. 하지만 저 부분을 읽다 보니 내 인생에서도 저런 전환을 가져오고 싶다. 아니다. 이미 전환은 진행되고 있다. 내가 그러고 싶었던 게 아니라 참을 수가 없었다. 정말로 숨이 가빴다. 할딱거렸다. 공기처럼 자연스럽던 분위기가 해체되는 시기에 있다는 느낌도 들었다. 중년기 전환이든 뭐든 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지각변동이 시작되고 지층이 불안정해진 지 몇 년 되었다. 가장 큰 지각변동은 내가 하나의 왕국에서 나온 거다. 라푼젤처럼 나왔다. 그곳처럼 보호받지 않는다. 진작 나왔어야 했나? 흰 머리가 나기 시작해서야 탑을 내려온 라푼젤 꼴은 아닌지. 동화의 각본대로 미리미리 나갔어야 했는데 겁나서 못 내려온 것 같다. 악착같이 비굴한 눈빛으로 거기 붙어 있으려 했었지. 어떤 왕국이었을까? 부모의 왕국일까? 그건 아직 모르겠다.
새로 만들어갈 나의 문명에 대해 생각해본다. 우선 어떤 곳에 위치해있나 살펴본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 내가 서식하는 생태계는 어딘가? 여긴, 또는 나는 화산 지대의 물가다. 윤이상씨가 딸에게 이름을 주어가며 그리워했던 통영과는 다르다. 활화산이 몇 개 있다. 어린 왕자의 별에도 날마다 닦아 주어야 하는 화산이 있었다. 그의 별에는 바오밥 나무도 있었지. 매일 잘라내지 않으면 별을 폭파시킬 수도 있다고 했다. 내게도 그런 게 있나? 여기는 달의 흐름 따라서 조수간만의 차가 있는 개펄이 펼쳐져 있다. 물이 들고 나면서 개펄에는 문어나 조개들이 꼼지락대기도 한다. 뻘에서 어떤 걸 해서 먹고 살까? 다른 어떤 것이 있는 지는 더 탐색해보아야 한다.
이 곳에 도시나 사람 사는 부락을, 문명을 건설하는 것에 대해 몇 가지 생각해 둔 게 있다.
첫째는 이제는 절대로 남의 꿈을 대신 살거나, 남의 꿈을 응원하는 들러리로 살지 않으리라는 거다. 나의 꿈이 북극성이다. 나의 신화를 살펴보고, 10년 후 내 삶의 장면을 상상한다. 남의 인생에 감 놔라 배놔라 간섭 하며 오지랖 떠는 안전하지만 비겁한 관객, 갤러리가 아니라 웃기고 못생기고 주접스런 몸 개그를 하고, 눈물 콧물 흘리며 잉잉 대더라도 내 코미디의 주인공이 되고 싶다. 주연이 아니라 지나가는 사람 12, 바위나 나무로라도 무대 위에 있고 싶다.
둘째, 이 땅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살 거다. 나는 화산 지대의 물가다. 그러니 내 시민들은 내진설계가 된 가옥을 발달 시켜야 하고, 대피 훈련을 제법 자주 잘 하면서 아이들을 키워야 한다. 화산이나 개펄을 이용하여 살아갈 지혜로운 궁리를 해낼 거다. 그게 어떤 건 지는 모른다. 헤파이스투스처럼 화산 아래 대장간에서 절름거리면서 아름다운 것들을 만들어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관광자원으로 활용해야 할까? 척박하다고 문명을 건설하지 못하는 건 아니라고 아테나이 사람들이 보여주고 있다. 아무런 도시나 문명을 개발하지 못하더라도 건강한 개펄 자체로 쓸모있고 아름답지 않겠나? 이 뻘 흙 속에서 이런 저런 것들이 정화되고 있으니. 이런 뻘 소리를 궁시렁거리며 스스로를 위안한다.
연구원에 와서 그 작업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10월 1~3일 통영가는 여행 일정 잡아놨어요.
9월30일이 추석이고 10월1일은 연휴마지막, 근데 10월 3일이 개천절이라
10월 2일이 낑겨있지요. 학사 일정 보니 그날 재량휴업. ㅋㅋ
그래서 10월 첫날부터를 통영 여행으로 계획해놨지요.
언니 글에도 소개된 걸 보니, 제 이번 가을 여행지는 잘 선정한 것 같음.
언니의 전환점. 터닝포인트. 그것이 이 연구원 생활임에 지지와 동의를 보냅니다.
이번 오프수업을 하고 나면 더 확실해 질 것 같아요.
언니 글에 언니의 생각이 가득 담겨 있는 것 같아 참 좋네요.
그니까. 언니 삶에 대한 어떤 생각들.
콩두 언니 응원합니다. 라푼젤처럼 신나게 모험을 떠나요!
아, 특히 이번글은 개인적으로 제게 위로가 됐어요!
세린신 통영에 가기 전에 여기를 참고하세요.
김장주의 통영여행 http://www.tongyeong.pe.kr/
알라뷰 통영!!!
세린신 오프수업 열심히 고민하고 멋진 질문 올려주어 고마워요.
많은 도움받고 있어요.
응원도 고마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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