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원을 통해 본 여행의 기술
“여행을 비록 모호한 방식이기는 하지만 일과 생존 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일과 생존 투쟁의 제약을 받지 않는 삶이 어떤 것인가를 보여준다. 그럼에도 여행에서 철학적 문제들, 즉 실용적인 영역을 넘어서는 사고를 요구하는 쟁점들이 제기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드물다”고 알랭드 보통은 <여행의 기슬>에서 적고 있다.
알랭드 보통의 말처럼 ‘여행에서 철학적 문제들, 즉 실용적인 영역을 넘어서는 사고’를 가지 사람은 소수에 불과하다. 그런데 박지원이 그 소수에 속하는 여행의 기술이 탁월한 사람이다.
알랭드 보통은 “여행할 장소에 대한 조언은 어디에나 널려 있지만, 우리가 가야 하는 이유와 가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는 듣기 힘들다. 하지만 실제로 여행의 기술은 그렇게 간단하지도 않고 또 그렇게 사소하지도 않은 수많은 문제들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고 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어떤 철학을 가지고 여행을 가지고 떠나는가에 따라 여행의 성격이 달라지는 것이다. 대부분 여행은 휴식 혹은 재충전의 개념으로 떠나는 경우가 많지만 새로운 문물을 배워오겠다든가 뭔가 뚜렷한 목적을 지니고 여행을 떠나는 이들도 있다. 실학파의 선구자인 박지원은 여행을 떠날 때부터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출발한 것이다.
박지원은 중국을 개인적으로 여행한 것이 아니다. 삼종형 박명원이 고희를 맞은 청나라 건륭황제의 탄신을 축하하기 위해 파견되는 진하 겸 사은사의 정사로 사행길에 올랐다. 이때 박지원은 박명원의 권유를 받고는 그의 개인 수행원 자격으로 사행길에 동행하였다. 가난한 서생이었던 빅지원에게는 대국 중국의 문물을 볼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그는 이런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여행길에서 아주 세심하게 중국견문록인 <열하일기>를 기록했다. 홍대용 등으로부터 시작된 북학 논의는 박지원에 이르러 절정을 이루게 되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이 [열하일기]였다.
박지원의 초상화를 보면 우람한 몸과 매 같은 눈매를 가진 카리스마 넘친다. 그의 글을 보면 정말 매같이 날래고 날카로운 시선으로 사물과 풍물을 보아낸다. 연암박지원은 우렁찬 목소리를 가진 훤칠한 미남으로 술을 아무리 마셔도 자세가 흐트러지지 않고 논쟁이 붙으면 사흘 밤낮을 쉬지 않는 등 카리스마가 가득한 인물이었다고 전한다. 그의 글과 인물과 인품이 일치하는 보기 드문 남자이다.
박지원은 예리한 시선으로 조선과 중국의 다름을 보아낸다. 특히 처음 본 벽돌과 수레에 온통 마음을 빼앗겨 버린다. 인공적으로 구운 벽돌과 자연석인 돌을 다듬어서 성곽을 쌓는것 중 어느 것이 더 실용적인지를 따져보기도 한다. 정약용은 수원 화성을 지을 때 돌을 다듬어서 성곽을 지었는데, 이는 정약용이 중국을 한 번도 여행해 본 일이 없기 때문이다. 만약 정약용도 중국을 방문했더라면 다듬은 자연석대신 벽돌을 사용했을 것이다.
특히 박지원은 수레에 대해 신기함과 편리함에 대해 부러워함을 감추지 못한다. “중국이 재물은 풍성풍성하되 한쪽에 몰려 있지를 않고 쉴새 없이 흘러 퍼지고 장사를 통하여 이곳저곳 옮겨지는 것은 모두 수레를 이용하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사람들은 “우리 조선은 산협지대라 수레를 쓰기에는 적당하지 못하다고들 한다. 이런 당치 않은 소리가 어데 있을 것인가? 나라에서 수레를 이용하지 않고 보니 길을 닦지 않고 있는 것이요 수레만 쓰게 된다면 길은 절로 닦을 것이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수렐ㄹ 사용하기만 한다면 지형이 험악하다 해도 길을 내고 닦아서 수레가 다니기 편리하게 만들게 된다는 것이 박지원의 생각이다. 그러면서 “넓이가 수천 리나 되는 나라에서 백성들의 살림살이가 이토록 가난한 것은 대체 무엇이겠는가? 한 마디로 말하면 극내에 수레가 다니지 못하는 까닭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수레는 왜 못 다니는가?” 그것은 “모두가 선비와 벼슬아치의 죄”라고 하면서 울분을 감추지 못한다. 양반들이 평생동안 중국의<주례>를 읽지마는 글은 글일뿐 실용적이고 생활에 보탬이 되는 것에는 도통 관심이 없다. 조선은 물건을 생산해내고 만드는 장인들을 천민으로 분류해놓았으니 누가 수레를 연구하고 기중기를 연구하려 하겠는가? 다행히도 조선 중기 정약용, 홍대용, 박지원 등 이러한 실학파들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열하일기>를 읽어나가면서 가장 놀라는 대목이 있다.
