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범해 좌경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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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미 23. 마음의 진보
내겐 스승 같은 친구가 있다. 제 2의 독자로 내 글을 항상 읽어주는 친구다. 한동안 글이 써지지 않아 우울한 시간을 지내는 내게... 친구는 “꼭 책을 써야만 하니? 안 쓰면 어때?” 하며 토닥토닥 나의 마음고생을 위로해 주었다. 그러나 나는 친구가 내 책을 기다리고 있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며칠 전, 우리가 학창시절, 수업 시간에 책상 아래 두고 읽던 일본 소설 <인간의 조건>을 6부작으로 만든 영화를 상영한다기에 친구와 통화를 했다. 그 책의 주인공 “가지”는 우리 시대의 데미안 이었다. 가지 역을 맡은 나카다이 다쓰야는 지금 80세이지만 아직 현역 배우로 활동하고 있다. 이 영화의 상영시간은 574분이다. 그 긴 시간 동안 가지의 주 활동무대였던 광산촌과 관동군의 만주 벌판이 주욱 펼쳐졌다. 마치 에트나 화산을 다시 보는 것처럼 대형 스크린의 흑백필름이 더할 수 없이 아름다웠다.
그날 내 친구는 카렌 암스트롱의 <마음의 진보>라는 책을 추천했다. 그러면서 우리와 비슷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의 자서전이어서 공감대가 있고 또 생각할 거리도 많다고 했다. 당장 책을 구해서 태풍이 휘몰아치는 낮과 밤 동안 바람의 길도 묻지 않고 이 글을 독파했다. 이 책의 원래 제목은 The Spiral Staircase 이다. 나선형 계단에 서서 정리를 한 자서전이다.
카렌 암스트롱은 1962년, 17살에 수녀원에 들어가서 그곳에서 7년을 지냈다. 스스로 선택한 길이었지만 수녀원에 적응해보려고 한 그녀의 모든 노력은 신경쇠약으로 고통을 받았고 7년 뒤 그녀는 흐리멍텅하게 망가지고 부서진 몸으로 수녀원을 나왔다. 1969년의 일이다.
환속 12년 후에 그녀는 <좁은 문으로>라는 자서전을 출판했다. 이 책을 쓰며 그녀는 과거를 직시하면서 거기서 많은 것을 배웠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수녀원에서 보낸 시간이 그녀에게는 매우 값지고 소중한 것인지를 깨달았고 비록 여러 가지 문제는 있었으나 온 세상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유익한 경험이었다. 그리고 1983년 속편으로 <세상 나들이>를 출간했다. 1969년부터 82년까지의 기록이다. 그녀는 이 책에서 수녀원을 훌훌 털어버리고 상처도 깨끗이 아물었다고 생각했기에 이 기록들이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통과의례를 성공적으로 끝낸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이 두 번째 책 이후 그녀의 인생은 크게 바뀌었다. 지금 그녀는 혼자 지내면서 거의 온종일 신과 종교, 영성에 대해 생각하면서 글을 쓰면서 살고 있다.
그녀는 이 <세상 나들이>라는 책이 졸작이며 절판된 것이 천만다행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출판사가 그녀에게 조건을 붙여 책을 쓰기를 요구했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 그녀는 실제로 일어난 사건들을 쓰지 않아서가 아니라 있었던 일을 전부 쓰지 않았기 때문에 솔직하지 못했다고 후회했다. 출판사에서 그녀에게 지식인처럼 굴어서는 안되며 조금이라도 먹물기가 있는 내용은 다 빼고, 책이나 시 이야기는 곤란하고, 신의 본질이나 기도의 목적에 관한 사색도 빼주길 원했다. 최대한 밝고 긍정적으로 그녀 자신을 묘사하라고 요구했기에 그녀는 출판사에서 어련히 알아서 판단하겠거니 생각하고 하라는 대로 했다. 그 결과 감상적이고 요란하고 지나치게 활달한 말투로 <세상 나들이>라는 책이 씌여졌고 그녀의 인생이야기인데 사실 그녀도 잘 모르는 남의 이야기를 쓴 것 같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는 다시 이 책을 썼다. 누구나 가끔씩은 살아온 과거를 제대로 응시할 필요가 있다. 처지가 달라지면 과거의 의미도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녀는 옛날에 쓴 이야기를 다시 읽어보면서 어떻게 사람의 생각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는지 깜짝 놀랐다고 했다. 모두 511쪽이다. 그녀의 파란만장한 경험들을 매우 솔직하게 풀어놓은 이 책은 나의 얘기를 통해서 세상의 이치를 터득하려고 애쓰는 지금의 나에게 매우 유익했다. 대학에서 매주 에세이 쓰는 훈련을 하는 동안 자기의 생각을 쓸 수가 없어서 힘들었던 과정과 출판사와 책을 계약할 때의 이야기들을 매우 자세하게 알려주고 있다. 먼저 이 책을 읽고 내게 권해준 친구의 마음이 바로 스승의 마음이라 생각했다.
