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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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자가 신이 되는 사회
“돈 싫어하는 사람?”
순간 교실 안에 눈빛이 오고간다. 나를 흘긴다. 그리고 야유를 퍼부으려고 입을 벌린다. 그래서 나는 얼른 선수를 친다.
“그렇지 그렇지!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 다 돈 좋아하지. 다들 돈 많이 벌고 싶지?”
“네!”
모두가 한 마음 한 뜻으로 대답한다. 오늘은 평소에 조용했던 경민이가 입을 연다.
“선생님, 오늘은 무슨 이야기 해주실려고요? 돈 계산 하는 거 가르쳐 주시려고요? 전 정말 돈 많이 벌고 싶어요. 그래서 성형 수술도 하고 예뻐질거에요.”
“경민이 지금도 예쁜데 무슨 성형 수술을 한다고 그래. 자연미가 최고지.”
아이들이 웃는다. 경민이는 경민이만의 매력이 있는 아이다. 학업도 열심히 하고, 얼굴도 귀엽고, 마음도 따뜻한 학생이다. 그런데 많은 학생들 앞에서 성형 수술을 하겠다고 큰 소리로 이야기 하는 걸 보니 의외다. 그런 생각을 하고있는지 잘 몰랐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말은 교실 수업 상황에서 영향력이 크다. 다른 학생들이 너나 없이 ‘나는 어디 수술을 할거다, 나는 안 할거다, 무섭지 않냐, 아플거다.’ 하면서 난리다. 일단 아이들을 진정시키고 이야기를 다시 꺼낸다.
“애들아, 선생님이 오늘은 수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싶어서 말을 꺼내봤어. 우리 수학의 기본 재료가 되는 ‘수’에 대해 한 번 생각해보자. 지난 시간에 이야기 했던 확률이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그렇지 않은지에 대한 질문 기억나니? 그 질문에 대해서도 생각하면서 오늘 수업 시간 보내자. 어때?”
학생들의 반응은 각각이다. 모범생들 중에는 진도 걱정을 사서 하는 무리가 있는데, 수학 진도가 다른 반과 비교해서 어떠냐고 묻는다. 나는 우리가 빠르다고 하며 안심시킨다. 그럼 모범생들은 안심한다. 실제로 빠르기도 하고, 수학 진도 안배는 교사 몫이다. 괜한 걱정을 시키고 싶지 않아 잘 이야기 해준다. 공부하기 싫었던 학생들은 얼굴 가득 미소가 번졌다. 수업 시간에 그것도 수학 시간에 계산하지 않고, 문제 풀지 않아도 되니 마음이 편안할거다. 나는 주말 동안 생각했던 수에 대한 나의 단상을 이야기하며 학생들과 토론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수의 기원을 이야기 하기 전에 이 시대에서 숫자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와 학생들이 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궁금하기도 했다. 숫자의 강력한 힘에 대해서도 이야기 하고 싶었다. 결론은 없다. 열어두고 생각을 나누고 싶은 시간이었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접하는 수에는 무엇이 있을까? 자연수가 대부분일 것 같다. 일, 이, 삼, 사를 비롯해서 백원, 오백원, 천원, 오천원, 만원, 오만원 등을 자주 접한다. 그리고 요즘 많이 방영되고 있는 오디션 프로그램을 통해서는 순위를 많이 접한다. 1위, 2위, top10, 그리고 득표율, 표 차이 등이 그렇다. 또 1분 동안 자신의 기량을 마음껏 발휘해야 하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그럴 땐 시간에서 숫자를 발견할 수 있다. 1분의 시간으로 합격, 불합격이 정해진다. 사회시간에 배웠으려나? 국가별 GDP 순위, 주가지수, 물가 상승률 등도 숫자로 매겨진다. 올림픽과 같은 운동 경기라도 있으면 우리는 숫자 싸움에 마음을 졸인다. 기록, 순위, 승부 점수 등 숫자는 여러 곳에 쓰인다. 더 찾아보자. 날짜, 시간표, 점수, 호빵 가격 등 우리는 숫자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공간 안에 살고 있다. 특히 요즘은 입시철이기 때문에 경쟁률이 이곳저곳에서 나타난다. 대학, 고등학교 입학 등 경쟁률을 보고 수험생들의 마음은 하루에도 몇 번씩 바뀐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 영하로 떨어지는 날에는 평소에 잘 보지 못하는 음의 정수까지 등장한다. 음의 정수는 자연수 앞에 마이너스 기호를 달고 있는 녀석이다. 어떤가? 숫자가 이렇게 우리와 밀접하게 더불어 살고 있다. 그런데 그 숫자는 정말 신뢰할 만 한가? 숫자는 정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인가? 숫자가 인위적으로 조작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봤나? 숫자의 조작으로 인해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이 위협 받고 있다는 생각은 해 봤나?