대개의 사람들은 중국을 여행하고 오면 “성곽과 연못과 궁실과 누각과 점포와 사찰과 목축과 광막한 벌판, 자욱한 수림의 꿈속 같은 풍광만을 장관“이라고 말한다. 박지원은 여기에 대해 왜 그러한 것만이 장관인가 하면서 ”깨진 기와 조각이 장관이요, 냄새나는 똥거름이 장관“이라고 말한다.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상상할 수도 없는 것을 두고 장관이라고 말하여 독자들을 의아스럽게 만든다.
박지원은 그 이유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 그는 본론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자신을 “나는 원래 삼류 인사다”라고 딱 까놓고 말해버린다. 고상하고 지체 높은 양반이 아니라 글줄은 읽었지만 삼류에 불과한 그렇고 그런 사람이라고 자신을 탁 낮추어 버린다. 내가 장관을 이야기할 테니 너무 기대하지 말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양반들의 허상을 깨기 위함이 아닐까 싶다.
“내가 본 장관을 말하리라. 깨진 기와 조각이 장관이요, 냄새나는 똥거름이 장관이더라. 왜? 깨진 기와 조각은 천하가 버리는 물건이다. 그러나 동리 집을 둘러싼 담장 어깨노리 위로는 깨진 기왓장을 두 장씩 마주 붙여 놓아 물결무늬가 되고 네 쪽을 밖으로 등을 대어 모아 붙이면 동그라미 무늬가 되고 네 쪽을 밖으로 등을 대어 모아 붙이면 옛날 엽전의 구멍 모양을 이룬다.”
이것이 뭐 그리 대단한 장관인가? 아무리 읽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폐품을 이용한 집단장에 그리 마음을 모으는 것이 무어란 말인가? 굳이 박지원을 좀 추켜세워서 말한다면 ‘그는 물품의 재활용에 눈을 뜬 앞서가는 사고’를 가졌다는 정도이다.
박지원이 장관이라 한 것은 똥오줌에 관한 것이다.
“똥오줌이란 세상에서도 가장 더러운 물건이다. 그러나 이것이 거름으로 쓰일 때는 금싸라기 같이도 아끼게 된다. 똥오줌이란 세상에서도 가장 더러운 물건이다. 그러나 이것이 거름으로 쓰일 때는 금싸라기 같이도 아끼게 된다. 길에는 버린 재가 없고 말똥을ㄹ 줍는 자는 오쟁이를 둘러메고 말꼬리를 따라다니고 있다. 이렇게 모은 똥은 거름간에다 쌓아두는데 혹은 네모 반듯하게 혹은 팔모가 나게 혹은 육모가 나게, 혹은 누각모양으로 만들고 보니 한 번 쌓아올린 똥거름의 맵시를 보아 천하의 문물제도는 벌써 여기 버젓이 서고 있음을 볼 수 있었다.”
우리나라도 예부터 똥과 오줌을 거름으로 사용했는데, 오랑캐의 방식이 뭐 그리 대단하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이 부분에 대해 고미숙은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에서 이렇게 말한다.
“똥과 오줌을 장관이라 말하는 대목에 이르면 중화주의라는 거대 담론은 흔적도 없이 실종되었다. 아니 잇다 한들 무슨 위력을 발휘할 수 잇을 것인가?”라고 한다. 똥과 오줌을 통해 박지원은 다른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이에 대해 고미숙은 “‘청문명의 핵심은 기왓조각과 똥부스러기에 있다’ 이 면제만큼 연암의 사유가 농축되어 있는 문장도 드물다. 대개는 이 명제를 그저 이용후생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말지만, 그건 너무 싱거운 해석이다. 이 명제 안에는 연암 특유의 패러독스, 그 전복적 여정이 생생하게 농축되어 있는 까닭이다.”고 적고 있다.
조선의 선비들이 중국을 유람하면서 어떤 문제의식도 없이 보고 오는 것에 대해, 또 무조건 오랑캐의 나라 청나라 보다 우리의 것이 더 뛰어나다는 국수주의와 명나라를 따른 사대주의 를 깨뜨려주기 위함이다.
여행의 기술 중에는 여러 가지가 필요하겠지만, 머릿속을 비우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어떤 선입관을 가지고 가서는 안 될 것 같다. 좀더 냉정하고 예리한 시선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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