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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7월 26일 09시 40분 등록

북리뷰 80. 모파상의 시칠리아

 

: 모파상의 시칠리아. 모파상 지음. 이순아 옮김. 그린비. 2010.

 

*** 작가에 대하여: 기 드 모파상 , Guy de Maupassant ( 1850 ~1893 )

 

  프랑스 작가 모파상은 마흔 세 살에 죽어 파리 몽파르나스 공원묘지에 묻혔다. 명확하고 논리적이며 간결한 언어를 구사하던 모파상이 자신의 삶을 예견한 말이다. “나는 혜성처럼 문학에 들어왔고 벼락처럼 사라질 것이다.” 세계적인 작가로 명성을 얻은 그는 < 여자의 일생>,<진주 목걸이>,<비계덩어리>.<벨아미> 등등.....누구나 한번은 들어보았을 제목의 글들을 남겼다. 부와 명예는 화려하게 누렸지만 질병과 정신적 스트레스로  사생활은 어두운 그림자를 남겼다. 지중해의 태양에서, 여행에서 위로를 받았다. 

 

모파상은 185065일 노르망디 디에프 근처에 있는 미로메닐 성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부유한 주식관리인이었고 어머니는 상류계급 출신으로 지적이고 아름다웠다. 이들의 장남이었던 모파상은 아버지에게 명석한 지능을 어머니에게 성품과 문학적 재능을 물려 받았다. 12세에 부모는 이혼을 했고 13세에 그는 이부트 신학교에서 기숙사 생활을 한다. 16세에 퇴학을 당하고 19세에 파리로 법률공부를 하러 간다. 20세에 보불전쟁이 일어나 유격대로 지원 전쟁에 참여했다가 패전군과 함께 퇴각했다. 22세 부터 10년 동안 관료가 되어 해군성과 문부성에서 생계를 위해 일을 했다.

 

파리에 있는 동안 어머니의 어린시절 친구였던 플로베르의 집을 일요일마다 방문했다. 그곳에서 뚜르게네프, 에밀 졸라, 콩쿠르 형제들과 알고 지내게 된다. 플로베르는 그의 보호자이자 문학적 멘토로서 그에게 늘 새로운 시선으로 현실을 관찰하도록 가르쳤으며 그만의 독특한 문체를 꾸준히 연습할 것을 요구했다.1880년부터 1891년 사이에 300편의 중 단편과 6편의 장편을 발표했다. 과로와 신경통은 작품을 발표할 때마다 유명해지고 세계적인 명성을 얻어가는그를 따라 다녔다.

 

모파상은 그의 모든 감각을 통해서 삶 자체의 움직임, 색깔, , 모습을 창조하려고 했다. 소설가의 목표는 독자들을 재미있게 감동시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 사건 내부에 깊이 감춰져있는 의미를 생각하게 하고 이해시키는데 있다고 했다. 그리고 자신이 경험하고 느껴보지 않은 것은 절대 완벽하게 묘사할 수 없다고 생각한 듯, 다양한 테마의 작픔들 속에 그의 실제 경험들이 녹아들어 있어 마치 온몸으로 작품을 써내려 간듯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그의 짧은 생의 후반기에 그는 죽음의 공포에 시달리며 쪽빛 바다에 쏟아지는 태양을 찾아다녔다. 성공한 작품에서 따온 <벨 아미>라는 이름의 요트를 구입해서 지중해 해변을 여행했다. “전율하고 싶은 욕망없이, 영혼 속에 긴 여행에 대해 전율하는 갈망을 일깨우지 않고 빛을 볼 수 있는가?” 죽기 전해에 니스에서 자살을 시도했고 정신 병원에 강제 입원되기도 했다. 189376일 생을 마감했다.

 

 

*** 마음을 무찔러 드는 글귀

 

11. 시칠리아는 자연적 미와 예술적 미가 주목받을 만큼 뛰어나다. 이탈리아의 곡창이라고 불리는 이 땅이 얼마나 비옥하고 활기찬지...

12. 오렌지 나무의 고장으로 봄에는 그 꽃향기가 가득한 곳이다.

 

시칠리아는 북쪽 또는 남쪽에서 잇달아 침입한 번식력이 강한 만족들에 점유당하는 행운을 얻었다. 그리스와 이집트의 기념물이 넘쳐나던 시기에 아라비아의 영향을 받은 독특한 예술이 이 외딴 섬에서 태동하였고, 노르만 족들이 침입하여 전파한 비잔틴 장식술과 장식품의 기막힌 기술은 고딕 스타일의 엄격함을 완화시켜 주었다.

