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샐리올리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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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방학일기를 쓰는 것이 숙제 중에 가장 큰 일이었다.
방학이 끝날 무렵이면 한꺼번에 몰아서 일기 숙제를 하곤 했는데, 그 때 가장 곤혹 스러운 것이 날씨였다.
요즘같이 인터넷이 있다면 걱정 할 일이 아니었지만 그 당시에는 모아놓은 신문이 아니고서는 지난 날씨를 확인할 길이 없었다.
난중일기에는 순신씨의 섬세하고 세밀한 부분이 날씨에도 잘 나타나 있다.
바람의 종류도 이렇게 다양하게 -하늬바람, 마파람, 세파람-등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날씨가 표현 되어 있다.
일기라고 했을 때 두 번째로 생각나는 부분은 ‘친구들의 욕이나 엄마 흉’을 막 보는 것이다.
우리엄마는 어쩌고 저쩌고, 누구와 사이가 좋지 않을 때도 단연 일기에 스트레스를 풀곤 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주 고상한 스트레스 풀기 방법이다.
어릴 때 이순신 장군의 전기를 읽을라치면 반드시 등장하는 것은 “원균의 모함으로 비롯된 백의 종군“ 부분이다.
어릴 적이라 아주 또렷하게 남아 있는 부분이다.
초딩 때 읽을 때는 왜 원균의 모함을 받았을까? 라는 생각보다는 ‘나쁜 놈, 원균’ 이렇게 반응하며
백의 종군한 순신씨를 아주 높게 평가하던 부분이 기억에 남아 있다.
그래서 일까?
이번 난중일기를 일독하며 내 관심을 잡아끄는 부분은 원균과의 갈등 부분이었다.
이렇게 많은 갈등상황이 있었다는 것이 놀라웠다.
100여페이지 남짓 되는 글 안에 이렇게 많은 원균과의 갈등이 묘사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
계사년 3월(1593년 3월)
➊ 온갖 회포가 가슴에 치밀어 올라 마음이 어지럽다. 원영공 (원균)의 비리를 들으니, 정말로 한탄스럽다. (57)
❷ 그는 경상 수사 (원균)의 수많은 망령된 짓을 상세히 말했다. (62)
❸ 영남 우수사 원균이 나타나서 술주정을 부리니 배 안의 모든 장병들이 놀라서 분개하지 않는 이가 없다. 그럴듯한 말로 속이는 것을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영산령이 취해서 고꾸라지고 인사불성이니 우습다. (64)
❹ 수사 원균이 거짓 내용으로 공문을 보내어 대군을 동요케 했다. 군중에서조차 이렇게 속이니 그 흉악함을 말할 수 없다. (66)
❺ 아침에 원균이 와서 보았다. 허튼 소리가 많으니 같잖아서 우스웠다. (69)
❻ 수사 원균이 송이 보낸 불화살을 독차지하여 쓰려고 꾀하므로 ...그러나 그는 그 공문에 수긍하지 않고 무리한 말만 하니 가소롭다. 그 계략은 미처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배 안에 어리고 예쁜 여자를 태우고 남이 알까봐 두려워했다. 같잖아서 우습다. 나라가 이렇게 어려운 때를 당했는데도 미인을 태우고 놀아나니 그 마음 씀씀이야 말로 표현 할 수가 없다. 그라니 그 대장 원균 수사 또한 이와 같다니 어찌하랴! (70)
❼ 수사 원균의 편지가 왔다. 그 흉계와 시기하는 꼴을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73)
❽ 수사 원균이 흉악한 속임수를 쓰니 매우 터무니 없다.(86)
❾ 원균이 하는 이야기는 걸핏하면 모순되니 한심한 일이다.(89)
❿ 원균과 그의 군관은 언제나 헛소문을 내기만 좋아하니 믿을 수가 없다. (89)
11) 이야기를 하는 사이에 원균의 패악스러운 짓거리가 많이 있었다. 그 거짓됨은 말로 다 할 수가 없다. (92)
12) 제사 음식을 대접하는데, 원균이 술을 먹겠다고 하기에 조금 주었더니 잔뜩 취하여
흉악한 말을 망녕되게 내뱉은 것이 해괴할 뿐이다. (93)
13) 원균이 왔다. 흉악한 거짓말을 많이 하니 정말로 해괴하다.(93)
14) 원균이 와서 영등포로 가자고 독촉함. 참으로 음흉스럽다고 할 만하다.