구체적으로 이야기 해보자. 학생들과 가장 연관성이 있는 경쟁률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자. 지난 주는 모 특목고등학교 지원서 접수날이 있었다. 작년에 가르쳤던 학생의 추천서를 썼다. 그 학생은 공부를 잘하는 친구인데 중3 마지막 기말고사에서 영어 등급이 좀 낮았다. 다른 선생님들께서는 마음을 비우라며 학생을 위로했지만 난 달랐다. 지원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보다 떨어지더라도 지원해보고 그 경험을 갖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 했다. 그리고 도전하고 실패하는 거와 도전해보지도 않고 포기하는 것은 삶에서 큰 차이를 줄 것이라고 이야기하여 지원서를 작성하게 했다. 지원서를 작성하면서 그 학생은 자신이 이제까지 살았던 삶을 정리하고, 자신이 선택한 진로에 대해 더 확신을 갖게 되었다. 그녀는 꿈이 세 번 바뀌었는데 1학년 때는 정신과 의사, 2학년 때는 외교관 그리고 최종적으로 꾸는 꿈은 NGO단체에서 활동하는 국제 구호 활동가이다. 그녀는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면서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사람이 되고 싶었는데 끈기 있게 고민하고, 생각해서 적절한 자신의 꿈을 설정했다. 물론 특목고에서는 낙방했다. 하지만 나는 그녀가 아주 좋은 기회를 얻었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꿈을 정리하고,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 잘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때 그녀가 지원한 학과의 경쟁률이 다른 과에 비해 높았다. 나는 그때 마음이 약해져 있는 그 학생에게 경쟁률의 허위성에 대해 설명했다. 경쟁률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경쟁률을 구성하고 있는 학생들의 성적 분포이다. 물론 경쟁률이 높으면 될 가망성이 낮은 것은 사실이다. 그리고 학생의 성적이 높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한 것도 맞다. 하지만 전적으로 경쟁률이 높기 때문에 떨어질 것이라는 생각은 옳지 않다. 여러 가지 복합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준비된 것이 많은 지원자는 경쟁률이 아무리 높아도 마음 졸일 이유가 없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경쟁률에 지레 겁먹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마음은 숫자로 인해 농락당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철저히 자신의 돌아보고, 다음 단계를 준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숫자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주는 것은 맞지만 숫자가 신이 되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조정당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한다.
숫자는 진실을 말한다. 그러나 조작 가능하다. 진실이 왜곡된다. 그러면 우린 그 숫자에 농락 당하게 된다. 인간의 가치가 무너진다. 위험하다. 돈은 숫자의 대명사다. 숫자가 크면 클수록 좋다. 그런데 이것도 조작 가능하다. 위조지폐를 만들어 쓰는 범죄자도 등장하고, 뇌물로 주고 받게 되면 비리가 나타난다. 다른 예로는 온도가 높다고 해서 옷을 가볍게 입고 나왔는데, 어제보다는 낮은 온도 였다. 우리에겐 온도를 알려주는 숫자 그 자체 말고 체감온도, 우리의 몸이 날씨에 적응한 정도에 대해서도 복합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통계는 어떤가? 어떤 사안에 대해 대중의 의견을 물어 통계적으로 정리한다. 그리고 우리들에게 알려준다. 그럼 사람들의 마음은 통계에 의해 좌우된다. 통계도 조작 가능하다. 다 믿을 수 없다. 신뢰할 수 없는 사회라는 것이 문제이기도 하지만 인간이 숫자를 맹신하는 잘못도 있다. 수로 이야기 하는 것을 좋아하는 집단이 있다. 그리고 수로 이야기 하면 할 말이 별로 없어지는 것이 사실이다. 숫자가 신이 된 사회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도 했다.
수의 기원은 이집트 한 목동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양을 치는 목동은 양들을 데리고 우리를 벗어났다가 다시 우리 안으로 데려와야 하는 임무가 있다. 그러면 한 마리의 양도 놓치면 안되기 때문에 양의 수를 세야 한다. 수가 없었던 그 시대에 목동은 돌멩이와 양을 일대일 대응으로 만들어 진흙에 표시를 했다. 양 한 마리가 나가면 돌멩이 하나를 진흙에 박아 놓는다. 그렇게 해서 돌의 수와 양의 수가 일치하면 양을 잃어버리지 않은 것이다. 다음 날 또 돌멩이를 진흙에 하나씩 박으려고 보니 어제 박은 흔적이 남아 있다. 목동은 그때 돌멩이 말고 표시로 양의 숫자를 셀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그렇게 수는 생겨나게 됐다. 처음에는 진흙에 표시하는 것으로 그 다음에는 막대기를 그리는 것으로 숫자는 생겨났다.
수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일까? 필요하다면 우리는 수를 어떤 관점에서 바라봐야 할까? 더 나아가 확률과 통계가 우리에게 알려주는 진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판단의 근거로 사용해야 할까? 돈이 많으면 정말 좋을까? 각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의 양이 있으면 좋은 것일까? 1 뒤에 0이 7개 붙으면 100만이다. 8개 붙으면 천만이다. 9개 붙으면 억이다. 0은 없는 것일까? 아니면 많은 것일까?
오늘 수업은 여기서 마친다. 수에 대해, 통계에 대해, 돈에 대해, 그리고 무엇보다 수가 이야기 하는 진실에 대해, 수를 대하는 우리의 태도에 대해 한번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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