 

13. 기원전 8세기 페니키아와 그리스의 식민지였던 시칠리아는 기원전 3세기 포에니 전쟁에 개입한 로마제국의 속주가 되었다. 로마의 멸망 후에는 반달족, 동고트족,비잔티움 제국의 통치를 받다가 827년부터 200여 년간 튀니스의 아랍인들에게 지배당했다.

1072년 노르만 족이 수도인 팔레르모를 정복하여 시칠리아 왕국을 세운 후 노르만, 비잔틴, 이슬람 양식이 공존하는 번영을 누리며 영토를 나폴리까지 확장했다.

 

13세기 전반 신성로마제국의 독일 호엔슈타펜 가문인 프리드리히 2세가 시칠리아 왕국의 국왕이 되었다. 이후 프랑스 앙주가의 샤를 1세가 왕위에 올랐으나 1282년 이후 민중 반란이 계속되다가 1412년 스페인 아라곤 가의 페드로 3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18세기에 부르봉 왕가의 지배를 받다가 19세기에 가리발디가 일으킨 이탈리아 혁명을 통해 , 1861년 하나의 공화국으로 통합된 이탈리아 왕국에 편입되었다. 1947년 시칠리아는 지방 자치권을 얻었다.

 

14. 팔레르모의 형상은 매우 독특하다. 간헐적으로 붉은 색조를 띄는 청회색의 헐벗은 산과 그 광대한 원곡 한가운데 위치한 이 도시는 중앙에 직각으로 교차하는 두 개의 큰 직선도로에 의해 네 지역으로 구분된다.

 

15. 인간의 머리로 꿈꿔져 예술가의 손으로 제작된, 세상에서 가장 경이롭고 훌륭한 종교적 건축물인 팔라티나 성당은 노르만인들이 세운 고대의 거대한 요새, 노르만 궁전 안에 있다.

 

17. 세 개의 중앙 홀이 있는 작은 예배당인 팔라티나 성단은 노르만 고딕 스타일로 1132년 에 루지에로 2세가 조성한 것이다. 길이 33미터에 너비 13미터에 불과해 하나의 장난감 같은 이 성당은 바실리카 건축의 걸작이다.

 

19. 바그너가 여기 살 때였어요. 그가 파르지팔의 마지막 곡을 작곡하고 그 초벌 악보를 교정한 곳이 바로 여기랍니다.

 

20. 바그너가 장미수를 적시고 나서 바로 이 장롱안에 그 헝겊을 보관했답니다. 그 장미향은 지금도 전혀 사라지지 않았어요....한사람의 사생활이 만든 이 비밀스럽고 사랑스런 습관들이 일상 속에서 그에 관한 무언가, 즉 그의 욕망이나 그의 영혼을 조금은 되찾아 본 것 같았다.

 

24. 카푸친 작은 형제회 수도원의 지하묘지. 그 땅은 죽은 시체를 너무나 잘 분해하는 독특한 특성이 있어서 1년 만에 검고 마른 살갗이 약간 찰싹 달라붙어 있거나 간혹 턱과 뺨에 붙어있는 수염 말고는 더 이상 뼈위에는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게 만들 수 있다. 주요 회랑들 중 한곳에 미라를 매달아 놓으면 가족들이 가끔 그것을 보러 온다. 이러한 건조 방식으로 보존되기를 원하는 사람은 죽기 전에 신청한다. 그들은 가족들이 연간 지불하는 보수로 박물관에 유물을 보존하듯이 이 어두운 지하 속에 영원히 머물게 될 것이다.

 

25. 이쪽 미라들은 텅 빈 눈으로 공중을 보고 있고, 저쪽에 있는 시체들은 아래를 보고 있다. 여기의 시체들은 잔인하게 웃고 있는 것 같고, 저기는 고통으로 인해 비틀거리는 것 같다. 모두 다 초인적인 격렬한 공포로 얼이 빠진 것 같다.

 

26. 그들의 이름과 사망한 날짜가 기재된 증표는 밀봉되어 그들의 목에 걸려있다. 이 날짜를 보고 등골이 오싹했다. 1880, 1881, 1882 라는 숫자가 표기되어 있었다.

 

27. 종종, 시체 옆에 사진 한 장이 걸려있다. 그 사진은 그가 살았던 때의 모습을 그대로 찍은 것이다. 이와 같이 둘을 나란히 놓은 대비, 이 같은 비교로 우리를 일깨워준 상념들보다 더 충격적이고 무서운 것은 없다.

