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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10월 1일 22시 14분 등록
 

업을 통해 창조적인 삶 만들어가야


왕은 물었다.

“나가세나 존자여, 무엇이 저 세상에 바꿔 태어납니까?”

“명칭과 형태가 바꿔 태어납니다.”

“현재의 명칭과 형태가 저 세상에 바꿔 태어납니까?”

“아닙니다. 현재의 명칭과 형태에 의하여 선이나 악의 행위가 행하여지고, 그 행위에 의해 새로운 명칭과 형태가 저 세상에서 바꿔 태어납니다.”

“존자여, 만약 현재의 명칭과 형태 그대로 내생에서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면 인간은 악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존자는 대답했다.

“만일 내생에서 다시 태어나지 않는다면 인간은 악업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내생에서 다시 태어나는 한 악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합니다.”

“비유를 하나 들어 주십시오.”

“대왕이여, 어떤 사람이 남의 망고나무 과일을 훔쳤다고 합시다. 망고나무 주인이 그를 붙잡아 왕 앞에서 처벌해 달라고 했을 때, 그 도적이 말하기를 ‘대왕이여, 저는 이 사람의 망고를 따지 않았습니다. 이 사람이 심은 망고와 제가 딴 망고는 다른 것입니다.’라고 한다면 왕은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 사나이를 처벌하겠습니까?”

“존자여, 저는 그 사나이를 마땅히 처벌할 것입니다.”

“무슨 이유로 그렇게 합니까?”

“그가 무슨 궤변을 늘어놓든 최초의 망고는 보이지 않지만 지금의 망고에 대해 죄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왕이여, 마찬가지로 인간은 현재의 명칭과 형태에 의하여 선악의 행위가 결정되고 그 행위에 의해서 또 하나의 새로운 명칭과 형태로 내생에서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태어난 인간은 그의 업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잘 알겠습니다. 나가세나 존자여.”   <밀란다왕 문경중에서/ 업의 주체>


  먼저 <밀란다왕 문경>에 대한 설명이 좀 필요할 것 같다. 기원전 2세기 후반 서북인도를 지배한 그리스왕 메난드로스왕과 불교학을 전공하고 아라한과(깨달음)를 얻은 나가세나 존자가 주고받은 문답형식의 경전이다. 이를 두고 ‘동서양 현자들의 대화’라고 한다.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서 서북인도를 침입한 후 그리스인들이 세운 두 개의 나라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박트리아왕국이다. 박트리아왕국을 다스리는 메난드로스왕(한역으로는 밀란다왕)은 총명하고 유식한 달변가였다. 왕은 훌륭한 논객으로 학문과 지혜에 있어서 그와 대등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도의 많은 현자들이 메난드로스왕과 논쟁을 벌였지만 아무도 이기는 자가 없었다. 메난드로스왕은 자신의 수많은 의문을 풀어줄 현자가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비구들은 히말라야에 머물고 있는 나가세나존자를 방문하여 “메난드로스왕은 난해한 질문으로 비구 대중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당신이 저 메난드로스왕을 굴복시켜 주십시오.”하고 간청했다. 이렇게 하여 메난드로스왕과 나가세나존자는 한 자리에 앉게 되었다.

  서양의 철학과 사유체계를 지닌 메난드로스왕은 불교의 윤회사상과 업에 대해 여러 가지 질문을 던졌다. ‘불교는 무아(無我)인데 윤회의 주체는 누구인가?’를 비롯하여 ‘윤회하기 전의 나와 윤회한 후의 나는 같다고 할 수 있을까?’ 그리고 ‘업(業)이란 어디에 있는가’ 등등의 질문이었다. 왕의 질문은 불교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사유가 없다면 도저히 할 수 없는 난해한 질문들이었다. 

  윤회를 통하여 환생한다는 것이 불교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데, 윤회한다는 것은 카르마(Karma) 즉 업과 함께 유전한다는 것이다. 업이란 몸과 입과 뜻으로 지은 행위일체를 뜻한다. 현생의 인간의 삶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노력과 행위라고 보면 쉬울 것 같다. 메난드로스왕은 생과 멸을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 윤회라면 그 주체는 누구인지 궁금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죽을 때 그 어떤 것도 가져갈 수 없지만 딱 한 가지 이승에서 지은 업(業)만은 가지고 가야 함을 강조한다.  나가세나스님이 말한 ‘현재의 명칭과 형태라는 것’은 이생의 삶을 말하며, 이생에서 지은 행위일체를 가리킨다. 과일로 치면 그것이 바로 내 눈앞에 보이는 망고인 것이다.

