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명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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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꿈 하나는 방방곡곡 문 닫은 방앗간을 헐값에 사
들여서 술집을 내는 것이다 내 고향 양지편 방앗간을
1호점으로 해서 '참새와 방앗간'을 백 개 천 개쯤 여
는 것이다
-중략-
하고많은 꿈 중에 내 꿈 하나는, 오도독오도독 생쌀
을 씹으며 돌아가는 서늘한 밤을 건네주고 싶은 것이
다 이미 멈춰버린 가슴속 발동기에 시동을 걸어주고,
어깨 처진 사람들의 등줄기나 사타구니에 왕겨 한 줌
집어넣는 것이다 웃통을 벗어 달빛을 털기도 하고 서
로의 옷에서 검불도 떼어주는 어깨동무의 밤길을 돌려
주고 싶은 것이다 논두렁이나 자갈길에 멈춰 서서 짐
승처럼 울부짖게 하는 것이다
- 이정록의 詩, ‘좋은 술집’에서 -
가끔 해 보는 구상이 있습니다. 집과 직장이 아닌, ‘제3의 공간’에 대한 생각이지요. 이 곳은 누구나 사람이 그리울 때 스스럼없이 나올 수 있는 카페입니다. 점차 단골 방문객끼리 책읽기와 글쓰기, 혹은 철학을 공부하는 소모임이 생겨났으면 합니다. 꿈을 이룬 사람을 초빙하여 말씀을 듣기도 합니다. 기쁘게 이야기하는 열화悅話살롱이고, 사회봉사와 체험활동을 연결하는 센터도 됩니다. 회원들의 예술적 창조물을 선보이는 전시관이며, 즐거운 놀이를 시도하는 실험실입니다. 내 안의 어린아이를 끄집어내는 놀이터입니다. 그 모든 것입니다.
당연히 술이 없을 수 없겠지요. 때로 술은 자기방어를 느슨하게 해주어 천진한 어린아이가 되게 하여, 사회적인 역할과 관성에 눌려있던 꿈을 일깨워주는 묘약이니까요. 말이 통하는 사람들과 함께 마신 술은 느닷없이 가슴 속 발동기를 돌아가게 할지도 모릅니다. 마음이 따뜻해져서 예열이 되거나, 앞서간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질투때문이지요. 이제껏 허비한 시간이 한탄스럽고, 어깨동무하며 걸어가는 길이 감격스러워, 짐승처럼 울부짖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기존의 생각과 생활양식이 깨져나가는 ‘위대한 통곡의 날’이지요.
좋은 술집에는 좋은 관계가 있습니다. 작은 실수를 포용하고 큰 방향을 공유하는 관계, 스스로 선택했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주어진 혈연보다 폭넓고 의미있는 관계, 공존의 관계망에서 이심전심의 그리움까지, 우리는 언제까지나 관계에 목마른 5분 대기조입니다. 좋은 관계는 일상을 풍요롭게 합니다. 뿌옇던 유리창을 닦기라도 한듯, 오감을 일깨워 시간을 되살아나게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내 편으로 남아줄 사람 서 너 명이면 충분합니다. 그 외곽으로 서로 이해하는 그룹 열 명 정도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사람들에게서,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힘이 나옵니다. 더러 깨지고 상처받는다해도 다시 복원할 수 있는 에너지의 원천입니다.
좋은 관계는 일상의 위로가 되어야 합니다. 고고하게 어려운 사이보다는, 직접 부대끼고 손잡을 수 있는 사이가 최고입니다. 불현듯 무료해지는 주말이나, 갑자기 허방을 딛듯 공허함에 놀랄 때 술 한 잔 기울일 수 있는 사이가 최고입니다.
좋은 술집 - 철학카페, 한 번 저질러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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