 

30. ‘산적들은 어디에 있어요? ’ 라고 묻는다. 모든 사람들이 답한다. “더 이상 없어요.”

이 나라 안에서 무장공격과 암살들이 자주 일어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것들은 옛날처럼 조직된 집단들의 소행이 아니라 단독범들이 저지르는 흔한 범죄였다.

 

31. 팔레르모를 굽어보는 여러 산들 가운데 하나의 중턱에 고대 유적물로 유명해진 작은 마을 몬레알레가 있다. 섬에서 마지막 흉악법들이 활동하던 곳이 고지에 위치한 이 마을 부근이었다.

 

34. 대성당 가까이에 있는 아주 오래된 베네딕투스회 수도원 안으로 들어갔다. 고요하고 은폐되어 청량함을 간직한 천혜의 장소에 있는 이 공간들이 어떻게 찬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서두원의 음산한 긴 아케이드 아래를 느린 걸음으로 산책하다

 

보면 절로 입술에 흐르던 깊고 맑은 명상을 탄성으로 자아내게 된다.

 

39. 오늘날에는 자동차로 여행을 하거나 말을 타거나 걸어서 시칠리아를 돌아다니는 것은 전혀 위험하지 않다. 게다가 가장 흥미로운 지역은 거의 전부 자동차로 여행할 수 있다. 첫 번째로 가보아야 할 곳은 세게스타 신전이다. 너무나 많은 시인들이 그리스를 노래했고...시칠리아가 나에게 그리스를 보여주었기 때문이다.

 

43. 그 초승달 모양의 능선 중앙에 그리스식 신전의 모습이 나타났다. 이 신전은 신성을 지닌 민족으로 하여금 인간적인 신들에 이르도록 하는 강렬하고도 아름다운 유적지 중의 하나다.

 

44. 그리스 사람들이 살았거나 식민지를 건설했던 어떤 나라를 방문할 때, 가장 아름다운 광경을 발견하려면 그들의 극장을 찾기만 하면 된다. 그리스 인들이 신앙심의 효력을 얻을 수 있는 전망좋은 제 1의 장소에 그들의 신전들을 세웠다면 반대로, 눈으로 구경하기에 가장 감동받을 수 있는 확실한 장소에는 그들의 극장을 세웠기 때문이다.

 

* 아그리젠토(옛이름 지르젠토)는 기원전 582년 에 시칠리아 섬에 그리스인이 세운 식민도시로 아크라가스 강과 히스파스 강이 만나는 지점에 신전의 계곡이 조성 되었다. 디오스쿠리, 제우스, 헤라, 콘코르디아, 에르콜레(헤라클래스) 신전 등 20여개의 도리아식 신전들이 있어 신전의 도시로도 불리운다. 2500여년의 세월을 감안하여도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한 이 유적지를 1997년 유네스코에서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하였다.

 

45. 세게스타 신전을 방문했던 그 다음 날엔 셀리눈테를 방문할 수 있었다. 그곳에는 마치 군인들의 시체처럼 옆으로 가지런히 쓰러져 있거나 무질서하게 무너져 있는 기둥들이 엄청나게 쌓여있다.

 

46. 신전들 주위로 앞이나 뒤네 있는 모든 것이 죽어서 바짝 말라 있으며 노랗다. 태양이 땅을 불태우고 먹어버렸다. 이렇게 흙을 갈아먹는 것이 태양 자체인가? 혹은 이 화산섬의 정맥을 항상 태우는 저 깊은 곳에서 솟아오르는 불인가? 왜냐하면 지르젠티 도시 유적 주변 도처에는 유황이 많은 지역으로 펼쳐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은 전부 다 유황으로 되었다. 땅과 돌과 모래 모두 다.

 

47. 가슴속에 간직한 온갖 사랑과 영혼에 모든 꿈과 감각의 본능들을 시적으로 의인화한 것 같은 올림푸스 산 전체가 , 호메로스의 올림푸스, 오비디우스의 올림푸스, 베르길리우스의 올림푸스가, 우리들처럼 만들어졌고, 우리들처럼 매혹적이고 관능적이고 정열적인 신들의 올림푸스가 우리 앞에 있는듯하다. 이 고대의 하늘 위에 우뚝 서있는 것은 바로 온통 그리스 로마 시대의 문명이다.