내가 몇 생을 거듭해서 태어난다고 해도 내 안에는 기억할 수도 알 수도 없는 오래 전부터 지어온 업식이 남아있는 것이다. 과거 몸으로 지은 업, 입으로 지은 업, 뜻으로 지은 업과 현재의 업이 모여 지금의 나를 이루고 있다. 윤회의 주체는 현재 내가 지은 선업과 악업이 되는 것이며, 몸을 바꾸어 새로 태어난다 하더라도 내 안에는 이미 전생의 선업과 악업이 프로그램화되어 있는 것이다.

  ‘카를 구스타프 융’은 자서전 <카를 융, 기억 꿈 사상>을 통하여 카르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나는 환생을 믿지는 않았지만 인도 사람들이 카르마(Karma)라고 부르는 개념은 본능적으로 신뢰하게 되었다....... 우리의 마음은 신체와 마찬가지로 조상 대대로 이미 존재해온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 개별적인 인간의 마음에서 ‘새로운 것이란 아득한 옛날의 구성요소들이 끝없이 변화하여 재결합된 것이다. 그러므로 신체나 마음은 현저하게 역사적 성격을 띠고 있으며 새로운 것 즉 방금 생겨난 것 속에서는 알맞은 자리를 찾지 못한다. 다시 말해서 조상의 특징들은 그 속에 단지 부분적으로만 존재할 뿐이다. 우리의 정신이 필요로 하는 바도 그렇지만 우리에게는 중세와 고대, 원시시대가 아직도 끝난 것이 아니다.”

  생물학적으로 보아도 우리의 육신은 수백만 년 전 조상들이 가졌던 유전자를 일부 지니고 있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의 생명은 ‘내 것’이면서 ‘내 것’이 아니고, 현재를 살면서 수백만 년 전의 과거 원시를 사는 것이다. 추운 동굴에서 모닥불 피워놓고 사나운 짐승으로부터 공격을 피하곤 했던 수백만 년 전 조상들의 유전자가 내 안에 흐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는 문화와 생명의 역사적 산물임에 틀림없다. 

 나는 카를 융의 ‘우리의 마음은 신체와 마찬가지로 조상 대대로 이미 존재해온 요소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말에 특히 주목하고 싶다. 이 말을 통하여 카를 융은 이미 윤회사상을 받아들이고 있었으며 윤회사상은 일체 모든 행위와 함께 유전한다는 것을 인정함을 알 수 있다.

  카를 융은 죽음 이후 어떻게 환생하는 가를 자세히 기록한 <티벳 사자(死者)의 서>라는 책에 심리학적 측면에서 장문의 해설을 썼다. <티벳 사자의 서>는 죽음 직전부터 해서 환생하기까지의 전 과정을 기록한 것이며 인간에 대한 영적인 질문을 다루고 있다. 이 책에서 카를 융은 카르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동양사상에 따르면 카르마는 정신이 유전됨을 의미한다. 윤회설은 결국 영혼이 일회적인 생이 아니라 무수한 생을 산다는 믿음이다. 우리의 과학적 지식이나 이성은 이런 믿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영혼이 사후에 계속해서 존재할 가능성에 대해 아는 것이 너무나 적다...... 정신의 유전은 실제로 존재한다. 이를 테면 질병에 걸리기 쉬운 성향이나 성격의 특성, 특수한 재능 등의 정신적 유전은 있기 마련이다. 설령 자연과학에서 그것들을 물질적인 측면, 즉 세포 속에 있는 세포핵의 구조 등으로 해석한다 해도 그것이 어쨌든 정신적인 현상인 것에는 변함이 없다. 그것들은 정신적인 것을 통해 스스로를 표현하는 생명 현상인 것이다. 마치 물질 차원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다른 유전적 특성들과 다르지 않다.”

  우리들은 흔히 모차르트처럼 일찌감치 특수한 재능을 발휘하는 천재들을 보고 전생부터 해온 일이라 믿고 있다. 태어나자마자 그런 특수한 재능을 발휘하기는 쉽지 않기에 이생에 오기 전 그 너머의 생부터 재능을 갈고 닦았으리라 생각한다. 이런 측면을 보면 정신적인 것, 이미 한 영혼에게 프로그램화된 특수한 재능도 윤회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카를 융의 다음과 같은 말은 의미심장하다.

 “내가 살아가면서 감당하고 있는 카르마가 내 전생의 결과인지 혹은 내 속에 유산을 모아 남겨준 조상의 소산인지 이 물음에 대해서는 나도 답을 잘 모르겠다. 내가 조상들의 인생의 결합으로 이루어져 있고 그들의 인생을 다시 구현하고 있단 말인가?”

