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젤리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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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무엇을 연구하니?
지난 주부터 Project 진행
관련해서 횡성에 있는 자사공장을 방문하게 되었다. 생산팀장은 예전부터 알고 지내 온 사이인데, 평소 깊은 이야기는 나누지 못했다. 조직생활에서 만나는 사람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은가? 안부인사, 업무이야기 그리고 좀 더 친하면
가족에 대한 이야기 정도다. 점심시간에 우연히 그의 자리를 지나쳐 가는데, 책상 위에 그리스인 조르바<카잔카스키>라는 책 제목이 나를 붙잡았다. 그 동안 읽고 싶었던 책이어서
그런지, 자연스럽게 눈에 들어왔다. 책에 대한 내용이 어떤지, 요즈음 어떤 분야에 관심이 있는지에 대해서 나는 물어 보았다. 그는
고대 그리스와 로마 문명에 대한 책을 읽고 있으며, 그 시대 문화에 관심이 많다고 했다. 다음에 읽을 책은 메소포타미아
문명이라고 한다. 점심시간 동안, 우리는 그 동안 읽었던
책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동안 읽었던 '그리스인
이야기', '문명이야기'을 그에게 추천해주었다. 회사 내에서 책에 대해 깊이 있게 이야기를 나눈 것은 그가 처음이었다.
다음날 공장에 다시 들리게 되었다. 오전
동안 지루했던 Project 회의가 끝나고, 점심시간이 되었다. 그와 함께 식당으로 걸어갔다.
"자네, 구본형씨 책 읽고
있나" 그가 말했다. 반가운 마음이 들었지만, '내가 변경연에 몸 담고 있는지 어떻게 알고 있지?'라는 의심이
교차했다. 잠시 머뭇거리자, 그가 다시 말했다.
"회의 쉬는 시간에 자네 노트북을 보니깐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홈페이지가 떠 있더라구" 나는 그제서야 상황 파악이 되었다. 그는 습관처럼 변경연
홈페이지를 찾는 내 모습을 보았다.
"팀장님께서는 그 분 책, 읽어보셨어요?" 나는 그에게 물었다.
"음, '익숙함과의 결별',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그리고 몇 권 더 읽었던 것
같아, 그 중에서 '익숙함과의 결별'이 가장 기억에 남아"
"그래서, 나도 가끔씩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거든"
나는 조금씩 흥분되기 시작했다. 더욱
놀라웠던 것은 윗사람에게 사부님의 강연까지 권유한 적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눈빛이 다르게 보였다.
"처음에 자기계발의 분야의 책을 읽고 싶어서, 그 분의 책을 접했고, 조금씩 생각이 바뀌었어. 그 변화의 시작이 나를 들여다 보는 사유에서부터 시작된 것 같아, 그러면서 '자기계발'이라는 단어가 공허하게 느껴지더니, 점점 내면을 채울 수 있는 철학과 역사에 대한 관심으로 옮겨 가더라구, 그리고, 지금은 인류 문명에 대한 의문을 가지고 그 해답을 찾아가는 중이야' 라고
말했다.
일년 전에 경험했던 것을 그가 말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나에 대해서 말하고 싶어졌다.
"저, 구본형 변화경영연구소
연구원이예요" 라고 말하자, 평소 감정 표현이 없는
그의 얼굴에서 놀람과 기쁨을 동시에 느낄 수 있었다.
"근데, 무엇을 연구하니?" 갑작스런 그의 질문에, 나는 선뜻 대답이 나오지 않았다.
"나 자신에 대해서요, 그래서
책도 읽고, 글도 쓰고 있어요" 라고 말했지만, 허전했다.
'넌 지금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 거니?'
그 날 이후부터 이 질문이 머리 속에 자리잡고 있다. 현재 내 삶은 연구원 시간에 맞춰서
흘러가고 있다. 그 속에서 무엇을 연구하고 있는지 의문을 가져보지 않았다. 단지 '주어진 과제를 열심히 쫓아가다 보면 얻어지는데 많을 거야'라는 막연한 기대감이다. 아직 나에 대한 탐구가 부족해서일까? 아니면 더욱 더 치열하지 못해서일까? 이번 주 과제인 사마천의 <사기>를 읽으면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지나온 나의 기록들을 다시 되짚어 보았다.
사마천도 '오랜 시간에 걸쳐
이루어진 역사를 어떻게 생생하게 그려낼 수 있을까?'라고 고민을 하지 않았을까? 그의 스승은 공자였다. 그리고 공자가 쓴 <춘추>에서 그는 해답을 찾게 되고, 그것을 바탕으로 <사기>를
저술하게 되었다. 그는 황제부터 장사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물들을 통해 역사를 말하고 있는데, 이러한 인물 중심의 이야기를 대화체로 구성하여 주인공의 심리를 흥미있게 전달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읽으면서 <사기열전>의 매력에 빠져 들고 말았다. 그 이유는 그가 젊은 시절, 중국 전역을 두 발로 걸으면서 수집했던 살아있는 이야기와 흔들림없는 역사관이 담겨져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사부님이 추천해준 스승들이 떠올랐다. 그 스승들의 책을 읽으면서 무엇을 얻었는지 생각해보았다. 다양한
이야기 속에 보석 같은 지혜들이 떠올랐다. 하지만 그 중심에 진정한 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하나의 주제로 연결시켜 가는 관심과 깊이가 부족했다. 사부님이 변화의 키워드로 주옥 같은 이야기들을 엮어나가듯이, 사마천이
생생한 역사서를 만들기 위해 인간중심의 이야기를 저술한 것처럼 이는 모두 한 가지 일에 전심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책을 읽고 여행을 하면서 주제와 연관된 이야기를 뽑아내고, 그 이야기를 통해 나의 첫 책을 풍요롭게 만들어 보자. 자연스럽게
그 이야기가 내 안에 들어올 수 있게 즐겨보자. 모든 만물은 흩어지고 다시 모인다고 하지 않았는가? 흩어져 있는 지혜들이 다시 내 안에 모이도록 힘써보자.
만물은 변하며
진실로 쉼이 없다.
돌아 흘러서 옮겨 가고
또는 밀어서 돌아간다.
형체와 기운이 끊임없이 도니
변하고 진화하는 것 매미와 같네.
그 깊은 이치 끝이 없는데
어찌 말로 다할 수 있으리!
<사기열전>의 '굴원.가생 열전' 복조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