 

강렬하고 독특한 어떤 감정이 마음속 깊이 파고든다. 그리고 이 엄숙한 신전들의 잔해 앞에서, 거장중의 거장이 남긴 잔해 앞에서 무릎 꿇고 싶어진다.

 

48. 시칠리아는 세상의 거의 모든 유황을 공급한다. 이 화산섬에서 수없이 많은 유황 광산들을 발굴하기 때문이다.

 

49. 광산에서 끄집어 낸 유황은 거무스름하고 땅과 석회암 등과 혼합되어 있다. 굳어있고 부서지기 쉬운 일종의 돌 모양이다. 즉각 갱도에서 가져와서 높게 단을 쌓고 그 중앙에 불을 붙였다. 그러자 은근히 불이 꾸준하게 타오르면서 높게 쌓은 단 가운데를 침식하고 순수한 유황을 발산한다. 그 유황은 융해되면서 마치 물이 작은 운하를 따라 흐르는 것처럼 흘러간다.

 

51. 지금 저기 우리 앞에 리파리 군도가 나타났다. 불카노 섬과 스트름볼리 섬이다. 그 두 화산섬 사이에서 우리는 리파리섬과 필리큐리 섬, 알리큐리 섬, 말고도 매우 낮은 몇몇 작은 섬들도 보았다.

 

53. 마침내 산꼭대기 위 큰 분화구 주위에 잇는 넓은 망루에 도착했다. 땅이 흔들리고 눈앞에서 사람의 머리처럼 큰 구멍을 통해 연기와 거대한 불꽃이 격렬하게 분출했다. 그 사이에 우리는 그 구멍 입구 언저리로부터 불에 녹아 금빛이 도는 유황액체가 퍼져 나가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환상적인 원천수 주위에서 매우 빨리 굳어버린 노란빛 호수를 만들었다.

 

54. 산의 발치에서 잠자고 있는 영국인은 이 산성액과 액체들, 분화구가 분출한 모든 것을 수집하고 개발해서 판다. 돈벌이가 되기 때문이다. 화산에 적응하지 못해서 호흡 곤란으로 헐떡이고 숨이 찬 나는 천천히 다시 돌아왔다.

 

55. 작은 배를 타고 다시 돌아오며 나는 리파리 섬 뒤에 숨겨져 있는 섬 하나를 발견했다. 뱃사공은 그 섬 이름을 살리나라고 불렀다. 멈지 포도주를 제조하는 곳이 바로 이 섬이다. 나는 이 유명한 포도주 한 병을 원산지에서 마시고 싶었다. 맛은 유황의 시럽 같았다. 화산섬에서 생산되는 진하고 달콤한 유황빛을 띤 그 독특한 포도주 맛은 궁으로 돌아와서 저녁을 먹을 때까지 입안에 남아 있었다. 악마의 포도주다.

 

56. 우리는 그날로 카타니아로 향하는 철로를 택했다. 그 철로는 놀랍도록 아름다운 해안을 따라가다가 이상하게 생긴 만을 우회한다. 그 만의 내포 안쪽으로 모래사장 기장자리에 위치한 희고 작은 마을이 있다. 여기가 타오르미나다.

 

57. 타오르미나에 있는 이 극장은 전 세계를 통틀어 결코 다른 곳과 비교될 수 없는 너무나 경이로운 장소에 있기 때문에 그곳 이외의 다른 곳에는 위치할 수 없다.

도대체, 오늘날, 이와 같은 풍경들을 만들 줄 아는 민족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들의 정맥 속에는 지금은 사라진 무언가가, 즉 미를 사랑하고 감탄하는 열정이 흐르고 있었다.

 

58. 가끔, 에트나 화산은 분화구로 무거운 연기를 하늘로 내뿜기만 하면서 오랜 세월동안 조용히 휴식을 취한다. 그동안 비를 맞으며 태양빛 아래서 흐르던 고대 용암들은 가루가 되었고 일종의 화산재와 모래가 많은 검은 땅이 되었다. 그 흙에서 올리브 나무, 오렌지 나무, 레몬 나무, 석류나무, 포도나무와 과실수들이 자라난 것이다.

 

59. 그것은 화산이 폭발할 때의 모습이다. 부등켜안은 짐승 모양의 독특한 윤곽이나 수족이 비틀어진 형태로 굳어있다.

 

여기 전적으로 용암위에 세워진 광대하고 아름다운 도시, 카타니아가 있다. 그랑데 호텔의 창문에서 우리는 에트나 화산의 꼭대기 전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고대인들은 이곳에 헤파이스토스 신의 작업장을 만들었다. 지금까지 화산은 약 80번 폭발했다고 알려져 있다.