 우리가 생각할 때는 업의 열매인 과보는 바로바로 받을 것 같지만 <법구경>에 보면 ‘악의 열매가 익기 전까지는 악한 사람도 복을 받고, 선의 열매가 익기 전까지는 선한 사람도 화를 받는다’고 한다.  지금 내가 받고 있는 과보는 내가 기억할 수도 없는 수백 년 전의 어느 조상에 의해 저질러진 업보일 수도 있음을 생각하면 우리의 생을 작은 틀 안에서 물질적인 그 무엇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알 수 없는 비밀로 가득 차 있는 것도 여기에서 기인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 세계 안에서는 마음속으로 예상되는 일뿐만 아니라 설명할 수 없는 일들, 예기치 않았던 일들이 일어나고 있음을 우리는 경험하면서 살고 있다. 알 수 없는 신비와 비밀에 싸인 모든 것들이 이 우주에 속하는 것들이다.

  카를 융은 “눈에 보이지 않는 정신을 구성하는 근본 요소들은 눈에 보이는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보다 한층 더 일정한 형태를 갖고 있다. 인간의 영혼은 영원히 유전되는 하나의 틀과 같다’고 해설했다. 유전되는 영혼의 틀은 처음에는 특정한 내용물이 담겨 있지 않고, 개인의 삶의 과정에서 차곡차곡 채워지는 것이다. 카를 융의 말을 빌자면 우리의 세포핵 속에는 정신적인 유전자까지도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 

 영혼의 틀은 텅 비어 있으니 우리는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자신이 가장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채워나가면 될 것 같다. 쉬운 일은 아니다. 살다보면 어찌 좋은 것만 채울 수 있으랴. 자신의 인식 범위 내에서는 좋고 아름답고 남에게 맑음을 줄 수 있는 그러한 것들로 채워나가야 하지 않을까 싶다.

  윤회의 주체가 카르마 즉 선업과 악업이며, 카르마는 태어날 때부터 내 안에 일정부분 프로그램화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생각이 여기에 머물러 있다면, 내 운명은 이미 결정나버린 어떻게 해 볼 수도 없는 숙명론을 받아들이게 된다. 우리의 삶에는 당연히 숙업들이 내포되어 있긴 하지만, 현실의 우리는 끊임없이 새로운 업을 짓고 살아간다는 점에서 숙업이 우리의 삶 전체를 규정하는 것은 아니다.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는 요인에는 숙업뿐만 아니라 현생의 업도 포함되는 것이다. 전생은 알려고 할 필요도 없으며 지금보다는 나은 미래를 설계하여 역동적인 선업을 지어나간다면 창조적인 삶이 될 것이다. 과거에 매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진일보하는 것이 인과법에 대한 붓다의 가르침이 가지는 핵심이다.

 우리의 육신이야 한 송이 꽃처럼 시들고 말지만, 영혼은 나무의 뿌리처럼 땅 속에서 튼실하게 버티고 있다가 또 새로운 꽃을 피워낼 것이다. 영혼을 아름답게 맑게 하는 것이 그 무엇인지 생각해보자.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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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2 09:38:15 *.41.190.211

글이  넘~  부드럽고 감기롭기 까지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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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3 07:33:47 *.194.37.13

누님 글 읽으면서, 좋은 영감이 떠올랐습니다.

인간은 흙으로 빚어서 만들었고, 모든 인간은 죽어서 흙으로 돌아간다고 그러지 않습니까?

그 흙 속에는 미생물들이 가득합니다.

인류가 태어나기전부터 존재한 그들이 흙 안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제가 쓰고 있는 미생물에 대한 소재가 누님의 글과 잘 연결될 것 같습니다.

멋진 글, 넘 감사드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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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깔리여신
2012.10.04 00:07:41 *.85.249.182

어떻게 연결시킬지 기대된다.

내 글에서 그런 것을 느꼈다니

생각지도 못한 부분이라 깜작 놀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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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10.04 07:50:15 *.154.223.199

‘불교는 무아(無我)인데 윤회의 주체는 누구인가?’

‘윤회하기 전의 나와 윤회한 후의 나는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업(業)이란 어디에 있는가’

 

멜란드로스왕의 질문은 현재의 사람들도 가지고 있어요.

불교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드시 윤회전생에 대해 물어보게 됩니다.

 

그걸 불교경전과 다른 이, 특히 융의 견해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는 건 흥미롭습니다.

저한테는 융의 의견이 어렵게 다가왔어요. 

이번 주 융을 다시 읽으면서 도전해봐야겠어요.

깔리여신님의 북리뷰를 봤어요. 추석연휴를 열공하신 티가 역력했습니다. 열공을 통해 저렇게 연결할 수 있으셨겠구나 생각했습니다.

1주일에 몇 권의 책을 동시에 읽으실까?궁금했구요 제가 많이 부끄러웠어요.

다시 잘 읽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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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d: 깔리여신
2012.10.06 18:20:51 *.85.249.182

콩두 안녕!

융의 몇 구절을 통해 이번 주내내 내 안에 누군가의 영혼과 유전자가 들어있구나 생각하면서

그그것을 화두로 시간을 보냇단다.

융의 말을 좀 확대해서

생각해 보니 내가 내가 아니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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