자기가 거느린 배 25척은 모두 다 내보내고 다만 7-8척을 가지고 이런 말을 하니
그 마음 쓰고 행하는 것이 모두 이 따위이다(94)
15) 원수사가 방해하려 한다"고 말하니 우습다.
예전부터 이렇게 남의 공을 시기했으니 한탄해도 어찌하겠는가. (104)
하지만 이런 부분이 또한 인간 이순신이구나하는 인간적인 면모를 느낄 수 있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결국 내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나의 책임이라는 측면에서 볼 때
결국 그 억울하고 누명을 쓴 일은 순신씨의 책임이 아니었을까? 라는 재미있는 생각에 멈추었다.
이유는 그는 갈등상황을 풀어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일기 어디에서도 부하인 그를 구슬리고 좀 잘 다독이는 모습보다는 늘 그에 대한 불평불만이 끊이지 않는다.
마치 눈엣 가시처럼 사사건건 그에 대해서는 불만이 가득한 표현들 뿐이다.
그 중에서도 유독 눈에 띄는 단어는 음흉하다든지 거짓말같은 단어다.
아마도 순신씨 성정은 진실되고 바른 생활맨이 아니었을까? 싶은 느낌이 들기도 했다.
아마도 그런 그에게 중요한 삶의 가치는 진실과 정직이었을 게다. 그
에게 아마도 늘 거짓 부렁을 일삼는 원균이 장애물이요 걸림돌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나의 생각은 모차르트와 그의 라이벌 살리에르의 관계도 떠올리게 했다.
원균 입장에서 보면 이순신이라는 인물은 도저히 따라 잡을 수 없는 경쟁관계의 사람이 아니었을까?
그러나 이런 생각은 네이버를 검색해보니 나의 착각이었다.
원균 (1540-1597) 이순신 (1545-1598) 원균이 한해 먼저 죽고 바로 다음해 이순신은 전사한다.
그런데 원균의 나이가 5살이나 많았다.
순신씨가 등장 하기 전에 원균은 탁월한 공을 많이 세운 명장이었다고 한다.
여기서 여러 가지 나의 의문은 풀렸다.
1593년 이순신이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자 그의 휘하에서 지휘를 받게 되었다.
이순신 보다 경력이 많았기 때문에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되었으며 두 장수 사이에 불화가 생기게 되었다.
원균의 속마음, 진짜 의도는 무엇이었을까?
왜 그렇게 음흉한 흉계를 꾸며 이순신을 힘들게 했을까?
나이도 많고 경력도 화려한 원균 입장에서 어린 장수 순신의 지휘 하에 일을 하는 것이 무척 자존심 상하는 일일 수도 있었겠다 싶다.
만일 원균이 더 큰 그릇이었다면 나이는 어리지만 훌륭한 장수 순신을 잘 보필 했을 것이고,
또 순신의 그릇 역시 넉넉했더라면 자신이 수군 통제사가 되었지만 나이도 많은 훌륭한 장수 원균과 잘 지내보려 하지 않았을까?
이런 일은 다만 16세기에 있는 일만은 아니다.
바로 우리 삶의 현장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내가 리더로 새로 부임한 조직에 나보다 경력도 나이도 많은 사람을 부하로 같이 해야 할 경우가 그렇고,
또는 내가 잘 하고 있는 조직에 나보다 나이가 어린 사람이 리더로 오는 경우 둘 다 생각해 볼 일이다.
소통에서 우리는 말을 해야 아는 부분도 물론 있지만 말을 하지 않아도 전해지는 주파수 파동이 있다.
아마도 원균은 말 하지 않아도 상관이지만 나이 어린 순신이 자기를 얼마나 우습게 아는지,
얼마나 멸시하고 있는지를 말하지 않아도 그는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순신씨에게 원균을 향한 존중의 마음이 있었다면 그가 옥고를 치르는 일만은 면했을지도 모를 일이다.
사람들 중에 가장 어려운 관계가 상하관계라고 하는 이들이 있다.
일반적인 상하관계도 어렵지만 이렇게 나이와 상관 없이 오는 능력있는 리더들을 만날 때
우리는 반드시 공부를 하고 만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순신씨와 원균 장군과의 갈등에서도 우리는 배울 것이 있음을 알고 기쁘게 보름달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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