 

61. 먼저 자동차를 타고 들판을 통과하여, 잘게 쪼개진 용암속에서 뻗어난 나무들로 가득찬 정원들을 지나서 니콜로시로 갔다. 이따금 길을 가로막은 거대한 용암이 흐르는 곳을 지나가기도 했는데, 도처에 흙은 온통 검은 색이었다.

 

완만한 경사를 오르며 드라이브한 지 세시간 만에 우리는 에트나 산 발치에 있는 마지막 마을인 니콜로시에 도착했다. 해발 700미터에 이르며 카타니아 마을에서 14킬로 떨어져있는 마을이다. 거기서 우리는 자동차를 버리고 노새들을 몰고 온 안내자들을 만나서 양말과 털장갑으로 무장하고 모포를 두르고 다시 출발했다.

 

65. 사람들이 보통 분화구 가장자리에서 해돋이를 보기 위해 짚더미 위에서 밤을 지내는 곳이 바로 이집이다. 300미터를 올라가는 데는 대략 한시간 정도 소요된다. 몇 시간 전부터 유황이 섞인 수증기가 이미 우리 목까지 찼다. 우리는 유황연기에 질식하지 않도록 코와 입을 막고 다시 앞으로 나아갔다.

 

이 도시는 대도시만큼이나 유명했다. 시라쿠사의 참주들은 그 유명한 네로 황제처럼 통치했고, 이 도시는 시인들에 의해서 유명해진 포도주를 생산하기 때문이다. 이 도시를 내려다보고 있는 만 가장자리에, ‘아나푸라는 아주 작은 강이 있는데, 그곳에서는 생각을 비밀스럽게 지키고 보호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파피루스가 쑥쑥 자란다.

 

68. 한 여행자의 앨범에서 나는 대리석으로 조각된 고상한 여성의 사진을 보았다. 그리고 나는 그녀를 마치 실제의 어떤 여인을 사랑하듯이 사랑하게 되었다. 시라쿠사의 비너스.

 

69. 우리는 하늘로 향해 열린 커다란 동굴들, 즉 라토미(채석장)로 갔다. 니키아스의 패배이후로 포로로 잡힌 아테네군을 여덟 달 동안이나 감금시킨 감옥이 된 곳이다. 거기서 포로들은 진흙바닥에 붐비는 사람들과 동굴의 무시무시한 열기와 배고픔과 갈증으로 고문과도 같은 고통을 받으며 죽어갔다. 그 동굴 중의 하나인 채석장에서 사람들은 동굴 끝에 있는 디오니시오스의 귀라 불리는 이상한 통로를 보게 된다. 입구가 귀 모양으로 생긴 그 동굴에서 희생자들의 탄식이 들려온다는 것이다.

 

71. 대리석은 살아있다. 사람들은 마치 살아있는 육체를 대하듯이 손아래 굴복시킬 수 있을듯한 확신으로 그녀를 만지고 싶어 한다. 시라쿠사의 비너스는 이 강렬하며 건강하고 단순한 미의 완벽한 표상이다.

 

76. 마침내 소관목이 빼곡한 섬이 보인다. 9-12피트 높이의 여린 세모꼴 줄기의 꼭대기는 길고 가냘프고 잘 휘는 녹색의 어린 나무가 둥근 덤불을 이루는 것이 마치 머리털 같다. 옛날에 저기에 살고 있던 이방의 신들 중 어떤 신이 샘의 성스러운 물속에 인간의 머리를 던져서 그와같은 식물이 되었다고 사람들이 말한다. 이것이 바로 고대의 파피루스이다. 게다가 농부들은 이 갈대를 파루카라고 불렀다.

 

77. 우리에게 인간 정령이 수호자인 죽은 자들의 생각을 전수해주는 존경할 만한 이 소관목이 관목의 아주 어린 몸통위에 마치 시인의 덥수룩한 머리털처럼 나풀거리고, 굵고 두꺼운 머리털을 갖고 잇다는 것이 이상하지 않는가?