카렌 암스트롱은 오랫동안 다시 부활절이 오리라는 희망도 없이 모진 사순절만을 살아가는 줄 알았다. 어디로 나아가는지도 모르고 헛되이 맴돌고 있는 것 같았지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어둠속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신화에서 계단은 의식이 새로운 차원으로 올라가는 돌파구를 상징한다. 그녀는 오랫동안 이제 종교와의 인연은 끝났다고 생각하며 살았다. 그러나 고통스럽게 나선의 계단을 오르며 살다보니까 어느새 신을 만나겠다던 일념으로 가방을 꾸려서 수녀원에 들어가던 그때 그녀가 추구하던 그 모습으로 바뀌어있는 자신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그녀가 자신의 인생의 핵심을 찌르는 시를 골랐다.
T.S. Eliot의 <재의 수요일>은 이렇게 시작한다.
다시는 되돌아가리라 바라지 못하리니
바라지 못하리니
되돌아가리라 바라지 못하리니
이 사람의 재주와 저 사람의 그릇을 탐내면서
이제는 그런데 아등바등 하려고 아등바등하지 않으리니
(늙은 독수리가 왜 날개를 펴야 한단 말인가?)
몸에 밴 권세가 힘을 잃었다고
서러워 할 이유가 뭐란 말인가?
공감의 다른 면이 '비움' 이라 한 사도 바울로의 말에 공감해요.
북리뷰 읽고 다시 칼럼 읽으니, 샘이 이 책과 저자에게 공감하신 심정과 배경을 조금 알 것 같기도 해요.
'Spiral Staircase' .. 크고 넓은 계단이 아니라서 더 나의 계단이 되는... 내 앞의 삶.. 이 되는 ..
얼마 전에 어떤 인연을 만나고 보내면서, 인연의 흐름... 개별 영혼들의 눈에 보이는 삶은 각자의 흐름이 있는 것 같다는 것을 느껴요.
인연이 흘러가는 길목이 아닌 곳에서 나 혼자 용을 쓰는 것은 에고가 삐질삐질 흘리는 땀일뿐, 흐름을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을요.
그들의 개별 흐름을 존중하고, 지금 나에게 주어진 것에 온 마음을 다하고...그러는 중에... 삶의 원형이라 하는, 신이라 하는, 본질이라 하는 불성이라 하는, 무엇이라 불러도 상관없는 위로 갈수록 좁아지는 영혼의 계단 끝 즈음에서 ... 아무것도 아니면서 모든 것이었던 '그(It)' 를 만나는 걸거에요...샘 글 읽으면서 저절로 생각이 많이 일어납니다용.. ^^
[세상 나들이]를 출판하면서 생긴 일화를 못 본척 할 수는 없겠지만, 또 미워할 수도 없겠네요..
세상에 나오는 모든 책이 다 읽을 만하고 감동을 주고 '완벽'할 수는 없을테니 ...
여러 향기와 색깔로 피어나는 장미가 반갑고 예뻐용. 장미 화이팅!
샘의 '온 마음'도 화이팅 !
콩두야....코피는 안터졌는지....밤을 꼬박 새우고...그럼 너무 일찍 작가적 삶을 사는거잖아......ㅎㅎ 콩콩콩...
마음을 무찔러는 혼신의 힘을 다하는건 좋은데...책에 각기 다른 색연필로 밑줄그어
일회독 이회독 하는 것과 어떤게 더 효과적일지 ...이제부턴 생각해 봐야해.
왜냐하면, 책 한권에 다섯번 쯤은 통독을 해야 겨우 컬럼 하나 건질 수 있거든.
물론 나는 독수리여서 콩콩대며, 내 글을 읽어줄 사람을 위해서 거의 책을 통채로 마무에 옮겨 찍었었지만, 나중엔 그건 글이 아니라 타자연습이었다고....말하게된단다.
결국은 한 문장에 세번이상 줄그었으면 바로 그런게 마음을 무찔러드는 글귀이거든.
나중에 내 책 쓸때 그 문장이 생각나야해.
그러나 지금까지 콩두가 읽은 책은 동서양을 무한횡단하는 고전이므로.... 사마천의 사기 ....참 잘했어요.*****
보통 책으로 돌아올 때는 내가 한 말을 생각하고 빨리" 내가 저자라면"을 끓이도록....
물 먼저 끓여야 해 ...ㅋㅋ 그럼 오늘은 20000, 콩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