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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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해 전 일이었다. 여느 날 아침처럼 나는 그날도 혼자 남산길을 걷고 있었다. 때마침 뒤에서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곧이어 “휙! 휙! 휙!” 하며 세 사람이 내 옆을 바람 가르듯 지나쳤다. 순간 나는 멈칫하지 않을 수 없었다.
나를 지나 앞으로 뛰어간 세 사람은 모두 흰 지팡이를 든 맹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눈먼 사람이라면 으레 지팡이로 땅을 더듬으며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통념인 터에, 그 세 사람은 지팡이를 가로로 세워서 도로 옆에 줄지어 선 철책에 닿을 듯 말 듯 해가며 전혀 주저하지 않고 앞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정진홍의 ‘감성바이러스를 퍼뜨려라’에서-
정진홍은 학계를 거쳐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있는 저술가입니다. 그는 열정적으로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나 봅니다. ‘감성바이러스를 퍼뜨려라’에 이어 ‘완벽에의 충동’ 에서도 입지전적인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거든요. 그 중에는 정약용, 안중근, 유일한이나 잭 웰치, 처칠같이 널리 알려진 사람도 많고 낯선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같이 있는 힘을 다해 ‘자기로서’ 산 놀라운 사람만 모아놓았습니다. 그들은 명쾌하고 분명한 정진홍의 문체에 의해 다시 한 번 살아납니다. 정진홍이 소개한 사람들 못지않게 정진홍의 에너지도 매력적이거든요.
어느날 산책 중에 정진홍은 달리기를 하는 맹인들과 부딪칩니다. 맹인들의 뜀박질! 그것은 그의 말처럼 눈뜬 사람들의 편견을 무너뜨리는 통쾌한 반란이고, 눈뜬 사람들의 소심함을 꾸짖는 준엄한 가르침이었지요. 어쩌면 해낼 수 있는 무엇인가를 주저하며 포기하고 있던 나 자신에게, 다시 한 번 해보자는 용기를 북돋워준 의도치 않았던 격려였습니다.
앞을 못보는 그들은 산책을 하는 것만도 용기를 내야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걷기에 익숙해진 그들은 달리기에 도전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휙! 휙! 공기를 가르며 달릴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훈련을 해야 했을까요. 무수히 넘어지고 부딪치고 깨진 다음에 달릴 수 있게 되었겠지요. 그다음에 그들은 무엇에 도전했을까요. 등반? 아니면 여행? 무엇이 되었든 그들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미 도전의 맛을 알고있고, 산다는 것은 곧 도전이라는 것을 알고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제게 2007년은 2막인생의 원년입니다. 관념만 키워놓았을 뿐, 현실적인 수완이라곤 없는 제가 한심합니다. 이제 시행착오를 할 시간이 없다는 사실이 저를 움츠러들게 합니다. 도대체 언제 달리기를 해 보았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는 나무둥치같은 몸이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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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지나 앞으로 뛰어간 세 사람은 모두 흰 지팡이를 든 맹인들이었기 때문이다. 눈먼 사람이라면 으레 지팡이로 땅을 더듬으며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우리의 통념인 터에, 그 세 사람은 지팡이를 가로로 세워서 도로 옆에 줄지어 선 철책에 닿을 듯 말 듯 해가며 전혀 주저하지 않고 앞을 향해 뛰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정진홍의 ‘감성바이러스를 퍼뜨려라’에서-
정진홍은 학계를 거쳐 중앙일보 논설위원으로 있는 저술가입니다. 그는 열정적으로 살아낸 사람들의 이야기를 좋아하나 봅니다. ‘감성바이러스를 퍼뜨려라’에 이어 ‘완벽에의 충동’ 에서도 입지전적인 인물들을 소개하고 있거든요. 그 중에는 정약용, 안중근, 유일한이나 잭 웰치, 처칠같이 널리 알려진 사람도 많고 낯선 사람도 많습니다. 그러나 하나같이 있는 힘을 다해 ‘자기로서’ 산 놀라운 사람만 모아놓았습니다. 그들은 명쾌하고 분명한 정진홍의 문체에 의해 다시 한 번 살아납니다. 정진홍이 소개한 사람들 못지않게 정진홍의 에너지도 매력적이거든요.
어느날 산책 중에 정진홍은 달리기를 하는 맹인들과 부딪칩니다. 맹인들의 뜀박질! 그것은 그의 말처럼 눈뜬 사람들의 편견을 무너뜨리는 통쾌한 반란이고, 눈뜬 사람들의 소심함을 꾸짖는 준엄한 가르침이었지요. 어쩌면 해낼 수 있는 무엇인가를 주저하며 포기하고 있던 나 자신에게, 다시 한 번 해보자는 용기를 북돋워준 의도치 않았던 격려였습니다.
앞을 못보는 그들은 산책을 하는 것만도 용기를 내야 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걷기에 익숙해진 그들은 달리기에 도전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앞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휙! 휙! 공기를 가르며 달릴 수 있게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훈련을 해야 했을까요. 무수히 넘어지고 부딪치고 깨진 다음에 달릴 수 있게 되었겠지요. 그다음에 그들은 무엇에 도전했을까요. 등반? 아니면 여행? 무엇이 되었든 그들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들은 이미 도전의 맛을 알고있고, 산다는 것은 곧 도전이라는 것을 알고있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제게 2007년은 2막인생의 원년입니다. 관념만 키워놓았을 뿐, 현실적인 수완이라곤 없는 제가 한심합니다. 이제 시행착오를 할 시간이 없다는 사실이 저를 움츠러들게 합니다. 도대체 언제 달리기를 해 보았는지 기억조차 할 수 없는 나무둥치같은 몸이 부끄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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