 

 

 

*** 내가 저자라면

 

지중해에서 가장 큰 섬 시칠리아는 대부분 산악지대로서 지진과 화산 활동이 활발한 곳이며 특히 에트나 산은 3320미터로 거대한 활화산이다. 모파상은 1889년 지병인 우울증을 치료할 방편으로 이곳 이탈리아의 반도 남쪽으로 여행을 떠났다. 그때 시칠리아의 눈덮인 에트나 화산과 푸른 지중해, 순수하고 평온한 중세의 성당들과 웅장한 고대 그리스 신전들이 어우러진 이 아름답고 신성한 곳을 건축 박물관이라 불렀다. 그는 이곳에서  잃어버린 유럽 문명의 근원, 건강하고도 소박한 심미안을 되찾았다고 한다. 독일의 문호  괴테는 모파상보다 100년 전 1787, 이곳을 다녀가며 시칠리아를 보지 않고서는 이탈리아를 보았다고 말할 수 없다라고 이탈리아 기행문에 써 두었다. 그런 시칠리아가 올 여름 변경연 해외연수의 목적지가 되었다. 바로 다음 주말이면 떠나야 한다.

 

여행에 앞서 도대체 우리가 가는 곳이 어디이며 우리는 무엇을 챙겨가야 하는가, 또 무슨 생각으로 이 강한 지중해의 햇빛을 마주해야 하는가...이런 생각들을 하다가 이 책을 만났다. 이미 희소성으로 유명해진 김영하의 시칠리 여행기나 박제의 에트나 화산 찬양기는 읽었지만 모파상의 흔적을 따라 가 볼 수 있을것 이라곤  생각해보지 않았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많은 사람들이 나폴리까지는 내려가지만. 깡패가 많다는 입소문으로 알려진 이곳은 피해가는 사람들이 많았다. 벌써 모파상의 시대에 그건 진실이 아닌 소문과 선입견이라고 말을 해 두고 있는 것을 보면 옛사람과 공감하고 소통하는  것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새삼 책읽기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다.

 

그린비의 작가가 사랑한 도시 시리즈는 100년 전 도시에서 보고들은 바를 기록해 놓은 여행문학을 편집한 것이다. 플로베르의 나일강, 뒤마의 볼가강, 쥘 베른의 갠지스강, 잭 런던의 클론다이크강, 뮈세의 베네치아.... 이렇게 나가는 시리즈물에 모파상의 시칠리아가 있다. 플로베르의 안내로 일찍부터 잡지에 기고하며 이름을 알려온 모파상은 르포르타주를 비롯한 여행기를 많이 썼다. 1884년 이후로 그의 병은 정신적 과로와 육체적 피로로 인해 점점 더 악화되어 갔다. 사실주의, 자연주의 작가답게 그는 보고들은 세계가, 온 몸으로 부딪쳐 체득한 경험세계가 너무나 많아, 그래서 더더욱 고통스러운 글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그가 1892년 자살을 시도했을 때, 10년 동안 그의 곁에서 시중을 하던 하인 프랑수와는 그를 살려내고 그후 그는 파리의 한 정신병원에 수감된다. 그리고 다음 해, 43세 여름에 생을 마감한다.

 

그의 글쓰기의 바탕이 철저하게 분석적이고 탐구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그가 삶속에 확신과 영감을 불어넣어 주는 꿈이라든지, 상상력을 믿지 않는 비관적인 태도에 기인하는 것이라 한다. 후세에 그의 짧은 시칠리아 여행기에 붙여둔  번역가의 작가해제에 쓰여진 작가의 작풍에 대한 설명이다. 모파상은 그의 모든 감각을 통해 자신의 삶을 구별 짓기를 원했다. 그의 문체는 단순하며 뛰어난 절제로 삶 자체의 움직임, 색깔 톤 모습을 창조하려는 경향이 보인다. 소설의 목표는 독자들을 감동시키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이야기한 사건의 내부에 깊이 감추어져 있는 의미를 생각하고 이해시키는 데에 있다고 피력한 모파상의 작가관은 이 여행기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비록 날짜도 목차도 없는 편집이지만 뱃길과 발길을 분명하게 그려놓은 그의 여행기는 색다른 재미로 우리를 안내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영하나 박제의 여행기보다 좀 더 여러 번 이 책을 읽게 만드는 박진감이 있었다.

 

올 여름에는 모파상처럼 여행기를 써봐야겠다. 한 장면 한 장면 비교를 하고 그가 본 세계를 나름대로 재해석을 해가며 시칠리아 여행기를 다시 써보는 것은 재미있는 작가수업이 될 것 같다.        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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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7.26 09:41:26 *.70.64.222

난 좀 바빠서 잠시 나갔다가 오겠습니다.

밤 12시경 해골 귀신들이 춤출때 다시와서 덧붙여 놓을게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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